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가 권대섭의 분더캄머 || 엘르코리아 (ELLE KOREA)
CULTURE

도예가 권대섭의 분더캄머

호기심의 방. 진귀한 사물로 가득한 집. 추상 그 자체인 권대섭의 달항아리가 탄생하는 작업실.

이경진 BY 이경진 2022.12.05
 
경기도 광주. 한옥 한 채와 단층집 서너 채가 모인 작은 동네에 안온한 기운이 감돈다. 골목에서 곧장 작은 정원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니 무심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물들이 보였다. 석물과 물확 그리고 문인석…. 대청마루 위에는 드문드문 칠이 벗겨진 임스 DCW 블랙 체어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큐레이터이자 라이프스타일 구루로 불리는 악셀 베르보르트,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의 전 부관장 등 세계적 갤러리스트들이 다녀간 도예가 권대섭의 집이다. 자연스럽게 물이 빠진 데님 차림의 작가가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살림집 뒷마당으로 안내했다.
 
동네 한 바퀴 둘러보셨어요? 내 작업장은 뒤에 있습니다.
집에서 스무 걸음쯤 떨어진 곳, 거기에 그의 달항아리가 탄생하는 가마와 작업실이 있었다. 작업실 문을 열자 그윽하고 충만한 자태의 환호와 입호 몇 점이 눈에 가득 찬다. 이시구로 무네마로의 사진도 걸려 있다. 일본 중요무형문화재이면서 질박하고 수수하게 살았던 도공. 비전통적인 작업을 자신의 전통적 미학과 결합했던 천재 도예가. 초가 앞에 선 이시구로의 사진에 문득 권대섭이 겹쳐 보였다.
 
가마에 들어갈 준비를 마친 권대섭의 입호와 환호.

가마에 들어갈 준비를 마친 권대섭의 입호와 환호.

작업실 천장 밑에 붙은 푸른 글자의 현판에는 ‘낙호재(洛壺齋)’라 쓰여 있다. 18세기 서예가 백하 윤순의 글씨로 ‘항아리 속으로 들어간다’는 뜻. 권대섭이 항아리 속으로 수없이 들어가 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권대섭의 달항아리가 지닌 담대한 아름다움에는 그의 타고난 기질과 오랜 인내가 담겼다.
 
권대섭의 달항아리가 탄생하는 가마와 작업실. 수수하고 질박한 풍경 속에 그의 미학과 작업세계를 보여주는 사물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권대섭은 한 해 완성작으로 대여섯 점을 남긴다.

권대섭의 달항아리가 탄생하는 가마와 작업실. 수수하고 질박한 풍경 속에 그의 미학과 작업세계를 보여주는 사물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권대섭은 한 해 완성작으로 대여섯 점을 남긴다.

여기에 터잡은 지 36년이 흘렀어요. 세 살배기 딸을 업고 왔죠.
이 지역에는 조선시대에 우수한 백자를 생산하던 가마터가 200여 곳 넘게 있었다. 작가는 모든 가마터를 다니며 사금파리를 관찰하고 이어 붙이고 그려보고 연구하며 15년을 보냈다. 그 이전에, 1979년부터 5년간 일본 규슈의 오가사와라 도예몬에서 수학하기도 했다. 임진왜란 때 조선 도공들이 건너가 도예를 발전시킨 지역이다. 긴 공부 끝에 권대섭은 첫 개인전을 열었고, 서서히 그의 이름은 아트 바젤 등 세계 미술시장에서 호명되기 시작했다. 현대성을 과거로부터 끌어와 이야기해 온 악셀이 권대섭의 도자기를 알아본 것은 필연적이었다.
 
악셀이 이 집에 와서 온돌을 처음 경험했어요. 그래서 벨기에에서 전시회 할 때 바닥에 온돌을 깔았죠.
2015년과 2018년에 앤트워프 악셀 베르보르트 갤러리에서 열렸던 개인전에 이어, 얼마 전 〈프리즈 서울〉 악셀 베르보르트 갤러리 부스의 얼굴이 된 권대섭의 달항아리는 개막 5분이 되지 않아 팔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성취로 힘줘 말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권대섭은 자신의 예술에 끊임없이 다가서서, 도예를 순수미술의 영역으로 가져왔다.
 
집의 전면부와 접하는 공간 전체를 다실로 쓴다. 권대섭의 작품세계가 엿보이는 힘 있고 미니멀한 공간.

집의 전면부와 접하는 공간 전체를 다실로 쓴다. 권대섭의 작품세계가 엿보이는 힘 있고 미니멀한 공간.

홍대에서 서양화 공부를 하면서 계속 입체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도자기는 그저 입체로 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죠. 그렇게 입체 중에서도 가장 추상인 달항아리에 도달한 거예요. 돌이켜보면 어려서부터 도자기 속에서 살긴 했어요. 파편도 봐왔고. 그런 걸 좋아했죠.
권대섭이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 구해온 뜻 중 하나는 재현보다 현재화다.
 
항아리를 만드는 일은 충분히 재현이에요. 다만 나는 다르게 보려고 노력해요. ‘새로운 걸 만들겠다’는 태도는 없고요. 기존의 것을 다르게 보는 일도 새로움이니까.
권대섭의 작업실에 방문하면 그가 수집해 온 수많은 옛 기물들과 교유하게 된다. 특별한 경험이다.
 
같은 걸 계속해서 작업하니 매일 어떤 계기가 필요합니다. 내 ‘모티베이션’이 되는 것들이에요. 여기, 가장 아끼는 골동품을 모은 방이 있어요. 이 항아리는 조선시대 영정조 시기, 정점에 있던 도자기죠. 좋은 물건을 계속 사고 훈련하듯 봅니다. 그러면 알게 모르게 다가가게 돼요. 작업만큼 여기에도 목숨을 걸어요.
경험에 대한 권대섭의 열정은 힘찬 기운이 든 작품으로 결실을 맺는다.
 
권대섭의 살림집에서 가장 해가 잘 드는, 멀리 팔당호의 전경이 잘 보이는 자리는 바로 다실이다. 너른 공간에는 달항아리 한 점과 다탁, 차 도구, 사발을 보관하는 조선 목가구, 작은 그림과 화병뿐. 가장 현대적이고, 가장 미니멀하고, 가장 추상적인 그의 도자기를 닮은 자리다. 매일 이른 아침, 작가는 이곳에서 마음에 드는 사발에 차 한 잔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백자의 전성기인 18세기에 제작된 환호를 비롯해 현판, 목공예품 등 심혈을 기울여 수집한 권대섭의 경이로운 컬렉션.

백자의 전성기인 18세기에 제작된 환호를 비롯해 현판, 목공예품 등 심혈을 기울여 수집한 권대섭의 경이로운 컬렉션.

 
백자의 전성기인 18세기에 제작된 환호를 비롯해 현판, 목공예품 등 심혈을 기울여 수집한 권대섭의 경이로운 컬렉션.

백자의 전성기인 18세기에 제작된 환호를 비롯해 현판, 목공예품 등 심혈을 기울여 수집한 권대섭의 경이로운 컬렉션.

 
 
 
한 폭의 경치를 즐기며 앉는 차 공간. 차 도구는 단출하다.

한 폭의 경치를 즐기며 앉는 차 공간. 차 도구는 단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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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이경진
    사진 최용준
    디자인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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