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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YORK & SEOUL 박상미의 두 도시 이야기 드레스 코드가 있는 풍경
예전 한국에 살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엔 여기저기서 파티가 많다. 얼마 전에는 모회사에서 하는 신제품 런칭 파티에 초대되어 간 일이 있는데 파티장에 들어서며 깜짝 놀랐다. 한 공간에 그리 많은 아저씨들이 무더기로 서 있는 걸 본 건 처음이었다. 일할 때 입는 회색 양복 차림의 그 아저씨 부대는 게다가, 어정쩡한 폼으로 입구 쪽을 향하고 있었다. 파티가 진행되면서 옷을 좀 다르게 입은 남자들도 몇 눈에 띄고 멋을 낸 여자들도 오면서 분위기가 나아졌지만 그 첫 ‘장면’은 부조리극의 그것처럼 인상적이었다. 드레스 코드에 관한 기억이라면 90년대 초 처음 캐나다에 갔을 때 본 그곳 대학생들의 모습도 꽤 강렬하다. 난 대학 시절 주로 미니스커트에 하이힐을 신고 다녔는데 천편일률적으로 캐주얼한 차림에 나름 충격을 받은 것이다. 거의 후줄근한 수준인 교포 대학생들 속에서 나만 재킷과 블라우스 차림에 하이힐까지 신어 엄청 쑥스러웠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서양은 우리에 비해 상당히 분명한 드레스 코드를 갖고 있다. 학교에 갈 때는 맨 얼굴에 청바지 차림이고 놀러 갈 일이 있으면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다시 나간다. 대학생들이야 놀 때도 캐주얼하게 입지만 일반적으로 파티에는 분명한 드레스 코드가 있는 편이다. 예를 들어 ‘블랙타이’는 최고로 갖추어입는 차림으로 남자들은 턱시도를 여자들은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칵테일’이라고 하면 남자들은 맵시 나는 어두운 색 정장에 여자들은 (주로 무릎까지 오는) 짧은 길이의 우아한 드레스를 입는다. (우리가 흔히 '리틀 블랙드레스'라 부르는 검정 드레스가 칵테일 파티에서 가장 애용되는 차림이다.) ‘페스티브’라고 하면 좀 더 자유롭게 축제 분위기를 내면 된다. 할로윈에는 맘껏 되고 싶은 ‘것’이 될 수 있는데, 특정한 드레스 코드를 주는 할로윈 파티도 있다. 몇 년 전 마크 제이콥스에서 주최한 할로윈 파티에 갔을 때의 드레스 코드는 ‘베니스 풍’이었다. 드레스 코드가 세분화되고 확실하다는 건 어찌 보면 편리를 위한 일이다. 옷차림만 봐도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대충 알 수 있어 헷갈림이 적어지는 것. 이를 테면 직종마다 드레스 코드가 달라서 월스트리트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보수적인 정장을 하는 편이지만 전문직 종사자들은 양복은 안 입어도 넥타이와 구두는 착용하는 ‘프로페셔널룩’이나 넥타이와 구두가 빠지고 셔츠에 청바지 외의 바지를 입는 ‘세미 프로페셔널룩’을 입는다. 파티의 경우도 드레스 코드는 뭘 입을까 하는 고민의 폭을 좁혀준다. 옷차림의 종류가 제한되면 그 정해진 옷차림의 패션이 발전하는 측면도 있다. 이브닝 드레스만 입는 파티가 있기에 이브닝 드레스의 패션은 다양해질 수 밖에 없다. 한편, 드레스 코드가 아직 불분명한 서울의 거리는 헷갈리면서도 재미있다. 대낮에 파티복 차림의 여성들이 ‘이브닝 슈즈’를 신고 거리를 활보하고 정작 결혼식이나 파티에서는 직장에서 입는 정장 차림이 눈에 띈다. 얼마 전에 외국인 회사에 다니는 친구가 자기 회사 파티의 드레스 코드를 말해준 적이 있었는데 우하하 웃고 말았다. 파티를 조직하는 사람이 나처럼 회사원 아저씨 부대에 덴 사람이었는지 회사원 복장만 뺀 모든 드레스 코드를 실어놨던 것이다. 세상에, 턱시도와 힙합이 섞여 있는 드레스 코드는 처음 봤다. 나중에 친구가 파티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어떤 여성은 심지어 꿀벌 차림이었다. 결국 할로윈 복장까지 섞였던 것. 얼마 전 클럽에 갔을 때도 비슷했다. 서울에서 클럽은 처음이었고 내가 드레스 코드를 알 리 없었다. 뉴욕에서 하던 대로 섹시한 캐주얼룩으로 갔는데, 그런 컨셉트가 무색할 정도로 드레스 코드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티셔츠에 반바지에 장화를 신은 여자부터 중절모에 몸빼 바지 차림의 남자까지... 차림이 너무 다르다보니 서로 경쟁은 안 되었지만 혼란스러우면서 재미있는 풍경인 건 틀림없었다.
(PROFILE) 박상미는 1996년부터 뉴욕에서 살면서 미술을 공부했고 글도 쓰기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뉴요커>와 <취향>이 있고, 옮긴 책으로<앤디 워홀 손 안에 넣기>, <우연한 걸작>, <빈방의 빛>, <그저 좋은 사람>, <어젯밤>, <사토리얼리스트> 등이 있다. 현재 ‘가로수길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패션 프로젝트를 위해 서울에 체류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엘라서울 본지 11월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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