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생긴 그대로' 받아들이기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자기 몸 중립주의 열풍. 과연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 거식증 반대운동,보디 포지티브,보디,다이어트,운동

살면서 늘 통통이와 뚱뚱이 사이를 오가던 몸이 난생처음 날씬이로 변한 건 2017년 말이었다. 러닝은 내가 처음으로 진심을 다해 좋아하고 즐기게 된 심혈관운동이었고, 몇 달간 박차를 가한 결과 꽤 많은 몸무게를 감량했다. 심지어 조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기비판적인 내 기준에서도 나는 확실히 마른 편에 속했다. 뭘 입어도 케이트 모스의 발끝조차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엉망이었던 몸뚱어리 대신 10대 때부터 갈망했던 날씬한 몸매를 갖게 된 것. 옷은 전부 헐렁해졌고, 뼈가 보일 정도로 마르게 되자 부모님은 내가 너무 적게 먹는다며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스스로도 자랑스럽게 여겨지는 몸매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여전히 복근과 크롭트 티셔츠, 가죽 바지를 갈망했다. 세상에, 이게 정말 내 몸을 사랑하는 방법이긴 할까?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나는 요즘 시대가 추구하는 건강한 방법으로 살을 뺐다. 무리한 다이어트를 하거나 거식증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먹고 싶은 간식을 억지로 참지도 않았다. 그저 유행에 따라 후무스 같은 콩류, 치아시드 등의 씨앗류 같은 저지방 고단백 식단을 유지하고 야채를 1일 권장량의 두 배쯤 챙기며, 동트기 무섭게 나가 미친 듯이 운동한 것이 전부다. 그리고 저울 숫자가 다시 조금씩 올라가는 것을 볼 때도 ‘그래, 마른 몸매보다 건강이 우선이야. 운동이 주는 진정한 선물은 건강한 정신과 자신감이지’라며 스스로에게 세뇌하듯 중얼거렸다. 그러자 점차 몸무게를 재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내 몸이 초콜릿을 원하면 언제든 초콜릿을 마음껏 먹어주었고, 생리기간 동안은 운동을 거르는 자신을 더 이상 다그치지 않게 됐다. 저울 숫자에 집착하지 않자 마음이 그렇게 홀가분할 수 없었다. 얼마만큼 좋았느냐고? 친구 집에 놀러 가 아무 생각 없이 오랜만에 체중계 위에 섰을 때, 그리고 5kg이 불어난 몸무게를 봤을 때도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후 체중계가 고장 난 건 아닌가 싶어 세 번쯤 다시 올라갔을 때까지는 말이다. 그러자 몸무게와의 전쟁으로 인한 혼란과 실패라는 익숙한 감정이 다시 마음속을 헤집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운동 말곤 할 줄 아는 게 없었던 몸이 이제는 10km 레이스를 완주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다양한 페미니스트들의 글을 통해 그동안 여성의 몸을 전리품처럼 성적 대상화하고 억압하려는 수백 가지의 크고 작은 편견과 시선도 알게 되지 않았나! 이 모든 깨우침을 내려놓고 저울이 알려주는 숫자에 연연한다? 그것은 현명하지도, 옳지도, ‘쿨’하지도 않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만큼 멋진 일은 없는데 그동안 왜 그렇게 마름에, 숫자에 집착했었던 걸까? 세상에는 신나고 재미있는 것들이 많은데 단지 몸무게를 유지하기 위해 죽을 만큼 운동하고 죽지 않을 만큼 먹는 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왜 나는 요즘 밀레니얼 세대에서 유행하는 ‘보디 포지티브(Body Positive; 자기 몸 긍정주의)’ 열풍에 합류하지 못하고 허리 군살이 서서히 돌아오는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할까? 이런 생각이 들자 보디 포지티브가 궁금해졌고, 구글에 폭풍 검색한 결과 몇 가지 흥미로운 답을 찾을 수 있었다.    「 보디 포지티브? 보디 뉴트럴리티!   」 보디 포지티브는 자신의 몸을 열렬히 사랑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혹은 자신의 몸에 대해 긍정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일련의 행동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60년대 미국에서 성행했던 비만활동주의(Fat Activism)와 90년대의 거식증 반대운동에 기반을 둔 보디 포지티브 운동은 신체 사이즈 받아들이기, 다시 말해 자기 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과 몸무게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지 않는 가치관을 뜻한다. 뚱뚱하면 매력적이지 않고, 뚱뚱하면 게으를 거라는 편견 말이다. 어쩌면 보디 포지티브는 긍정이나 부정,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인 시선으로 몸을 바라보는 마음 즉 ‘보디 뉴트럴리티(Body Neutrality; 자기 몸 중립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자기 몸을 사랑할 필요도, 혐오할 이유도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말이다.    「 여전히 마른 몸매가 좋다 해도 괜찮아!  」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비만공포증(Fat Phobic)이 성행했다. 마르지 않은 몸매를 경멸하고 몸무게를 줄이도록 강요하는! 연예인의 셀룰라이트는 조롱이라도 하듯 빨간 동그라미로 강조된 채 잡지 지면을 장식했고 칼 라거펠트는 “마른 모델을 욕하는 여성들은 텔레비전 앞에 널브러져 감자칩이나 씹어대는 뚱뚱한 여자들뿐”이라는 등의 비만 혐오 발언을 일삼았다. 그리고 2020년을 향하고 있는 지금은 더 나은 삶을 위해 마른 몸이 아닌 건강한 몸(#strongnotskinny)을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 운동을 함으로써 우리 몸을 열렬히 사랑하라는 식의 SNS 캠페인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결국 ‘살 빼’라는 이야기 아닌가! 이뿐인가? 마름의 특권(Thin Privilege)은 지금 이순간에도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뚱뚱한 사람들은 사회적으로나 직업적으로, 심지어 연애에 있어서도 소외되곤 하니까. 그러니 보디 포지티브 운동 시대에도 여전히 마름을 동경하는 당신은 미치거나 뒤처진 게 결코 아니다.     「 보디 뉴트럴리티에 동참하고 싶다면 」 그렇다고 당장 크로스핏이나 저지방 고단백 식이요법을 중단하라는 건 아니다. 대신 당신의 몸이 그런 노력에 얼마만큼 반응하고 있는지 귀 기울이길 바란다. 혹시 몸을 혹사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몸이 정말 기뻐하고 있는지, 지금 휴식이 필요한 시기는 아닌지 등에 대해서 말이다. 또 일상에서 무심히 받아들였던 비만공포증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본인을 염려해서 하는 이야기라는 명목 아래 뚱뚱한 몸에 대한 모욕과 비난을 즐긴다거나, 몸무게 감량에 대해서만 찬양하는 언행도 말이다. 시작이 반이라면, 문제를 인식하는 것 자체가 시작이니까! 개인적으로는 여전한 비만공포증을 없애기 위해 몇 가지 생활습관을 수정하기로 했다. 먼저 아침 6시 조깅 시간을 이보다 덜 부담스러운 7시 30분으로 바꿨다. 또 매일 두 잔씩 습관적으로 마시던 차 대신 파운드 케이크를 마음껏 먹기로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 몸을 ‘억지로’ 사랑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거다. 아직 노력하는 과정 중에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내 몸을 경멸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게 성공한다면 언젠가는 나도 내 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른 신체 부위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으로 인식하게 되겠지. 이것이 진정한 자기 몸 중립주의를 향한 내 최종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