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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묘초(Omyocho)
생물학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와 문학적 상상력을 결합해 서사를 구축하고, 이를 조각 작품으로 완성해 내는 작가.
“로만글라스라고 불러요. 바다로 흘러간 유리 파편들이 세월에 침식하면서 다시 육지로 밀려나온 거죠.”
작가의 작업실에서 마주한 오렌지빛 원석, 로만글라스는 물질이 어떻게 시간을 통과해 새로운 삶을 얻는지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이 만든 인공물이 자연의 시간과 파도와 만나 전혀 다른 영원성을 얻듯 습관처럼 내뱉던 ‘워치’와 ‘주얼리’라는 단어가 얼마나 한정적인 테두리에 갇혀 있었는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프리즈 서울 2026’에서 작가는 <시스카티아> 전시를 감상하는 방식을 하나의 시점으로 규격화하지 않고, 자유롭게 공간을 누비면서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공간 속에서 조각들은 스스로 자생하듯 피어난다. 알루미늄과 은, 유리 등이 주를 이루는 각각의 소재가 하나의 조각 안에서 정교하게 맞물리고, 서로 다른 조각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모습을 보며 ‘공간’이라는 프레임만 확장됐을 뿐, 경험하고 감상한다는 건 확장된 개념의 주얼리 같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더욱 선명해졌다. 해양과 미래 등에서 영감을 받은 그간의 작업부터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작품까지 다채롭게 마주할 수 있었는데, 소재를 다루는 방식과 디테일 속에서 세공적 섬세함과 장인 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한 작품이 작가의 의도와 기술력을 드러내는 것뿐 아니라 작가의 세계관과 스토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시간과 감각을 압축한 아트피스로 다가왔다. 조각을 통해 생명의 다양한 가능성과 회복력을 시각화하는 작가 오묘초. 그녀의 작업에 녹아있는 깊이 있는 시선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여다봤다.
‘프리즈 서울 2026’에서 조각들이 스스로 자생하는 생태계처럼 부스를 연출했습니다. 관람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나요
공간 안에서는 인간이 중심이 아니길 바랐어요. 조각들이 우리를 위해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이 사는 장소를 우연히 지나는 듯한 감각을 주고 싶었어요. 어떤 것은 낮게 웅크리고 있고, 어떤 것은 서로를 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는 알 수 없어요. 그 ‘알 수 없음’ 자체가 중요했습니다. 무언가를 이해하거나 이름 붙이기 전에, 다른 존재의 시간과 방식이 이미 그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감각을 느꼈으면 했거든요.
전시 제목 <시스카티아>는 어떤 서사에서 출발했나요
‘시스카티아’는 페루 아마존의 야과족 언어로,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 있는 모든 존재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거기에는 어떤 위계나 권위가 없어요. 인간조차 하나의 ‘시스카티아’일 뿐이에요. 이들의 세계에서는 ‘생명’이 한 존재의 내부에 완결된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으며 계속 만들어집니다. ‘무엇이 살아 있는가’ 보다 ‘무엇이 어떻게 서로를 살아 있게 하는가’를 다루는 이번 전시에 꼭 맞는 이름이었습니다.
전시를 아우르는 ‘지속적 생성’이라는 관념을 전시 공간에 구현할 때 가장 공들인 요소는
작품의 거리였어요. 조각 하나하나의 형태도 중요하지만 그 사이에 생기는 빈 공간 역시 또 다른 물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서로 너무 가까우면 하나의 장면으로 고정되고, 너무 멀어지면 관계가 끊어지기 때문에 그 긴장을 계속 조율했어요. 작품들이 이미 완성된 존재처럼 보이기보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습니다.
조각 작업 이전에 글을 쓰고 세계관을 먼저 구축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비물질적 언어는 조각 작품을 완성하는 데 어떤 의미일까요
저에게 글은 작품보다 먼저 존재하는 공간이에요. 좋은 글은 읽음과 동시에 화면이 눈앞에 펼쳐지죠. 그런 면에서 저는 문학도 미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이나 짧은 에세이를 쓰면서 현실에 없는 풍경이나 생명체를 먼저 상상하면, 조각은 그 세계에서 현실로 건너온 하나의 파편이자 살아갈 생명처럼 구체화돼요. 즉, 글은 조각이 존재할 수 있는 더 큰 세계를 열어주는 바탕입니다.
유리와 금속을 다루는 당신의 세공 작업은 작품에 회복력을 불어넣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저에게 물질을 다룬다는 건 일방적인 강요가 아닙니다. 열을 가하면 유리는 중력의 힘에 의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르다 금세 얼어붙듯 고정돼 버려요. 금속도 열을 가해 단조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자신을 내줍니다. 재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반응하는 거죠. 저는 이 반응을 통제하기도, 때로는 따라가기도 해요. 작업 형태는 제 의지와 물질의 성질 사이에서 만들어집니다. 그 과정의 흔적이나 실패까지 받아들이며 새로운 형상으로 이어지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회복력입니다.
하이 주얼리와 당신의 작업 모두 물질 위에 서사를 불어넣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이 주얼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궁금합니다
하이 주얼리 재료 자체의 희소성보다 한 물질을 오래 바라보고 연마하며 최적의 형태를 찾아가는 ‘집중의 시간’에 매료되는 편입니다. 아주 작은 크기 안에 굉장히 긴 시간과 기술이 압축돼 있는 것도 흥미롭고, 그런 면에서 하이 주얼리는 조각과 닮은 것 같아요. 물질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만 인간의 시간과 손길을 통과하면서 전에 없던 의미를 갖게 되니까요.
자연에서 영감받아 완성한 청동 조각 작품.
‘미래에서 보내온 무늬_웨이브’(2026). 유리, 은 소재를 활용해 신비로운 무드를 완성했다.
주얼리와 조각이 공유하는 본질적인 관계는
‘몸을 어떻게 의식하게 만드는가’ 하는 지점에서 둘의 관계를 생각해요. 주얼리는 신체에 밀착해 평소에는 의식하지 않던 손목이나 목 등의 존재를 새삼 감각하게 만들잖아요. 조각도 비슷해요. 좋은 조각 앞에서 관람자는 눈으로 보는 걸 넘어 거리를 조절하고, 고개를 숙이며, 몸의 위치를 바꾸죠. 그래서 저에게 조각은 그 공간에 있는 몸의 감각을 변화시키는 존재에 가깝습니다. 주얼리가 몸 위에 놓여 신체의 일부가 된다면, 조각은 그 주변을 서성이는 우리 몸을 잠시 자신의 세계로 끌어당기는 장치인 셈입니다.
흔히 조각이나 주얼리는 ‘변하지 않는 물질’로 여겨집니다. 당신이 정의하는 ‘영원함’이란
어떤 존재가 시간과 환경을 통과하면서 계속 변화한다는 것이 영원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제 조각의 요소인 광물의 표면도 빛과 장소, 시간, 관객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죠. 어쩌면 영원하다는 것은 시간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계속 받아들이는 상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영원하길 바라는 한 가지는
호기심이요. 무언가를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보다 아직 모르는 상태로 세상을 바라볼 때 작업이나 삶도 계속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작업을 오래하고 있어도 낯선 걸 보고 계속 궁금해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희 집 강아지 ‘보보’도요. 영원히 제 곁에 머물 수 있길 바랍니다.
‘프리즈 서울 2026’에서 선보인 신작 중 하나인 조각 작품, ‘올리 올리 옥센 프리’.
‘SF는 미래를 발굴하는 고고학’이라는 당신의 지론처럼 먼 미래의 존재가 오늘날 당신의 조각 작품을 발굴한다면 어떤 의미로 읽히길 바라나요
‘이 시대의 인간은 다른 생명에 대해 이렇게 상상했구나’라고 생각해 주면 좋겠어요. 그것이 실제로 존재했던 생명인지, 인간이 상상한 생명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유물처럼요. 저는 SF가 미래를 예측하는 장르라기보다 현재의 감각과 욕망을 낯선 형태로 남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조각 작품도 미래에서 발견됐다면 당시 우리 시대가 인간이 아닌 존재와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었는지를 고민한 흔적으로 읽혔으면 해요.
‘프리즈 서울’ 프로젝트를 마무리한 지금, 고생한 자신에게 선물하고 싶은 주얼리를 꼽는다면
시계요. 저는 손이 도구라 거의 주얼리를 착용하지 않는데, 요즘 이상하게 손목시계에 관심이 생겼어요.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시간을 몸에서 떼어내 스마트폰 화면으로만 확인하고 있잖아요.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주머니에서 기계를 꺼내 화면을 켜는 행위와 손목을 살짝 들어서 시간을 보는 행위는 굉장히 다른 감각인 것 같아요. 시계가 작은 물체 안에 시간을 담아 몸에 붙이고 다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조각가라서 그런지 그 점이 재미있어요.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는 시간을 하나의 물질에 넣어 신체에 착용한다는 것. 그리고 온종일 그 작은 기계가 몸과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것도요.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시계보다 오히려 ‘내가 시간을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가끔 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시계를 갖고 싶어요.
보톤드 케레스테시(Botond Keresztesi)
부다페스트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화가. 초현실적인 미래 세계와 디지털 이미지를 회화로 구현한다.
캔버스에 유채 및 아크릴, 작가 맞춤 제작 프레임을 입혀 완성한 ‘Times New Roman’ 시리즈로, ‘Times New Roman Ⅴ (나이키 트라이액스 아머드 - 루비-뿌리차크라)’.
오묘초가 조각으로 시간의 흔적을 물질화한다면, 케레스테시는 회화라는 평면 위로 시계 메커니즘 자체를 옮겨놓는다. 헝가리 타타바냐 출신의 화가 보톤드 케레스테시의 작품과 마주하면 시계 다이얼을 보는 것 같다. 클래식한 까르띠에 탱크의 케이스 실루엣이 프레임이 되고, 그 안에서 모래시계와 메멘토 모리의 도상이 겹쳐지며, 측면의 용두에는 일곱 개 차크라를 상징하는 원석이 저마다 다른 빛깔로 세팅돼 있다. ‘프리즈 서울’에서 공개된 신작 ‘Times New Roman’ 시리즈는 우리가 시간을 ‘측정’하는 방식과 실제로 ‘체감’하는 방식 사이의 간극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계라는 정밀한 메커니즘을 통해 유한한 삶 속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작가 케레스테시가 그려낸 시간의 지형을 따라가 봤다.
이번 ‘프리즈 서울 2026’에서 일곱 점의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연작을 작업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핵심 개념과 시각적 메시지가 있을까요
이번 시리즈는 시간과의 관계, 특히 우리가 시간을 측정하는 방식과 실제로 시간을 체감하는 방식 사이의 긴장감을 다룹니다. 전시 제목 <Times New Roman>역시 이런 아이디어를 위트 있게 비튼 겁니다. 서로 다른 시간성을 한데 모아, 그 안에서 우리 존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질문을 던집니다.
‘모래시계’와 고전 ‘메멘토 모리’ 등의 요소들이 회화 안에서 긴밀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이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모래시계는 지상과 천상을 잇는 관문이자 존재와 부재 사이의 경계입니다. 모래시계가 구체적인 시간을 측정하는 동시에 삶의 흐름과 소멸에 대한 개념을 시각화한다면 메멘토 모리는 ‘인간 존재의 유한함’을 직접적으로 상기시킵니다. 이를 통해 인간이 가진 근원적 불안을 시각적 형태로 구현하고 싶었습니다.
까르띠에 탱크 케이스 형태의 금속 프레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시계라는 메커니즘을 작업 프레임이자 핵심 모티프로 가져온 계기가 있을까요
제 작품에는 ‘이중 프레임’이 존재합니다. 첫 번째 관문은 모래시계로, 내부에 시계 형태가 등장하죠. 외곽의 금속 프레임은 까르띠에의 ‘탱크’ 모델 케이스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까르띠에 탱크가 가진 클래식하고 기하학적 형태가 제 회화의 포맷과 완벽히 맞물렸기 때문이죠. 작품 속의 시간을 담아내는 상징적 역할도 합니다.
작품마다 크라운 색상이 다르더군요, 평면 회화지만 크라운을 돌리면 프레임 속의 요소들이 살아 움직일 것 같은 착시 현상이 생깁니다
크라운에 세팅된 보석은 일곱 개의 차크라에 대응하는 치유 원석이에요. 흐르는 시간 속에서 몸과 마음이 마모되고 손상되는 걸 ‘치유’하고 싶은 마음이 담겼어요. 크라운은 시간을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제어점이기도 합니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어요. 시계를 볼 때 우리는 다이얼 위의 시곗바늘을 보지만, 실제로 시계를 움직이게 하는 건 숨겨진 무브먼트입니다. 회화도 마찬가지예요. 관객이 먼저 멈춰 있는 이미지와 마주한 뒤, 그 너머에 숨겨진 움직임을 떠올릴 때 비로소 화면 전체가 생생하게 살아나죠.
‘서울’이라는 도시를 당신의 작업방식으로 캔버스에 옮긴다면
이미 머릿속에 양성의 몸을 가진 물병자리 스타일의 인물을 떠올리고 있어요. 첨단 기술이 적용된 하이테크 스마트 글라스를 착용하고, 삼성에서 개발한 힙 지원 엑소스켈레톤(외골격 로봇)을 차고 있어 무거운 물건을 들 수도 있죠. 로봇공학과 뷰티 산업이 하나의 신체에서 융합되는 모습은 서울 이미지에 반드시 들어갈 것 같습니다.
‘Times New Roman Ⅱ. (타이맥스 에일리언 - 자수정-크라운 차크라)’.
‘시간’에 진심인 작가의 손목에는 어떤 워치가 있는지
지금은 세이코 로토콜(Seiko Rotocall)을 차고 있습니다. 1983년 나사(NASA) 우주비행사를 위해 개발된 모델의 리뉴얼 버전이에요. 디지털 디스플레이가 탑재된 쿼츠 시계로, 자전거를 탈 때 차도 기계식 시계와 달리 진동으로 인한 무브먼트 손상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게는 완벽한 데일리 워치죠. 우주에서 쓰기 충분한 시계라면, 지구에서도 충분히 훌륭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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