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미나 작가의 친한 동료 작가가 원고를 읽고 나서 “이 미쳐 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이 말을 너무 잘하잖아!”라고 말한 데서 탄생했다. 우울증이란 병명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 주체로서의 여성을 잘 표현하는 제목이라 생각했다.
우울증은 한 마디로 딱 정의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양한 진단을 거치며 더 이상 병명을 믿지 않게 된 지은, 병원에 가는 대신 무당이 된 칼리, 능력이 없으면 죽어야 한다고 생각한 서진 등 원인과 증상이 제각각인 것은 저마다 성장 환경과 경험, 지식과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따라 헤매며 독자 스스로 진단할 수 있는 다각도의 의학적·사회적 자원을 획득하길 바랐다.
개인 에세이로 비춰지지 않고, 주도적이고 긍정적인 느낌이 묻어나도록 디자인했다. 파란 글씨로 쓰인 우울증에 대한 다양한 편견을 강렬한 붉은 글씨가 뒤덮은 타이포그래피에서는 우울증에 대한 잘못된 낙인을 자신의 이야기로 덮어 쓰겠다는 우울증 당사자들의 의지가 느껴져 만족스럽다.
우울증은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정치적이고 사회적으로 접근해야 할 중요한 고통이라는 것. 1장의 1부 ‘엄살’은 “우리는 자신의 고통부터 믿어야 한다”는 선언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은 고통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믿는다.
31명의 증언을 글감으로만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아빠의 반복되는 폭력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자신을 우울한 상태로 만든 유진의 이야기처럼 밀도 높은 폭력의 경험을 다룰 땐 윤리적 검열도 필요했다. 하미나 작가와 꼭 필요한 이야기가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편집을 진행했다.
자살, 돌봄, 회복이라는 세 개의 장을 아우르는 마지막 3부는 앞으로도 여러 번 들춰볼 것 같다. 상실을 껴안은 채 나아가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책을 출간하는 과정은 개인적으로 어떤 시간이었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질병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에 유독 마음이 이끌렸다. 동시에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과 돌봄을 받는 것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했는데, 마침 운명적으로 만난 이 책에서 해답을 찾은 느낌이었다.
출간 후에 북 토크를 많이 진행했다. 전국을 다니며 수많은 독자를 만났고, 그때마다 엄청난 연대감을 느꼈다. 피부에 와닿는 성과도 있었다. 지난 11월, 심상정 대선후보가 정의당에서 주최한 토크 콘서트에 하미나 작가를 초대해 2030 여성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요청했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결코 공론화될 수 없었던 이야기라 생각하니 마음이 벅찼다.
우리들의 이야기가 더 많아졌으면 한다. 각자 삶의 저자가 되어 지난 경험에 주석을 달고, 내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라는 것을 확인하고, 함께 나눈 고통의 서사를 사회적 의제로 확장시키는 선순환이 계속되길 바란다. 그럼으로써 더 많은 사람이 안전하게 살아가도록.
조연주 편집자 나는 ‘나는’은 2016년 시작된 비장애형제(장애 형제를 가진 비장애인)들의 자조 모임이다. 책을 기획하던 당시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가 인기리에 방영 중이었다. 저마다 아픔을 간직한 인물 중 자폐를 앓는 형을 돌보느라 스스로 감정을 방치하는 문강태(김수현)에게 다들 공감했고, 드라마의 영어 제목인 ‘It’s okay not to be okay’를 책 제목으로 정했다.
도경 한울림스페셜은 교육 전문 출판사 한울림의 장애 관련 도서 브랜드다. 장애인의 교육권 문제가 한창 부각되던 2000년대에 비장애형제 문제에 주목해 번역서 〈장애인의 형제자매〉를 펴낸 바 있다. 그러다 2020년 ‘나는’의 존재를 알고 반가운 마음으로 함께 책을 기획하게 됐다.
나는 각자의 삶과 장애 형제, 부모에 대한 솔직한 생각이 담겼으면서도 최대한 객관적으로 전달되길 바랐다. 가명을 활용하고, 모임을 통해 나온 이야기를 최종적으로 소설체로 정리한 이유다.
편집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와닿은 부분이 있다면
도경 조현병을 앓다가 암으로 죽어 간 오빠와 이별하는 순간에도 결코 울지 않고, 그 무게감을 꼿꼿하게 버텨내던 진설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부모가 자녀의 장애를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 비장애형제가 부모의 역할을 떠맡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새로운 문제를 직면하게 된 순간이었다.
6명의 비장애형제가 ‘나는’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터놓은 후의 일상을 담은 에필로그가 여운을 남기는 장치로 활용됐는데
나는 비장애형제로서 겪는 솔직한 불안과 고통을 고백함으로써 찾아온 해방감과 함께 우리의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는 걸 강조하고 싶었다. 어렵게 쌓아 올린 담론이 문제 해결로 이어지려면 보다 큰 차원의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암시이기도.
도경 똑같은 자폐성 장애를 가진 형제가 있다 해도 증상의 정도, 가족 구성원의 성격, 장애 형제가 오빠인지 동생인지에 따라 비장애형제가 겪는 어려움은 천차만별이다. 저자 6명이 각기 다르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색깔도, 포즈도 다른 여섯 캐릭터를 그려 넣었다.
나는 이 책은 너무 당연하게 여겨진 나머지 어디에서도 거론되지 못한 존재들, 각자의 삶에서조차 주인공이 될 수 없었던 모든 이를 위한 이야기다. 꼭 비장애형제가 아니더라도 나라는 사람 자체로 이해받으며 살아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누구에게나 가 닿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비장애형제 자조 모임 ‘나는’ & 한울림 윤도경 편집자 서문에서 저자 정은정 농촌사회학자는 “근면하고 성실한 이들을 마음으로나마 응원하고자 이 글을 묶는다”고 말한다. 이런 저자의 마음을 가장 잘 담고 싶었다. 일하는 사이 겨우 틈을 내어 끼니를 때우는 나와 이웃들의 삶에 귀를 기울이는 저자의 목소리를.
‘밥’을 키워드로 폭넓은 이야기를 다룬다. 구성과 배열에 고민은 없었나
칼럼과 방송, 시사 팟캐스트 등을 통해 꾸준히 농촌과 농민, 먹거리를 주제로 이야기해 온 저자가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최근 5~6년 사이 발표한 글을 담았다. 이웃의 밥상을 들여다보는 글을 묶은 1부, 우리가 쉽게 사고 주문해 먹는 먹거리 뒤에 감춰진 노동을 살펴보는 2부, 사라져간다고 여겨지는 농촌과 그곳에서 일하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3부. 그리고 마지막 4부에서는 ‘먹거리’로 여겨지는 것들의 생명 가치를 되새겨 보고자 했다.
평범한 듯하지만 일상의 한 장면을 담은 그림을 표지에 담았다. 세심하게 그려진 삼각김밥과 컵라면 속에서 독자들이 감정을 품길 바란다.
“개개의 음식에는 정치, 사회, 문화 그리고 자연의 변천까지 망라돼 있고, 여기에 개인의 기억과 사연까지 깃들어 있다(중략). 우리의 입으로 쓸려 들어가는 지상의 모든 음식이 무겁고 복잡하며 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상을 떠난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저자가 한 말. 삶과 죽음이 함께하는 일상에서 우리가 먹는 먹거리를 키우고 만드는 사람들의 거친 손과 마음을 되새기게 하는 글이었다.
생명과 먹거리를 이야기하다 보면 그것을 생산하는 노동과 현장에서 일어난 안타까운 죽음도 이야기하게 된다. 인간의 안전을 위해 살처분되는 수천만 마리 동물의 죽음, 노동자들의 죽음, 그 곁에 있는 많은 이의 울음. 이들이 잊히지 않기 위해 기록하는 일을 조심스럽게 소임으로 삼은 저자와 같은 마음으로 편집했다.
농촌의 이야기를 꿋꿋이 쓰는 저자를 만나고, 그의 책을 찾아 읽는 독자들이 있음에 아직 책의 힘을 믿고 싶다. 쉽게 여겨온 것들을 무겁게 생각해 보도록 만드는 책은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살고, 이웃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에.
오은지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