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 먼지를 해결할 방법은 정말 없을까?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일상이 미세 먼지에 점령당했다. 정말 반격은 불가능한 걸까?::미세먼지,환경,공해,황사,공기질,엘르,elle.co.kr:: | 미세먼지,환경,공해,황사,공기질

2015년 개봉한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반란군 퓨리오사가 독재자 임모탄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모래폭풍을 전면 돌파하는 장면. “바할라!”를 외치는 워보이의 차 뒤쪽에 혈액 공급용으로 매달린 주인공 맥스는 결국 사막에 널브러진 채로 눈을 뜬다. 입 속에 가득 찬 모래를 내뱉으면서. 볼 때마다 온몸이 가려워지는 이 장면을 처음 본 당시는 깨닫지 못했다. ‘매드 맥스적’ 미래가 내게도 이렇게 금방 다가올 줄은 말이다. 눈을 뜨면 검색 창에 ‘오늘 날씨’를 입력한다. 한국사람의 마음을 모르는 구글은 ‘오늘 날씨’를 물어보면 기온과 강수 확률만 보여주기 때문에 다른 건 몰라도 날씨는 꼭 미세 먼지까지 알려주는 네이버에 물어본다. 이제 대충 수치만 보고 상황을 가늠할 수 있다. 20~30㎍/㎥ 정도면 감지덕지한 수준이다. 50㎍/㎥는 한국 기준으로는 보통이지만 WHO 기준으로는 ‘나쁨’이기 때문에 마스크를 하고 나갈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해도 된다. 70㎍/㎥ 이상이면 순응하고 마스크를 쓰는 게 좋다. 안 쓰고 나갔다가는 곧 눈과 목의 따가움으로 후회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추위도 더위도 크게 타지 않는, 한국의 사계절에 맞춰 진화된 내 몸이 내심 자랑스러웠는데 안구가 이토록 예민한 줄은 미처 몰랐다. 다시 안경을 쓸까? 라식 수술을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혼자만의 유난이라기엔 새로운 풍경들이 보인다. 공기청정기는 가전계의 ‘뉴 블랙’이다. 온갖 브랜드와 온갖 사이즈의 공기청정기 광고가 일년 내내 이어진다. 영화관에 갔다가 배우 신민아의 미세 먼지 방지용 마스크 광고를 봤다. 마트 진열대는 ‘미세 먼지 완화 기능’을 가진 식물들 차지다. 그 문구에 혹해 얼마 전 작은 고무나무 화분을 안고 돌아왔기에 잘 안다. 자연이 신비롭게 느껴진다. 북위 35°에 위치한 나라에서 하늘이 저녁까지 노랗다니! 기온과 미세 먼지의 정반합이 이뤄지는 이유가 시베리아 대륙고기압 세력이 약해지는 ‘사온 시기’를 틈타 중국에서 서풍이 불어오기 때문이라니! 인류애도 잃어가고 있었다. 미세 먼지 ‘위험’인 날인데 창문을 열고 달리는 택시 기사나 버스 창문을 연 내 앞자리 사람에게 쏘아붙이고 싶다. “저기요! 뉴스 안 보세요?”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받을 때마다 신경을 긁는 긴급재난문자는 어떻고. 내 일상과 기분은 미세 먼지에 온통 점령당했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눈물이 찔끔 났다.그런데 이상했다. 나는 온갖 사회 문제에 시도 때도 없이 분노하는 사람인데도, 미세 먼지를 향한 분노를 어디에 분출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원인도 해결책도 요원해 보였다. 그래도 일단 정부의 미온적인 대책을 탓해야 할까? 물론 서울시는 지난해 2월, 미세 먼지 주의보가 뜬 사흘간 출퇴근 시간 대중교통을 무료로 운영한 것으로도 엄청 두들겨 맞았지만…. 알고 보면 정치권이 멀뚱멀뚱 손을 놓고 있는 것도 아니다. 외교부와 중국 생태환경부는 미세 먼지를 논의할 채널을 갖고 있으며 남북과 중국, 일본, 러시아, 몽골 6개국은 대기오염 해결을 위해 지난해에 동북아 청정대기 파트너십(NEACAP)을 출범시켰다. 얼마 전에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이끄는 대통령 직속 ‘미세 먼지 범국가기구’를 준비하는 설립추진단도 문을 열었다. 그럼 중국에 화를 내야 하나? 그 넓은 중국 어느 지역? 중국을 가해자라고 일방적으로 비난하기엔 베이징 사람들은 방독면 수준의 마스크를 쓰고 다니던데…. 미세 먼지가 ‘중국 발’이라는 한국의 보도 방식에 중국이 반감을 갖는 것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간다. 베이징에서 고농도 미세 먼지 경보가 발생한 며칠 뒤 서울에도 미세 먼지가 찾아온다는 연관성은 있으나 실제 발원지가 어디인지, 한국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가 뉴스에서 본 중국에서 미세 먼지가 대거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자료 사진은 대체 뭐냐고? 바로 ‘Earth Wind Map(earth.nullschool.net)’이라는 프로그램에 기초해 만든 인공위성 사진이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바람의 이동 방향만 보여준다. 후반 작업으로 미세 먼지 농도에 따른 색을 입혔기 때문에 미세 먼지의 흐름처럼 보일 뿐. 미세 먼지가 심한 날 도로에 미세 먼지 마스크를 걸어두고 얼마나 더러워졌는지 보여주는 것처럼, 이런 시각 자료는 분명 흥미롭지만 문제 해결에 별 도움은 되지 않는다. 미세 먼지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전문가들의 의견은 어떨까? 아주대 예방의학과 교수이자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인 장재연 교수는 ‘미세 먼지 문제가 최근 몇 년 사이 더 심각해진 것은 사실이 아님’을 명시한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초미세 먼지 상황을 비교할 근거가 없다. 2.5㎛ 이하의 먼지를 측정한 초미세 먼지 측정 기준인 PM2.5 농도를 환경부가 기록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15년부터이기 때문이다. ‘한라산이 사라졌다.’ 제주도에 사상 처음으로 미세 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내렸던 3월 5일 한 기사의 헤드라인이다. 이 표현만 보면 수천 년간 청정 지대였던 제주에 재난이 찾아온 것 같지만 어디까지나 2015년 이후 ‘처음’이라는 것이다. 서울시립대 환경공학부 소속인 정권 교수가 미세 먼지 정책은 장기간에 걸쳐 해결해 나가야 할 에너지 정책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그럼에도 지금 우리가 WHO가 발표한 1급 발암물질의 하나인 미세 먼지와 공존 중인 건 사실이다. 일상과 건강을 위협당하면서 말이다. 스웨덴의 사례는 조금 희망적이다. 1960년대, 물고기들과 나무가 떼죽음을 당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과학자 스반테 오덴이 전국의 토양과 수질 데이터를 분석해 영국과 독일에게 이의를 제기한 사건이다. 두 국가에서 발생한 이산화황이 스칸디나비아 반도 쪽으로 이동하며 내린 산성비가 재난을 불렀다는 그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1979년 총 31개국이 대기오염에 관한 협약을 맺었고, 실제로 대기질은 나아졌다. 한 가지 더. 기여도에 대한 판단은 발표 기관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국내에서 발생하는 미세 먼지의 양도 상당하다. 우리의 노력에 따라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말이다. 화력발전소가 밀집한 충남발 미세 먼지를 줄이기 위해 근본적인 인식 개선이 필요한 것처럼. 1회용 마스크라는 이 새로운 쓰레기는 어떻게 처리할까? 현재 가동 중인 소각소 6곳을 비롯해 또 하나의 대형 쓰레기 소각소 설립을 앞둔 충북 충주에, 올해 3월 기준 전국 최대 미세 먼지 주의 발령이 내려진 건 우연일까? 요는 중국을 비롯 거대한 외부로 탓을 돌리다 보면 정작 필요한 노력에 대해서는 생각을 멈추게 된다는 거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쓰레기 배출을 줄이고 나무를 가꾸는 불편함보다 그냥 마스크를 쓰고, 공기청정기를 한 대 더 마련하는 각자도생의 대응이 훨씬 합리적인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빙고! 내가 느꼈던 무력감의 근원을 찾았다. 건강에 미칠 영향 때문에 미세 먼지가 두렵다면, 실내 공기 정화를 위한 노력도 충분히 해야 한다. 미세 먼지를 핑계로 게으름을 피웠던 지난 몇 달이 스쳐 지나갔다. 최근 피부 상태가 안 좋았던 건 혹시 미세 먼지 때문이 아니라 먼지와 고양이 털 투성이인 집에 갇혀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반갑게도 지난 주 정말 말도 안 되게 공기가 좋은 날이 있었다(비록 단 이틀뿐이었지만). 스마트폰이 알려준 미세 먼지 농도는 2 ㎍/㎥. 버스 예상 도착시간이 꽤 많이 남아 한 정거장만 더 걸어서 타려고 했던 발걸음에 속도가 붙었다. 맑은 공기를 애지중지 깊게 들이쉬며 걷는 동안 목격한 것은 몇 번이고 발걸음을 멈출 만큼 아름다운 계절의 흔적이었다. 미세 먼지 주의보라는 공포에 갇혀 뿌옇게 흘려 보냈던 풍경 속에 여전히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색을 바꾸고 있었다. 미세 먼지는 새로운 재난도 반격 불가능한 공포도 아니다. 마스크와 공기청정기 구입은 나의 안위를 위해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위안일 뿐. 중국발 미세 먼지만 탓하면서 샤오미 공기청정기를 구입하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걸 얻는 데 어떤 도움이 될까? 그토록 원하는 파란 하늘과 맑은 공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