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도쿄 올림픽이 엔딩을 앞두고 있습니다. 코로나와 무더위로 인한 답답함을 잊게 해줬던 열정의 시간. 단단한 몸과 매서운 눈빛을 지닌 여성들이 포효하는 역동적인 모습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쾌감과 영감을 선사했습니다. 승리보다 값진 선수들의 도전이 나도 한번 끝까지 전력을 다해보고 싶은 마음을 일으켰습니다. 혼란한 시대를 살면서 이따금 세상이 계속 나빠지고 있는 것 같은… 시간이 거꾸로 가는 것 같은 비관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죠. 이번 올림픽을 지켜보면서 그래도 우리는 전진하고 있다는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다시금 곱씹어보는 올림픽의 얼굴들.
승자를 축하해주는 태권도 이다빈 선수 @GettyImages
사격 25m 권총 은메달리스트 김민정 @GettyImages
이제 더 이상 ‘아쉬운 은메달’은 없습니다. “금메달을 따지 못해 죄송하다”며 죄인처럼 고개 숙였 던 과거의 선배들과 달리, 오늘의 선수들은 당당한 모습으로 기꺼이 은빛 메달의 기쁨을 만끽합
니다. 결과에 대한 아쉬움보다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는 자부심이 느껴지는 얼굴들이 얼마나 보기
좋던지! 경기가 끝나고 밝은 얼굴로 상대를 향해 엄지를 치켜 올렸던 태권도 이다빈 선수, 긴장된
슛오프 상황에도 “너무 재미있었다”며 싱글벙글 웃어 보였던 사격의 김민정 선수 등 승부를 즐길
줄 아는 그들의 멋진 ‘마인드’에 다시 한번 박수를.
이번 올림픽 최고의 명승부를 꼽는다면 결코 빠질 수 없는 두 번의 한일전. 먼저 8강전에서 세계랭킹 3위 일본을 상대로 접전을 펼친 배드민턴 여자 복식 김소영-공희용 조의 경기가 있었습니다. 3세트에서 벌어진 점수를 끝까지 추격해 무려 6번의 듀스를 만들어내며 짜릿한 대 역전극을 연출했죠. 기쁨의 비명을 지르며 경기장에 쓰러지던 두 선수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매 경기마다 드라마를 쓰고 있는 여자 배구, 특히 8강 진출을 확정 지었던 한일전은 ‘팀 코리아’의 정신력을 보여준 명승부였습니다(이 운명의 경기를 중계하지 않았던 지상파 방송국들은 반성하길). 풀세트 접전 끝에 12-14로 몰리던 때에도 우리 선수들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다시 봐도 가슴 터질 것 같은 승리의 순간!
올림픽 양궁 3관왕 안산 @GettyImages
어쩜 그렇게 단단할 수 있을까. 양궁 금메달 3관왕에 오른 안산 선수를 생각하면 아직도 놀랍고 고맙고 경이로운 마음이 듭니다. 자신을 향한 터무니없는 비난과 성차별적 공격 속에서 의연하게 활을 들고 과녁 한가운데 화살을 꽂고 마는 그 태산 같은 침착함이란! 견디고 이겨내 준 안산 선수 덕분에 오히려 응원받은 기분이 든 건 저뿐만이 아닐 겁니다. 올림픽을 보며 쉽사리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는 선수들의 단단한 얼굴에서 여러 차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강철 같은 정신에 경배를!
비록 메달은 획득하지 못했지만 내일이 기대되는 신예 선수들의 눈부신 활약과 다양한 종목에서 거둔 뜻깊은 기록들이 있습니다. 만 17세의 탁구 국가대표 신유빈 선수는 첫 올림픽 무대에서 당찬 모습으로 까다로운 적수들과 맞대결을 펼치며 더 큰 성장을 기대하게 했습니다. 한국 여자 다이빙 최초로 예선을 통과하고 준결승까지 오른 김수지, 33년 만에 여자 기계체조 개인종합 결선에 올라 역대 최고 순위를 기록한 이윤서 등 메달만큼 값진 결실로 내일의 희망을 밝힌 선수들의 이름을 기억해주세요.
주장 김연경과 여자 배구팀 @GettyImages
말 그대로 ‘원 팀’이 되어 올림픽 새 역사를 쓰고 있는 여자 배구팀. 매 경기마다 그들이 보여주는 투혼은 이번 올림픽의 하이라이트를 갱신하고 있습니다. 득점을 하든 실점을 하든, 서로 모여 눈빛을 나누고 어깨를 두드리는 선수들의 모습에서 하나 된 마음이 느껴집니다. 세계 최강자의 실력을 백분 발휘하며 기적 같은 승리를 견인하고 있는 김연경 선수. 코트 안팎에서 멤버들을 보듬으며 “해보자, 해보자, 후회하지 말고!”라고 목이 쉬게 외치는 굳건한 리더인 그에게 존경심마저 듭니다. 올림픽 4강 브라질과의 경기를 앞두고 있는 시점. 결과가 어떻게 되든 2021년 여름, 도쿄 올림픽 여자 배구팀은 우리 맘 속에 승자로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