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브랜드와의 협업이 당신의 내면에 소환하는 추억이 있나요
다른 사람처럼 어릴 때 저만 사용하는 도자기가 있었죠. 직접 꾸미기도 했고요. 훗날 꼭 나만의 도자기 라인을 선보이고 싶어요. 언제일지 모르겠지만(웃음).
루크 에드워드 홀과 지노리1735의 협업으로 탄생한 프로푸미 루키노 컬렉션 중 코츠월드를 그린 ‘폭스 티켓 폴리’ 플레이트.
테이블 위에 마법을 부리고 싶을 때 즐겨 쓰는 방법은
테이블 위에서도 시대의 믹스매치를 좋아해요. 빈티지 그릇을 적절히 섞어 올리죠. 테이블 위를 너무 풍성하게 꾸미는 건 좋아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누군가와의 식사 그 자체니까요. 흘러넘치는 센터피스, 너무 높은 캔들 장식이 대화의 흐름을 끊으면 안 되죠.
프로푸미 루키노 컬렉션 중 베네치아에서 영감을 받은 ‘팔라초 센타우로’ 가니메드 캔들 홀더.
2년 전, 그리스 · 로마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던 컬렉션 ‘일 비아지오 디 네투노(Il Viaggio di Nettuno)’는 선풍적 인기를 끌며 지노리1735(이하 지노리)의 얼굴이 됐죠. 지노리와 두 번째 협업인 ‘프로푸미 루키노(Profumi Luchino)’는 향을 중심으로 펼쳤다는 점이 흥미로워요
홈 프레이그런스를 좋아해요. 어떤 장소의 향기는 우리가 경험한 기억과 감각을 단숨에 불러일으키는 놀라운 힘을 지녔잖아요. 항상 향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어요. 제가 아주 좋아하거나 여러 번 가봤거나 한두 번 방문했는데도 큰 영향을 받은 다섯 도시를 기본으로 했죠. 마음 속의 ‘톱 5’를 고른 건데 쉽지만 결코 간단하지 않은 선택이었어요.
프로푸미 루키노 ‘팔라쪼 센터우로’ 중 캔들 제품.
집이 있는 영국 코츠월드를 비롯해 모로코의 마라케시, 인도 라자스탄, 미국의 빅서, 이탈리아 베네치아가 주인공이죠. 무려 코츠월드와 함께 당신의 마음속 톱 5가 된, 한두 번 방문했던 도시는
인도 북서부 라자스탄은 일로 방문한 곳이기도 하고, 단 하루 머물렀는데 오감이 압도되는 경험을 했어요. 궁전의 색깔, 풍기는 냄새를 비롯한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 강렬하게 다가왔죠. 예전부터 인도를 좋아했어요. 인도의 색과 패턴, 프린트는 굉장히 매력적이죠. 베네치아는 반대예요. 자주 방문한 도시기도 하지만 비교적 자주 가기 쉬운 도시 중에서도 가장 사랑하는 도시예요. 베네치아의 건축과 역사, 사람, 음식에 항상 감동해요. 특히 겨울의 베네치아를 좋아합니다. 빅서에서는 열흘 동안 웨스트 코스트를 따라 드라이브했어요. 그중 하룻밤은 로그 캐빈에서 캠핑도 했죠. 굉장히 감정적인 선택이었어요.
2021년 컬렉션인 일 비아지노 디 네투노의 플레이트와 컵 세트.
다섯 도시에 상상 속의 집을 그렸죠. 이를 제품에 낭만적인 드로잉으로 구현했습니다. 코츠월드의 집은 폭스 티켓 폴리, 라자스탄은 라자트라 궁전…. 마치 실존하는 것처럼 명확한 이름을 붙였습니다. 훌륭한 스토리텔러인 당신다운 컬렉션이에요
상상으로 도시의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거기에 부합하는 장소를 만들었어요. 그곳이 지닌 풍요로운 이미지와 고유의 감각을 해치지 않도록 조그마한 단서까지 촘촘히 떠올렸어요.
마라케시의 공기까지 담아낸 라 가젤 도르(La Gazelle D’or).
지금까지 수많은 디자인을 선보였지만 향까지 디자인한 건 처음이죠. 당신의 경험에서 온 감각을 향기의 영감으로 사용하고 보이지 않는 감각을 디자인한 방식이 궁금해요. 가장 먼저 어떤 일에 착수했나요
다섯 가지 이야기를 상상하고 무드보드를 만들었어요. 아주 자세한 상황까지 설정해서 이야기를 세밀하게 구상했죠. 이 집의 저편에는 책이 가득 쌓여 있고, 정원 한쪽에선 마침 불을 피우고… 지노리와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만든 다섯 편의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은 즐거웠어요. 코츠월드의 향으로 만든 폭스 티켓 폴리에는 오래된 책이나 가죽에서 날 법한 노트를 넣었어요. 누군가는 타바코 향이 난다더군요. 이번 프로젝트는 그 자체로 엄청난 경험이 됐어요.
기하학 무늬가 돋보이는 일 비아지노 디 네투노의 플레이트와 볼.
각 도시가 지닌 전형성에 바탕을 두면서도 개인적 감정과 경험에 바탕을 둔 향이라 더욱 강렬하게 와닿는 것 같습니다
베네치아는 교회에서 피우는 인센스 향과 도시의 곳곳을 흐르는 운하의 냄새가 얽혀 있죠. 도시별로 계절도 설정했어요. 베네치아는 겨울, 코츠월드는 가을 이야기예요.
기하학 무늬가 돋보이는 일 비아지노 디 네투노의 플레이트와 볼.
일 비아지노 디 네투노에서는 컵과 디시, 볼 등을 선보였다면 이번에는 다양한 종류의 캔들과 캔들 홀더가 중심이에요. 덕분에 거대한 석고 두상 형태의 촛대도 등장했어요
베네치아 라인에는 거대한 석고 두상 형태를 본뜬 캔들 홀더가 있어요. 또 다른 라인에는 기둥 형태의 촛대가 있죠. 향이라는 주제로 여러 ‘조각’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일 비아지노 디 네투노가 그림으로 전개된 컬렉션이라면 프로푸미 루키노는 조각이에요.
프로푸미 루키노 컬렉션으로 선보인 라 가젤 도르 카메오 인센스 버너. 입에 난 구멍에 인센스를 꽂아 향을 즐긴다.
오랜 역사를 지닌 지노리의 아이덴티티 그리고 철학, 고집해 온 공정이나 노하우가 당신에게 주는 영감은
지노리의 아카이브인 기록보관소가 있어요. 놀라운 공간이죠. 그곳에서 발견한 조각들이 프로푸미 루키노 컬렉션의 영감이 됐어요. 지노리의 기록과 역사에서 직접적 영감을 받은 거죠. 제가 원하는 컬러를 도자기에 딱 맞게 입히기란 쉽지 않은데, 지노리가 축적해 온 기술력과 노하우로 완벽하게 구현하는 기술 지원이 이뤄졌죠. 지노리는 300년가량 도자기를 만들어왔지만 동시에 시대적 비전을 갖고 있어요. 저 역시 오래된 것과 지금의 감각이 조우하고 교차되기를 지향하는데, 지노리와 그런 작업을 할 수 있었어요.
언제나 유머를 중시하는 아티스트이자 디자이너입니다. 이번 컬렉션도 마찬가지인가요
맞아요. 제가 좋아하는 유머는 깔깔거리며 크게 웃는 게 아니에요. 매력적인 장난기와 재치, 긍정주의와 기쁨이 묻어 있는 미소와 같은 유머죠. 저는 냉철하고 진지한, 번쩍 깨어 있는 감각은 좋아하지 않아요.
라자스탄의 라자트라 궁전을 상상하며 만든 향초 ‘안포라 라자트라(Anfora Rajathra)’.
지금껏 수많은 디자인 & 아트 프로젝트를 수행해 왔죠. 직물과 가구, 액세서리, 공간…. 경계 없는 디자인 작업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확장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다방면의 경험이 있었죠. 열다섯 살 때는 실제로 매거진을 만들고 발행해서 친구들에게 주기도 했고요. 대학에서는 패션을 전공하고, 대학 졸업 이후에는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에서 일했어요.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모든 일을 진심으로 즐긴 것이 큰 힘으로 작용한 것 같아요. 언제나 영감은 이전 세대가 남긴 멋진 예술과 글에서 받아왔고요.
루크 에드워드 홀의 작업을 보고 있으면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 모든 것이 궁금해져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만큼 의외인 것도 있을까요
아주 멀고 쓸데없거나 사소한 것에서도 영향을 받아요. 일본을 방문했을 땐 탁자 위에 올려둔 병 라벨에 있던 작은 그래픽 디자인도 한참 들여다봤죠. 항상 열린 눈으로 살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온갖 영감이 툭 들어올 때가 있어요.
아티스트와 디자이너로 사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픈 아이즈’. 아이디어든 어떤 협업 제안이든 열려 있어야 해요. 자신을 박스 안에 가두면 안 돼요. 나를 가두려는 외부 시선이 있다면 항상 그 박스 바깥에서 생각하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 하죠. 다른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지 않고 조금 더 확실히 자신의 본능을 믿고 붙잡을 필요가 있어요. 자신을 자유롭게 하려는 태도가 디자이너에겐 매우 중요하죠.
열린 눈의 당신에게 최근 가장 큰 설렘을 준 것은
곧 이집트로 여행을 떠나요! 밤에 잠들기 전 항상 이런 키워드를 검색하죠. 파라오, 피라미드…. 어린 시절부터 줄곧 꿈꾸던 여행지라 굉장히 흥분돼요. 피라미드 방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니 정말 근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