오늘은 음악을 듣지 않았어요. 곧 나올 신곡 믹싱 듣느라(웃음).
새 싱글 제목이 ‘한강에서’라죠. 한강이라니, 흥미롭습니다
오늘 날씨에 딱이죠. 연애를 시작한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연인의 감정선, 그 농도를 녹였어요. 사실 사귀는 첫날부터 사랑이 불꽃처럼 튀지는 않잖아요? 사랑이라기엔 이르고 ‘썸’보다 진한 감정을 한강을 배경으로 풀어냈죠.
사랑과 ‘썸’의 경계에 갑작스럽게 흥미가 생겼나 봐요
함께 작업하는 친구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한 친구가 “요즘 애들은 썸만 타고 싶어 한다더라! 연애까지 가고 싶지 않대”라더군요. 저로서는 이해하기 힘들고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에서 이 곡이 시작됐어요. 어쨌든 결론은 모두 몽글몽글한 감정을 느끼고 싶다는 거죠.
스스로 가을과 겨울이 어울리는 가수라고 생각했고, 주변에서도 그랬는데 문득 봄과 여름 사이에 어울리는 곡을 내고 싶었죠. 이번 작업의 첫 번째 목표였어요. 꿈이 이뤄졌습니다.
베레와 분홍색 터틀넥은 모두 Mick. 커팅 디테일의 블루 점퍼는 Seokwoon Yoon. 팬츠는 Lagoon1992.
폴킴은 화보 촬영을 즐거워하는 뮤지션이기도 해요
전적으로 스태프들만 믿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훌륭한 분들이 모였잖아요. 제가 어떻게 하든 찰떡같이 찍어줄 걸 아니까 아무렇게나 몸을 던지는 거죠(웃음). 평소 입지 않는 옷을 입은 저를 기록하는 작업이니 나중에 보면 재밌을 것 같아요.
심지어 동안이에요. 검색하기 전에는 88년생인 걸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요. 대부분 실제 나이보다 어리게 보지 않나요
그래서 좋아요. 예전에는 어려 보인다는 말을 특별히 원하지 않았거든요. 좀 더 성숙해 보이고 싶었고, 가끔 ‘내가 너무 쉬워 보이나?’ 싶을 때도 있었는데 요즘에는 한 살이라도 어려 보인다면 무조건 좋죠.
최근 태국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었어요. 첫 해외 콘서트였죠
한두 달 정도는 바짝 긴장했어요. 해외 콘서트는 처음이라 낯설었고,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예측 불가능했거든요. ‘너를 만나’ 정도야 K팝 그룹들이 자주 불러줘서 익숙하겠지만, 한국어로 된 다른 곡을 알아들을지, 지루해하면 어떡할지 약간 두렵기까지 했는데 분위기가 좋았어요. 정말 감사했죠.
관객들이 익숙함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에서 K팝 걸 그룹 메들리도 준비했잖아요. 르세라핌부터 뉴진스 곡까지, 음색과 잘 어울리던데요
커버곡을 부르지 않은 지 꽤 됐고, 국경을 넘어 무조건 알 만한, 유행하는 곡들로 구성했습니다. 꽤 어색하게 느껴져서 연습을 많이 했어요.
연두색 니트 카디건은 Zara. 선글라스는 Karen Walker by Optical W. 타투 스타일 핸드 워머는 Comme Des Garçons. 짙은 그린 슬리퍼는 Axel Arigato. 보라색 와이드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유튜브에 폴킴을 검색하면 가장 조회 수가 높은 영상으로 ‘너를 만나’ 뮤직비디오가 나와요. 대중이 좋아하는 곡과 스스로 좋아하는 곡에 간극이 있나요
‘너를 만나’도 그렇지만 사실 OST인 ‘모든 날, 모든 순간’이 이렇게 잘될 줄 몰랐어요. 저는 ‘사랑하는 당신께’를 정말 좋아해요. ‘집돌이’나 ‘나의 봄의 이유’도 좋아요. 히트 여부와 상관없이 아낄 수밖에 없는 곡들이죠. 역시 음악은 쉽게 예측되거나 정답이랄 게 없어요.
하지만 차트 롱런은 기본, 3억 스트리밍을 돌파해 가온차트 트리플 플래티넘을 인증받거나 멜론 하트 20만 이상 곡을 4개 이상 보유한 뮤지션인 걸요. 대중성을 칭찬으로 받아들이나요
대중이 좋아하는 곡이 히트곡이니까 물론이죠. 하지만 제가 트렌디한 곡을 잘하는 뮤지션은 아닌 것 같고, 그 역할을 잘하는 가수들은 따로 있다고 생각해서. 제 음악적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어요.
깅엄 체크 셔츠는 Prada. 날염 프린트 쇼트팬츠는 8 by Yoox.
중요한 건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자신을 100% 내려놓으면서까지 음악을 할 필요는 없죠. 제 안에서 대중과 접점을 찾는 게 중요하고, 그 영역을 넘어서는 건 꼭 제가 아니어도 가능하잖아요. 폴킴이어야 하고, 폴킴이 부르는 게 마땅한 곡이 정답인 것 같습니다.
당신의 음악에는 다양한 사랑의 흔적으로 꽉 차 있어요. 시대상에 따라 사랑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게 뮤지션의 숙명처럼 느껴지기도 할 것 같아요
사랑은 에너지예요. 그런 에너지가 떨어지면 뭐든 싫어지고, 의욕도 없어지죠. 모든 행동과 선택의 기본이랄까요. 저는 노래 속 사랑의 형태나 관념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요. 고민이랄 게 필요 없는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어디든 있으면 있고, 또 없으면 없는 거니까. 꼭 사랑해야만 하는 시대도 아니고요. 하지만 제 음악은 결국 사랑으로 돌아와요. 이해하기 쉽고 감정선도 넓어지거든요.
‘멘트 장인’다운 말이에요(웃음). 요즘 한창 페스티벌 공연으로 바쁠 텐데, 자주 하는 인사말이 있나요
‘반갑다.’ 예전에는 꽤 상업적인 멘트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요즘은 진짜 반가워서 반갑다고 해요. 코로나19를 언급하기에는 시간이 꽤 흘렀지만 그 시대를 겪었기에 이 만남이 얼마나 소중한지 본능적으로 느끼거든요. 늘 오는 분도 있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 공연을 보러 온 분도 있을 거잖아요.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도 있고, 꼭 한 번 더 오라는 마음도 담겼고요. 오느라 고생했다, 반갑다는 말이 심장 깊숙한 곳에서 나온 게 아닐지라도 이 기분을 가볍게 던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팝아트적 프린트의 터틀넥과 팬츠는 모두 Lagoon1992. 컬러 블록이 인상적인 니트 톱은 Kenzo. 오렌지 컬러 샌들은 Coach.
데뷔 10년 차를 앞두고 있어요. 음악을 오래 할 방법을 찾았나요
행복을 포기하면서까지 음악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것. 제가 행복해야 음악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불행하면 듣는 사람도 불행할지 모르니까. 성공이나 결과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요. 그렇지 않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고 싶어요. ‘좋아하는 일을 꼭 행복과 맞바꾸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명제. 제가 증명하고 싶은 게 좀 많아요(웃음). 비록 우울하거나 슬픈 음악을 하더라도 그로부터 느껴지는 좋은 마음이 있다면 음악을 지속할 수 있겠죠.
온기 어린 음악을 하지만 때론 날 서거나 혹은 어두운 면을 품으려 했던 적도 있나요
주제 파악을 정확히 하는 편이라…. 차갑거나 날 선 음악은 기술적으로는 잘 부를 순 있어도 그걸 무대에서 부르는 제 모습이 상상되지는 않습니다. 부끄럽고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웃음). 혼자 집이나 노래방에서 폼 잡고 해봤는데 정답을 알았죠. 모두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되겠다는….
지난 4월에는 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 한빛예술단과 함께 청와대에서 노래했어요. 폴킴은 단순히 리스너와 감정을 공유하는 것 이상으로 노래로 더 많은 무언가를 해보려는 것 같았어요
아마 주변 모두가 그게 제 의견인 것처럼 말하길 바라겠지만, 좋은 아이디어를 먼저 제안해 주는 분이 많아요. 제안 자체가 저를 좋게 봤다는 의미니까 감사하죠. 그러니 폴킴의 아이디어라는 칭찬이나 그로 인해 주어진 영광을 독식하고 싶지는 않아요. 한빛예술단이 고생했어요. 악보가 보이지 않으니 곡을 완벽하게 외워야 하고, 모르는 곡이라면 더 어렵고, 익숙하지 않아 실수할 수 있는데도요. 심지어 다른 공연을 준비하면서 연습한 걸로 아는데, 저는 진짜 수혜자예요. 제가 청와대를 또 언제 가보겠어요? 소나무가 진짜 예쁘거든요.
스트링 장식의 후디드 레인코트는 Lagoon1992. 니트 톱과 데님 팬츠는 모두 Stu Office. 스니커즈는 Dolce & Gabbana.
‘애증’이라고도 하죠. 음악이 지긋지긋할 때도 있었나요
한때는 제가 특정 무드나 형식의 곡을 불러야 한다는 인식에 스트레스가 좀 있었어요. 그런 곡이 싫다기보다 그땐 명확하게 제 감정을 정의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어요(웃음).
그럼에도 음악이 지닌 힘과 영향력을 명확하게 말한다면
궁극적으로 음악은 기쁨이에요. 슬픈 음악도 서로 상황을 공감하며 감정을 더 밝은 곳으로 꺼낼 수 있게 만드니까 그 또한 기쁨이죠. 저는 모두 기뻤으면 좋겠어요. 웃다 죽고 싶어요.
겨울에서 하루라도 빨리 여름으로 넘어가고 싶은 상태. 더 따뜻하고 싶고, 열정적이고 싶어요. 88년생 김태형의 계절은 봄으로 넘어가고 있어요. 2월생이라 땅이 살짝 언 상태에서 태어났거든요. 햇빛이 좀 더 들길 기다리고 있죠. 빛으로 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