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2007). 기념비에 쓰이는 카라라 대리석으로 만든 아홉 개의 얼굴 없는 조각. 관람자에게 저마다 새겨진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요즘 성장하느라 바쁩니다만.” 어느 신인 예술가의 근황일까? 아니다. 커다란 벽에 덩그러니 붙은 바나나, 소년의 뒷모습을 한 채 고요히 무릎 꿇은 히틀러, 운석에 맞고 쓰러진 요한 바오로 2세까지. 기존 관념에 파문을 던지며 미술계 침입자 혹은 사기꾼으로 불리던 거장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말이다. 그는 “대체 누가 나를 두고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의 말도 일리가 있다. 1980년대 후반,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나 지금이나 그는 사람들의 입방아에서만 꾸준히 다시 태어나고, 죽고, 또 성장하며 그의 작품들은 탄생 한 시공간과 관람하는 시공간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과 사유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홉 구의 조각상이 붉은 바닥에 누워있는 ‘모두’를 보고 16년 전의 작품임에도 한국인이라면 누구든 가슴을 쓸어내리고, 저마다 마음속 소란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는 것처럼.
‘무제’(2001). 실제로 리움미술관 바닥을 뚫어 설치했다. 카텔란을 닮은 얼굴로, 기성 미술계의 영웅적 존재가 아닌, 외부인과 같은 자신의 위치를 풍자하는 듯하다.
그 30여 년의 파노라마가 공교롭게도 한남동 리움미술관에 펼쳐졌다. 2011년 미국 구겐하임미술관 회고전 이후 최대 규모이자 ‘모두’(2007) ‘우리’(2010) ‘코미디언’(2019) 등 38점의 조각과 설치 미술, 벽화를 한데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웅크린 사람과 그 곁에 누운 개 조각을 보며 숙연해질 즈음, 천장에서 난데없이 북 치는 소년에 화들짝 놀라고, 바닥을 부수고 나온 작가의 자화상을 보며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니 이 전시는 분명 ‘회고전’이지만 회고전이라 할 수 없다. 관람자는 각자의 경험과 사정으로 새로운 카텔란을 무한대로 탄생시킬 테니까! 카텔란 스스로는 서울이라는 시공간에서 자신의 지난 작품들을 어떻게 반추할까. 어릴 적 치기와 패기? 거장의 훈장? 혹은 재산? 슬쩍 물으니 ‘쿨’하게 답한다. “요즘 옛날 일이 잘 기억나지 않는데 다 행인 것 같다. 향수나 추억 같은 것에 빠져 이 ‘좀비 떼(작품)’와 마주하는 건 별로니까!”라고. 그와 나눈 단 아홉개의 문답.
서울에 온 걸 환영한다. 리움미술관에서 관람자를 처음 반기는 건 두 명의 노숙인이다. 올해 신작 이자 한때 당신의 별명이기도 한 ‘미술관에 온 이방인’처럼 보이는 ‘동훈과 준호’(2023)는 왜 이곳에 자리한 걸까
기억하기로 90년대에 처음 미국에 다녀온 후, 이 리메이크 작업 시리즈를 구 상했던 것 같다. 첫 작품이 완성되자 한 번은 박물관을 청소하는 분이 쓰레기로 착각하고 폐기한 적도 있고, 이탈리아 토리노 거리에서 전시했을 땐 누군가 실제 노숙자로 착각해 앰 뷸런스를 부른 적도 있다. 적어도 후자는 인정이 있는 사람이라고 봐야겠는데(웃음). 동훈 과 준호처럼 사람들이 노숙자가 되는 이유는 수없이 많지만 안타깝게도 자신의 선택이 아 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 또한 사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 많지만 한 번도 불분명 한 회색지대로 뛰어들 용기를 내지못했다. 그런 마음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WE〉를 통해 개인전으로 서울의 ‘우리’들과 처음 마주하게 됐다. 지금의 이태원과 한남동은 ‘우리’라는 이름 아 래 젠더와 계층, 인종 문제에 대한 갈등과 연대가 혼합된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 사람들과 어떤 연결을 기대하나
그런 ‘연결’을 위해 작품을 보호하는 라인이나 별도의 경보 센서를 달지 말라고 리움미술관에 요청했다. 나는 작품 앞에 설치된 ‘지지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예술 작품에 대한 경험을 엘리트적 경험으로 바꿔 버리는 것 같아서. 밀란에 있는 컨템퍼러리 아트 갤러리 한가르 비코카(Hangar Bicocca)와 리움미술관을 내가 좋아하는 공통된 이유 중 하나는 공공 시민광장처럼 입장권 없이 사람들에게 활짝 문을 연다는 점이다. 서울의 ‘우리’들과도 작품과 아티스트, 관람객자라는 평등하고 동등한 존재로서 마주할 수 있을 것 이다.
〈WE〉 전시 전경. 화강암으로 만든 기념비 ‘무제’(1999). 오른쪽에는 9·11 테러 직후 선보인 작품 ‘프랭크와 제이미’(2002). 무능한 공권력을 풍자한다.
생 바나나로 작업한 ‘코미디언’(2019), 운석을 맞고 쓰러진 교황의 모습을 표현한 ‘아홉 번 째 시간’(1999) 등의 작품에서 위트를 얻는 것도 물론이지만 한국인에게 이번 전시는 죽음의 정서로 크게 다가갈 것 같다. 특히 빨간 카펫 위에 나란히 놓인 아홉 개의 대리석 조각 ‘모두’를 보면 최근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를 떠올릴 수도 있고. 당신에게도 죽음의 정서는 중요한가
종종 내 작품의 어두운 면에 관한 질문을 받는데, 그럴 때마다 내 작품을 보거나 나를 인터뷰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관점에 놀라곤 한다. 죽음의 정서로 느껴진다는 작품을 만들 때의 나와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은 너무 달라 작업 의도를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렵거든. 하지만 그 어떤 형태의 죽음이든 작품으로 죽음이라는 관념을 직면할 때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는 ‘자기 삶을 허비하며 살지 않았다’는 느낌을 얻는 것이다. 실제의 삶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작품과는 또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죽은 듯하면서 살아 있는 듯 보이기도 하는 동물을 포착한 작품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천장에 매달려 고개를 떨구고 있는 말을 형상화한 ‘노베 첸토’(1997)나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듯한 다람쥐로 보이는 ‘비디비도비디부’(1996), 액 운을 불러온다는 루머를 뒤집어쓴 검은 고양이의 뒷모습을 담은 ‘그것’(2023) 등에서 동물의 표 정과 행동은 어떻게 시각화되었나
동물을 다룬 작업은 지금처럼 사랑스러운 이모티콘이나 귀여운 동물의 모습을 보여주는 소셜 미디어 채널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에 구상하고 완성된 것으로 생각해 주면 좋겠다. 그때 동물은 시골에나 가야 볼 수 있었고, 나 역시 어린 시 절에 시골에나 가야 이들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 그때 말과 다람쥐, 고양이와 개 등의 삶에 인간과 필적할 만큼의 고통과 감정이 자리한다고 느꼈다. 그런 이유로 동물의 모습을 작업 소재로 쓰기 시작했다.
‘코미디언’(2019). 아트 바젤 마이애미에 첫 등장한 이후로 카텔란의 대표작이 됐다. 한 예술가는 바나나를 떼어 먹기도.
지난해 서울에 머물며 전시를 준비했다. 90년대부터 선보인 작품을 전 시로 총망라한 걸 보며 관람자는 당신의 변화무쌍한 모습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 또한 관람자 입장에서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는 과정을 겪었나
전혀. 지난날을 회고하는 행동의 가장 무서운 측면이 바로 그것이다. 마치 좀비 떼를 마주하는 기분이랄까(웃음). 요즘 과거 기억 을 점점 잃고 있는데, 향수나 추억에 빠져 있는 것보다 자꾸 깜빡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머릿속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작업할 때 아이디어를 구현할 ‘용기’를 내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얘기한 적 있다. 나는 내가 용감한 사람 이라고 생각한 적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카텔란은 이럴 것이다’ 혹은 ‘저럴 것이다’라고 생각 하는 것이나 기대하는 바에 따라 행동하지는 않는다. 작품이 탄생하는 과정도 주로 그때그때의 본능적인 행동과 운의 조합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그런 방식에 대해 공유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웃음). 작업 과정에 딱히 어떤 지침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마음을 아주 뻔하고 당연한 것으로부터 좀 더 유연하고 산만해지도록 내버려둔다는 정도? 어쩌면 모르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위험한(?) 일이니, 주의할 것!
‘그’(2001). 언뜻 기도하는 소년처럼 보이지만 무릎을 꿇은 사람은 아돌프 히틀러다.
여전히 스스로 ‘침입자’나 ‘이방인’으로 규정하나
그런 말이 어쩌다 나온 건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지금의 나를 설명하는 수식어는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어제보다 성장한 어른이며, 어른으로 서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내가 공동체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만 친구들을 만들 다 보면 사람이 좀 유해지고, 갈등을 일으키는 걸 피하는 쪽으로 바뀔지도 모른다는 게 두렵긴 하다.
서울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현대예술을 즐기는 여성들이 가득하다. 〈엘르〉 코리아 독자들이 저마다의 시선으로 〈WE〉를 관람할 수 있도록 독려한다면
음. 살짝 몽롱하거나 취한 상태로 봐도 좋을 듯?
’우리’(2010). 공교롭게도 누워 있는 두 남자 모두 카텔란을 닮았다. 장례식을 떠올리게 한다.
당신의 인스타그램 계정(mauriziocattelan)은 활발하지 않다. 2019년 ‘모두에게 작별인사(Goodbye to Everyone)’라는 멘트와 함께한 사진 한 장만 올려져 있을 뿐. 요즘 당신의 소소한 일상이 궁금한데
요즘은 성장하느라 매우 바쁘게 지낸다. 성장은 어렵지 만 매일같이 해야 하는 일이거든!
‘아홉 번째 시간’(1999). 카텔란이 권위를 다루는 태도를 보여준다.
실제로 노숙인처럼 보이는 ‘동훈과 준호’(2023). 미술관에 들어오기 적합한 사람이란 존재가 있는지 되묻는다.
〈WE〉 전시 전경. 왼쪽에 늘어뜨린 말의 모습을 한 ‘노베첸토’(1997). 중앙에 그려진 벽화 '아버지'(2021). 트럭 운전사였던 아버지의 발 대신 어려서부터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족을 도왔던 자신의 발을 내놓으며, 아버지의 의미를 되묻는다. 바닥에는 ‘아름다운 나라’(1994).
웅크린 사람 옆에 함께 누워 있는 강아지 대리석 조각은 ‘숨’(2021). 두 존재의 유대감은 물론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경험하는 두려움과 희망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