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성, 꺾이지 않아 | 엘르코리아 (ELLE KOREA)

고아성이 영화 <항거>로 유관순을 만났다. 고난 앞에서 오히려 강인해지는 소녀 혹은 여인::고아성, 항거, 유관순, 배우, 여배우, 화보, 스타, 인터뷰, 엘르, elle.co.kr:: | 고아성,항거,유관순,배우,여배우

니트 톱은 Lemaire.화이트 롱 드레스는 Rejina Pyo. 실버 링은 Marsbom.재킷과 팬츠는 모두 Moon Choi. 니트 톱은 Le 17 Septembre.<항거: 유관순 이야기> 예고편 공개 후, 반응을 찾아봤어요. 유관순 열사와 고아성의 싱크로율이 높다는 이야기가 많더군요 부담도 있지만, 기분은 좋아요. 전 국민이 존경하는 인물이잖아요. 그런 분을 닮았다고 해주다니.단순히 외모에 국한된 반응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당신이 보여온 어떤 기질이 유관순과 닮았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닐까요 하하. 감사합니다. 어떤 역할을 하고 싶으냐고 물으면, 늘 실존 인물을 연기해 보고 싶다고 했어요. 막상 기회가 오니 혼란스러웠어요. 부담이 엄청나게 큰 알맹이로 다가오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코드인지는 감이 잘 안 잡혔거든요. 마침 고흐 그림을 모티프로 만든 유화 애니메이션 <러빙 빈센트> 메이킹을 봤는데, 굉장히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세로 화폭으로 존재하는 그림을 영화 비율로 만들기 위해 세로에서 뺀 나머지 부분들을 새롭게 창조해야 했다. 그게 제작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다”는 코멘트였죠. 보고 ‘아’ 했어요. 딱 제 심정이었거든요.유관순의 삶을 보호하면서 재해석해야 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거예요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제가 유관순이라는 인물을 한 번도 한 명의 ‘개인’으로 생각해 본 적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너무 성스럽게 여겨지는 인물이었으니까요. 감히 내가 터치할 수 있을까 싶었죠. 그 부담을 깨기 위해 기댔던 말이 있어요. ‘인간사에 완전한 진지함이란 없다’(플라톤)는 말. 그 말을 믿고 상상을 펼쳤던 것 같아요.그 과정은 순조로웠나요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하루하루 잘 지내기도 했고요. 그런데 촬영 종료를 알리는 ‘컷!’ 소리를 듣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당황했어요. 이전까지 제게 눈물은 의식 과정을 거쳐야 만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것이었거든요. 그날의 눈물은 제가 처음 경험한 의식 밖의 감정 표현이었던 거죠. 모든 영화가 저에겐 새로운 경험이지만 이번엔 유독 더 그랬던 것 같아요.지난 <엘르>와의 인터뷰에서 “시대가 사람의 성격에 영향을 주는 큰 요소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했더군요 (잠시 생각) 그…랬던 것 같아요.그 말은 지금도 유효한가요 (손사래) 아니요, 아니요. 하하하. 지금은 그때와 생각이 달라졌어요.<항거> 영향일까요? 유관순은 시대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 인물이 아닐까 싶거든요 맞아요. 서대문형무소에 가면 독립투사들의 사진이 빼곡하게 있는 방이 있어요. 조민호 감독님이 그 시대 사람들의 눈빛을 재현하고 싶은 게 이 영화를 만드는 가장 큰 목표라고 하셨어요. 공감했어요. 그 시대의 느낌을 잘 전달하고 싶었죠.조금 다른 의미에서, 지금 이 시대가 본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있는 것 같아요. 과거에 비해 ‘뻘쭘’한 상황을 기피하는 경향이 생겼어요. 이젠 애플리케이션으로 배달하는 시대잖아요? 그래서 전화로 배달하는 게 조금 어려워졌어요. 되게 사소한 사례이긴 한데, 사회가 전체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공감해요. 당신은 과거지향적인 측면이 강한 사람이라고 들었어요. 그래서 이런 변화에 더 민감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요 아무래도 체감도가 크죠.볼륨감있는 실루엣의 니트 톱과 와이드 팬츠는 모두 Lemaire. 슈즈는 Osoi.블랙 슬리브리스 드레스는 Stella McCartney. 골드 링은 Marsbom.오버사이즈 재킷과 셔츠, 화이트 스커트는 모두 Lemaire. 터틀넥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매니시한 블랙 슈즈는 Osoi.자살한 14세 소녀(김향기)의 언니를 연기한 <우아한 거짓말> 때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이야기했더군요. 죄책감에 대해서도요. 아마 당신에게 <항거>는 그 대척점에 서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어요. 이번 영화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죄책감은 당신이 아닌, 관객의 몫이란 생각이 들거든요 아…(점점 눈이 붉어진다) 죄송해요. 눈물이….<우아한 거짓말>이 여전히 깊게 남아 있군요 제가 얼마 전에 향기가 출연하는 <증인> 시사회에 갔어요. 재미있게 보다가 나뭇잎 사이로 비친 햇빛이 향기 얼굴에 닿는 부분에서 멈칫했어요. <우아한 거짓말>이 갑자기 생각 나서…. 그때부터 영화를 못 보고 지금처럼 울었어요. 그런 생각을 해요. 연기를 정말 쉽게 생각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 <우아한 거짓말>을 촬영한 지 6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거잖아요. 80세쯤 되면 어떤 게 내가 겪었고, 어떤 게 내가 연기한 건지 헷갈릴 것 같아요.그런 감정을 겪을까 봐 두렵나요 개인적으로는 힘들겠죠. 하지만 배우로서는 성공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혹시 <항거> 찍으면서 치유받는 느낌이 있었나요 있었죠. <항거> 끝나고 고흐 뮤지엄을 다녀왔어요. 고흐가 적어놓은 말을 옮긴 음성 해설을 듣는데 “나는 나 자신 이상의 존재하는 가치를 위해서 내 삶을 다 써도 좋다”는 말이 나오더라고요. 그게 너무 유관순 열사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목표를 가지고 정진하자는 생각을 했죠.자연스럽게 물어볼 수밖에 없네요. 그 목표가 뭔지 아무래도 제겐 작품이지 않을까 싶어요. 좋은 작품.혹시 알아요? 어릴 땐 어른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지금 성인이 된 당신에겐 반대로 소녀 같은 느낌이 있어요 그래요? 생각해 보면 어릴 때의 저는 지금보다 더 진지했던 것 같아요.혹시 애늙은이라는 말도 들었나요 아니요. “철 좀 들라”는 말을 더….(웃음)아, 본인만의 세계가 확고한 스타일이었군요 이젠 많이 넓어지고, 한층 가벼워졌어요. 경계가 많이 허물어졌다고 해야 하나? 제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도 많이 받아들이게 됐고요. 2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그랬던 것 같아요.어떤 계기가 있었던 건가요 주변에 유머러스한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일어난 변화예요. 정확히 따지면 영화 <오피스> 전후로 나뉜 것 같아요. <오피스> 배우들이 유머를 워낙 좋아해요. 덕분에 저도 웃음이 많아졌죠. 지금도 자주 만나는데, 제겐 가장 행복한 순간이에요.결국 사람의 영향이군요. 유머의 힘은 뭘까요 삶을 대하는 방식이 유해진달까요. 그런 측면이 분명 있는 것 같아요.심리학 전공이죠? 정확히 심리학은 어떤 것인가요 인간을 이해하는 학문이죠.그렇다면 배우는 인간을 이해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공이 도움 될 때가 있어요. 완전히 겹치지는 않지만요.데뷔가 빨랐어요 네 살 때 CF 모델로 시작했어요.그 이후 쭉 현장에 있었고요. 타인의 삶을 일찍이 받아들인 입장에서 당신에게 연기란 경력인가요, 창작인가요, 감수성인가요 적당한 경험과 상상력이요. 제가 어려운 일이 생기면 회피하는 경향이 있어요. 응당 겪어야 하는 감정을 일부러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 하죠. 그런 성향이기 때문에 경험이 제겐 절대적이지 못해요. 저는 상상력으로도 충분히 깊은 감정 연기가 가능하다고 믿는 편이에요. 타인의 이야기와 책에서도 도움을 받죠.애독가이죠 인터뷰에서 책 좋아한다고 자주 이야기하니까 출판사에서 선물을 많이 보내주세요. 얼마 전에도 아는 출판사에서 책을 한가득 보내준 덕에 든든하게 이번 겨울을 났어요.다독가이기도한가요 그보다는 좋아하는 책을 파는 쪽이에요(웃음). 최근에 읽은 책 구절 중에서 ‘어른의 본분’에 관한 게 기억에 남아요. 사람은 누구나 부족한 점이 있잖아요? 자라면서 습득한 결점 같은 것이요. 그 모자란 부분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고치는 게 어른의 본분이라는 말이 있는데, 읽으면서 저를 돌아봤어요.어른의 본분에 충실한 어른들이 당신 주변에 있나요 그럼요. 정우성 선배(웃음)! 안판석 감독님도 그렇고, 틸다 스윈턴도 그렇고 제가 무한 존경하는 분들이 있어요. 저도 그처럼 되고 싶죠.살면서 나름대로 잘 성장해 왔다고 느끼나요 네! 그런데 다들 그렇지 않나요?글쎄요. 크면서 좋은 모습을 잃어버리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저는 아직 그런 희망은 있는 것 같아요. 나아질 수 있다, 나아지고 있다는 희망. 그건 버리고 싶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