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투랑 젓가락은 필요 없어요.” 점심시간, 회사 근처에서 주문한 김밥을 담은 검은색 비닐봉투와 나무젓가락을 다시 돌려주었다. 지구 환경을 위해 사무실에 텀블러와 수저통을 두고 트리플래닛이라는 단체를 통해 80여 그루의 나무를 심어온 내겐 흔한 일이다. 함께 김밥을 사러 나온 동료는 나무젓가락을 고스란히 받았고, 또 다른 동료는 내가 양치 컵으로 양치하는 동안 종이컵에 물을 받아 양치 후 이를 버렸지만, 쓰레기를 줄이는 것이 사실상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잘 알기에 꼰대처럼 설교하지는 않았다. 그저 ‘나라도 노력해야지’라고 속으로 되뇔 수밖에. 그러던 중 한 통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오늘은 쓰레기없데이. 동참하시겠습니까?’ 글로벌 친환경 화장품 브랜드 러쉬가 4월 22일 지구의 날에 맞춰 매년 진행하고 있는 ‘고 네이키드 2019’ 캠페인이었다. 나의 대답은 당연히 예스(Yes). 포스팅 1건당 100원이 기부된다는 이야기에 곧장 #쓰레기없데이 해시태그와 함께 텀블러와 수저통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고, 이참에 쓰레기없데이를 넘어 한 달간 ‘쓰레기없달’을 실천해 보기로 했다. 업무차 떠난 해외 출장길. 기내에서 1회용 비닐 포장을 뜯기 싫어 미리 이어폰과 슬리퍼를 챙겼지만 아뿔싸, 블루투스 무선 이어폰은 기내에선 사용할 수 없었고 기내식의 밥 덮개는 플라스틱, 고추장과 참기름은 1회용 비닐에 포장돼 있었다. 면세점은 또 어떤가? 쇼핑한 제품을 두툼하고 투명한 비닐 백에 담아준다. 현지에서도 최대한 에코백을 갖고 다니며 “I don’t need a bag”을 외치고, 음료수를 살 땐 얼음 컵을 받지 않았지만 결국 유리병이 생겨버렸다. 호텔방의 비누, 1회용 치약 역시 뜯지 않았건만 샴푸와 샤워 젤 같은 어메니티의 빈 보틀도 쓰레기로 둔갑했다. 4박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돌아오는 여행용 가방에 담기지 못한 채 호텔방에 버려진 쓰레기 더미와 씁쓸한 굿바이 인사를 해야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좀 더 잘할 수 있겠지 믿었건만 상황은 마찬가지.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사무실에 배달된 테스트용 화장품은 ‘프레스 키트’라는 명목으로 실제로 판매되는 제품보다 화려하게 포장된 채 테트리스처럼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접착제로 딱 붙어 있는 포장재를 분리수거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평소대로라면 기사 작성을 위해 내가 아는 모든 화장품 브랜드에 단체 메일을 전송해 배송된 ‘화장품 산’ 중 적합한 제품을 골라 촬영했겠지만 이번엔 딱 필요한 제품만 골라 받았고(쇼핑백과 오토바이 퀵의 배기가스가 최소 10분의 1은 절감됐을 것), 일종의 제품 설명서인 보도자료는 종이 인쇄물 대신 이메일로 받았다. 동네 마트에서는 플라스틱 그릇과 비닐 덮개로 포장된 즉석밥 대신 쌀을 구입했고, 구매금액 3만원만 넘으면 거대한 비닐봉투에 넣어 배달해 주는 배송 서비스 대신 이를 운동 가방에 넣어 짊어진 채 직접 집까지 걸어왔다. 집에서는 화장 솜이나 면봉을 쓰지 않기 위해 화장대 위의 작은 쓰레기통을 없애고 손바닥만 한 수건으로 얼굴이나 브러시에 묻은 메이크업 잔여물을 닦아내기도! 이렇게 생활하니 쓰레기통에 차는 쓰레기 양도, 분리수거를 하러 가는 횟수도 확연히 줄었지만 문제는 휴지였다. 하필 지독한 코감기에 걸려 쉴 새 없이 코를 풀어낸 것. 손을 씻느라 생긴 물기를 손수건으로 닦는 건 OK. 하지만 도저히 코를 푼 손수건을 빨 자신이 없었고, 휴지통이 진짜 휴지로만 가득 찬 것을 목격한 이후 용기를 내 손수건에 코를 풀었다. 코 묻지 않은 부위를 찾아 손수건을 요리조리 접고 돌려가면서. 뷰티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뷰티 브랜드의 노력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브로쉐는 기존  300ml 컨센트레이티드 샴푸를 100ml 고농축 제형으로 줄여 1티스푼 양으로 샴푸가 가능케 했으며, 이로 인해 보틀 사이즈를 줄이는 것은 물론 생분해가 쉬운 용기로 교체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전사 차원에서 지속가능 경영 목표를 수립해 플라스틱 대신 사탕수수로 제작한 바이오 페트와 친환경 지류로 만든 단상자, 독성이 적은 콩기름 잉크, 친환경 인테리어 자재, 문자 형태의 전자영수증 발행 등 생산부터 유통, 소비, 폐기에 이르기까지 각 과정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나아가 보틀을 아주 없앤 제품도 있다. 배스 밤, 샴푸 바 등 고체 타입의 네이키드 제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는 러쉬의 파운데이션, 슬랩 스틱을 1주일간 발라보니 오일 성분이 은은한 광채를 드리워 제품력은 기대 이상, 고체 파운데이션을 바른 것을 알아보는 사람도 전무했다. 쇼핑백 대신 담아주는 이솝의 천 주머니는 또 어떤가. 여행 갈 때 속옷이나 양말, 신발 등을 담는 용도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엘르> 캐나다 4월호의 뷰티 발자취(Beauty Mark) 기사에 따르면 전 세계 화장품 산업은 매년 약 1200억 개의 용기를 생산한다고 한다.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브랜드의 노력이 다각적으로 진행되기는 하나 ‘공급’도, 이에 무관심한 소비자들의 ‘수요’도 여전히 큰 장애물이다.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많아지고 보틀에 붙여진 라벨을 제거해 분리수거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만으로도 브랜드는 폐기물을 덜 만드는 방향으로 제품을 생산할 것이다. 플라스틱과 비닐이 썩는 데 걸리는 시간이 무려 500년이다. 내가 쓴 휴지만큼의 나무는 심고 흙으로 돌아가자는 심산으로 나무를 심어왔지만 플라스틱이나 비닐은 안 쓰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나는 적어도 호모플라스티쿠스로 살고 싶지 않다. 거북이 코에 박힌 빨대, 죽은 새의 배속에서 발견된 쓰레기 사진에 마음이 아팠나? 브랜드의 친환경 기부 캠페인을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한 적 있나? 최소한 사용이 망설여지고 사용하더라도 죄책감을 느꼈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이미 환경지킴이인 셈이다. 에디터는 오늘도 쓰레기를 줄이려고 힘들게 애썼지만 아마존이 해마다 팔리지 않는 300만 개의 신제품을 폐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힘이 빠지고 속이 상하지만 ‘나 하나쯤이야’가 아닌 ‘나 하나라도’라는 생각으로 앞으로도 좀 더 불편할 예정이다. 해결책은 분명 존재하니까.   러쉬에서 최초로 선보이는 고체 타입의 파운데이션으로 별도의 포장재 없이 판매된다. 검은 왁스 부분을 잡고 펴 바르거나 스펀지나 브러시를 활용해 볼 것. 슬랩 스틱, 3만4천원, Lush. 유색 페트병은 분류가 어려워 매립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사실을 아는지? 무색 페트병과 필름을 뜯기 쉬운 절취선을 만들어 분리수거가 용이하도록 친환경 용기로 제작했다. 에센스 바디워시, 500ml 1만원, Happybath. 리필 제품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환경과 지갑을 모두 지킬 수 있다. 본품 대비 10만 원을 절약할 수 있는 압솔뤼 렉스트레 크림 리필, 45만원, Lancôme. 용기를 누르면 머리를 감는 데 필요한 1작은술의 양만 나온다. 고농축 제형으로 제품 사용량과 플라스틱 사용량을 모두 줄인 컨센트레이티드 샴푸 올 헤어 타입, 100ml 5천9백원, Yves Rocher by Olive 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