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박새별, 아스라이 빛나다

‘엄친딸’, ‘수퍼 루키’. 번쩍번쩍 빛나며 한없이 완고한 수식어들은 박새별의 것이 아니다. 박새별에겐 자신의 이름을 불러 줄 입보다, 그녀의 음악을 들어줄 귀가 더 필요하다.

프로필 by ELLE 2010.06.07


사람들은 이름을 붙인다. 대중들은 적당히 천박해 삼키기 좋은 표현을 원하고, 언론은 새로운 꾸밈새를 찾기에 지쳤다. 그래서 매체에 등장하는 이들에겐 xx녀, oo남 같은 간편한 수식어가 신물 날 정도로 쉽게 붙는다. 박새별은 그런 류의 꼬리표를 달기에 적절한 표본이다. 귀여움이 똑똑 묻어나는 생김 하며, 이 땅의 온 학생들이 선망하는 학력, 유희열과 루시드폴처럼 쟁쟁한 선배들이 포진한 레이블에 소속되며 실력까지 인정받았다. 박새별의 이름 앞엔 ‘엄친딸’이라는 수식어가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쉬운 환호와 진부한 단어로 매몰되기엔, 박새별과 박새별의 음악은 굵직한 ‘스펙’보다 그 사이사이 더께 같은 혼란에 더 많이 빚져 있다. 인터뷰 내내 박새별은 혼란과 행복을 말했다. 스물 여섯 박새별은 혼란스럽고도 행복한 사람이다.

다른 매체와 인터뷰한 것을 보니 '엄친딸' 얘기 많이 했더라. 이젠 지치기도 하겠다. 좋나?
아니다. 엄친딸 아닌데 엄친딸이라고 한다. 잘 모르겠다. 언론에서 나에 대해 표현할 말이 필요했던 것 같다.

엄친딸 얘기는 안 하려고 한다. 자료를 찾다가 미니홈피에 들어가게 됐는데, 그냥 주변에서 볼 수있는 동갑내기 친구 같더라.
그렇지? 사실은 나 엄친딸 아니다. (곁에 있던 음료수를 들며)이거 정말 좋아하거든. 인터넷 쇼핑몰에서 두 박스씩 시켜다 쟁여놓고 먹는다. 반 값이라 하나에 오백 원쯤 한다. 나 그런 사람이다.

유희열, 루시드폴 등 음악적으로 인정받고 매니아층이 두터운 뮤지션들로 구성된 안테나뮤직 소속이다. 그의 팬들은 유희열을 ‘냉미남’으로 칭하곤 하던데, 곁에서 보기엔 어떤가?
음… 잘생기셨다. 미남이시다. 그런데 세뇌 마케팅이 통한 것 같기도 하다.(웃음) 나도 그래서 스스로를 ‘미녀가수 박새별’이라 말하고 다닌다. 의외로 효과가 좋다. 간혹 부작용도 있다. 미녀가수라고 해서 눈 크게 뜨고 보셨던 분들이 막상 “에이 뭐야.” 한다든지. 그냥 웃자고 하는 얘기다. 실제로 내가 예뻐서 그러는 건 아니다. 요즘 방송을 하고 있는데(박새별은 MBCNET의 <문화콘서트 난장>을 진행하고 있다) 진짜 연예인들은 따로 있더라. 나는 그저 내가 지닌 모습으로 세상 살기 고되지 않을 정도인 것 같다. 호감형이라는 이야기는 몇 번 들어봤다.




미녀가수 맞다. 충분히 예쁘다. 이제 음악 이야길 하겠다. 이전에 나왔던 EP 와 이번 정규 음반<새벽별>, 달라진 점이 있다면?
둘 다 내 음악이다. EP는 좀 급하게 작업을 했었다. 그래서 약간 얼렁뚱땅한 느낌의 음반이 나왔다. 그게 단점이라면 단점이지만, 그래서 좀 더 풋풋한 맛이 있는 것 같다. 당시 편곡을 다른 분이 도와줬기 때문에 ‘내 것’이라는 생각이 덜 들었다. 이번 음반인 <새벽별>에 더 애착이 가긴 한다. 비유하자면 <새벽별>은 내 손으로 직접 밥을 다 차린 거고 는 재료만 준비하고 다른 분이 중간중간 요리해주신 거다. 한 편으로는 그래서 더 감사하고 아끼는 앨범이기도 하다. 열 손가락 다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 시간이 지나고 들으면 촌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게 다 나 자신의 역사다.

본인이 성장하는 것처럼 음악 자체도 성장했나?
사실 그 때 수록된 곡이든 <새벽별>의 곡들이든 다 비슷한 시기에 썼다. 가사만 보더라도 갑자기 성찰적으로 변하진 않았다. 스물 두셋에 쓴 것도 있고, 스물 여섯에 쓴 것도 있다. 스물 여섯에 쓴 걸 많이들 좋아해 주시지만, 가사에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반면 작곡적인 측면에선 한 곡 한 곡마다 멜로디라인이나 편곡 같은 부분에서 미묘하게 컨셉트가 분명해졌다고 생각한다.

처음 이름만 듣고는 오밀조밀하고 귀여운 목소리일 줄 알았다. 듣고 보니 옹알이 같지 않아 좋았다. 유독 조곤조곤한 음악 스타일인 다른 여성 뮤지션들과 비교했을 때 본인만의 색깔이 있다면?
앨범을 들으시곤 많은 분들께서 ‘웰메이드 음악’이란 말씀을 해 주신다. 그게 단점이자 장점이다. 단점으로 꼽으시는 분들은 너무 90년대 웰메이드 같다 하시고, 장점으로 여기시는 분들은 90년대 웰메이드의 계보를 잇는다고 하신다. 90년대엔 몇 계셨지만 그 이후엔 여성 싱어송라이터로서 가요적으로 잘 풀었던 게 드물었다. 사실 내가 토이, 이승환, 김동률 선배님이 만드신 음악을 듣고 자랐고, 워낙 좋아했으니 그들처럼 웰메이드 음악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지금 와서 센 록이나 아기자기한 음악을 하진 못한다.

미니홈피에서 허민 씨와 함께 찍은 사진 아래 “이들이 90년대 활동했다면 장필순을 이었을 것”이라고 누군가 써 놓은 것을 봤다. 좋아하는 선배 여성 뮤지션은 누군가?
조원선씨. 노영심씨. 사실 나는 그분들하고 음악 색깔이 같진 않다. 그렇지만 여자의 입장에서 여자 이야기를 굉장히 잘 풀어내셨던 분들이라 생각한다. 외국 뮤지션 중에선 칸노 요코를 좋아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으니 좋아하다 보면 닮게 되는 경우도 있잖나.
영향 받을 수 있겠지만 서로 가사나 목소리의 타입이 다르다. 나는 음악을 하며 요리조리 계산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냥 피아노 앞에 있다가 피아노 치다 보면 곡이 나오고, 곡이 나오면 가사를 쓰고 싶고, 그러다 보면 편곡을 한다. ‘아 옛날에 이 사람 이렇게 했으니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 하진 않았고 딱히 의식한 적도 없다. 차라리 외국 음반 들을 때는 그런 게 좀 있다. 보사노바나 재즈 등을 가요에 접목시킨다든지… 듣다가 생각나는 게 있으면 기억해 뒀다 다음에 적용해 본다.

듣다 보니, 아이디어가 ‘샘솟는’ 타입인 것 같다. 소진됐던 적은 없나? 앨범 내고 바로 며칠 뒤에 곡을 썼다고 하던데.
나는 전문작곡가가 아니다. “다음 주까지 곡 하나 써주세요.”하는 식이 아니라, 그냥 쓰다 보면 써 지는 거다. 써야’만’ 하는 거라면 힘들 것 같은데 그게 아니니까. 일상이잖아, 피아노 치는 것도 그렇고. 그래서 그런 압박은 없었지만 가사 쓸 때는 조금 힘들었다. 곡은 너무 우울한데 지금 내 기분은 행복한 경우일 때, 가사를 지금 기분에 맞춰서 쓸 순 없잖아. 내가 오늘도 내일도 다음주도 행복하면 이별한 얘길 못 쓰고… 소재의 한계를 느끼기도 한다. 루시드폴 선배님 같은 경우는 고등어를 가지고도 그렇게 쓰시는데. 사실 세상에 할 얘기가 얼마나 많나. 나는 인문학도였기 때문에 긴 글에 익숙하다. 노래 가사는 산문보단 운문에 가까운 거라 처음엔 힘들었다. 머릿속 생각을 짧은 글로 옮기는 게 쉽진 않더라.

노래에 우울한 정서가 있어서, 우울한 성격일 줄 알았는데 굉장히 밝다. 학창시절에 학교를 많이 옮겨 다니며 혼란스러웠다고 들었다. 혼란이 음악에 도움이 되었겠지만, 만약 과거로 돌아가 그런 혼란이나 티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음악을 버릴 수 있겠나?
그건 상상할 수 없을 것 같다. 중학교 때까진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는데 당시 내게 세상의 악과 선은 엄마가 기준이었다. 그 이후 굉장히 혼란스러웠던 시기가 있었다. 그 때까지 잘못됐다고 알고 있던 행동이 딱히 별 것 아닌 일이 되고, 놀라워하는 나를 보며 사람들이 비웃기도 하고. 또래집단들이 그런 게 좀 있잖아. 그런데 그런 것들이 음악에 영향을 미치는 것뿐만이 아니라 박새별 자체를 형성해온 것 같다. 힘든 시절은 세월이 지나면 자양분이 된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공부 잘했다며? 지각 안 할 것 같다.
공부할 때 규칙이 딱 2가지 있었다. 첫째, 출석은 한다. 둘째, 시험보기 전 책을 세 번은 읽는다. 그렇게 하면 중간 이상은 하잖아. 인지심리학을 전공했는데, 지금 전공 책을 안 읽으면 언제 또 이걸 읽겠냐,는 심정이었다. 공부는 초기에 되게 재밌었지만 나중에는 사람을 기계적으로 연구한다는 것에 회의가 들기도 했다.
 
심리학 전공자로서 요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것 같나? 모호한 질문이라 미안하다.
옛날에는 이를 테면 맑시즘같은 ‘이즘’이 있었다. 요즘엔 ‘잘사니즘’, ‘먹고사니즘’이 지배하는 세상 같다.(웃음) 질문이 광범위하긴 하다. 그래도 나이가 조금 들어 그런지, 모든 사람들이 다들 가엾어 보인다. 아무리 잘 사는 사람이라도 아주 외로워 보이는 이들이 많다. 가치관이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커리어우먼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스무살 때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학원 다니면서 신촌에 있는 휴대전화 가게에서 시급 삼천 원 받으며 핸드폰용 프로그램 다운로드 받아주는 일이었다. 당시 대학도 떨어졌었고 약간 자괴감이 들기도 했던 시기였다. 일 하던 곳에 이십 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어떤 여자분이 머리를 높이 올려 묶고 딱 들어오는데, 과장님이 “아, 어서오십시오!”하고 데려다 주더라. 나도 십 년 뒤에 저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행복하게 사는 걸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돈이나 명예에 집착하기보다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 모든 인간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지금처럼 음악하고 사는 게 내게 가장 행복한 일 같다.

공감한다. 참으로 수상한 세상이다. 만약 전쟁이 난다든지, 내일 지구가 멸망할 걸 안다면, 마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것처럼 노래를 부를 건가?
전쟁? 피할 수만 있다면 당장 도망갈 거다.(웃음) 내일 만약 세상이 끝난다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집에 누워 있고 싶다.

MBCNET <문화콘서트 난장>에서 다른 사람 곡 소개하며 직접 연주 하잖아. 지금까지 했던 것 중, 이거 맘에 든다, 내 것이었으면 좋겠다 싶은 게 있었나?
그때 그때 일처럼 하는 거라, 빠져가지고 했던 곡이 아주 많진 않다. 참, 정원영씨 오셨을 때 ‘별을 세던 아이들’이란 노래를 피아노로 쳤다. 이게 원래 오카리나 곡인데 피아노로 바꿔 치니까 그게 또 너무 괜찮았다. 정원영씨도 원래 이번 앨범에 피아노 곡으로 수록하려고 했는데 내가 친 걸 들으니 참 좋았다고 하셨다. 또, 정인 씨가 출연했었다. 정인 언니를 되게 좋아한다. 그 때 ‘사랑은’을 쳤는데, 곡도 좋고 정인언니가 좋아해줘서 더 좋았다.(웃음)

음악이라는 길을 선택하는 게 쉽진 않았을 거다. 박새별의 종착지는 음악일까?
그러길 원한다. 그렇지만 중간에 음반 시장이나 상황이 나빠지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거고, 졸업 했으니 언제까지나 학생같이 살 수도 없다. 다른 일을 해야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음악은 계속 가지고 가야 할 것 같다. 일을 한다고 음악을 못 하는 것도 아니고, 결국 나는 음악을 통해 소통한다. 계속 하고 싶다. 현실적인 여건이 안 됐을 때, 억지로 하면 그건 괴로운 일이니 그렇게 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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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LLE 인턴 웹에디터 이민희
  • PHOTO: 최창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