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다 가는 디자인 뮤지엄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코펜하겐의 '래디슨 컬렉션 로열 호텔'은 아르네 야콥센의 명작과 프리츠 한센의 가구들이 어우러진 로망의 집이었다 ::프리츠한센, 아르네야콥센, 키예르흘름, 가구, 조명, 노르딕, 디자인, 코펜하겐, 프리츠한센본사, 스위트룸, 래디슨, 컬렉션, 로열, 호텔, 엘르, elle.co.kr :: | 프리츠한센,아르네야콥센,키예르흘름,가구,조명

아르네 야콥센이 살았던 606호실. 1960년대의 노스탤지어가 고스란히 담긴 이곳은 더 이상 예약을 받지 않는 이 호텔의 타임캡슐이 됐다.가볍고 장난기 있으며 여성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스위트룸은 덴마크의 대표 여성 디자이너 세실리에 만즈가 디자인했다.하이메 아욘의 유머러스한 터치가 가미된 가구와 커스터마이징 가구가 매치된 ‘프리츠 한센 컨템퍼러리’ 스위트.사람들을 한데 모으는 캐주얼한 장소’이길 바랐던 아르네 야콥센의 의도를 살린 로비 공간.카페 로열 레스토랑에 가면 드롭 체어, 메이어 체어 등에 앉아 크리스티안 파라디시(Christian Paradisi)가 요리한 다양한 메뉴를 맛볼 수 있다.짧지만 강렬한 여행이 있다. 이번 코펜하겐 여행이 그러한데, 긴 비행 스케줄로 쌓인 피로를 단번에 씻어내는 치유의 힘은 공간에서 나왔다. 하지만 내가 특별하게 휴식한 이곳 ‘래디슨 컬렉션 로열 호텔(Radisson Collection Royal Hotel, Copenhagen)’은 1960년 ‘SAS 로열 호텔’이란 이름으로 코펜하겐에 등장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에게 전혀 환영받지 못했다. 당시 덴마크의 전통적인 스카이라인을 침공한 이 거대한 철근 콘크리트 건물은 높이와 생김 그 자체로 과거 파리 에펠탑 수준의 괄시를 받았다. 이 괄시의 대상을 디자인한 사람은 데니시 디자인의 전설,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이 호텔을 위해 디자인한 가구들은 모두 친근한 곡선 형태를 띠고 있으며, 건물과는 딴판으로 사랑받아 왔다는 점이다. 디자인 퍼니처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에그 체어, 스완 체어 정도는 들어봤을 텐데 바로 이 유명한 의자들은 아르네 야콥센이 SAS 로열 호텔을 위해 디자인하고 프리츠 한센과의 협업으로 완성한 결과물이었다. 시간이란 얼마나 희극적인지, 지난 58년의 세월은 이 건물이 코펜하겐의 랜드마크가 되는 아이러니를 낳았고, 이곳을 방문하고 감탄한 여행자도 부지기수다. 그러나 최근 ‘호텔’이라는 공간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다시 한 번 새로운 유목민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고자 순차적으로 레너베이션을 진행했다. 지난 4월 페이스리프트를 마친 호텔은 달라진 이름만큼이나 모던한 생기가 더해졌고, 한층 고급스러워졌음에도 문턱이 낮아진 것 같은 친근함이 배어 있었다. 레너베이션 작업을 맡은 디자인 스튜디오 ‘스페이스 코펜하겐’은 261개의 객실을 비롯해 카페 로열 레스토랑 & 바와 로비, 회의와 이벤트 공간에서 아르네 야콥센의 상징적 분위기를 더 선명하게 새긴 것과 동시에 요즘 사람들이 열광하는 재료와 컬러, 소재를 믹스했다. “우린 이곳을 뮤지엄으로 바꿀 생각은 없었어요. 디자인 유산을 지키면서 새로운 세대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 공간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가 머문 호텔은 충분히 뮤지엄다웠다. 프리츠 한센의 방대한 컬렉션과 크바드랏의 패브릭, 앤트레디션의 거울과 목재로 된 패널 벽 등이 어우러진 객실은 자고 갈 수 있는 뮤지엄이라는 점에서 더 특별했다. 레너베이션 이후 호텔엔 각각의 스토리텔링이 녹아 있는 5개의 시그너처 스위트룸이 생겼고, 더 이상 예약할 수 없는 하나의 타임캡슐도 탄생했다.아르네 야콥센이 디자인한 프리츠 한센의 상징적인 가구들이 아트 피스로 업그레이드된 새로운 아르네 야콥센 스위트룸.시크한 노르딕 디자인의 정수가 담긴 포울 키예르흘름의 가구들이 낮게 레이아웃된 스위트룸.오직 5개의 스위트룸을 위해 제작한 프리츠 한센의 리미티드 가죽 트레이.이번 코펜하겐 여행에서 가장 기대한 여행지는 다름 아닌 타임캡슐이 된 606호실이었다. 아르네 야콥센이 살았던 606호실은 말하자면 코코 샤넬이 반평생을 살았던 리츠 호텔 302호실과 견줄 만하다. 하늘색 패브릭 가구와 소박한 침대, 거실과 침실을 구분하는 커튼 한 장과 빈티지 온풍기, 스테인리스 재떨이 등 60년대의 노스탤지어가 고스란히 담겨 있던 그곳은 누가 뭐래도 그 시대와는 견줄 수 없는 모던 디자인의 예시라 할 만했다. 바로 비슷한 연배의 내 오래된 필름 카메라를 가만히 둘 수 없었던 이유다. SAS 로열 호텔에서 공개한 것과 달리 실제로 에그 체어가 만들어진 건 1957년으로 올해 60주년을 맞이했다. 이를 기념해 프리츠 한센에서 디자인한 5개의 스위트룸은 모두 6호에 배치돼 있었고, 개인적으론 데니시 디자이너 포울 키예르흘름의 가구로 채워진 방 1206호의 차분한 정서가 가장 좋았다. 회색 캔버스로 제작한 2개의 PK22 의자, 특수 브라운 컬러 가죽으로 제작한 PK31 소파가 나직하게 자리한 공간엔 사진가 아네르스 잉바르트센(Anders Ingvartsen)이 포착한 대자연의 이미지가 큼지막하게 걸려 있어 작은 갤러리에 온 것 같았다. ‘와!’ 하고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른 1006호, 세실리에 만즈가 디자인한 방은 오크 소재의 큼지막한 에세이 테이블이 드롭 체어, 카라바조 램프와 어우러져 있는데 문득 가져온 노트북을 꺼내야 할 것 같았다. 새로운 원단을 덧입힌 미너스쿨 체어와 푸프도 멋졌고, 벽에 걸린 디자이너의 인스퍼레이션 맵을 보는 것도 좋았다. 606호를 대신할 1106호의 아르네 야콥센 방엔 상징적인 가구들이 아트 피스처럼 업그레이드돼 있었다. 소가 새끼를 뱄을 당시의 주름까지 세심하게 보존한 최고급 가죽의 에그 체어, 다크 바이올렛 컬러의 울을 입힌 시리즈 3300 소파, 벨벳 소재로 제작한 스완 체어, 자연이 디자인한 대리석 커피 테이블 등 이제껏 본 적 없는 소재와 컬러의 충돌이 인상적인 공간이다. 1306호의 프리츠 한센 컨템퍼러리 룸은 하이메 아욘의 로 라운지 체어, 파븐 소파, 벽 장식으로 사용된 유머러스한 담요가 중심을 차지했고, 506호의 프리츠 한센 클래식 스위트룸엔 특수 제작한 다리를 사용한 루네 소파와 카이저 이델 램프, 아직 출시되지 않은 오브젝트 커피 테이블 등이 우아한 일상의 영감을 전해주고 있었다. 이 특별한 객실들 중 한 곳에 머물 수 있었다면 영광이었겠지만, 내가 쉬어간 곳은 스탠더드 룸이었다. 허나 실망할 건 없었다. 레너베이션은 모든 객실에 공평하게 적용됐으니까. 객실 구조 중에선 르코르뷔지에에게 영향을 받은 게 분명한 수평창과 깊게 낸 창턱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밝은 햇살을 퍼 나르는 동시에 쇼핑 거리 베스테르브로가드(Vesterbrogade), 중앙역, 놀이공원 ‘티볼리’ 등의 파노라마 전경을 즐길 수 있는 독특한 프레임이 돼주었기 때문이다. 이제껏 프리츠 한센의 가구를 이렇게 흔하게 접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 또한 스탠더드 룸에 묵는 사람이든 스위트룸에 묵는 사람이든 공평하게 제공되는 서비스라는 점이 만족스러웠다. 어디서든 에그·스완·드롭 체어를 만날 수 있었고, 귀한 클래식 팟 체어(최근 재생산되기 시작했다)는 물론 카페 로열엔 덜 알려진 메이어 소파도 놓여 있었다. 이 호텔 건물을 설계했다는 이유로 미운 털이 박힌 탓인지, 과거 아르네 야콥센의 디자인은 유행만 좇는다거나 기술적인 경박함을 가졌다는 구설에 자주 휩싸였다. 그런 디자인에 완성도를 더해준 것이 프리츠 한센의 가구 기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34년부터 시작된 이들의 협업 히스토리가 궁금해 들렀던 프리츠 한센의 본사에서 나는 이 동역자들이 써 내려간 덴마크의 가구 역사에 대해 알게 됐다. 동시대에 함께 존재했기에 가능했던 그들의 스파크가 오늘의 여행자들에게 휴식으로 치환되고 있다는 사실과도 함께!코펜하겐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프리츠 한센 본사는 디자이너와 장인의 협업 과정뿐 아니라 방대한 클래식 가구 컬렉션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