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더너스' 문상훈이 영화 '너바나 더 밴드'를 픽한 사연
크리에이터 문상훈이 캐나다 독립 코미디영화 <너바나 더 밴드>를 한국으로 데려왔다. 실패해도 괜찮을 만큼 사랑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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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에이터에서 영화 수입자가 된 문상훈의 첫 번째 도전.
- 문상훈이 영화 <너바나 더 밴드>를 한국에 들여온 이유는 흥행이 아니라 '좋아서'였다.
- 칸영화제에서 시작된 영화 수입은 문상훈에게 새로운 창작의 전환점이 됐다.
- 문상훈이 좋은 영화라고 믿는 기준은 '뒷맛이 오래 남는 것'이다.
문상훈 크리에이터, 코미디언. 유튜브 채널 ‘빠더너스’를 통해 스케치 코미디와 인터뷰, 버라이어티 콘텐츠를 선보이며 독자적인 세계관을 형성해 왔다. 최근 캐나다 코미디영화 <너바나 더 밴드>를 국내에 수입· 배급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지난해 ‘빠더너스’ 채널에 올라온 칸영화제 참석 영상은 감동 그 자체였다. 한껏 들뜬 문상훈과 김진혁 PD의 얼굴에서 영화를 사랑하는 청춘들의 열정이 물씬 느껴졌다. ‘홈 비디오 때의 열정이나 젊음 같은 게 느껴지는 영상’이라는 댓글도 보이던데 칸영화제는 왜 갔나
매주 정해진 일정에 맞춰 콘텐츠를 만들다 보면 모든 작업에 같은 열정을 쏟기 어렵다. 오래 지속하기 위해서는 정신적· 체력적으로 한 발짝 물러나 작업하는 태도가 필요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매너리즘이 찾아왔다. 오랫동안 품어온 숙제 같은 고민도 있었다. ‘촬영 규모를 더 키워야 하나’ 하는 문제 말이다. 우리는 스마트폰과 캠코더 촬영에 자신이 있고 그 방식에 특화됐다고 생각해 왔는데 구독자가 늘어나면서 ‘규모가 커지는 것’과 ‘콘텐츠 수준이 높아지는 것’을 혼동하게 되더라. 둘이 별개의 문제라고 믿었지만 한편으로는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남들의 시선이나 우리 다음 단계를 고민하던 시기에 영화 수입 이야기가 나왔고,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해 칸으로 향했다. 그날부터 내게 중요했던 질문은 ‘이 영화가 한국에서 얼마나 많은 관객을 모을까?’ 같은 흥행 여부가 아니었다. 영화를 직접 발굴하고, 수입하고, 개봉까지 이어지는 전 과정을 내 손으로 경험해 보고 싶었다. 그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큰 자극과 배움이 될 거라고 확신했다.
삶의 동력을 찾으러 간 칸영화제에서 운명처럼 한 작품을 발견했고, 국내 개봉까지 이끌었다. 그 영화가 <너바나 더 밴드: 전설적 밴드 ‘너바나’와는 별 관련 없는 ‘너바나 더 밴드’의 콤비 맷과 제이. 어느 날 공연을 위해 타임머신을 만드는 황당한 작전을 세우고 처음 만났던 17년 전으로 돌>)(이하 <너바나 더 밴드>)다.
어떤 답을 찾으려던 건 아니었는데, 이상하게도 이 영화가 앞서 말한 고민에 명확한 답을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GV(Guest Visit)에서도 자주 이야기했지만 첫 장면에서 이 영화를 사랑하게 됐다. 낮은 해상도의 캠코더로 ‘땅땅땅땅!’ 찍은 듯, 흔들리는 촬영 방식을 그대로 살린 점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주인공 ‘맷 존슨’과 ‘제이 맥캐럴’이 꿈의 무대인 리볼리 극장에 서기 위해 스카이다이빙으로 스카이 돔에 침입하려는 작전을 실행하는 장면에서 무릎을 쳤다. CN 타워에서 낙하하는 순간 마이크 연결이 끊어진 것처럼 처리한 사운드 연출을 보고 ‘결말이 어떻든 이 영화는 한국에 꼭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결말마저 좋더라. 정량적 판단보다 혹여나 사람들이 이 영화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크게 상처받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무언가가 성공할 것 같아서’라기보다 ‘실패해도 괜찮겠다’는 마음이 들 때 함께하기로 결심하는 편이다.
<너바나 더 밴드>는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 캐나다 스크린 어워즈에서 6관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수상 소식은 수입을 결정하기 전에 들었나
수입을 확정한 이후에 들었다. 오히려 내가 ‘그냥 재미있는 영화라서 좋다’고 생각했던 게 민망할 정도였다. 영화제들은 이미 이 작품의 가치를 알아본 셈이니까. 덕분에 스스로 품고 있던 일말의 의심도 덜 수 있었다.
수입한 영화가 상을 받고, 국내 관객을 만나고, 호평받는 과정을 겪으면 영화를 ‘자식’처럼 느낄 것 같다
처음에는 영화 수입을 ‘책임 없는 쾌락’처럼 생각했다(웃음). 영화를 직접 만들고 연출하는 일이 자식을 낳는 것과 같다면, 수입은 조카와 놀아주는 것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고, 그저 이 영화의 좋은 점을 발견하고 사람들에게 소개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막상 개봉 과정을 함께하다 보니 생각보다 깊이 감정이 개입되더라. 내 자아의 일부를 많이 의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영화의 어떤 부분에서 ‘자아’를 느꼈나
사춘기 때 친구나 부모님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못해 후회한 경험이 많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의 연기 톤에 공감했다. 특히 제이가 맷에게 “사실 널 떠나려고 했었다”고 고백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만약 맷이 “그럴 수 있지. 그래도 우리는 영원한 친구야”라고 받아들였다면 평범한 장면이 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맷은 당황하고, 난감해하며, 허공에 주먹질을 한다. 나는 그런 어설프고 민망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 태도가 좋다. 인물들은 찌질하지만 그 솔직함 덕분에 작품이 더 멋있어진다. <너바나 더 밴드>는 끝까지 멋있어 보이려 하지 않기 때문에 더 멋있는 영화다.
수입부터 개봉까지 그린나래미디어와 함께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영화 기자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그린나래미디어를 추천해 줬다. 나 역시 규모는 크지 않더라도 오랫동안 독립· 예술영화와 호흡한 경험과 실력을 갖춘 회사를 찾고 있었다. 예술영화를 꾸준히 수입해 온 그린나래미디어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고, 우리 생각을 편견 없이 들어줬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유튜브를 하는 사람들이 영화를 수입한다면 ‘쉽게 생각하는 것 아닐까’ ‘왜 굳이 하려는 걸까?’ 같은 선입견이 생길 수도 있지 않나. 그런 시선 없이 프로젝트를 진지하게 봐줬고, 덕분에 지금까지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칸영화제에 참석했던 날로 돌아가보자. 영화산업의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그곳에서 영화 외에 발견한 것은 무엇인가
음악에서는 장르가 다양화돼도 해당 장르끼리 우열을 가리는 시선은 많이 사라진 것 같다. 그러나 영상 분야에서는 아직도 영화가 가장 높은 단계에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나 역시 그런 시선을 내면화하고 있었고, 칸영화제에서도 비슷한 인식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칸영화제는 관객 수나 제작비보다 작품 자체를 중심에 두는 영화제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나는 오히려 위축됐다. 상업적인 규모 앞에서 기가 죽는다는 뜻이 아니라, 그런 기준과 무관하게 자신의 작품을 밀고 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기가 죽었달까.
작품과 함께하는 여정에서 다양한 해외 필름 마켓을 경험하며 해외영화산업의 현주소와 분위기를 파악했을 것 같다. 우리나라와 차이가 있던가
미국에서 AI가 대본을 수정하는 문제로 작가조합 파업이 있었고, OTT를 영화와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있느냐를 두고 논쟁이 있었다. 결국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미국도 뉴미디어와 레거시 미디어가 공존했고, 뉴미디어 안에서도 유튜브, 인플루언서, OTT 등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니까. 다만 칸영화제에서 느낀 건 생각보다 서구권이 변화에 신중하다는 점이었다. 칸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세스 로건’의 코미디 시리즈 <더 스튜디오>를 봤는데, 극중 오스카 시상식 레드 카펫에 유튜버들이 셀프 캠을 들고 몰려오는 장면이 나오고, 세스 로건이 지나가는 그들을 콕 짚어 언급한다. 기존 영화산업이 새롭게 유입된 미디어와 세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담긴 장면이다. 이를 보며 지금 영화산업은 한쪽으로 정리된 상태가 아니라, 여러 가치관과 방식이 뒤섞여 있는 과도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빠더너스’ 또한 혼재된 상황 한가운데 있는 건 아닐까. 유튜브 영상 크리에이터이기도 하지만 레거시 미디어인 영화산업에도 발을 걸치게 됐으니 말이다
이런 시기일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부담이나 두려움보다 이 파도를 어떻게 재미있게 탈 수 있을지 고민하는 중이다. 우리는 영화산업의 기존 문법 안에서 성장한 팀이라기보다 새롭게 들어온 사람에 가까우니까. 칸에서도 그런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영화 전문 매체 기자들이 스마트폰과 작은 마이크로 실시간 SNS 콘텐츠를 올리는 동시에, 여전히 턱시도를 입어야 입장 가능하다는 전통 규칙도 존재하더라. 턱시도를 입고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셀프 캠을 들고 영상을 찍고 있는 아이러니한 모습. 전통 방식과 새로운 방식이 혼재하는 곳. 처음 칸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그 모든 모습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 무얼 떠올리나
감정인 것 같다. ‘이 인물은 이후에 어떻게 살았을까?’ ‘지금은 뭘 하고 있을까?’ 같은 생각을 하는 편이다. 최근 <아는 여자>를 다시 봤는데, 영화를 다 보고도 ‘동치성은 지금 잘 지내고 있을까?’ 하며 이후를 상상했는데, 이런 상상을 남기지 못하는 영화는 조금 아쉽다.
영화 연출에 대한 꿈도 있나
절대 하고 싶지 않은 건 아니지만 지금은 카메라 뒤보다 앞에 서는 일이 더 재미있다. 구현해 보고 싶은 아이디어가 생기면 직접 연기하고 촬영하는 방식이 훨씬 빠르고 즉각적이어서 아직 그런 방식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빠더너스’ 채널의 콘텐츠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에서 상대방의 취향을 파악해 선물을 하고, 취향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영화를 추천할 때는 어떤 기준을 세우나
뒷맛이 오래 남는 영화. 만두를 먹고 난 뒤에도 입 안에 맛이 남아 있듯이 말이다. 특히 한 번 볼때보다 두 번, 세 번 볼 때 더 재미있는 작품에 끌린다. 처음에는 웃겼다가, 두 번째는 슬펐다, 세번째에는 무섭게 느껴지는 영화가 있듯이 말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종종 영화 속 장면으로 자신의 인생을 기억하곤 한다. 지금 인생의 챕터에 기록하고 싶은 영화는
최근 가장 큰 영향을 준 영화는<족구왕>이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태도, 남들이 후지다 해도 ‘그래도 나는 좋은 걸 어떡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작품이다.
당신에게 영화는 어떤 존재인가
두 시간 동안 나와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주고받는 대화 상대.
앞으로 영화와 관련한 다채로운 프로젝트를 기대해도 될까
<너바나 더 밴드> 성적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웃음). 지금도 충분히 감사한 결과를 얻고 있지만, 졸업하는 것과 우수상을 받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니까. 이번 경험이 단 한 번의 도전으로 끝날 수도 있고, 또 다른 시작이 될 수도 있다.
Credit
- 에디터 정소진
- 사진가 김민석
- 아트 디자이너 김민정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엘르 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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