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벽한 모성이 아니라 현실 속 모성을 가진, 그래서 우리 마음을 더욱 짠하게 만든 ‘진짜’ 엄마.
덕순 “느네 동백이네서 밥이나 먹지, 뭔 빈덕이 나서 여긴 와.”
용식 “아니 내가 뭐 오기 싫어서 안 왔어? 엄마가 밥 먹으러도 오지 말라며.”
“하이구. 딴 소리는 다 안 듣고 그 소리만 잘 들어? 하여튼 지 밥 처먹어 주는 것도 유세지, 유세여. 지 애미는 기냥 밥 먹었냐 묻는 게 일이고 자식새끼는 툭 하면 나 밥 안 먹어, 아이고, 이 지랄 하는 게 유세지. 아이고 드러버.”
엄마에게 “밥 안 먹어!”라고 툴툴대던 지난날들이 떠오르는 대사. 세상 모든 엄마가 한 번쯤 해 보고 싶었던 말 아닐까요?
“동백아. 내가 널 타박하면 내 자식 가슴팍이 쓰릴 텐데, 내가 널 어떻게 함부로 대할 수 있겠니?”
곽덕순은 뭉클한 모성을 보여주는 캐릭터인 동시에 “(상가 번영)회장님은 제가 살면서 친해 본 사람 중에 제일 높은 사람이자 처음 생긴 빽”이라는 동백의 표현처럼 편견 없이 동백을 바라보는, 정의롭고 따뜻한 여성이기도 합니다. 비혼모에 술집을 운영하는 동백과 아들 '용식(강하늘)'과의 연애에 딜레마를 느끼지만 무작정 동백을 미워하기보단 오히려 용식을 탓하는 인물이죠. 동백의 아들 ‘강필구(김강훈)’의 친부 ‘강종렬(김지석)’의 존재를 알게 된 후에도 “내 자식 귀한 거 알기 때문에 동백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며, 존중과 연대의 시선으로 동백에게 물러나 달라 청하는 모습은 공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죠.

일곱살 동백을 보육원에 버리고 27년 만에 치매에 걸려 나타난 야속한 엄마.
“7년 3개월이 아니라 지난 34년 내내 엄마는 너를 하루도 빠짐없이 사랑했어.”
하지만 돌아오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을 동백이에게 밥을 해 먹이는 일이고, 동백이를 위해서 뭐든 하나는 할 거라는 말을 자기 암시처럼 중얼거리는 우리네 엄마이기도 하죠. ‘엄마’라는 말은 주문과도 같아서 평생을 퍼주면서도 그렇게 기꺼이 주고, 엄마가 된 후에도 엄마를 따라갈 수 없다는 동백의 내레이션 그대로 우리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드는 엄마, 마마, 마더. (엄마 보고 싶어!)

단연코 옹산에서 제일 멋지고 세련된 여자. 짧은 머리에 팬츠 수트 차림으로 법정을 누비는 이혼 전문 변호사이지만 바람 피우는 남편, 아들보다 잘난 며느리가 마음에 안 드는 시어머니 등 100% 강자가 아닌 약자의 모습 또한 가진 여성이죠.
“나는 노규태를 금가락지인 줄 알고 골랐는데 살아보니까 이게 놋가락지도 안되는 거야. 근데 더 압권은 시부모는 나한테 다이아나 준 지 안다는 거지.”
남편 '노규태(오정세)'가 '최향미(손담비)'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안 뒤에도 그녀는 끝까지 자존심을 지켜냅니다. 노규태, 최향미와의 삼자대면 중 그 상황에서도 티스푼을 훔치는 최향미를 보고 이런 말을 담담하게 던지죠.
“네가 내 선물 같아. 내 남편이 이제야 영혼의 동반자를 만난 것 같아서. 네가 싸그리 반품하고 싶은 노규태랑 거기 딸려오는 오만 옵션들을 가져가 준다면 나한테는 참 은인이겠다.”
끝까지 선을 지켰다며 발악하는 노규태에게는 이런 사이다 발언까지!
“안 잔 게 유세니? 똥 싸다 말았으면 안 싼 거야?”
‘나도 누울 자리는 안다. 이 언니는 내 상대가 아니고… 필이 팍 왔다. 개기다가는 죽겠구나’라는 최향미의 내레이션처럼 감히 상대할 수 없는 세상 멋진 여자, 갖고 싶은 언니!

평면적인 조연이 아니라 잊을 수 없는 서사를 지닌 인물.
“그런데 사람들은요 맨날 나보고 가던 길 가래요. 다들 나는 열외라고 생각하나 봐. 사람 자꾸 삐뚤어지고 싶게.”
극 초반 최향미는 비열한 짓만 일삼고 양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철면피였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개인사가 밝혀지면서, 최향미는 용서는 안 될지라도 이해 가능한 인물로 다시 태어났죠. 동백이 아들을 위해 삶을 버텨낸 것처럼 최향미 역시 동생을 위해 억척스럽게 살아내야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으니까요.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물망초의 꽃말, 그녀의 마지막 바람처럼 이제 최향미는 잊히지 않는 여자가 되었죠. 마냥 삐뚤어지거나 희생당하는 ‘열외’가 아니라 서사를 지닌 인물로요.

동네 실세답게 텃세도 좀 부리고, 샘도 많고, 오지랖 넓은, 그러나 의리의 아줌마! (뭐죠? 이 현실감은. 우리 옆집 아주머니 아니세요?!)
“원래 지 동생 틱틱 건드리는 언니들이 남이 내 동생 건드리는 꼴은 못 보는 겨”
“뭐를 녹음하는겨? 시골 사람은 다 컴맹인 줄 아나벼? 나인 써? 난 텐 써!”
언제나 같은 골목에 앉아서 세상만사에 다 참견하고, 동백이 운영하는 ‘까멜리아’가 술집이란 사실을 알고 텃세를 부리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 친근한 척하며 동백의 뒤를 캐는 기자들에게 멋지게 “나인 써? 난 텐 써!”라고 면박을 주는 장면에서는 역시 의리의 아줌마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죠. 그룹명 '줌마피아'에서 엿볼 수 있듯, 이 게장 골목 식구들은 로맨스만큼이나 스릴러 성향 또한 짙은 <동백꽃 필 무렵>에서 분명한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단순히 웃음 포인트의 대사를 던지는 감초 역할, 풍경 이상의 존재감이 느껴지는 이유죠.

비혼모, 술집 주인, 연쇄살인범 까불이를 목격하고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 그리고 사랑스럽고 독립적인 여자.
“엄마가 중국말로도 마마래요. 엄마, 마마, 마더. 다 비슷하지 않아요? 무슨 주문 같은 건가 봐요.”
쉽지 않은 인생을 억척스럽게 살아왔지만, 동백은 여느 드라마 속 흔한 캔디형 인물은 아닙니다. 그녀는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같은 만화 속 씩씩함 대신 “나도 울 만하면 울고 살아야죠”라는 현실 속 꿋꿋함을 가진 여자죠. 부당한 대우에 마냥 속 끓이고 가만히 있는 것도 아니에요. ‘웃는 게 동백씨 일’이라고 말하는 홍자영에게 “그런데 웃는 게 내 일은 아닌데…”라고, 주사를 부리는 취객에게는 “노 매너 노 서비스!”라며 고구마인 척 사이다 발언으로 선을 긋죠.
“소심한 게 왜 나빠. 그래도 소심한 사람은 남한테 상처는 안 줘…”

“사람들이 사는 게 징글징글할 때 술 마시러 오잖아요. 그러니까 나는 웬만하면, 사람들한테 다정하고 싶어요. 다정은 공짜잖아요. 서로 좀 친절해도 되잖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