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Q 저는 때늦은 수험생입니다. 늦게 수능 준비를 하느라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죠.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자친구는 군인입니다. 만난 지는 10개월 정도 되었지만 사실 학창 시절부터 알던 친구예요. 입대하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잘 지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남자친구의 휴가 스케줄 등이 제 일상에 걸림돌이 된 것은 왜일까요. 휴가가 밀리거나 취소되면, 저는 휴가 스케줄에 맞춰 잡아놨던 계획들을 처음부터 다시 짜야 합니다. 전화로 밀린 하소연을 늘어놓는 것을 들어주기도 힘들고요.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군대에 있는 남자친구에게 어떻게 이별 통보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A 슬프다…. 저는 해병대를 나왔는데요. 아시겠지만 해병대는 군기가 엄청 세요. 이등병은 맘 놓고 웃지도 못하죠. 우는 것은 더 힘들어요. ‘짬’ 안 되는 애가 울면 ‘고참들이 괴롭혀서 그런가?’ 하고 간부들이 오해하거든요. 그래서 고참들이 울도록 놔두질 않아요. 그런데 어느 날 백일 휴가 갔다 복귀한 막내가 미친 듯 우는 거예요. ‘정말 미친 거 아니야?’ 내무실이 난리가 났죠. ‘개념’ 없게 이등병이 운다고. 간부들이 알면 일이 커지니까 제가 몰래 데리고 나가서 반쯤 죽여놔야겠다 생각했는데, 제 선임이 그러더라고요. 그냥 두라고. 휴가 복귀하는 날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해서 그러는 거라고, 얼마나 힘들면 저렇게 울겠느냐고…. 이별은 아파요. 아프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건 아니죠. 그냥 말해요. 짧고 담담하게 사실만을. 빙빙 돌려 말하면 받아들이고 싶은 것만 받아들이게 돼요. 그게 사람의 심리죠. 그리고 대한민국 군인은 말의 진의를 잘 못 알아채요. 그게 이 땅의 군대란 곳이죠. 당신도 그도 슬프고 힘들겠지만, 이별…사실 매우 일상적이잖아요. 그렇게 성장하는 거죠. 힘내요, 그리고 공부해요. 무럭무럭 자라세요. 이우성<데이즈드 앤 컨퓨즈드> 피처 디렉터
A 요즘 이런 고민 많이 접합니다. “헤어지고 싶은데 미안해서 말 못하겠다”는 것이지요. 어떻게 인간적인 이별 통보를 할 것인가 하는 도의적인 고민들이 ‘차는’ 쪽에서는 고민이 될 수밖에 없지요. 진짜 나쁜 사람은 되고 싶지 않고, 또 그간의 쌓아둔 정도 있고, 군에 있는 경우라면 행여나 이상한 일 저지르지는 않을까 겁도 나고요.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합니다. 저 또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면서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막상 이런 말을 늘어놓으면, 주변의 반응은 십중팔구 이렇습니다. “미안하다고? 그건 아직 미련이 남았다는 증거야!” 그러니까 ‘예의’의 문제라기보다 ‘마음’의 문제라는 거지요. 여기엔 나름의 데이터가 있습니다. 이별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던 사람들이 진짜 ‘아닌’ 경우에는 매몰차다 싶을 정도로 싸하게 뒤돌아서는 걸 경험상 많이 목격했기 때문이지요. 님 역시 남자친구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어떠한지 다시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까요? 정말 헤어지고 싶다면, 남자친구가 싫어졌다는 넋두리 대신 효과적인 이별 통보 방식에 대해 ‘본격적으로’ 묻지 않았을까요? 생각과는 다르게, 아직 맘에서 남자친구를 떠나보내지 못한 것일 수도 있어요. 김윤경 독립 칼럼니스트, <영애씨, 문제는 남자가 아니야> 저자
A 남자친구가 걸림돌이 된 이유는 간단해요. 상황과 마음이 변해서 그렇죠. 달리 길게 말할 필요 있나요. 이별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젠 ‘어떻게’라는 방법의 문제만 남은 상태로 보이는군요. 연애도 생물체와 비슷해서, 상황과 여건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할 때가 많아요. ‘나만큼은 안 변해’ 고개를 저어보아도 어느샌가 그 단단한 마음이 사라지곤 합니다. 행여나 남자친구 군대에 보내놓고 고무신 꺾어 신은 여자가 되었다는 죄책감은 갖지 말아요. 보편적인 일인걸요. 그러니까 어떻게 이별해야 가장 깨끗하고 아름다운 이별이 될지 그 방법이나 같이 생각해보죠. 물론 그런 이별 따윈 없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만, 그래도 본인이 겪을 타격이 가장 약한 쪽으로 골라볼까요? 편지나 문자, 이메일, 전화로 이별을 일방 통보하고 잠수 타는 방법이 가장 편하기는 해도, 상대의 상처가 너무 크니까 패스. 네가 아니라 내 탓이야 식의 자폭형 통보도 패스. 천하의 눈치꽝 남자라도 당신의 마음이 변했다는 걸 눈치 챌 수 있는 행동과 멘트들을 조금씩 흘려서 상대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는 게 낫지 않을까 싶네요. 그 뒤에 만나서 직접 얘기하거나 하는 행동의 문제는 본인이 알아서 잘. 개인적으로 가장 짤막하면서도 납득이 되었던 이별의 마지막 말은 ‘너랑은 더 이상 행복하지가 않아’였습니다. 유사품으로는 ‘너와 나는 너무 다른 것 같아’도 추천. 류한마담 칼럼니스트, <그녀들은 왜 점집에 갔을까> 저자
Q 요즘 의지박약 모드 중인 여인입니다. 알람이 울리고 20분이 지나서야 겨우 일어나는 건 기본이고, 빠듯한 아침 시간인데도 예상보다 10분 늦게 집을 나서 10분 늦게 출근하는 것도 예사, 전날 밤 체크해둔 오늘 해야 할 일 리스트 중 꼭 한 개씩은 마무리를 못 하고 맙니다. 운동을 해야겠다는 야심 찬 의지도 ‘비가 많이 와서, 몸이 유독 피곤해서, 소화가 잘 안 돼서’라는 이유들로 빼먹기 일쑤고요. 심지어 어렵게 잡은 친구와의 저녁 약속마저 ‘에이, 뭐 다음 주에 시간 맞춰보지’ 하며 취소 문자 날립니다. 의지박약, 어떻게 탈출하죠?
A 방법이 있다면 저에게 알려주세요. 알람보다 20분 늦게 일어난다고요? 전 2시간은 더 잘걸요. 10분 늦게 출근한다고요? 전 2시간 늦게 출근해요. 예정한 일 중에 한 개씩 못 한다고요? 전 열 개는 못 해요! 일요인엔 잠만 자고 싶어요. 친구 만난 지는 백만 년 됐어요. 이유가 뭘까? 생각 안 해봤는데 앞으로도 생각 안 하려고요. 저는 의지박약인 제가 좋아요. 의지박약인 주제에 좋아하는 여자한텐 꼬박꼬박 연락한답니다. 돌아보면, 그 여자애가 새벽에 일하러 가야 하는데 못 일어날 것 같다고 했을 땐 새벽까지 잠 안 자고 기다리다가 깨워주기도 했어요(오, 정말 불굴의 사내였군). 또 돌아보면 인턴 사원이었을 땐 8시 30분에도 출근했어요. 절실했으니까. 우리 가만히 생각해보자고요. 지금 절실한 게 뭐죠? 친구요? 일찍 출근하는 게 절실해요? ‘이렇게 살다간 그저 그런 에디터가 될 거야’, ‘지구에서 가장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지만 필라멘트 나간 전구처럼 쓰레기통으로 갈 거야’라고 생각하니…오, 정신이 팍 드네요! 지금도 충분히 멋지지만 절실한 것을 품었던 소중하고 원대한 꿈을 다시 떠올려보아요. 우린 특별하잖아요. 하지만 내일 또 늦게 일어나도, 자신을 믿고 긍정해야 해요. 아침이 다시 온다는 데에 제 전 재산을 걸게요. 이우성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 피처 디렉터
A 제가 아는 자칭, 타칭 ‘의지박약 걸’이 있습니다. 그 친구의 변명(궤변)이 하나 있죠. “우리 엄마가 날 무통분만으로 낳아서 이렇게 의지박약아가 된 거야.” 우스갯소리지만 정말 그런 게 아닐까 싶을 만큼 그 친구는 의지가 박약해요. 늦게 일어나고, 늦게 자고,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늘 실패하고, 약속은 언제나 늦거나 미루지요. 게다가 뭐든 느려 빨리 배우지도 못해요. 근데 ‘구제불능’ 같아 보이는 이 친구가 신기하게도 너무나 잘 살고 있다는 겁니다. 그림으로 유학을 갔는데, 거기서 ‘톱’을 했다더군요. 유학 가더니 사람이 확 달라졌는가 싶었는데, 귀국 때 만난 그 친구는 여전히 느리고, 의지는 박약하고, 에너지 지수는 남들 반 수준에도 못 미쳤죠. 다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자신의 ‘리듬’에 따라 꾸준히 조금씩 한 게 전부였어요. 그때 전 깨달았어요. 정해진 원칙에 따라 정력적으로 살아가는 것만이 인생의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요. 아인슈타인은 늘 10시간을 넘게 잤다고 하지요. 또 예술가들은 게으름의 끝을 보는 사람들이라고도 하고요. 생각해보면 ‘의지 충만한 분들’ 가운데는 완벽주의에 시달려 별로 행복하지 않은 인생을 사는 분들이 많은 것 같기도 하고요. 자신의 박약함을 구박하는 대신, 장점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의지가 ‘박약’한 데서 오는 좋은 점을 말이에요. 찾아보면 아주 많을걸요. 김윤경 독립 칼럼니스트, <영애씨, 문제는 남자가 아니야> 저자
A 게으른 사람 중에 오히려 완벽주의자가 많다는 이야기, 들어본 적 있나요? 매사에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일수록 게으름을 피우기 쉽대요. 자신의 의도대로 상황이 조금이라도 풀리지 않거나 어긋날 조짐을 보이면 아예 손을 놔버리고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 때문이죠. 머리에 나름대로 짜놓았던 시뮬레이션이 어그러지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거니와, 변수에 따른 대처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해 생기는 게으름이라고 해요. 그렇다고 진짜 게으름뱅이들처럼 속 편하게 노는 것도 아니고, 게으름에 따른 자책감과 후회는 남들이 받는 것 배 이상이니, 이래저래 피곤하고 괴로운 마음 공감이 가네요. 저 역시 게으른 완벽주의자였어요. 그런데 게으른 완벽주의자가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스스로를 갉아먹던 자책감에서 많이 해방되었답니다. 운동? 꼭 밖에서 하란 법 있나요. 비가 오면 집에서 하는 스트레칭으로 바꾸면 되고, 체크리스트 중 실행 덕목이 한두 개 비더라도 뭐 어때요. 모든 걸 다 해내겠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플랜 B’도 염두에 두세요. 입 쩍 벌어질 뮤지션 신보도 실상 들어보면 가슴에 꽂히는 곡은 두세 곡뿐인걸요. 류한마담 칼럼니스트, <그녀들은 왜 점집에 갔을까> 저자
Q 친척들과 얼굴 부딪히는 시간이 언제부터인가 어색해졌어요. 일 년에 두 차례, 명절 때 그리고 생신이나 결혼 같은 집안 대소사가 있을 때를 제외하곤 (특히 대학입학, 취업 이후) 친척들을 자주 볼 일이 없는 게 사실. 그런데 문제는 할머니와 친척 분들이 섭섭해하신다는 점이죠. 가끔 저한테 ‘돌려서’ 어필하시는데, 그럴 때면 참 난감하고 곤혹스러워요. 아직도 저를 ‘어린애’로 생각하신다는 느낌도 들고요. 그래서 적당히 예의 바른 선에서 어떻게든 무마해보려고 하죠. 때 되면 어쩔 수 없이 멀어지는 게 가족인가요?
A 집마다 다르죠. 멀어지는 가족도 있고 변함없이 가까운 가족도 있죠. 저는 좀 귀찮아요. 하지만 언젠간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를 찾아주는 건 가족밖에 없어.’ 친척과 멀어지고도 잘 살 수 있어요. 당신이 돈을 많이 벌면 친척이 돈을 빌려달라고 할 수도 있어요. 한 번 빌려주면 또 빌려 달라고 하죠. 드라마 보면 나오잖아요, 친척이 ‘웬수’라고. 하지만 두 가지는 분명해요. 첫째, 친척을 포함한 가족 관계가 끈끈할수록 행복지수가 높다는 것. 결국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가족이에요. 둘째, 나이가 들수록 외로워지고 마음 터놓을 사람이 줄어든다는 것. 결국은 가족이라고요! 일도 못 하고 헤어진 여자친구 쫓아다니지도 못 하고 축구도 못 해도, 명절을 지나면 그냥 별 이유 없이 든든해지는 것은 가족 때문이에요. 예외도 있겠지만, 당신 옆에 마지막까지 있는 사람은 가족이에요. 물론 그런 가족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겠죠. 자꾸 만나면 어색한 게 사라질 거예요. 그리고 ‘어린애’로 생각하는 거…부럽네요. 설날에 세뱃돈으로 이삼십만원은 써봐야, 아 어른이 되면 로또에 ‘올인’해야 하는구나, 할 거예요. 전 귀찮고 별 재미도 없는 친척들이, 뭐 그런 대로 좋습니다. 이우성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 피처 디렉터
A 친척과 시집 식구에 관해서는 구석기 시대부터 내려오는 불문율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친척과 시집 보기를 돌같이 하라!”입니다. 친척과 시집은 백 번 잘해도, 딱 한 번 못 하면 어그러지는 요상한 관계거든요. 그러니 딱 한 번 잘하고, 백 번 못 하고 사는 게 경제학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나 효율적인 대처 방안이라 할 수 있죠. 저는 고모가 자그마치 넷이나 있는데, 한 번 휘말리면 대책 없겠다 싶어 애초부터 못되게 굴었어요. 친한 척은 고사하고, ‘결혼 언제 할 거냐’ 등과 같은 사적인 질문이라도 할라치면 “그걸 알면 미아리에 점집을 차리겠죠?”라며 서늘하게 되받아쳤죠. 처음엔 “저 싸가지 없는 것 좀 봐라”하는 눈빛이더니, 나중엔 “원래 성격이 까칠하대”로 굳혀지다가, 어쩌다 한 번 방긋 웃어드리면 “그래도 본성은 착하다” 쪽으로 선회하더라고요. 좀 야박하게 들리실 수도 있겠지만, 친척이란 그런 존재랍니다. 뭐 어차피 멀어질 관계이기도 하고요. 님은 이미 답을 알고 있어요. 하루빨리 ‘적당히 예의 바른 선에서 무마’하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친척과의 ‘거리 두기’는 결국 그 친척과 오래도록 좋은 기억을 유지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니까요. 김윤경 독립 칼럼니스트, <영애씨, 문제는 남자가 아니야> 저자
A 할머니에게 손녀는 언제나 품안의 손녀 개념인 법. 그건 아마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아 성인 인증을 하더라도 변함이 없을 거예요. 적당히 예의 바른 선에서 무마 하려는 지금의 태도는 잘못된 것이 없답니다. 단지 그런 자신을 너무 어색해하는 것 같은데, 친척들도 다 자란 당신에게 적응할 시간을 주세요. 너무 소홀한 거 아니냐며 친척들이 돌려 어필할 때 곤혹스러워하지 말고 “요즘 엄마도 저더러 연예인이냐고 놀리세요. 얼굴 보기 힘들다고”라며 능글능글 어른의 냄새를 풍기며 넘기는 수밖에 어쩔 수 없답니다. 때 되면 알아서 멀어지는 게 가족 맞아요. 사실 일가친척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당신에게 관심이 없답니다. 다만 온 가족이 모이는 자리에서 할 이야깃거리가 필요한 것이죠. 대부분 그 화제는 각 집안 자녀들의 학업, 진학, 취직, 진로, 결혼에 국한되기 쉽고요. 그런 주제가 없다면 집안 어른들이 모여서 무슨 이야기를 하겠어요? 자식이 낙인 어른들에겐 늘그막에 자식들 보며 이런저런 한마디씩 하는 게 집안 행사의 낙이 된답니다. 집안 어른들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너무 민감하게 대응하지 말고, 바쁘냐고 묻거든 그저 허허실실 하세요. 거기에 플러스, 슬쩍 용돈 찔러주면 서운한 거 다 잊으시던데요? 류한마담 칼럼니스트, <그녀들은 왜 점집에 갔을까> 저자 ?
*자세한 내용은 엘르걸 본지 10월호를 참조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