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세월만큼 매력적, 빈티지 패션 즐기기_선배's 어드바이스 #33

최신 트렌드보다 감각적이고, 월등히 친환경적인 패션이 있다면? 바로 패션 마니아들의 보물 창고, 빈티지 패션이다.

BY김초혜2020.10.05
 
onur bahcivancilar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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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엔 빈티지 대중화 이전에 ‘구제’가 있었다. 발바닥에 불나도록 광장시장 구제 상가에 드나들던 시절, 이맘때면 늙수그레한 상인들이 스웨터를 산처럼 쌓아 놓고 칙칙 좀 죽이는 약을 뿌리곤 했다. 머리가 아플 만큼 냄새가 심한 벤젠 성분이라 건강이 심히 걱정됐지만, 어느 하나 색, 디테일이 같은 게 없는 색다른 옷, 소품의 산맥 구경이 좋았고 잘만 고르면 당시 국내 기성복 대비 품질, 디자인이 월등한 걸 득템할 수 있기도 했다. 구제 옷의 시초는 한국전쟁 직후 구호물자였다. 저렴한 기성복이란 게 없던 시절 어른들은 군복이며 청바지며 구제 시장에서 구해 마르고 닳도록 입었다고 했다. 이후 유럽, 미국, 일본 등에서 버린 옷들이 구제 시장으로 흘러들어왔다. 수입업자가 상태와 브랜드 등에 따라 등급을 매겨 짝으로 시장에 풀면 상인들이 하나하나 깁거나 해충을 잡아 도소매하는 시스템.
 
와인 생산 연도에서 비롯된 빈티지(Vintage)란 말은 이제 패션, 인테리어, 사진 등 상업 예술 어느 분야에서나 쓰인다. 대개 한 세기쯤 전까지 치는 앤티크보다는 젊고, 최소 20년은 돼 유행이 한 바퀴 돈 물건에 빈티지란 말을 붙인다. 와인이 그렇듯 원래는 아무 오래된 것이 아닌, 조금 특별하고 귀중한 것에 썼다. 디자이너를 위시한 패션 컬렉터들이 ‘1985년도에 열 벌만 생산되고 하우스가 사라진’, ‘알렉산더 맥퀸에게 영광을 가져다준’, ‘마이클 조던이 대기록을 세운 경기에서 신은’ 등 타이틀이 붙은 희귀한 물건을 찾으려고 광기 어린 눈을 빛내는 이유다.
 
하지만 패션을 일상에서 즐기는 실용주의자들에겐 과거의 유산이면서 예뻐서 걸치고 싶은 건 모두 빈티지다. 최소 20~30년은 된 빈티지 옷, 소품이 많은 어른들을 보며 신기해하던 나 역시 세월의 흐름에 따라 상당한 빈티지 보유자가 되었다. 일부러 수집했다기보다, 자주 안 입지만 마음에 드는 것들을 옷장 깊숙이 방치했더니 씨간장처럼 숙성돼 빈티지로 다시 태어났다. 가끔 발굴해서 상태 좋은 걸 열 살, 스무 살 젊은 후배, 지인들에게 주면 눈을 반짝이며 좋아하곤 한다.
 

진흙에서 진주 찾는 재미, 빈티지 쇼핑의 즐거움

becca mchaffie Fzde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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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째 6070, 7080, 8090… 계속 과거를 그리워하는 ‘뉴트로’ 무드가 만연하더니 이번 시즌 웬만한 기성복 브랜드들은 타임머신을 탄 것 같다. 빈티지를 복제했거나 빈티지처럼 가공한 새 옷, 소품들이라, 차라리 오리지널이 더 스타일리시하고 환경에도 이로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실용성 면에서 빈티지 패션 상품은 크게 빨 수 있는 것과 못 빠는 것으로 나뉜다. 세탁과 다림질, 기본적 수선을 해 판매하는 가게도 있지만 뒤죽박죽 피라미드처럼 쌓인 옷과 소품 무더기를 뒤져야 하는 정통성 있는(?) 곳들도 아직 많다. 그 상태로 온라인화만 된 곳 물건은 세탁이 안 됐거나 냄새를 확인할 수 없는 것이다. 실크든 울이든 천과 다운 소재까지는 빨아서 오염, 냄새를 싹 없앨 수 있다. 하지만 가죽 가방, 모피 코트 등은 정말 곱게 쓰고 보관한 게 아니면 화면에선 보이지 않는 강렬한 악취와 곰팡이 등 불청객이 자리 잡고 있을 수 있으니 가급적 직접 보고 사는 걸 추천한다.
    
빈티지 옷을 온라인으로 살 땐 표기된 사이즈를 100% 믿으면 안 된다. 시대별로, 지역별로 핏뿐 아니라 옷의 실제 사이즈도 다르다. 특히 80년대부터 90년대 초 오버사이즈드 룩, 빅 숄더가 유행했을 때 상의는 지금 기준으로 두 사이즈는 크다고 보면 된다. 이탈리아 38로 표기된 옷이 실제 입어보면 42 사이즈는 되는 걸 볼 수 있다. 실루엣 자체가 박시하고 소매가 짧기도 하다. 온라인으로 구입할 땐 역시 자기 몸과 상품의 실측 사이즈를 신중하게 비교하는 게 최선이다.
빈티지 아이템 특유의 색감이란 것도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오랜 세월 자외선과 산소 때문에 염료가 바랬거나 광택이 사라진 것이 많아 퍼스널 컬러는 따뜻한 톤이고 눈동자나 피부는 매트한 느낌인 사람에게 유독 잘 어울린다.  
 
요즘은 잘 만들어진 빈티지 온라인 쇼핑몰들이 많지만 이베이는 여전히 태평양 같은 존재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아버지의 옷장을 뒤져 내놓은 옷, 소품이 수도 없이 이어진다. 가격은 흥정도 할 수 있어 최저가 수준이다. 국내는 필웨이나 구구스 등 중고 디자이너 브랜드 거래 플랫폼에서 브랜드를 지정하고 낮은 가격순으로 정렬하면 뜻밖에 빈티지가 쏟아진다. 우리나라 여건상 아직 빈티지가 오래된 헌 옷쯤으로 취급받아 살 때와 비교도 안 되는 가격에 처분만 바라는 디자이너 브랜드 상품들이 많다.
클래식한 빈티지 블레이저. 사진 이선배

클래식한 빈티지 블레이저. 사진 이선배

주얼리는 평생의 친구가 되기도 한다. 사진 이선배

주얼리는 평생의 친구가 되기도 한다. 사진 이선배

파리, 런던, 밀라노 등 패션 도시로 여행 갈 땐 거리에서 열리는 빈티지 마켓 일정을 확인할 것. 사진 이선배

파리, 런던, 밀라노 등 패션 도시로 여행 갈 땐 거리에서 열리는 빈티지 마켓 일정을 확인할 것. 사진 이선배

빈티지를 일상에서 입는다는 것, 섞고 어울리게 하라

noah buscher ⓒUnsplash

noah buscher ⓒUnsplash

빈티지를 즐기는 일단계는 마치 빈티지가 아닌 양, 최근 아이템들 사이에 슬쩍 끼워 넣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2020 F/W 컬렉션 대부분이 과거를 찬양해 빈티지 아이템 한둘이 착장에 들어가도 무리 없이 어울린다. 옷이 부담스러우면 팔찌, 목걸이, 반지, 브로치 등 주얼리 하나만 빈티지로 해도 좋다. 평범한 스웨터 차림에 알 큰 빈티지 칵테일 링 하나만 껴도 어딘지 모르게 달라 보이는 스타일로 변신한다.
 
빈티지에 익숙해지면 여러 아이템을 동시에 믹스 앤 매치하고 싶어지는데, 특정 시대 스타일에 심취했다 하더라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 시대 옷과 소품으로만 꾸밀 필요는 없다. 자칫 과거에서 온 시간여행자나 시대극 코스플레이어로 보일 수 있다. 예를 들어 ’70년대와 ‘90년대 스타일은 충분히 자연스럽게 한 몸 위에 공존할 수 있다. 여러 시대 아이템을 섞어 새로운 조화를 만들어 낼 것. 끊임없이 과거에서 영감을 찾는 디자이너들이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빈티지 스타일링에도 자신만의 룩 북은 필요하다. 1994년부터 신인 디자이너들 영감의 원천이자 커뮤니티인 파리 땡스갓아임어브이아이피 https://www.thanxgod.com에서는 디스플레이와 가상 투어를 통해 빈티지 스타일링 감각을 충전할 수 있다. 오브젝트 리미티드 https://object.limited는 젊은 감각에 최적화된 빈티지 앱. 빈티지 아이템을 사고파는 마켓 플레이스면서 개성 있게 스타일링한 수많은 룩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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