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 혹은 창조? 표절 시비에 시달린 패션 디자이너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기성품이 넘쳐나는 세계에서 이를 변형하고 해체하고 재해석하는 게 곧 디자인인 시대. 모방과 창조의 거리는 생각보다 가깝다::패션 디자이너,디자인,모방,자기복제,창조,재해석,오마주,패션,트렌드,표절,엘르,elle.co.kr:: | 패션 디자이너,디자인,모방,자기복제,창조

(왼쪽)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공항의 표지판과 유사한 오프화이트의 방사형 로고. (오른쪽) 트롱프뢰유 기법을 택한 에다 짐니스의 2016년 F/W 컬렉션과 모스키노의 2019 S/S 컬렉션.(왼쪽) 너바나의 심볼인 스마일 일러스트레이션 티셔츠와 마크 제이콥스의 티셔츠. (오른쪽) 무라카미 다카시와 루이 비통 컬래버레이션을 패러디했다고 밝힌 풉시의 ‘푸이 비통’ 슬라임.2019년에 완전무결하게 새로운 것이 존재할까? 언젠가부터 음악이나 영화를 감상하고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을 관람해도 더 이상 ‘새롭다’는 형용사가 나오지 않게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개인 방송을 하고 음악을 만들고 글로 소통할 수 있는 1인 미디어 시대를 살고 있다. 쏟아지는 정보만큼 습득도 쉬워 누구나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 단지 누가 더 민첩하고 영리하며 동시대적 미감을 지녔는지 그 차이만 존재하는 것 같다. 지난해에 제프 쿤스의 작품 몇 개가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제프 쿤스는 앤디 워홀 이후에 가장 성공한 현대미술 작가로 불리지만 가장 논란이 많은 작가이기도 하다. 그를 고소한 인물은 프랑스의 광고감독인 프랑크 다비도비치(Franck Davidovici). 그는 쿤스의 1988년 작 조각품 ‘겨울 사건’이 자신이 1985년에 제작한 프랑스 의류 브랜드 ‘나프나프’ 광고를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구도와 디테일, 심지어 제목까지 똑같은 이 작품에 대해 쿤스는 “예술 표현의 자유를 가져야 하며, 해당 작품은 패러디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지나친 유사성 때문에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미술계뿐 아니라 패션계에도 표절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1월 마크 제이콥스가 출시한 ‘리덕스 그런지 컬렉션’이 너바나의 상징인 스마일 디자인을 일부 변형한 일러스트레이션이 사용됐다는 이유로 표절 논란이 불거졌고,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다. 아웃도어 슈즈로 잘 알려진 킨(Keen)은 구찌에서 새롭게 출시한 ‘플래시트랙’ 샌들이 자사의 디자인을 모방했다며 인스타그램을 통해 구찌를 공개적으로 조롱했다. 킨은 구찌의 계정을 태그로 소환해 ‘우리의 영감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당신의 영감에 영감을 받았다’는 포스팅을 남기기도. 하지만 정작 디자인의 유사성이 크지 않아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의견이 대다수다. 모스키노의 제레미 스콧도 표절 논란에 올랐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신진 디자이너 에다 짐니스(Edda Gimnes)가 자신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모스키노의 2019 S/S 컬렉션이 자신의 2016 F/W 컬렉션을 베꼈다고 주장한 것. 하지만 제레미 스콧이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직접 ‘오마주했다’고 밝힌 이전 모스키노 아카이브를 올리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외려 에다 짐니스가 모스키노 아카이브를 표절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왼쪽) 폴 맥코브의 의자와 흡사한 이케아 의자. (오른쪽) 컬러스(Colrs)와 오프화이트™의 2019 F/W 컬렉션의 그래피티 룩.(왼쪽) 자신이 만든 생 로랑의 2014년 컬렉션과 유사한 에디 슬리먼의 셀린. (오른쪽) 킨과 구찌.그렇다면 ‘자기복제’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 지난해 9월, 셀린으로 첫 쇼를 선보인 에디 슬리먼은 쇼가 끝난 직후부터 냉혹한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스키니한 수트와 타이, 타이트하고 글램한 드레스 등이 그가 이전 디올 옴므와 생 로랑 컬렉션에서 선보인 스타일과 흡사했기 때문. 피비의 팬과 에디의 팬 사이에는 비난과 옹호의 설전이 계속되고 있다. 스타일 평론가이자 패션 위키리크스를 자처하는 인스타그램 계정 ‘다이어트 프라다’는 최근 버질 아블로의 2019 F/W 오프 화이트™ 컬렉션이 나이지리아 출신의 디자이너 컬러스(Colrs)의 의상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사실 버질 아블로는 최근 발표하는 컬렉션과 컬래버레이션마다 표절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가 따라붙고 있다. 오프 화이트TM의 심볼인 방사형 화살표 문양이 1965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공항의 표지판을 그대로 차용했다는 의혹과 최근 발표한 이케아와의 컬래버레이션이 가구와 산업디자인으로 명성을 떨친 디자이너 폴 맥코브(Paul McCobb)의 의자와 흡사하다는 의혹 등이다. 하지만 버질은 최근 <뉴요커>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일련의 논란에 대해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내 디자인은 샘플링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힙합과 비슷하죠. 제임스 브라운을 가지고 와서, 그것을 잘게 썰고 다시 붙여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식이죠. 디자인도 마찬가지에요. 참조가 무엇보다 중요해요.” 버질 아블로는 자신의 작업이 힙합의 샘플링과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 개념을 뒤섞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고정관념을 특유의 따옴표 서명 등으로 의미를 부여해 새롭게 환기하고, 이를 다시 혼합해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것. 버질의 대답은 그를 팝 아티스트에 가깝게 느껴지게 한다. 그의 특기인 반어와 역설은 그의 신분과 인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기반으로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패션은 더 이상 실재의 재현과 수공예적 작업에 드는 시간과 노력에 크게 가치를 두지 않는다. 그야말로 마르셀 뒤샹이 도입한 ‘레디메이드’. 즉 기성품이 넘쳐나는 세계다. 복제 이미지들도 도처에 널려 있어 그것들을 골라내 변형하고 해체하고 재해석하는 능력을 재능으로 본다. 그렇다면 오마주와 패러디 그리고 표절의 경계는 무엇일까? 과거 스티브 잡스의 연설이 그 경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준다. 그는 “훌륭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고 언급한 바 있다. 훔친다는 말의 진짜 의미는 기존에 존재하는 원작을 단순히 따라 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낼 때 위대한 작품이 탄생할 수 있다는 뜻일 거다. 더 이상 새로울 것 없는 2019년 패션, 모방을 넘어 새로운 개념을 창조해 낼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