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그녀'를 쓰지 않는 실험 #ELLE 보이스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 처음으로 산 주식은 어떤 곡선을 그릴지, 특정 표현을 쓰고 어떤 장르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왜 어려운지. 우리의 삶은 여러 고민과 발전하고 나아지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합니다. 여성의 시각으로 <엘르>가 전하는 세상의 단면들.

BYELLE2020.06.25

‘그녀’를 쓰지 않는 실험

나의 데뷔작이기도 한 단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텅 빈 우주정거장에서 무언가를 오랫동안 기다리는 노인의 이야기다. 소설은 우주정거장에 방문한 직원의 시점에서 서술되는데, 이런 문장으로 시작된다. ‘노인은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단편을 발표한 이후 상당히 인상 깊었던 말들이 있다. 이 소설의 첫 문단을 읽으면서 ‘노인’을 지칭하는 ‘그녀’라는 대명사에 흠칫했다는 것, 순간적으로 당연히 ‘남성 노인’을 상상했다는 말이었다. 비슷한 이야기를 여러 번 듣다 보니, 사실은 나도 그 단편을 쓰면서 ‘노인이라고만 쓰면 남성을 떠올릴까?’ 하고 가볍게 의문을 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단지 내 안의 편견이라고 생각했지만 말이다.
 
나는 울산의 학성여자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우리 학교와 같은 이름을 가진 남자고등학교는 그냥 학성고등학교였다. 기자들은 여성 피해자나 가해자만 강조해 ‘여(女)’를 제목에 붙인다. 역으로 ‘女’ 자가 붙어 있지 않은 학생과 시민은 보통 남성이다. 여교사, 여의사, 여대생, 여배우, 여경 같은 말은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왔어도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이브가 아담의 갈비뼈에서 파생된 존재라는 것처럼 우리를 둘러싼 언어는 남성을 기본형으로 간주하고 그것에 슬그머니 ‘여’를 덧붙여 여성을 보편에서 배제한다. 물론 소설에서 흔히 쓰이는 ‘그’와 ‘그녀’도 그런 혐의에서 무결하지 않다. 
 
어슐러 르 귄이 1969년에 발표한 〈어둠의 왼손〉에는 특정 성별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 모두의 특질을 가지는 ‘게센인’이 등장한다. 그런데 르 귄은 이 소설을 쓰면서 양성인 게센인들을 칭하는 대명사로 ‘그(He)’라는 남성 대명사를 선택했고, 당시 독자들은 주인공 에스트라벤을 여성보다 남성에 가까운 인물로 받아들였다. 페미니스트들이 이 사실을 지적하자, 르 귄은 〈젠더는 필요한가?〉라는 에세이를 통해 ‘He’는 영어에서 남성만 지칭하는 것이 아닌 포괄적인 대명사로도 쓰이므로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견해를 밝힌다. 그러나 약 10년 뒤에 르 귄은 결국 다시 입장을 수정해 대명사 선택은 매우 중요한 문제임을 인정한다는 각주를 달았다.
 
2013년에 출간된 앤 레키의 〈라드츠 제국 시리즈〉는 SF의 대명사 실험을 더욱 흥미로운 방향으로 밀어붙인다. 〈사소한 정의〉로 시작되는 3부작 우주 활극에서 작가는 모든 대명사를 ‘그녀(She)’로 지칭하며 성역할 구분이 없는 세계를 보여준다. 이런 장치가 만들어내는 효과는 흥미롭다. 라드츠 우주의 ‘그녀’는 여성일 수도 있고 남성일 수도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군인과 지배자들, 권력을 휘두르는 인물들(혹은 비인간 존재들) 모두 ‘그녀’로 서술되므로 독자는 인물의 성별을 상상할 때 자신의 편견 역시 시험하게 된다. 이처럼 인칭대명사의 성별 구분은 결코 사소하지 않으므로 영어 문화권에서는 ‘He/She’를 대체하는 성중립대명사를 사용하는 현상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사전 출판사 메리엄-웹스터는 2019년 올해의 단어로 성중립대명사 ‘They’를 선정했다.
 
한편 한국어는 변명의 여지가 있다. 원래 한국어에는 ‘그녀’라는 표현이 없었다가 외국어의 ‘그/그녀’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므로 그냥 ‘그’를 쓰면 된다는 견해가 우세다. 지난 해부터 나는 소설을 쓸 때 ‘그녀’를 되도록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인칭대명사를 둘러싼 논쟁을 접하면서 예전처럼 아무 입장 없이 ‘그녀’를 쓰기가 불편해진 것이다. 엄청난 결단을 했던 것은 아니고, 그냥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쓰지 말자고 생각했다. 별 생각 없이 ‘그녀는 해양생물학자이자 작가로서…’라는 문장을 쓰다가 ‘아, 이거 안 쓰기로 했지’라는 생각이 들면 다른 말로 대체한다. 
 
예전에 써둔 글을 퇴고하다가 ‘그녀’를 발견하고 뒤늦게 뺄 때도 있다. 논픽션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실존 인물이므로 ‘레이철 카슨’을 ‘그’로 지칭한다 해도 크게 오해를 빚는 일은 없다. 막상 쓰다 보니 다소 번거롭기는 하지만 ‘그녀’가 반드시 필요한 경우는 없었다. 다만 소설은 달랐다. 여자와 남자가 서로 대화하는 장면에서 ‘그는 말했다’와 같은 편리한 문장을 쓸 수 없다. 성별로 간단하게 지칭할 수 없으니 독자가 혼란스럽지 않도록 가독성에 신경 써야 한다. 대명사나 모호한 명칭보다 인물의 이름을 정확히 쓰고, 반복 표현을 피하기 위한 다른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또 하나는 인물이 기본형 ‘남성’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생겨나는, 약간 이중적인 고민이다. 만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노인에게 ‘안나’라는 이름을 주지 않거나 ‘그녀’와 같은 말을 써서 여성으로 지칭하지 않았다면 이 소설을 읽은 이들 중 몇 명이나 노인을 여성으로 생각했을까? 아직까지 이 문제에 대해서는 확실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 인물의 성별을 끝까지 미정으로 남겨두는 게 좋은 방법일 수도 있지만 사회적으로 기본형 인간이 남성으로 여겨진다면 픽션 속의 ‘성별 미정’ 인물도 결국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생긴다. 
 
성중립대명사나 명사들이 정말 중립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선 최대한 여성 인물의 이야기를, 또한 명시적으로 성별 이분법을 벗어난 인물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것이 나의 잠정적 결론이다. 소설의 모든 ‘그’들, 사람들, 노인과 아이들이 당연하게 수많은 얼굴을 가질 때, 그 상상되는 얼굴들이 불균형하지 않을 때, 이런 고민도 자연스럽게 끝이 날 것이다. 
 
WRITER 김초엽  
93년생 소설가. 포항공과대학교 생화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첫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나아갈 수 없다면〉을 펴냈다. 따뜻하고 보편적인 서사의 SF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