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로를 빛내다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를 대표하는 필립 가렐 감독은 이런 말을 했어요. ‘자녀들과 영화를 찍어야만 그들을 볼 수 있다.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는데, 하나는 카메라를 통해 가족들을 바라본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다는 뜻’이라고요. 두 사람은 함께 영화에 출연하는 순간이 소중하고 특별하게 느껴졌나요
이자벨 위페르(이하 이자벨) 물론 어떤 측면에서는 특별한 순간이라고 할 수 있죠. 실제 관계에 허구적 요소가 개입되는 게 평범하지는 않으니까요. 우리가 극중 모녀 역할로 함께 출연했던 영화 〈코파카바나〉를 찍을 땐 극에 몰입하는 게 힘들었어요.
로리타 샤마(이하 로리타) 허구적 상황에서 만들어내야 하는 친밀감이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져요. 그래서 좀 웃길 때도 있었어요.
이자벨 어색하고 웃기더라고요. 다행히 둘 다 금세 역할에 빠져들긴 했지만.
서로의 연기를 보며 어떤 걸 느꼈나요
이자벨 지난겨울 연극을 통해 로리타의 연기를 봤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낯선 사람을 본 듯한 느낌이기도 했고요. 무대 위의 로리타는 훌륭했어요.
로리타 저는 엄마의 연기에서 낯선 모습을 발견하진 않아요. 엄마에게 내재된 무언가가 표출하는 걸 멀리서 지켜보는 기분이 들어요.
이자벨은 다양한 여성의 삶을 연기했어요. 그런 당신에게도 여성이란 여전히 비밀스러운 존재인가요
이자벨 비밀스럽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물론 제가 여성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말은 아니지만요. 저는 여성뿐 아니라 인간성, 대립, 폭력 같은 문제에도 관심이 많아요. 영화 속 여성들의 삶을 연기하는 건 이런 문제에 대해 시각적 스펙트럼을 넓혀주죠.
여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다는 걸 느끼나요
이자벨 개인적으로는 그다지요. 물론 현재 논의되는 여성 문제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어요. 많은 부분에서 이야기가 시작됐지만, 사실은 그전부터 마땅히 그렇게 됐어야 하는 것들이죠.
로리타 아무리 복잡할지라도 말이죠. 변화해 나가는 과정이라 다행이지만, 여성에 대한 논의가 단순화되는 건 유감스러운 일이에요. 물론 여성 폭력을 반대하는 논의에서는 미묘한 차이도 고려할 필요가 없지만요.
이자벨 임금 평등 문제도 마찬가지고요.
로리타가 배우의 삶을 선택한 이유는
로리타 잘 모르겠어요. 자연스럽게 선택한 것도, 그렇다고 고심 끝에 선택한 것도 아니에요. “어느 날 문득 연기하기로 결심했어요”라는 말처럼 논리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그저 우연히 발생한 일들의 연속으로 만들어진 삶이라는 느낌이요.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았거든요.
배우는 굉장히 예측 불가한 직업이에요. 엄마로서 로리타의 미래를 걱정하기도 하나요
이자벨 부모는 자식의 일이라면 아이가 무슨 선택을 하고 어떤 방향을 정해도 늘 걱정하기 마련이에요. 딸이 비행기 조종사였다면 더 불안했겠죠?
로리타 그럼 절대 걱정할 일은 없겠네요. 저는 비행기를 아주 싫어하거든요(웃음).
이자벨 삶에는 우연이라는 요소가 있잖아요. 사랑하는 이들이 위험에 노출될까 봐 당연히 걱정하죠. 특히 여배우의 삶은 투쟁과 같은 면이 있어요.
로리타 지침조차 없으니까요. 체계적으로 조직된 직업과는 다르죠.
이자벨은 로리타에게 어떤 정신적 가치를 전해주었나요
이자벨 그 질문은 로리타가 정확하게 답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무언가를 해내고자 하는 열망을 물려줬기를 바라지만요. 호기심이나 열정처럼 삶을 지탱해 주는 감정이나 열린 생각, 세상사에 늘 관심을 갖는 자세 같은 것도 전해준 것 같아요. 반대로 아이들에게 받는 것도 있어요. 어른들이 만든 세상에서 하나의 ‘세대’로 정의된 아이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저 역시도 부모님께 새로운 세상의 이야기를 전하는 역할을 했어요.
로리타 신비롭고 경이로운 일이죠. 저도 요즘 아들이 무언가를 배우고, 이해하고, 성장하고, 호기심이나 즐거움을 느끼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적어도 이것만큼은 이뤄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런 모습도 내 안의 어딘가에서 전해진 모습이라는 생각도 하고요. 내 모습을 고스란히 닮아 있는 아이를 보면 자랑스럽죠. 어른들만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는 게 아니에요. 어른들도 아이를 통해 배운답니다.
이자벨 내재된 정신적·문화적 가치를 전하는 건 서로 함께 이루는 거예요. 가까운 두 사람이 자신에게만 있는 것을 나눠주는 일이니까요. 그러면 두 사람은 순간적으로 같은 파장에 존재하게 돼요. 저와 로리타 사이에도 종종 그런 일이 일어나요. 우리는 서로 웃음이 터지거나 미소 짓게 만드는 상황을 알아요. 이런 게 큰 힘이 돼요. 마치 우리만의 작은 성에 있는 기분이랄까요.
서로 많은 부분에서 닮았다는 것에 동의하나요
로리타 나이가 들수록 엄마를 더 닮아가는 것 같아요.
이자벨 다른 사람들이 우리더러 닮았다고 그래요?
로리타 신체적으로만 닮은 것은 아니에요. 서로 부족한 면도 닮았죠.
두 사람 모두 엘리베이터를 무서워한다면서요. 그 점 또한 닮은 것 같은데요
이자벨 엘리베이터가 정말 싫어요.
로리타 저도 마찬가지예요.
이자벨 제가 나쁜 것을 물려줬군요(웃음).
로리타 급한 약속이 있는데 13층까지 걸어 올라간 적 있어요.
이자벨 불안이나 신경쇠약 같은 단점을 물려주기도 했어요. 가끔 반갑지 않은 선물도 있기 마련이죠. 누구도 완벽하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