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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은, Beautiful Stranger 재학 중인 학교 무대에서 단 한 번 자신의 연기를 봤던 학교 선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김고은은 알고 있었다. <은교>가 영화화될 것이며 은교 역에 어울리는 신인배우 오디션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생각했다. ‘은교 역할을 맡게 될 여배우 꽤나 마음고생하겠네.’ 하지만 몰랐다. 마음고생할 그 여배우가 자신이 될 줄은. <은교>의 의상감독을 만나기로 했던 약속이 정지우 감독을 만나는 자리로 바뀐 뒤 모든 상황은 일사천리로 흘러갔다. 너무 재미있어서 2시간 만에 읽어버렸던 <은교>는 탐나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앞길이 창창한 20대 초반의 배우 지망생이 만만치 않은 노출 신이 예정된 작품을 데뷔작으로 선택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욕심이 나는데 두려움 때문에 포기하려는 제가 용서가 안 되더라고요.” 의심과 욕심 사이에 놓여 있던 김고은이 확고한 의지를 쥐게 된 순간이었다.
작품 경력 하나 없는 22세 남짓한 신인배우 김고은은 <은교>를 통해 그 누구보다 주목받고 있다. 어쩌면 검증된 배우 박해일과 김무열 사이에서 트라이앵글의 한 각을 차지한 신인배우를 향한 관심 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렷하게 주관을 드러낼 줄 아는 김고은에게는 분명 특별한 것이 있다. “은교는 겉으로 봤을 때 순수함을 가진 아이다운 아이에요. 천진난만하게 행동하고 이야기하고 잘 웃잖아요. 하지만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운 면이 있어요.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고민했죠.” 가혹한 부담감을 되레 ‘일상적인 연기를 보다 훌륭하게 해내야 한다’는 야무진 각오로 승화시킨 그녀는 <은교>를 관통하며 긴 야심을 품었다. 단단한 줄기를 뻗고, 뿌리를 내리고 있다. 꽃은 그렇게 피어 오른다. (민용준)
박해일, Nowhere Man 안부를 묻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지극히 사적이고 사소한 만남이라고 생각했다. 정지우 감독이 <은교>라는 소설을 영화화하기로 결정했다고 할 때도 몰랐다. ‘이적요라는 노시인의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꺼내기 전까지.
사회적인 위치와 개인적인 욕망 사이에서 노시인 이적요는 예상치 못하게 번져버린 뜨거운 감정 앞에서 주저하면서도 한 걸음씩 나아간다. “이적요의 감정은 그의 나이를 감안했을 때 굉장히 열정적이고 폭발적이죠.” 박해일에게 그 감정은 단순한 욕망이 아닌 간절함이었다. “한순간의 욕망이든 갈망이든 그런 매혹에 빠지면서 다시 자신으로 돌아가기 쉽지 않은 상황일 때 그 감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어요. 노인의 감정을 이해한다기보단 이 정도의 일을 겪은 사람의 감정을 많이 느꼈나 봐요. 원래 한 작품이 끝나고 캐릭터와 이별하는 과정에서 우울함이나 외로움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적요의 측은한 면이 아직 깊게 배어 있는 것 같아요.”
박해일에게 <은교>는 여러모로 새로운 작품이었다.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이는 외모를 지닌 박해일은 단 한번도 자신의 나이 이상의 역할을 맡은 적 없었다. 또 다혈질의 성격을 지닌 성격파 캐릭터들을 연기해 온 그가 절제라는 단어로 설명해야 할 내밀한 인물로 분한 것도 보기 드문 일이다. “절제되는 인물의 매력이 굉장히 큰 걸 알았어요. 더 설명하려 하거나 더 표현해 보려 하거나 능동적으로 가져갈 수 있는 부분도 있겠지만 안에서 계속 꿈틀대는 걸 최대한 절제하는 것도 매력적이라는 걸 알았어요. 이번 경험은 큰 자산이 될 것 같습니다.” 매번 작품을 끝내고 나면 책꽂이에 책 한 권을 꽂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박해일은 언제나 그러하듯 일상으로 사라질 것이다. 마치 없었던 사람처럼, 고요하고 안정적인 정적 속으로. (민용준)
김무열, Seriously,Feel Inferior 아이러니하게도 그건 열등감이었다. 영화 <은교>의 서지우와 서지우를 연기한 김무열이 가진 교집합은? “저를 움직이는 힘이에요, 그게.” 촬영이 진행되는 스튜디오에서 그는 자신 있는 눈빛으로 만개해 있었음에도, 지나치게 깍듯했다.
“감정, 캐릭터, 상대와의 호흡 같은 부분들을 감독님과 워낙 디테일하게 파고 들어간 작품이었어요. 문제는 인물을 대하는 태도였는데 연기가 좀 부자연스럽다, 저것 좀 이상한데 싶은 순간에도 서지우가 그런 사람이라면 정말 그런 이유에서라면 그렇게 표현하는 맞겠다 싶었어요.” 불편했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길을 찾았던 작업이 바로 <은교>였다. 한 명의 소녀와 두 남자의 팽팽한 심리 게임에서 캐릭터에 대한 기준을 세우니 연기에 대한 태도도 달라졌다. “언제부터인가 세분화된 장르에서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폭넓은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들더라고요.”
‘열등감의 힘’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사람 김무열에 대한 삶의 로망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사실 그가 얘기하는 열등감이 쉽사리 와 닿진 않았다. 오히려 강렬한 캐릭터 뒤에 단단하게 숨겨진 텍스트 같았다. 다만 힘을 뺀 목소리가 생경했고 자조적인 어조의 나직한 화법이 감성적이었으며, 승부욕이나 경쟁의식에 별 두각을 보이지 않는다는 성격이 의외였다. “승부욕이나 쟁취욕은 거리가 먼 것 같고요. 다만 20대의 힘들었던 과정을 헤어나오고 싶었던 마음만큼은 아주 컸죠. 사람 김무열에게 영향을 미쳤던 것 중 그것만큼 센 건 없었어요.” 20대의 대부분은 헤드램프 하나 없이 세상 한가운데를 걸었다. 지독한 시간을 경험한다는 건 삶의 내구성이나 자성이 자연스레 형성되는 일이다. 덕분에 기회의 화살표가 그를 향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채은미)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5월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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