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은 했지만 상황은 더 심했습니다. 7일(현지시각)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승 1조 경기에서 일이 터졌습니다. 중국 선수 2명의 견제 속에서 압도적 경기력을 보여 준 황대헌은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는데요. 갑자기 심판이 황대헌을 실격 처리 한 겁니다. 직선 구간에서 인코스로 레인을 변경해 타 선수와 접촉을 유발했다나요. 심판은 2조에서 2위를 한 이준서에게도 레인 변경 반칙을 했다며 페널티를 줬습니다. 어이없는 판정 연발 이후 메달을 얻은 건 중국 선수들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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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이 공분하는 가운데 황대헌은 의연했습니다. 경기 후 앞으로의 대비책이 있냐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비밀이다. 여기에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말할 수 없다"라고 했어요. 이를 두고 네티즌들은 현재 중국 대표팀에 있는 빅토르안과 김선태 등을 겨냥한 사이다 발언이라고 평하기도 했죠.
그는 8일 인스타그램에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말을 인용하며 마음을 다스렸습니다. "장애물이 반드시 너를 멈추게 하는 건 아니다. 벽을 만나면 돌아가거나 포기하지 말아라. 어떻게 벽을 오를지 해결책을 모색하고, 그 벽을 이겨내라."
9일 중국 선수가 단 한 명도 올라오지 못한 1500m 결승전이 같은 곳에서 열렸습니다. 황대헌은 경기 전 취재진에게 "1000m 경기도 깔끔한 경기라고 생각했지만, 오늘은 더 깔끔한 경기를 준비했다"라며 "깔끔한 경기 중에 가장 깔끔하게 경기하는 게 전략"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이틀 전 억울하게 결승 진출을 가로막힌 사람 같지 않은 당당함이었어요.
이윽고 이준서, 박장혁과 함께 한 결승에서 황대헌은 직전의 다짐처럼 '깔끔한' 경기력으로 이견 없는 금메달리스트가 됐습니다. 이번 올림픽 한국 대표팀 첫 금메달이자, 황대헌 자신의 첫 올림픽 금메달입니다.
그는 이날 "나도 사람이니까 안 괜찮았다"라고 실격 당시 속마음을 뒤늦게 고백하면서도 "결과가 어떻게 되든 계속 벽을 두드렸다. 절실하게 벽을 두드리면 안 될 게 없다고 생각했다"라고 금메달 획득 소감을 전했어요. 이후엔 "내가 치렀던 경기 중 가장 뜨거운 경기를 펼친 것 같다"라고 만족감을 드러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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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전 이후 여유를 찾은 황대헌은 '선수촌에 돌아가면 뭘 하고 싶냐'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쇼트트랙 실력 만큼 엄청난(?) 사회생활 멘트를 날리기도 했는데요. "치킨 먹고 마지막으로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이 왜 사회생활이냐고요? 현 대한빙상경기연맹회장 겸 한국 선수단장이 윤홍근 제너시스 BBQ 그룹 회장이기 때문이죠.
이에 취재진 사이 웃음이 터지자 황대헌은 "BBQ 엄청 좋아한다"라며 "(윤홍근) 회장님에게 농담으로 '회장실 의자 하나는 제가 해 드린 것'이라고 말씀드린 적도 있다"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어요.
문재인 대통령도 축전을 보냈는데요. 대통령은 황대헌의 금메달 획득을 축하하며 "압도적인 실력으로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첫 금메달을 획득했다. 기다리던 소식에 매우 기쁘다"라며 "1000m의 억울함을 한방에 날려보낸 쾌거"라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