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가 엄숙할 필요는 없잖아요? #나는내가말해요 #구르님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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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가 엄숙할 필요는 없잖아요? #나는내가말해요 #구르님

더없이 나답게, 나만의 목소리로,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유쾌한 콘텐츠로 세상에 건네는 지금의 여성 크리에이터 4인과 만났습니다. ‘굴러라 구르님'의 구르님이 얘기하는 '나다움'에 관해 들어보지 않을래요?

전혜진 BY 전혜진 2022.03.07
 

〈굴러라 구르님 Rolling GURU〉

크리에이터 김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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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조회 수 32만 회
콘텐츠 키워드 휠체어 꾸미기/여행/토크
 
 김지우가 입은 스트라이트 패턴의 니트는 Weekend Maxmara. 시폰 드레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앵클부츠는 Dr. Martens. 클립 이어링과 칵테일 링은 모두 Swarovski.

김지우가 입은 스트라이트 패턴의 니트는 Weekend Maxmara. 시폰 드레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앵클부츠는 Dr. Martens. 클립 이어링과 칵테일 링은 모두 Swarovski.

‘조선시대에 휠체어가 있었다면?’이라는 신선한 발상으로 탄생한 유튜브 영상 ‘이달의 휠체어’ 시리즈가 인기예요. 휠체어를 놀이 수단이자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삼은 이 콘텐츠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멋지게 옷 입고 꾸미는 걸 좋아하는 제 관심사를 휠체어에 적용해 보고 싶었어요. 휠체어가 엄숙할 필요는 없잖아요. 장애를 콘텐츠 소재로 다룰 땐 진지함도 필요하겠지만, 웃기거나 가벼운 주제로 표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채널의 각 코너마다 개성이 뚜렷하죠
‘구르님 말한다’는 정답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에 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묻는 콘텐츠예요. 부당하게 느껴지지만, 어떻게 나아가는 것이 올바른지 저도 의문인 화두를 함께 고민하는 거죠. ‘구르님 여행한다’는 휠체어로 여행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여행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장애 인권이라는 주제가 항상 어렵고 무거운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됐으면 좋겠어요.
 
‘장애인의 삶은 이렇게 힘든 거구나’를 체감하는 수준에 머무르는 장애 체험 영상이나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도와주는 모습을 단지 ‘아름답게’만 그리는 콘텐츠까지. 기존 미디어가 장애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의문이 크리에이터로서 출발점이 됐다고요
저와 닮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없다는 데 갈증을 느꼈어요. 어릴 땐 크면 장애가 저절로 낫는 건 줄 알았고, 걸을 수 있는 어른이 될 줄 알았죠. TV에서는 비장애인의 삶만 보이니까요. 이 다리로 평생 살아야 하는 걸 깨닫고도 제 시야에는 보고 닮을 사람이 없는 거예요(웃음). ‘나는 그냥 평범하게 살고 있다’는 것, 극적인 삶이 아닌 ‘그냥 여기’에서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평범하게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자신의 목소리로 꺼내는 것은 의미는
우리는 타인의 삶을 절대 이해할 수 없어요. 당사자가 말을 꺼내야 서로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가끔 장애인의 삶 자체가 납작해져서 종이 한 장처럼 보이는 게 아쉬워요. 게다가 여성 장애인은 남성 장애인보다 더 드러나지 않는 존재죠. 장애인 남성과 여성은 초등학교 학력부터 차이가 나는 게 현실이에요.
 
‘장애인’과 ‘크리에이터’라는 특성에 ‘여성’이 포함되면 더 깊숙한 사회적 차별의 맥락이 생기죠
탈코르셋 운동이나 비혼, 비출산을 지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애석해요. 화장품 숍에 진입조차 못하거나 활동하기 편해야 한다는 이유로 머리를 짧게 자르도록 강요받고, 또 자궁 적출 수술을 받는 장애 여성들을 아니까. 이들이 그리는 여성상에 장애여성은 없구나 싶어 페미니즘의 흐름을 마냥 지지할 수 없을 때가 생기죠. 맨 얼굴일 땐 ‘화장 좀 하고 다니지’라고, 화장하면 ‘장애인이 이렇게 꾸미다니 참 대단하다’고 해요. ‘여자가 애를 낳아야지’라면서도 ‘장애인의 출산은 책임감 없는 행동’이래요. 저는 합쳐진 무언가가 아니라 장애인 아니면 여자. 즉 장애인과 여성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죠. 그래서 ‘장애’와 ‘여성’을 붙여 쓴 ‘장애여성’이라는 표현을 좋아해요. 장애가 여성을 수식하지 않고 온전한 하나의 맥락을 지닌 단어라는 점에서 제 정체성을 찾을 수 있거든요.
 
그런 시선은 타인의 삶을 살지 않아 이해도가 낮을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무지에서 비롯되죠.
저는 일반 학교에서 12년 정규 교육과정을 밟으면서 한 번도 같은 장애를 가진 친구를 본 적 없어요. 인구의 5%가 장애인이라면 한 반에 한 명씩 있어야 하는데, 특수학교에만 있죠. 사회화를 배우는 첫 과정부터 장애인은 분리돼야 하는 존재라는 걸 무의식적으로 알리는 시스템 같아요. 사실 친구가 되면 뭐든 별거 아니잖아요. 그 ‘관계’가 되기 전의 무지가 무섭죠. 혐오든, 조심스러움이든 살을 부대끼고, 싸워보고, 화해해야 아는 건데 현실은 매뉴얼대로 장애인을 ‘대응’해야 하는 사람들만 생겨나는 것 같아요.
 
이런 흐름에서 구르님의 콘텐츠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장애+패션’ ‘장애+학교’ ‘장애+여행’처럼 장애와 연결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키워드를 붙이려고요. 그 자체만으로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것들이 가깝고 쉬워지거든요. 
 
섬네일에 휠체어가 들어가면 조회 수가 올라간다는 점은 스스로도 아이러니하다고요
‘먹방’이 잘 먹는 나를 콘텐츠화하듯 내게서 비롯된 장애라는 특성을 콘텐츠화하는 건 괜찮지만, 보여주기 식이 되거나 선을 넘으면 안 되죠. 장애인을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몰래 찍어서 ‘세상은 따뜻하다’고 프레임을 만들거나 ‘사고 이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같은 자극적인 주제를 다루는 것처럼요. 사실 저도 ‘이달의 휠체어’가 휠체어를 대상화하는 건 아닌지 고민할 때가 있어요. 가끔 자책하기도, 무결해야 한다는 강박도 생기지만 이제 덜 고민하려고요. 전하려는 메시지를 분명히 정하고 그 이상을 담지 않되, 조금 실수해도 하고픈 걸 해보려고요.
 
개인적으로 의미가 컸던 콘텐츠는
‘현타’가 와서 5개월 정도 업로드를 접은 적 있어요. 실험 카메라 제안을 받았을 때인데, 실컷 제 이야기를 해봤자 그런 콘텐츠의 조회 수가 더 높다는 점이…(웃음). 실험 카메라는 감동보다 장애인 당사자가 절감할 수 있는 수치와 공포가 고스란히 전해져 보는 것 자체가 힘들어요. 내게 일상인 것들이 극적인 콘텐츠로 소비되는 것도 싫고요. 그런 의미에서 ‘아, 영상 만들기 싫다’는 제목의 콘텐츠를 만들었는데, 공감을 많이 얻었죠.
 
가장 불편하게 느껴지는 편견은
장애인의 ‘성역화’랄까(웃음). 장애인이라고 대단하지도, 무결하지도 않거든요. 장애인이 뭘 하면 저절로 의미가 부여되고, 공익적인 일이 돼버려요. 그럼 돈을 추구해서는 안 되고, 엄청난 대의를 가져야 할 것 같잖아요. 저는 개그 욕심이 많아서 적당히 돈도 벌고, 농담도, 실수도 하고 싶거든요.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원동력은
저와 닮은 크리에이터 ‘언니’들이 다양한 삶을 보여주고 있지만, 제가 학생 때만 해도 삶의 모든 과정이 처음이었거든요. ‘휠체어 타고 뽀뽀는 어떻게 하지?’ ‘수능은 어떻게 보지?’ 같은 사소한 것도 물어볼 데가 없었죠. 이제 누군가에게는 제가 ‘언니’가 되겠죠?
 
20대 여성으로서 이루고 싶은 건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실패’하고 싶어요. 실패할 권리도 없는 사람이 많거든요. 서울대에 왔지만 대학 갈 때도 저는 성적보다 캠퍼스가 중요했어요. 그 힘들다는 재수도 학원 중에 ‘배리어 프리’한 곳이 없어서 못 해봤죠. 취직도 어려우니 안정적인 곳에 한 방에 들어가는 게 목표가 돼버리고요. 떨어지고, 다시 도전해야 하는데 실패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구조예요. 그런 의미에서 책을 쓰고 있고, 연극배우에도 도전합니다. 실컷 실패해 보려고요(웃음). 
 
💋 #나는내가말해요 이벤트 참여하기(~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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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전혜진
    사진 김영준
    스타일리스트 박정아
    헤어 스타일리스트 박소정
    메이크업 아티스트 서채원
    어시스턴트 성채은
    디자인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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