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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생산 연도에서 비롯된 빈티지(Vintage)란 말은 이제 패션, 인테리어, 사진 등 상업 예술 어느 분야에서나 쓰인다. 대개 한 세기쯤 전까지 치는 앤티크보다는 젊고, 최소 20년은 돼 유행이 한 바퀴 돈 물건에 빈티지란 말을 붙인다. 와인이 그렇듯 원래는 아무 오래된 것이 아닌, 조금 특별하고 귀중한 것에 썼다. 디자이너를 위시한 패션 컬렉터들이 ‘1985년도에 열 벌만 생산되고 하우스가 사라진’, ‘알렉산더 맥퀸에게 영광을 가져다준’, ‘마이클 조던이 대기록을 세운 경기에서 신은’ 등 타이틀이 붙은 희귀한 물건을 찾으려고 광기 어린 눈을 빛내는 이유다.
하지만 패션을 일상에서 즐기는 실용주의자들에겐 과거의 유산이면서 예뻐서 걸치고 싶은 건 모두 빈티지다. 최소 20~30년은 된 빈티지 옷, 소품이 많은 어른들을 보며 신기해하던 나 역시 세월의 흐름에 따라 상당한 빈티지 보유자가 되었다. 일부러 수집했다기보다, 자주 안 입지만 마음에 드는 것들을 옷장 깊숙이 방치했더니 씨간장처럼 숙성돼 빈티지로 다시 태어났다. 가끔 발굴해서 상태 좋은 걸 열 살, 스무 살 젊은 후배, 지인들에게 주면 눈을 반짝이며 좋아하곤 한다.
진흙에서 진주 찾는 재미, 빈티지 쇼핑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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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성 면에서 빈티지 패션 상품은 크게 빨 수 있는 것과 못 빠는 것으로 나뉜다. 세탁과 다림질, 기본적 수선을 해 판매하는 가게도 있지만 뒤죽박죽 피라미드처럼 쌓인 옷과 소품 무더기를 뒤져야 하는 정통성 있는(?) 곳들도 아직 많다. 그 상태로 온라인화만 된 곳 물건은 세탁이 안 됐거나 냄새를 확인할 수 없는 것이다. 실크든 울이든 천과 다운 소재까지는 빨아서 오염, 냄새를 싹 없앨 수 있다. 하지만 가죽 가방, 모피 코트 등은 정말 곱게 쓰고 보관한 게 아니면 화면에선 보이지 않는 강렬한 악취와 곰팡이 등 불청객이 자리 잡고 있을 수 있으니 가급적 직접 보고 사는 걸 추천한다.
빈티지 옷을 온라인으로 살 땐 표기된 사이즈를 100% 믿으면 안 된다. 시대별로, 지역별로 핏뿐 아니라 옷의 실제 사이즈도 다르다. 특히 80년대부터 90년대 초 오버사이즈드 룩, 빅 숄더가 유행했을 때 상의는 지금 기준으로 두 사이즈는 크다고 보면 된다. 이탈리아 38로 표기된 옷이 실제 입어보면 42 사이즈는 되는 걸 볼 수 있다. 실루엣 자체가 박시하고 소매가 짧기도 하다. 온라인으로 구입할 땐 역시 자기 몸과 상품의 실측 사이즈를 신중하게 비교하는 게 최선이다.
빈티지 아이템 특유의 색감이란 것도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오랜 세월 자외선과 산소 때문에 염료가 바랬거나 광택이 사라진 것이 많아 퍼스널 컬러는 따뜻한 톤이고 눈동자나 피부는 매트한 느낌인 사람에게 유독 잘 어울린다.
요즘은 잘 만들어진 빈티지 온라인 쇼핑몰들이 많지만 이베이는 여전히 태평양 같은 존재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아버지의 옷장을 뒤져 내놓은 옷, 소품이 수도 없이 이어진다. 가격은 흥정도 할 수 있어 최저가 수준이다. 국내는 필웨이나 구구스 등 중고 디자이너 브랜드 거래 플랫폼에서 브랜드를 지정하고 낮은 가격순으로 정렬하면 뜻밖에 빈티지가 쏟아진다. 우리나라 여건상 아직 빈티지가 오래된 헌 옷쯤으로 취급받아 살 때와 비교도 안 되는 가격에 처분만 바라는 디자이너 브랜드 상품들이 많다.

클래식한 빈티지 블레이저. 사진 이선배

주얼리는 평생의 친구가 되기도 한다. 사진 이선배

파리, 런던, 밀라노 등 패션 도시로 여행 갈 땐 거리에서 열리는 빈티지 마켓 일정을 확인할 것. 사진 이선배
빈티지를 일상에서 입는다는 것, 섞고 어울리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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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에 익숙해지면 여러 아이템을 동시에 믹스 앤 매치하고 싶어지는데, 특정 시대 스타일에 심취했다 하더라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 시대 옷과 소품으로만 꾸밀 필요는 없다. 자칫 과거에서 온 시간여행자나 시대극 코스플레이어로 보일 수 있다. 예를 들어 ’70년대와 ‘90년대 스타일은 충분히 자연스럽게 한 몸 위에 공존할 수 있다. 여러 시대 아이템을 섞어 새로운 조화를 만들어 낼 것. 끊임없이 과거에서 영감을 찾는 디자이너들이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빈티지 스타일링에도 자신만의 룩 북은 필요하다. 1994년부터 신인 디자이너들 영감의 원천이자 커뮤니티인 파리 땡스갓아임어브이아이피 https://www.thanxgod.com에서는 디스플레이와 가상 투어를 통해 빈티지 스타일링 감각을 충전할 수 있다. 오브젝트 리미티드 https://object.limited는 젊은 감각에 최적화된 빈티지 앱. 빈티지 아이템을 사고파는 마켓 플레이스면서 개성 있게 스타일링한 수많은 룩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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