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르〉 영국 9월호 커버를 장식한 소말리아 출신의 복싱 선수, 람라 알리 @GettyImages
소말리아 모가디슈에서 태어난 람라 알리는 전쟁의 혼란으로 인해 본인의 정확한 나이와 생일을 알지 못합니다(얼추 현재 31세로 추정). 1990년에 불거진 내전은 당시 아기였던 그녀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 놨습니다(영화 〈모가디슈〉 속 바로 그 배경). 첫째 오빠가 정원에서 놀다가 수류탄 파편에 생명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고, 슬픔 속에서 그녀의 가족은 고국을 떠나 작은 보트에 몸을 싣고 케냐 몸바사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일 년 정도 보내다 유니세프의 도움을 받아 1992년 11월 난민 신분으로 영국에 건너와 망명을 신청한 것.
람라 알리는 이스트 런던에 살며 전통적인 소말리아 문화에 서양 문화가 뒤섞인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히잡을 쓰고 지역 모스크에 코란을 배우러 다녔으나, 어느 날 두 소년이 자전거로 길을 막고 히잡을 벗겨 내동댕이친 사건 이후로 쓰지 않게 되었다고 하죠. 이제 히잡을 쓰지 않는 것은 누구의 강요나 억압도 아닌, 온전히 그녀의 선택일 뿐. 알리는 자신의 종교와 믿음에 매우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십대 시절 과체중이었던 그녀는 어머니의 권유로 동네 체육관에 다니게 됐고 그곳에서 복싱을 접하게 됩니다. 일주일에 한 번 수업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던 알리는 전문 복싱장을 찾아 잽과 훅을 연마했습니다. “여자는 복싱을 못 해”라는 말을 수없이 들으며, 무슬림 가족의 반대에 부딪혀 운동을 멈췄다가 돌아오길 반복하며 그녀는 점점 강해졌습니다. 2012년 첫 번째 경기에서 승리한 후 무패 행진을 이어가다 2016년 영국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고(이슬람 여성으로서 최초로), 2018년 나이키와 스폰서 계약을 맺었으며 최근에는 미국 프로복싱 무대에 진출했습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람라 알리의 미국 진출 경기 모습 @GettyImages
람라 알리에게 ‘싸움’은 타고난 DNA 같은 것. 편견을 부수고 정의를 지지하는 그녀의 활약은 다 방면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더 많은 여성에게 복싱을 접근 가능하게 하고자 2018년 ‘시스터 클럽’을 설립해 무료로 호신술 수업을 열고 있으며(그중에는 가정폭력 피해자도 있다고), 2019년 에는 유니세프와 함께 요르단에 있는 자타리 난민 캠프를 방문해 난민 소녀들에게 복싱을 지도했습니다. 미투(#METOO) 운동이 불거졌을 때, 다른 운동선수들과 함께 스포츠계의 섹시즘과 성차별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검은 피부와 커다란 눈, 균형 잡힌 체구를 지닌 알리는 패션계의 다양성을 확장하는 근사한 모델이기도 합니다. 지지 하디드와 벨라 하디드가 속한 IMG 모델 소속으로 여러 광고와 매거진을 장식했으며, 최근에는 럭셔리 주얼리 브랜드 까르띠에의 글로벌 앰배서더로 합류했습니다. “나를 더 많이 보여지게 하고 싶다”는 그녀의 바람대로, 〈더 랍스터〉 〈더 페이버릿〉의 프로듀서 리 마기데 이가 알리의 삶을 다룬 영화 제작도 진행 중입니다. 〈엘르〉 영국과 나눈 커버 인터뷰에서 그녀는 말합니다. “네, 나는 난민이에요. 네, 우리는 가난했어요. 네, 우리는 공영 주택 단지에서 살았어요. 그러나 나는 그게 내가 누구인지를 규정하길 원하지 않아요. 지금 나를 보세요. ‘진 적이 없는 (undefeated)’ 사람.”

2020 도쿄 올림픽 개막식에서 소말리아 국기를 들고 입장한 람라 알리 @GettyImg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