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찾아온 퓨처리즘의 물결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지금 온 세계가 미래를 논하고 있다. 미래는 뜻밖에도 허리케인처럼 갑자기 닥쳐왔다. 길거리에, 런웨이에, 그리고 당신에게. ::런웨이, 알렉산더 맥퀸, 퓨처리즘, 애플리케이션, 아이폰, 엘르, elle.co.kr:: | ::런웨이,알렉산더 맥퀸,퓨처리즘,애플리케이션,아이폰

alexander mcqueen 알렉산더 맥퀸의 옷은 과거에 없었고, 현재에도 낯설지만, 훗날에는 수용되리라 믿고 싶을 만큼 아름답다는 점에서 충분히 ‘미래적’이다. NOW AND THEN 모든 영감을 시각적으로 구현해내는 게 본업인 패션 디자이너들은 ‘퓨처리즘’이라는 화두 앞에서도 마찬가지 반응을 보였다. 최근 몇 년간 런웨이를 강타한 80년대풍 총천연색 의상들이 여전히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2010 S/S 컬렉션부터는 일명 ‘사이보그 룩’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퓨처리즘이란 애들 장난 같은 시도”라고 인터뷰한 적 있는 칼 라거펠트마저 가죽 조각들을 이어붙여 갑옷처럼 만든 리틀 블랙 드레스로 ‘사이보그 룩’에 동참했다. 버버리 프로섬은 쿠킹 포일을 구겨놓은 듯한 미니드레스를 선보였고, 발렌시아가는 가죽을 종이처럼 잘라놓은 미니스커트로 패션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꿔놓았다. 외계인들까지 런웨이를 침공했다. 가레스 퓨는 외계의 날짐승을 본떠 만든 것 같은 헤드기어를 내놓았다. 알렉산더 맥퀸은 의 판도라 행성과 유사한 컬러 팔레트를 이용해 초현실적인 룩을 창조했다. 일부 디자이너들이 ‘퓨처리즘’이란 이름 하에 과학자가 돼 패션 실험을 계속하는 사이 보다 안전한 방식으로 ‘퓨처리즘’을 풀어낸 디자이너들도 있다. 패션계에서 퓨처리즘이란 축자적인 의미보다 60년대 유행한 패션 사조에 대한 명칭으로 먼저 인식된다. 소련이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발사하고, 이에 뒤질세라 미국이 NASA를 설립해 우주 개발 경쟁을 벌이던 시대. 인류는 우주시대에 대한 기대로 한껏 부풀어 올랐고, 과학이 만병을 통치하리란 낙관론에 젖어들었다. 패션도 마찬가지다. 앙드레 쿠레주는 우주복처럼 튜브 형태로 몸을 감싸는 새로운 실루엣을 개발해냈다. 파코 라반과 피에르 가르뎅은 위트 있는 우주복으로 만화적인 미래상을 제시했고, 미쏘니는 이후 브랜드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은 옵티컬 프린트를 선보였다. 퓨처리즘은 PVC, 합성섬유, 비닐 등 소재의 변화도 몰고 왔다. 루디 게른라이히가 내놓은 나일론 블라우스와 컬러 스타킹은 ‘패션 혁명’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이처럼 60년대 디자이너들이 제시한 새로운 룩들은 이후 ‘퓨처리즘’ 패션의 모범답안으로 자리를 잡았다. 다시 ‘퓨처리즘’이 화두에 오른 지금, 일부 디자이너들은 60년대 패션을 복기함으로써 트렌드에 발맞추려 하고 있다. 기하학적인 무늬가 프린트된 구찌와 지방시 의상들은 미쏘니의 옵티컬 룩에 대한 오마주처럼 보인다. 셀린의 미니멀한 드레스 역시 앙드레 쿠레주의 모즈 룩을 연상시킨다. 이런 전략들은 퓨처리즘이라는 용어의 의미에 혼선을 일으킨다. 과거의 퓨처리즘 룩을 재해석하는 것은 레트로인가, 퓨처리즘인가? UTOPIA vs. DISTOPIA 퓨처리즘이라는 화두가 디자이너들의 머리 속 깊이 침투해 있다는 사실은 런웨이에 등장한 또 하나의 트렌드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바로 해체주의다. 인류의 미래가 유토피아일 것인가, 디스토피아일 것인가, 라는 화두는 1930년대 이래 SF 컬처의 지속적인 쟁점이었다.20세기 초, 자동차와 기차가 대중화됨으로써 과학 문명에 대한 대중의 호감은 극대화됐다. 이런 배경에서 이탈리아 시인 필리포 토마소 마리네티의 ‘미래파 선언’이 등장했다. ‘퓨처리즘’이란 용어의 유래가 된 1909년의 이 선언문은 예술에 있어서 퓨처리즘이란 과거와 단절된 새로운 기법이나 표현을 일컫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 시기 퓨처리스트들의 최대 관심사는 근대 교통수단의(당시로선) 아찔한 속도감을 추상적으로 표현하고, 과학 문명을 찬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방적인 과학 문명 예찬은 1930년대 들어 힘을 잃었다. 러시아 혁명과 파시즘의 영향으로 문명 발달에 대한 회의론이 부각된 것이다. 그 후 인류의 미래를 향한 시선은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로 크게 양분됐다. 60년대 풍 미니멀리즘과 우주복들이 패션 퓨처리즘의 유토피아적 해석이라면 이번 시즌 런웨이를 가득 채운 해체주의적인 의상들은 디스토피아를 담아내고 있다. 요지 야마모토는 불타는 건물에서 도망쳐 나온 듯 산발을 하고, 옷에 불 구멍이 뚫린 모델들을 무대에 세웠다. 발맹의 모델들은 나 에서 기계들에게 패망한 후 살아남은 인간 저항군을 연상시킨다. 미니멀리즘의 대명사 질 샌더조차 원피스에 헝겊을 오려 붙여 해체주의적인 룩을 연출했다. 하지만 이런 룩들은 미래라는 화두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들을 디자인으로 풀어낸 것일 뿐 과거의 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법과 세계를 창조해낸다는 최초의 퓨처리즘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1911년 이탈리아의 미래파 건축가 안토니오 산텔리아는 ‘신도시 계획’이라는 제목 하에 40여 점의 드로잉을 선보였다. 이 드로잉은 오늘날까지도 퓨처리즘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남아 있다. 프리츠 랑 감독의 , 리들리 스콧의 , 오시이 마모루의 등 걸작 SF영화들이 그의 드로잉을 미래 도시상으로 제시했다. 과거의 퓨처리즘 룩을 재해석하거나, 런웨이에 SF 상상화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인식의 전환을 통해 자신이 새로운 시대의 전범이 되는 것을 퓨처리즘이라 한다면, 사이보그 같은 회색 PVC 점프수트보다 여성들의 실루엣을 바꿔놓은 그 옛날 샤넬의 미디 스커트가 오히려 퓨처리즘 정신에 잘 부합한다. LIVING IN THE FUTURE알렉산더 맥퀸은 2006년, 케이트 모스의 홀로그램이 등장하는 환상적인 이벤트로 찬사를 받은 바 있다. 홀로그램 속 그녀는 천사의 날개 수천 장을 뜯어 레이어드한 듯한 드레스 자락을 흩날리며 로렐라이 유령처럼 관객들을 홀렸다. 언젠가 인간이 패브릭 대신 홀로그램 옷을 걸치고 다니는 시대가 온다면, 그때의 패션 디자인은 실제 직물로 만든 옷들을 흉내 내는 수준이 아니라 홀로그램만의 특성을 활용한,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이 되리란 예시였다. 매체의 변화가 콘텐츠의 변화로 이어지는 건 모든 예술 장르의 특징이다. 패션 역시 마찬가지다. 2009 F/W 버버리 프로섬 런웨이에 등장한 꽃무늬 드레스들은 무척 로맨틱했지만 실은 어떤 퓨처리즘 계열의 옷들 못지않은 첨단 기술을 이용해 만든 것이었다. 이번 시즌에는 이보다 더 정교하고 화려해진 프린트들이 눈에 띄는데 모두 컴퓨터그래픽 덕분이다. 온 세계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소통하는 시대. 기술의 발전은 패션의 개념조차 바꿔놓고 있다. 올해 그래미 시상식에서 가수 이모겐 힙이 입은 드레스는 칼라 부분에 LED가 달려 있었다. 거기엔 팬들의 트위터 메시지가 실시간으로 디스플레이됐다. 공학자이자 디자이너 모리츠 발데마이어의 솜씨였다. 그는 2008년 후세인 살라얀과 손 잡고 레이저 광선을 쏘는 듯한 LED 드레스를 내놓기도 했다. 기술의 진화 덕분에 패션 미디어도 변화하고 있다. 사진가 닉 나이트가 운영하는 ‘쇼 스튜디오’는 몇 해 전부터 런웨이 쇼를 생중계하고, 패션 필름들을 제작함으로써 고급 패션과 아트, 대중 사이의 매개가 되고 있다. 인터넷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핫라인으로 연결해준다. 사람들은 방송이나 잡지 없이도 안방에 앉아 실시간으로 런웨이 쇼를 보고,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이용해 디자이너들과 직접 대화를 나눈다. ‘파워 블로거’들은 말 그대로 엄청난 파워를 갖게 됐다. 13세 패션 블로거 타비 개빈슨이 마크 제이콥스 패션쇼에서 애나 윈투어와 같은 프런트로에 앉은 적도 있다. 이처럼 새로운 기술이 홍수처럼 쏟아지면서 마케팅 영역도 확장되고 있다. 요즘은 잡지에 프린트된 바코드를 ‘웹캠’으로 비추면 컴퓨터로관련 영상들을 볼 수 있게 하는 증강현실 이벤트가 유행이다. 백화점에서 제품의 바코드를 휴대전화 카메라로 비추면 모델들의 착용 컷과 화보를 3D로 보여준다거나 지나가는 사람이 입은 옷이 마음에 들어 카메라로 찍으면 제품 정보를 찾아주는 것도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현재로선 기술의 진화가 디자인 혁신으로까지 이어지진 않고 있다. 하지만 디자이너들이 패션의 미래에 대한 숙고에 들어갔다는 사실은 최근 런웨이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0 F/W로까지 이어진 다양한 의미의 퓨처리즘 룩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패션 퓨처리즘에 대한 장기적이고 범지구적인 컨퍼런스가 펼쳐지고 있는 듯하다. 이 난해한 숙제에 대한 흥미진진한 답을 기대해본다.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6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