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임현주 아나운서의 안경 착용 뉴스에 위화감이 드는 건 이 때문이었습니다. 뉴스가 될 일인지 싶을 만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었으니까요. 그 역시 "아침 뉴스가 6시부터 시작되는데 그러면 2시30분에 일어나야 한다. '너무 피곤한데 안경 끼면 안 되나'라고 생각했다"라고 안경을 쓴 이유를 밝혔죠. 그런데 뉴스가 나간 날 무려 100통 가까이 관련 전화를 받았다고도 덧붙였어요.
남자 아나운서의 안경 착용이 화제가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지상파 뉴스 프로그램의 여자 진행자가 안경을 쓴 건 세상이 바뀌었다는 증거처럼 여겨졌습니다. 여자 아나운서들에겐 '참하다', '단아하다' 등 뉴스 전달과 관계 없는 이미지가 암묵적으로 요구되고 있었단 뜻이겠죠.
이렇게 별일 아닌 듯한 시도는 금세 별일이 됐어요.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안경을 쓴 임현주 아나운서의 뉴스 진행에 주목했죠. BBC, 뉴욕타임스 등 외신도 그의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자연스러움'을 되찾기 위한 임현주 아나운서의 시도는 계속됐죠. 이 과정에서 듣지 않아도 될 욕도 많이 먹었지만 멈추지 않았어요.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고 뉴스에 출연하거나, 안경과 넥타이에 큰 재킷까지 걸치고 카메라 앞에 서기도 했거든요. 그러던 중에 2020 도쿄올림픽에서 3관왕에 등극한 양궁 국가대표 안산을 응원했다가 사이버 괴롭힘의 대상이 된 적도 있습니다. 당시 안산 선수는 숏컷을 했다는 이유로 일부 네티즌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이 역시도 전 세계에 '온라인 학대'로 보도됐고요.

JTBC
이에 앞서 안경을 쓴 여성 아나운서는 유애리 KBS 아나운서였습니다. 2017년 총파업 당시 KBS 〈뉴스광장〉의 앵커를 맡았는데, 그간 중년 남성과 젊은 여성이 세트처럼 여겨지던 뉴스 진행자의 전형을 파괴한 예시로 남았죠. 물론 상황 탓이었지만요. 또 강지영 JTBC 아나운서는 〈5시 정치부 회의〉에서 안경을 썼어요.
최근에는 김수지 MBC 아나운서가 〈5 MBC 뉴스〉에서 숏컷을 하고 수트와 넥타이 차림으로 뉴스를 진행했습니다. 머리를 짧게 자른 여성은 많지만, 김수지 아나운서의 헤어 스타일링은 남성들이 주로 하는 모양이어서 주목을 받았어요. 지난해부터 숏컷을 유지하고 있는 김수지 아나운서는 직접 운영하는 유튜브에 "머리만 잘랐을 뿐인데, '나는 내 멋대로 잘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죠.
아직 안경을 쓰거나 수트를 입은 여성 아나운서의 모습이 낯섭니다. 하지만 이 '낯선 모습'이 빼앗겼던 정상성을 되찾는 날이 곧 오겠죠? 임현주 아나운서는 “바꿔야 할 것은 더 날씬하고 예쁘지 않은 내가 아니라 사회의 기울어진 잣대와 잘못된 평가”라고 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만일 바뀌길 원하는 것이 있다면, 바뀌어선 안되는 이유가 있는지 고민해보고, 타당한 이유가 없다면 바꿔도 된다는 확신을 가질 때인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