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칼 라거펠트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 5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우리 곁을 떠난 세계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그에 관한 5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모았다. |

1 칼 라거펠트는 피에르 발망의 어시스턴트로 패션계에 입문했다. 독일 함부르크 태생의 칼 라거펠트. 독일 출신의 어머니와 스웨덴 출신의 아버지의 사업 성공으로 비교적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뛰어난 드로잉 실력과 독서에 대한 열정을 지닌 칼 라거펠트는 1954년 국제 양모 사무국((International Wool Secretariat)에서 주최한 컨테스트 코트 부문에서 1등을 차지했다. 그리고 1955년 피에르 발맹의 어시스턴트로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첫 커리어를 시작했다. 2 칼 라거펠트는 샤넬의 디자이너로 임명된 후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보수적인 쿠튀르 세계에 염증을 느낀 칼 라거펠트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하며 경력을 쌓았다. 즉 당대의 명성을 차지한 쿠튀리에가 아니라 ‘레디투웨어(Reay-to-Wear)’ 기성복 디자이너로 활동한 것. 1964,5년부터 시작된 펜디와 클로에에서의 활동을 통해 칼 라거펠트는 차근차근, 성공적으로 커리어를 쌓았다. 하지만 1982년 9월 가브리엘 샤넬의 뒤를 이어 샤넬 하우스 입성이 확정됐을 때 여론은 굉장히 부정적이었다. 이유는 프랑스인이 아닌 독일인 출신이라는 것과 쿠튀리에가 아닌 기성복 디자이너였기 때문이라고. 여론과 달리 변화와 혁신을 원한 샤넬 하우스는 칼 라거펠트를 이 흐름의 적임자로 판단했고, 그들의 예상은 적중했다. 3 칼 라거펠트에겐 그만큼이나 유명한 반려묘 ‘슈페트’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고양이’라는 타이틀을 지닌 ‘슈페트(Chuupette)’. 2011년부터 칼 라거펠트와 인연을 맺은 고양이다. 모델 밥티스트 지아비코니가 키우던 고양이로 그가 해외 일정을 떠나는 동안 칼에게 슈페트를 부탁, 칼 라거펠트는 슈페트의 매력에 빠져 결국 입양을 진행시켰다고.이후 칼 라거펠트의 작업에 등장하며 스타가 됐다. 화보집은 물론 광고 모델, 캐릭터 브랜드 런칭 이력까지 소유하고 있으며 또 17만 팔로워를 거느린 인스타그램 스타이기도 하다.  슈페트를 극진히 아낀 칼 라거펠트는 슈페트를 위해 보모와 경호원을 고용했을 뿐만 아니라 할 수만 있다면 결혼을 하고 싶다고 언급했을 정도로 애정을 쏟았다. 자신이 죽은 이후에도 슈페트는 여전히 같은 삶을 살거라 공언했기 때문에, 대중과 외신들은 칼 라거펠트의 유산 일부를 슈페트가 상속 받을 거라 예측 중이다. 4 칼 라거펠트에겐 ‘대자(代子)’가 있다.샤넬의 최연소 뮤즈이자 모델, 샤넬의 프린스라는 애칭을 지닌 인물이 있다. 주인공은 바로 허드슨 크로닉. 3살 꼬마 아기 시절부터 칼 라거펠트의 총애를 받으며 샤넬 런웨이에 등장해왔다. 허드슨 크로닉은 모델 브래드 크로닉의 아들로 아빠의 외모를 쏙 빼닮은 모습이 인상적. 칼 라거펠트는 허드슨의 대부를 자처하며 이들을 자신의 가족과도 같다고 언급한 적 있다.칼 라거펠트의 사랑이었던 이들, 허드슨과 슈페트.5 칼 라거펠트는 16편의 영화에 의상 디자이너로 참여했다.칼 라거펠트는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패션은 물론 사진, 건축, 영화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도 깊은 조예를 지녔다. 칼 라거펠트는 패션과 영화에 대한 관심을 살려 16편의 영화에 의상 디자이너로 활약하기도. ‘메이트리스’, ‘실버 베어스’ 등을 비롯해 오스카 최우수외국어영화상 수상직인 ‘바베트의 만찬(1987)’에도 의상 디자이너로 참여했었다. 또 크리스틴 스튜어트 주연이 ‘원스 앤드 포에버(2015)’로 단편 필름을 제작한 이력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