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하면 우선 재첩을 많이 떠올리지만 요즘 그 양이 많이 줄었다. 지리산 맑은물이 흘러내려 그나마 채취가 가능했던 곳이지만 예전에 사람의 손으로 직접 건져올리던 방식에서 강바닥을 마구 긁어대는 바람에 종자도 줄고 강바닥이 자꾸 높아져 서식량도 줄었다. 대신 벗굴이 명물이다. 벚꽃 필 때 난다고 해서 벚굴 혹은 벗굴로 불리는데 어른 손바닥만 한 큼직한 크기에도 전혀 비리지 않고 향긋하게 씹히는 맛이 가히 일품이다. 보통 7개 정도 올라오는 한 접시에 3만원 정도 하는데 일단 먹어보면 그게 비싼 것도 아니고 양도 적은 게 아니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벗굴은 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에서 잡힌다. 바다에서 강으로 거슬러올라온 녀석이라 비릿한 내가 느껴지지 않는다. 생선인데도 비린내 나지 않고 향긋한 수박향이 나는 것으로 은어도 섬진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선수다. 회로 먹기도 하고 튀겨먹기도 하고 구워먹기도 한다. 어른 굵은 가운데 손가락만 한 것이 빙어나 양미리하고는 한 차원 다른 맛으로 고상한 품격을 낸다. 강에서 나는 놈으로 참게탕이 또 있다. 작아서 살을 발라내 먹기에는 빈정 상하지만 간장게장으로 담가 조그만 게딱지에 밥을 비벼먹으면 아휴 꿀맛. 빨갛게 탕을 끓여먹기도 하는데 뭐 그건 취향대로 할 일이다. 강가에 솥단지 걸어놓고 신선한 야채 둠벙둠벙 썰어넣어 참게 몇 마리 넣어 시원하게 끓인 것 아니고서는 부르스타 위에 스테인레스 전골냄비에 바글바글 끓어가는 참게탕에서는 왠지 깊은 맛을 못 느끼겠더라. 한순간 빵 터지는 벚꽃이 지고 나면 먼저 피었던 매화꽃이 푸르스름한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요놈이 또 장관이다. 눈부시게 하얀 꽃비 대신 알알이 영근 청매실이 건강하게 나무에 달린 광경은 생산의 신비를 눈으로 체험하는 일이라고나 할까. 이때쯤 곰취, 머위, 취나물, 숙갓, 고비, 참취, 달래 같은 봄나물이 제 시절을 만난다. 오랜 단골인 화엄사 앞의 그옛날산채식당은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은 맛으로 우리를 감동시키지만 아껴놓은 보물 같은 곳은 또 있다. 쌍계사 앞의 단야식당이다. 사찰음식에 꽂힌 주인 아주머니가 전국 절집을 돌아다니며 배운 들깨국수와 산채가 제 맛이다. 구수한 들깨국수는 일명 사찰국수라고도 불리는데 한 그릇 보약을 들이키는 것처럼 진하고 몸에 좋은 느낌이 팍팍 든다. 주인장도 이름을 모르는 마당의 수령 꽤 되어보이는 나무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거기에 앉아 막걸리 한 사발, 안 들이킬 수가 없다. 꽃잎은 바람에 날리고 나물은 슴슴하니 결코 화려한 재기로 자기 뽐내는 일 없이 그렇게 주변 것들과 어울려 젓가락질 자꾸 부추기고 주인장이 문 닫고 집에 가겠다는 데에도 앉아있는 이는 엉덩이를 뗄 줄 모르고 자꾸 하늘만 바라본다. 나물뿐이랴. 금방 무친 새콤달콤 도토리묵과 인심좋게 둥글넓적하게 부친 파전도 안 먹고는 못 배기지. 나물은 맛내기가 여간 쉽지 않다. 파 마늘 향이 너무 강해도 안되고 참기름 들기름이 지나쳐도 안된다. 씹으면 씹을수록 나물이 원래 가지고 있던 맛이 배어나와야 한다. 고수들은 장맛과 나물맛을 보면 그 집 손맛을 단박에 알 수 있는 법이다. 산채하면 유명한 식당들이 저 오대산, 점봉산, 설악산 근처에 오랜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세월에 장사가 없어 조금씩 맛이 변해간다. 그 와중에 아무리 힘들어도 원칙을 지켜서 변치 않는 맛을 내는 반야식당 같은 곳이 있어 팔도 맛 여행이 섭섭치 않은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산에서 나는 야채를 그처럼 다양하게 먹는 나라도 없다. 생으로 먹고, 삶아서 먹고, 말려서 먹고, 튀겨서 먹고, 쪄서말려서튀겨서 먹고. 별거 아닌 나물 같지만 그래서 손이 제일 많이 가는 게 나물이다. 정성스럽게 뽑아다가 다듬고 준비하는 과정이 보통 정성이 필요한 게 아니다. 그 수고가 어려워 요즘엔 중국산 나물들이 깊은 산 속 좌판까지 점령하게 되었지만. 그나마 지리산 언저리에는 아직 할매들이 손수 캔 나물들을 인심 좋게 내놓고 계시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고맙다. 지리산아, 고맙다. 단야식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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