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년생 국립세종수목원장 이유미와 84년생 식물세밀화가 이소영의 특별한 인연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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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년생 국립세종수목원장 이유미와 84년생 식물세밀화가 이소영의 특별한 인연

세대를 잇다! 식물에 대한 믿음과 조용한 끈기로 푸른 세상을 일궈낸 두 여성의 만남.

류가영 BY 류가영 2022.05.24
 

interviewer 이소영

38세. 식물세밀화가. 원예학과 3학년 때 우연히 식물화를 그린 후 식물세밀화 작업에 매료돼 국립수목원에서 코디네이터로 일하며 본격적으로 식물세밀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프리랜서로 전향한 후 〈식물과 나〉 〈식물 산책〉 등의 책을 썼고, 팟캐스트 〈이소영의 식물라디오〉를 6년째 진행하며 식물세밀화의 아름다움과 필요성을 알리고 있다.
 

interviewee 이유미

60세. 첫 여성 국립수목원장, 서울대 산림자원학과를 졸업한 후 긴 시간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에서 활약하며 식물분류 체계를 다지는 여러 연구와 사업을 펼쳤다. 2014년 국립수목원장으로 취임했으며 2년 전부터 국립세종수목원으로 자리를 옮겨 정원과 반려식물 등 현대인을 위한 식물 문화 조성에 힘쓰고 있다.
 
이소영 10년 만입니다. 첫 직장이었던 (광릉)국립수목원에서 원장님과 일한 4년은 식물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기본기를 다질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당시만 해도 유일한 국립수목원이었던 광릉수목원으로 전국의 식물 전공자들이 몰려들었죠. 식물 연구에 열심인 저 같은 후배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나요
이유미 식물 연구는 처음 전공 지식을 쌓기 시작해 결실을 맺기까지 굉장히 지난한 과정입니다. 다 축적되는 시간이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이기에 보람도 크겠지만 한창 연구에 집중하는 시기엔 그런 말이 귀에 잘 안 들어오죠(웃음). 실력 좋은 후배들이 중간에 지쳐 포기할까 봐 많이 염려했어요. 눈에 띄는 방향성이 있다면 옆에서 일찍 길을 틔워주려고 노력했죠. 피 같은 시간을 쏟아 붓는 데 유의미해야 하잖아요. 개인 논문도 봐 주고, 잘 맞을 것 같은 프로젝트나 출장 기회가 있으면 추천도 하며 자기 일에 대한 주인의식을 느끼게 해주려고 했습니다.
 
이소영 그때 원장님을 보며 시야가 넓다는 생각을 했어요. 작은 세계에 골몰하는 연구자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죠. 수목원 최초로 식물세밀화 사업을 시작했고, 국가표준식물목록을 만드는 일도 하셨어요. 이런 기획이 탄생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이유미 연구원이지만 산림청 소속 공무원이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 안 될 것 같았어요. 남들은 안 하지만 국가 차원에서는 꼭 필요한 일이라 찾아서 했죠. 주로 체계를 잡는 건데 똑같은 식물을 학자마다 다른 이름으로 부르니 그들을 불러모아 국가표준식물목록을 만들고, 희귀·특산식물보존체계와 재배식물 목록도 정리했어요. 체계가 잡혀야 연구 결과가 쌓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좋은 기획이 자리 잡으려면 추가 연구도 필요하고, 관련 전산망과 법적 기틀도 마련해야죠. 늦기 전에 그런 작업을 시작했다는 안도감은 있지만 이게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이소영  식물세밀화 사업이 시작된 후로 20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식물세밀화가를 채용하는 곳은 국립수목원이 유일합니다. 식물세밀화가 단순히 식물을 예쁘게 그린 그림이 아니라 식물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 전 과정을 살피는 과학 연구활동이라는 인식도 여전히 부족해요
이유미 외국에서는 보태니컬 아트라 해서 식물세밀화가 식물 연구의 중요한 부분으로 인정받지만 우리나라는 아니죠. 식물의 인기에 힘입어 식물세밀화 전시도 많아지는 추세지만 국립수목원에서 수집한 자료를 수내 전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들었어요. 과학과 예술의 경계에 있는 작업인 만큼 연구원과 예술가가 교류하는 수목원에서 식물세밀화 수집을 도맡는 것이 유리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잘한 선택이었죠. 이소영 작가를 비롯해 당시 작업했던 여러 식물세밀화가들이 활약해 주고 있으니 점점 나아질겁니다.
 
이소영 식물을 연구하는 사람에게 자신만의 기록법이 있다는 건 굉장한 무기라고 생각해요. 저에겐 그림이 그랬고, 원장님은 〈우리 나무 백가지〉를 비롯해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 〈내 마음의 들꽃 산책〉 등을 통해 식물을 알려왔죠. 맨 처음 글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유미 대학교에서 식물분원에 있을 때 초빙 연구원으로 모신 적 있는데 매번 똑같은 질문을 하는 후배도 항상 인내를 갖고 대하시더라고요. 볏과, 양치류 같은 잘 눈여겨보지 않는 식물에 대한 연구도 훌륭했죠. 연구실 밖에서 일하다 보면 과학적 근거보다 보이는 것에 집중할 위험이 많은데, 정말 균형 잡힌 식물학자였습니다.
 
이유미가 입은 재킷은 Welover. 화이트 셔츠는 Coivant.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소영이 입은 재킷은 Sandro. 니트 톱은 Lamerei. 팬츠와 네크리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유미가 입은 재킷은 Welover. 화이트 셔츠는 Coivant.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소영이 입은 재킷은 Sandro. 니트 톱은 Lamerei. 팬츠와 네크리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소영 플렌테리어, 가드닝, 반려식물이라는 단어가 친근할 만큼 식물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물론 기쁜 일이지만 때론 식물이 과하게 소비된다는 느낌도 받아요. 요즘 식물 문화에 대해 우려되는 지점은 없나요

이유미 다 과정이라 생각해요. 모든 사람들이 한순간에 열렬한 자연주의자가 될 수는 없어요. 식물을 가꾸거나 가까이 두며 조금씩 관심이 꽃 피고, 그러면서 구체적인 노력도 시작되는 거죠.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도 처음엔 화려한 꽃이 피는 걸 좋아하다가 그 다음에 양치식물을 좋아하게 되고…. 그렇게 자연화를 거치게 됩니다. 자연에 물드는 과정이죠. 다양한 층위에서 발생하는 인식의 변화를 총체적인 식물 문화로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이소영 식물을 기록하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가장 죄책감을 느낄 때가 식물을 채집할 때예요. 그 자체로 아끼고 사랑해야 할 식물을 도구화하는 것 같아서요. 생물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직업윤리는 무엇일까요
이유미 채집된 식물은 그 식물이 어딘가에, 어떻게 존재했다는 소중한 시공간적 기록이자 역사적 증명이죠. 물론 채집은 분명히 한 생명을 자연적 맥락으로부터 추출해 누르는 인위적인 과정이지만 그로부터 얻은 DNA로 종 보존에 보탬이 되는 연구를 할 수도 있잖아요. 단순히 꺾고, 버리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죠. 모든 식물은 죽어요. 겨울이 돼서 죽든, 말라 죽든. 그런 식물이 기록으로서 100년, 200년 넘게 학술 자료로 활용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여러 번 살아가는 일이기도 해요. 그렇게 생각하면 갈등할 필요가 없죠.
 
이소영 다음 세대 연구자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유미 모두가 저처럼 할 필요는 없어요. 이소영 작가처럼 세밀화를 그리며 식물학 발전에 기여할 수도 있는 거고, 어떤 학자는 훌륭한 논문을 발표하고, 각자 자기만의 길이 있는 거죠. 이제는 총 세 군데가 된 국립수목원도 서로 집중하는 분야가 달라요. 광릉국립수목원에서는 기본, 기초, 분류 연구를 중요시하고, 백두대간수목원에서는 식물 보존과 보관이 주요 화두죠. 지금 제가 몸담고 있는 세종수목원은 최초의 도심형 수목원으로 인간과 식물의 공존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온실 군데군데 작은 정원을 꾸리거나 반려식물 키트를 기획하고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더 많은 도시인이 식물과 공존하는 삶을 꿈꿀 수 있도록 현실적인 팁을 알리고 있답니다.
 
이소영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해 온 또래 친구들은 어느새 대리에서 과장이 돼가고 있더군요. 수목원에서 일하던 20대 초반, 다른 직장인과는 상반된 방향으로 출근하며 느낀 외로움도 있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식물이 달래줬고요. 하고 싶은 일을 나만의 방식대로 묵묵히 해 나가도 좋다는 용기를 얻었거든요. 원장님이 식물과 함께하는 삶으로부터 얻은 수확은 무엇인가요
이유미 출근길에 마주한 꽃이 그날의 영감이 되고, 가슴이 답답한 날엔 산책 중 맞닥뜨린 야생화가 위로가 됩니다. 그런 아름다움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 좋아요. 식물을 만나고 나서 삶의 색채가 점점 바뀌어 가는 변화가 경이롭기도 하고요. 식물이 일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축복이에요. 다시 태어난다 해도 식물을 공부할 거예요. 진부한 말인 건 알지만 진심인 걸 어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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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류가영
    사진 장한빛
    헤어 스타일리스트 이혜진
    메이크업 아티스트 심현섭
    디자인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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