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달콤살벌한 영화기자의 발바닥 평점

강추위가 기승을 부린다. 동장군이 무섭거나 이런저런 연말 행사(망년회)로 분주해도, 극장 가는 재미를 포기할 수 없는 법이다. 알짜 정보없이 영화 전단지나 뒤적이며, 영화를 고르는 당신을 위해 엘르가 좀 나섰다. 고양이 입맛에 따라 멋대로 발바닥 평점까지 매겼다. 심심할 때 슥 한번 훑어봐도 좋고, 자신만의 독특한 취향이 있다면 무시해도 상관없다. 이건 어디까지나 당신을 위한 가벼운 조언이다.

프로필 by ELLE 2010.12.17

 

역시 해리 포터는 강했다.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1부>가 4일 동안 105만 명을 동원하며 정상을 차지했다. 해리 포터의 마지막 시리즈를 3D로 본다는 기대감이 더해진 결과였다. 지난 주 1위를 차지했던 <나니아 연대기: 새벽 출정호의 항해>는 주말 관객(18, 19일) 18만 명을 추가하며 총 90만 명을 돌파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방학 특수를 맞이하면서 <새미의 어드벤쳐>도 조용히 20만 명을 모았다.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한 <쩨쩨한 로맨스>는 163만 명을 모으며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22일 <황해>와 <헬로우 고스트>가 개봉하면서 설 자리를 잃을 전망이다. 크리스마스 특수를 노린 이 2편의 영화가 이번 주말 치열한 전쟁을 펼친다. <헬로우 고스트>는 <과속스캔들>의 신화를 재현하는 차태현이 여전히 웃음 폭탄을 날린다는 점이 큰 무기다. '웃고 울리는 코미디'라는 점에서 모든 연령층에 편안하게 소구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반면 <황해>는 2시간 반이 넘는 긴 러닝타임과 폭력성(청소년 관람불가)이 흥행의 큰 제약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고독한 두 남자, 하정우와 김윤석의 연기대결은 관객의 궁금증을 자아내기에는 충분하다.


고양이 세수 : 연변에서 택시를 운전하는 구남(하정우). 한국으로 돈 벌러 간 아내는 소식이 없고, 마작판에 드나들지만 항상 잃을 뿐이다. 그러다가 면가(김윤석)로부터 한국에 가서 누군가를 죽이고 오라는 제안을 받는다. 구남은 빚을 갚고 아내를 찾기 위해 황해를 건넌다.
고양이기지개: 영화의 초반부는 숫자(마작, 달력, 주소, 돈)로 이루어진 자본의 세계를 보여준다. 구남은 이 기호의 세계에서 방황한다. 그러다가 면가가 도끼를 드는 폭력의 세계에 이르자, 영화는 광폭하게 급변한다. <황해>의 폭력은 <추격자>보다 훨씬 리얼하다. 그러나 과잉 추격 신이 겹겹이 쌓이면서부터 영화는 리얼리티가 아니라 하이퍼리얼리티로 빠져든다. 게다가 쫓기기 위해 쫓는 세계로 돌변해 간다. 심지어 도착증으로 빠져드는 것마저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관객들이 <추격자>를 좋아했던 것은 영화의 완벽성 때문이 아니었다. 여성들이 소리 지르며 즐겼던 것은 '공포'였다. 이번엔 그런 감(感)은 없다.
궁극의 그르릉 포인트:
<아저씨>(돈)와 <악마를 보았다>(살육)의 사이에 위치한 면가 캐릭터의 광기. '아귀' 김윤석의 자기복제가 절정에 이른다. 도끼에서 뼈다귀로!
고양이 세수: 톨스토이(크리스토퍼 플러머)는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작품 저작권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선언한다. 평생 톨스토이를 내조해 온 부인 소피야(헬렌 미렌)는 톨스토이의 결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분노한다. 급기야 톨스토이는 마지막 삶을 조용히 지내고자 떠난다.
고양이 기지개: 이 원제목이지만 국내 제목이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으로 둔갑한 것은 마케팅의 힘이다. 대문호 톨스토이를 언급하면서 관객의 이목을 끌겠다는 노림수가 엿보인다. 하지만 톨스토이 마니아를 위한 영화는 아니다. 정확히 '톨스토이와 소피야'라고 제목을 짓는 게 맞다. 크리스토퍼 플러머와 헬렌 미렌은 2010년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다. 미렌은 산드라 블록에게 여우조연상을 빼앗겼다. 재미있는 건 플러머가 남우 '조연상' 후보에 올랐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대충 감이 온다. 이 영화는 소피야의 사랑을 위한 헌사다. 소피야의 광기와 사랑은 어딘가 버지니아 울프를 떠올리게 만든다.
궁극의 그르릉 포인트:
소문난 악처 소피야와 톨스토이 추종자들의 지칠 줄 모르는 설왕설래. '러브 퀸' 헬렌 미렌이 신경 쇠약 직전의 여인으로 변해간다.
고양이 세수: 어느 날 갑자기 아내 라라(엘리자베스 뱅크스)가 살해 혐의로 종신형을 받자 존(러셀 크로우)은 온갖 노력을 다하지만, 모든 증거와 법적 정황은 그녀에게 불리하기만 하다. 절망감에 빠진 라라는 자살을 시도하고, 존은 결국 아내를 살리기 위해 남몰래 탈옥을 계획한다.
고양이 기지개: 폴 해기스는 다양한 얼굴을 가진 작가다. 전문 시나리오 작가로 <밀리언 달러 베이비>, <아버지의 깃발> 등을 쓰며 클린스 이스트우드와 호흡을 맞추는가 하면, 동시에 007시리즈의 각본을 쓴다. 반면 직접 연출을 할 때는 <크래쉬>, <엘라의 계곡>처럼 계급 갈등이나 미국의 어두운 이면을 다루기도 한다. 장르 영화와 예술 영화를 오고 가는 이야기꾼이다. 그렇다면 <쓰리 데이즈>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 스릴러에 '프리즌 브레이크' 이야기다. 아내를 탈출시켜야 하는 장본인은 막시우스와 로빈 후드 같은 히어로로 익숙한 러셀 크로우다. 놀랍게도 폴 해기스는 크로우의 슬픈 얼굴로 모든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궁극의 그르릉 포인트:
<너는 내 운명>처럼 크로우도 맹목적 믿음을 선보인다. 액션 연기를 하기엔 벅차지만 지지를 보낼 수밖에 없으니, 휴머니즘에 또 당한 모양이다.
고양이 세수: 죽는 게 소원인 상만(차태현)은 또 자살을 시도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귀신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에게 변태귀신, 꼴초귀신, 울보귀신, 초딩귀신이 거머리처럼 딱 달라붙는다. 소원을 들어달라는 귀신과 그들 때문에 맘 놓고 죽지도 못하는 상만의 이상한 동거가 시작된다.
고양이 기지개: <바보>의 각본을 썼던 김영탁이 <헬로우 고스트>를 연출했다. 포스터를 보고 <바보>나 <과속스캔들>을 떠올리는 것 당연하다. 차태현 때문이다. 그가 나오는 순간 모두 직감겠지만, 또 어딘가 어수룩한 남자의 이야기다. 차태현은 <엽기적인 그녀>의 견우를 정점으로, 10년 동안 이른바 '세정(세상의 물정)' 모르는 남자의 대명사였다. 스토리 대충 훑어보면 바로 필이 오는 것처럼 결국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한국영화가 1980년대부터 따르던 공식을 그대로 답습한다. 계속 웃기다가 마지막에는 울려라. 이 패턴에 몹시 익숙해진 관객은 "또 그러냐!"고 비판을 가할 수밖에 없다. 나오는 눈물을 꾹 참으며.
궁극의 그르릉 포인트: 상만을 둘러싼 모든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뻔한 반전). 교훈은 대충 이렇다. 눈물 젖은 김밥을 먹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인생을 논하지 마라.

고양이 세수: 1660년대 말의 전설적인 록 밴드 ‘도어즈’와 리드보컬 짐 모리슨의 일대기를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짐이 레이와 로비를 만나 1965년 그룹을 결성할 때부터 1971년 갑자기 짐이 사망하기까지, 로큰롤 역사에 길이 남을 6장의 명반을 남겼다. 내레이션은 조니 뎁이 맡았다.
고양이 기지개: 소위 영화 좀 본다는 친구들이 <망각의 삶>, <내가 찍은 그녀는 최고의 슈퍼스타> 같은 영화를 떠올리면서 <왠 유어 스트레인지>에 기대를 할지도 모른다. 어딘가 독특한 감독이 전설의 도어즈 다큐멘터리를 찍는다면 뭔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드는 거 당연하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 스콜세지의 <노 디렉션 홈>이나 헤인즈의 <아임 낫 데어> 같은 영화는 언제나 탄생하는 게 아니다. 먼저 마음을 비우는 게 좋다. 도어즈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음악 개론 차원에서 볼만한 다큐멘터리다. 요절한 짐 모리슨 성정과정이나 도어즈 음악의 흥망성쇠를 소개하는 방법은 나름 유머가 있어서 충분히 즐겁다.
궁극의 그르릉 포인트:
짐 모리슨에 관한 '음악 영화'를 원한다면 올리버 스톤의 <도어즈>(1991)가 한수 위다. 음악을 제대로 듣고 싶다면 먼저 레코드 가게로 가라.

고양이 세수: 28년 전 천재박사 케빈(제프 브리지스)이 컴퓨터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그의 아들 샘(개럿 헤들런)은 아버지를 찾아 사이버 세계로 여행을 시작하고, 아버지 케빈이 그가 창조한 크루 때문에 그리드 안에 잡혀 있음을 알게 된다. 샘은 사이버 세계로부터 탈출을 시도한다.
고양이 기지개: 컬트 SF <트론>이 다시 돌아온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사건이다. 올해 최고의 기대작이자 엄청난 제작비를 쏟은 블록버스터지만 호불호(?)가 확 갈릴 수 있는 영화다. 원작을 보지 않아도 좋을 정도로 쉽게 만든 기획(<스타워즈>처럼 부성애 강조)은 이해하지만, 마니아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기에는 부족하다. <아바타>의 3D에 미친 사람들은 이 영화의 테크놀로지를 다소 과소평가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일치하는 건, 여전사 쿠오라(올리비아 와일드)에 대한 의견이다. 그리드 안에서 발광 슈트를 입었을 때는 찬란하더니 현실 세계로 오니 어찌나 평범한지! 하여튼 유저의 삶이 꼭 좋은 건 아니다.
궁극의 그르릉 포인트:
<트론>은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3D로 진화한 그리드의 비주얼 디자인 역시 최고다. 추억의 광선 바이크가 업그레이드되면서 묘한 쾌감을 이끈다.

고양이 세수: 연인조차 냉정하게 죽이는 전문 킬러 잭(조지 클루니)은 사진작가로 신분을 위장한 채 이탈리아로 향한다. 이곳에서 새로운 임무를 맡지만 고독한 삶에 싫증을 느낀 나머지 은퇴를 결심한다. 하지만 어느새 자신이 타깃이 되었음을 직감한 잭은 위기에서 탈출하고자 한다.
고양이 기지개: 안톤 코르빈이 아트 좀 하셨다. 이건 무늬만 스릴러다. 내용을 오목조목 뜯어보면 고독한 남자의 이야기다. 조지 클루니가 킬러로 등장한다고 해서 섹시한 킬러를 연상해서는 곤란하다. 제이슨 본처럼 빠르게 뛸 리가 없지 않은가! 클루니는 총을 들었을 뿐, 행동하는 것이 <인 디 에어>의 라이언 빙햄과 다를 게 없다. '천 만' 마일리지의 남자처럼 킬러 잭도 너무나 외로운 사나이다. 킬러나 기업 해고전문가나 모두 '출장의 달인'이라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레옹은 마틸다도 있고 화분도 있지만, 잭에게 무미건조한 섹스 외에는 허락되는 것이 없다. 그나마 남들처럼 살겠다고 마음 바꾸었으니 살아남을 리가 없다.
궁극의 그르릉 포인트: 90분을 참고 기다려야 만날 수 있는 클루니의 짧은 액션, 허무함만큼이나 냉정하고 비정한 최후가 기다리고 있다.

Credit

  • 글 : 전종혁 기자 COURTESY OF 월트 디즈니
  • 영화사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