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방소윤이 입은 윈드브레이커 재킷은 Martine Rose. 티셔츠는 ERL. 데님 팬츠는 Hed Mayner. 스니커즈는 Nike. 김하은이 입은 후디드와 조거 팬츠는 Namesake. 모자는 Charles Jeffery Loverboy. 스니커즈는 MLB. 오시은이 입은 저지 티셔츠는 NBA. 트레이닝 팬츠는 Y/Project. 스니커즈는 Nike. 액세서리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서예진이 입은 쇼츠는 Namesake. 네트 티셔츠와 저지와 스니커즈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조주희가 입은 티셔츠는 Diesel. 스니커즈는 Nike. 트레이닝 팬츠와 아대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그래 우리는 수원여고 농구부, 포기를 모르는 여자들이지.’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380만 관객을 돌파하며 파죽지세인 가운데 어른들의 가슴에 다시 불꽃을 틔운 정대만의 대사를 구슬땀으로 증명하는 소녀들이 있다. 현존하는 전국 최강 수원여고 농구부. 지난 10월, 2022 전국체육대회 농구 여자고등부 결승전에서 22년 만에 우승을 탈환해 전국을 제패했으니 현시점,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덩크 걸스’인 것! 주장 오시은(19세)은 당시 승리의 짜릿함을 회상한다.
“지난 전국체전 결승에서 붙은 수피아여자고등학교와 다시 만난 경기였어요. 우리는 결승에서 매번 졌고 이번엔 꼭 이기려고 이를 악물었는데. 매번 패배를 맛본 상대를 이겼으니 기분이 남달랐죠(교장 선생님은 우셨다). 다들 긴장해서 당시 고3이던 언니들에게 많이 의지했는데, 그 언니들 이 지금 프로 신한은행 이두나 선수와 BNK 썸 김민아 선수예요. 언니들은 수원여고의 버팀목이자 기둥이에요. 저희가 등에 매달려 있는 느낌이지만 (웃음)! 이제 제가 주장이 됐으니 열심히 해보려고요.”
엎치락뒤치락했던 경기, 막판 10초를 남기고 역전 3점 슛으로 승리를 거머쥐는 짜릿함이라니! 다이어트도 할 겸 시작한 농구가 인생이 된 가드 오시은을 필두로, 농구선수였던 아버지에게 농구를 배운 포워드 조주희(19), 과거 농구선수였던 엄마를 따라 매일 농구 클럽에서 놀다가 재미에 빠져버린 슈팅가드 방소윤(18)과 가드 김하은(18), 키 185cm로 농구할 운명을 타고난 센터 서예진(18)까지! 수원여고 농구 팀의 강점으로 대부분 빠른 속도와 빠른 공격 전환을 꼽지만 오시은은 “우리끼리 시너지가 정말 남달라요”라며 애정을 드러낸다. 김하은도 거든다. “기 싸움 같은 걸 안 해요. 팀 분위기도 무겁지 않고요. 무조건 격려만 해주거든요.” 옆에서 잠자코 듣던 시은은 갑자기 글썽인다. “뭐야, 눈물 나려 그래. 하은이가 이런 말 진짜 안 하는 친구거든요.”
수원여고 농구 팀만의 ‘스피릿’은 뭘까? “강병수 코치 선생님은 항상 ‘무대는 어떻게든 만들어줄 테니 춤은 너희가 추는 거다’라고 하세요. 이 말엔 큰 깨달음을 얻었어요. 얘들아 감동받지 않았어?” 서예진과 김하은, 조주희가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이 우승팀에, 올해 신입생이 한 명도 없다? 여전히 비인기 종목으로 여겨지는 여자농구. 그중 전국 몇 팀 정도만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여자 고교 농구부의 선수 부족은 제아무리 우승 팀이라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지난해 우승을 견인했던 고3 선수들은 프로 팀에 입단했고, 현재 인원으로 올 시즌을 소화해야 한다. 대회 전 한 명이라도 부상을 입으면 큰일이고, 대회 중 교체할 예비선수도 없다. 조주희는 그럼에도 씩씩하다. “반칙도 하면 안 돼요. 다섯 번 하면 퇴장이거든요. 걱정되긴 하지만 지난해에 합을 맞춘 친구들 모 두 그대로 팀이 됐으니, 우리만의 시너지가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인원이 많다고 잘하는 건 아니니까요.”
센터 서예진(18) “저는 몸싸움이 좋아요. 그게 농구의 진짜 매력이죠.”
옆에서 오시은이 맞장구친다. “코치님이 매번 ‘가방끈 길다고 공부 잘하냐’는데. 진짜 그렇게 생각해요. 〈슬램덩크〉에서도 거의 주 멤버 다섯 명만 뛰잖아요? 저희도 그저 ‘안경 선배’ 없이 다섯 명이 뛴다고 생각합니다(웃음). 다 잘하는 애들만 있으니까! 다섯 명이라 서로 잘 아는 면도 있고, 신뢰도 두터운 것 같아요.” 농구 이야기에 한껏 진지하다가도 코트 밖에서는 영락없는 ‘고딩’으로 돌아 온 선수들. 팀 복을 벗고 소위 ‘뉴진스 스타일’ 의상을 입으면서 깔깔 웃음이 터졌다.
이어 자신들이 〈엘르〉 3월호 커버 스타인 민지와 함께 실리는 게 정말 맞는지, 헤어 스타일리스트가 투모로우바이투게더와 작업해 본 적 있는지, NCT 노래를 틀어줄 수 있는지 등등 궁금증이 쏟아졌고. 이에 최승호 감독도 “너희 이제 농구 안 하고 연예인 한다고 하는 거 아니냐?”며 애정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오시은은 에스파가 좋고, 김하은은 NCT 127과 NCT Dream이 ‘최애’다. 방소윤은 중학생이 돼 ‘중2병’에 걸린 듯한 동생에게 온통 관심이 쏠려 있다고. 서예진은 친구들, 조주희의 최애는 반려견 연탄이다. “야간 훈련을 끝내고 지쳐서 집에 들어가면 가족 모두 잠들어 있을 때가 많아요. 현관문을 열면 연탄이가 달려와 반겨주거든요. 그때 진짜 행복해요!”
가드 김하은(18) “농구는 속고 속이는 스포츠예요. 수비를 딱 제쳤을 때 쾌감이란!”
〈슬램덩크〉 ‘최애캐’도 놓치지 않고 물었다. 조주희는 서태웅, 이유는 잘생겼고 농구도 잘하는 ‘남편감’이라서. 방소윤도 ‘카리스마’ 서태웅이 “절박한 상황에서도 늘 자신감이 넘쳐 좋다”고 한다. 서예진의 ‘픽’은 강백호다. 고등학교에 와서 농구를 시작하게 된 강백호의 상황이 자신과 비슷하고 ‘농구 천재’가 되고 싶으니까. 김하은은 ‘얼굴’은 서태웅이지만 인기가 지나치게 많은 것 같으니 ‘웃긴 남자’ 정대만으로 최종 결정했다. 오시은도 정대만. “힘들수록 더 열심히 뛰는 모습이 통했달까요? 저도 체력이 약한 편이거든요. 지치다가도 뛰어야 할 땐 사력을 다하는 모습에서 동질감을 느꼈어요.”
앞으로 이들이 더 잘해내고 싶은 건 뭘까. 오시은의 대답은 송태섭과 닮았다. “저도 키가 작은 편인데 스피드가 빠르지 않아서 폭발적인 속도감을 기르고 싶어요. 더 쉽게 수비를 제치고 슛을 쏘려고요.” 방소윤은 “드라이빙에 자신감 없는데 2학년 때는 더 연습해서 잘하고 싶다” 하고, 김하은은 “코치님 이 항상 ‘너무 고지식하게 플레이한다’고 해서 좀 더 유연하고 영리한 플레이 를 하고 싶다”고 했다. 조주희는 “자세를 더 낮추고, 스텝을 넓게 밟고” 싶으며, 서예진은 “리바운드를 잘해서 고3 언니들과 우리 팀을 서포트해 주는 멋진 존재가 되고 싶다”며 의지를 불태운다.
슈팅가드 방소윤(18) “빠른 템포의 공격, 다득점이 가능한 게임♥”
일찌감치 자신들이 진짜 사랑하는 것과 이루고 싶은 꿈, 그 길에 함께 나설 든든한 친구들을 찾은 소녀들의 눈은 명확하게 빛난다. ‘내 농구 인생을 한 단어로 표현해 달라’는 질문에 서예진은 ‘변비’라는 엉뚱한 대답을 내놓았지만. “원하는 자세나 동작을 노력 끝에 딱 한 번 시원하게 성공하면 너무 후련하거든요!” 김하은에게 농구는 인내다. “노력한다고 실력이 눈에 띄게 늘지 않아요. 그래서 인내. 친구들과 특별한 추억이 쌓이는 것도 좋아요. 고된 인내 끝에 받은 보상 같거든요.” 주장 오시은은 ‘농구는 마라톤’이라고 말한다. “일정한 페이스로 달려야 하는 마라톤처럼 농구도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도착점에 닿거든요. 뛰다 보면 ‘그만 할까? 힘든데’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계속 달리면 원하는 곳에 닿을 거예요.” 끝으로 뻔하지만 꿈도 물었다.
포워드 조주희(19) “농구에는 수비와 공격이 나눠져 있지 않아요. 짱이죠?”
“가슴에 태극 마크 ‘딱’ 달고 (농구의 본고장 인) 미국을 단번에 이겨버리는 거! 제가 에이스로 말이죠, 가능할까요? 매일 잠들면 꾸는 꿈이거든요.” 주장의 말을 듣던 서예진과 조주희도 ‘꿈은 크게 가지는 게 좋다’고 했다며 국가대표를 꼽았다. 김하은은 ‘효도’다. “국가대표 가 되는 것도, 프로 선수가 되는 것도 다 효도하는 거잖아요. 믿어준 부모님을 위해 뛸 거예요.” 막내 방소윤은 “아직 꿈은 없지만, 조금씩 만들어 나갈 것”이라며 눈을 반짝였다.
가드, 주장 오시은(19) “농구는 두뇌 싸움이에요. 조직적으로 움직일 때 짜릿함을 느껴요.”
수원여고는 올해 시즌 첫 대회 우승과 전국체전 2 연패라는 목표와 꿈을 향해 달릴 계획이다. 지치는 순간도 오겠지만 소녀 강백호와 서태웅, 아니 자신들의 이름 석 자로 써 내려갈 이 서사는 계속될 것! 이 글을 읽는 또 다른 소녀들도 농구를 사랑한다면, 아니 그 어떤 필드라도 겁먹지 말고 뛰어들길. ‘포기하면, 그 순간이 시합 종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