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날까지만 해도 하늘에 잔뜩 끼어 있던 구름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상쾌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을 기다리던 관객들 앞에 가장 먼저 나타난 건 자우림의 김윤아였습니다. 라이브를 시작하기 직전 백스테이지에서 〈엘르〉와 만난 김윤아는 이날의 무대를 이모지로 표현해 달라는 부탁에 '풀'과 '음표'를 골랐습니다. 그러면서 "순수하게 즐기는 스테이지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죠.
첫 곡은 그가 2004년 발매한 두 번째 솔로 앨범의 '봄이 오면'이었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맞이할 봄 풍경 상상을 시처럼 읊조리는 김윤아의 모습에 객석은 숨 죽인듯 노래에 집중했습니다. 이어 같은 앨범의 '야상곡(夜想曲)'으로 무대를 꾸민 김윤아는 'Going Home', '안녕'을 차례로 부르며 듣는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졌습니다. 마지막 곡은 '봄날은 간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고, 봄을 떠나 보내는 아련함으로 문을 닫은 서정적 셋리스트 구성이 인상적이었어요.
어느덧 노을로 물든 〈엘르 스테이지 2023〉 두 번째 무대는 카더가든이 열었습니다. 그는 시작 전 〈엘르〉에 노들섬과 집이 가까워서 이 근처에서 열리는 공연들을 좋아한다고 귀띔했는데요. 단순히 거리가 가까워서가 아니라, 이곳의 편안한 분위기가 기분을 좋게 만든다면서요. 관객들에게 '이지 리스닝 스테이지'를 선물하겠다고 각오를 다진 그의 첫 곡은 'Tallguy'. 키만 큰 남자의 설움(?)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노래로 잔잔하던 공연장의 분위기는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카더가든은 이어 '나무', 'Little By Little', '꿈을 꿨어요', '명동콜링', 'Home Sweet Home' 등의 히트곡을 열창했습니다. 'Little By Little'을 부를 때는 관객석 떼창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완전히 해가 져서 공기도 서늘해진 〈엘르 스테이지 2023〉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건 지난해에 이어 또 한 번 〈엘르〉와 함께 한 10cm였습니다. 뒤에서 앞선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즐긴 10cm는 쾌청한 날씨 만큼 관객들의 기분이 좋아 보였다며 기뻐했는데요. 백스테이지에서 이날 자신이 펼칠 공연을 이모지로 표현해 달라는 말에 대뜸 '불타는 하트'를 집은 10cm. 올해 〈엘르 스테이지 2023〉에서 화끈한 무대를 담당하겠다는 포부였습니다.
10cm는 총 7곡의 노래를 선사했는데요. 상큼한 사랑 노래 '그라데이션'부터 '은하수다방', '딱 10cm만'으로 이어지는 스테이지에 관객석은 감성으로 물들었습니다. 여기에 '부동의 첫사랑', '폰서트', '봄이 좋냐'로 분위기는 최고조로 달아올랐고요. 10cm의 마지막 곡 '스토커'와 함께 마무리된 〈엘르 스테이지 2023〉. 노들섬은 이내 어둑어둑해졌지만, 충만했던 공연의 여운과 초여름밤을 즐기는 사람들이 여전히 가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