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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츠칼튼 방콕에서 맛본 조용한 럭셔리 여행

더 리츠칼튼 방콕은 새로운 도시의 속도 위에 오래된 방콕의 감각을 조용히 포개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공원의 녹음과 예술 작품 그리고 조용한 럭셔리 사이에서.

프로필 by 채은미 2026.05.18

한밤중에 도착한 20년 만의 방콕은 생각보다 낯설었다. 밤 비행 특유의 무거운 피로감을 끌어안은 채 더 리츠-칼튼 방콕(The Ritz-Carlton, Bangkok)에 체크인하고, 메리골드 스위트(Marigold Suite)의 문을 열었다. 불을 끈 객실은 어둠보다 도시의 빛으로 채워져 있었다. 통창 너머 마천루의 불빛이 방 안까지 들어와, 공중에 떠 있는 다른 세계에 들어온 듯했다.


 룸피니 공원의 녹음과 호수, 멀리 마천루의 풍경을 품은 메리골드 스위트의 욕실.

룸피니 공원의 녹음과 호수, 멀리 마천루의 풍경을 품은 메리골드 스위트의 욕실.

짐도 풀지 못한 채 욕조에 물을 받았다. 멀리 반짝이는 도시를 바라보며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니, 흐트러졌던 컨디션이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방콕의 밤은 여전히 뜨거웠지만, 마음은 이상할 만큼 고요했다. 결국 새벽이 한참 지나서 잠이 들었다. 방콕은 늘 새로운 호텔이 생겨나는 도시다. 하지만 이곳은 ‘새로운 럭셔리 호텔’이라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 호텔은 동남아 최대 규모의 복합 개발 프로젝트 ‘원 방콕(One Bangkok)’ 안에 자리하면서 도시 속도보다 방콕이라는 장소가 지닌 오래된 결에 더 집중한다. 체크인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 로비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빌딩숲이 아니라 룸피니 공원의 녹음과 호수다. 뉴욕의 센트럴 파크를 닮았다는 설명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방콕 사람들은 지금도 여기서 조깅하고, 태극권을 연마하고, 천천히 하루를 보낸다. 호텔은 의도적으로 그런 풍경을 가장 먼저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아침이면 자연스럽게 룸피니 공원으로 발걸음이 향한다. 조깅하고, 산책 나온 강아지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방콕의 느린 리듬에 몸을 맡겼다.


삼시 세끼와 애프터눈 티세트, 각종 디저트와 음료가 제공되는 클럽 라운지에는 별도의 회의실까지 마련돼 있다.

삼시 세끼와 애프터눈 티세트, 각종 디저트와 음료가 제공되는 클럽 라운지에는 별도의 회의실까지 마련돼 있다.

로비 중앙의 ‘릴리 폰드’설치미술 작품.

로비 중앙의 ‘릴리 폰드’설치미술 작품.

더 리츠-칼튼 방콕의 디자인은 라마 5세 시대의 ‘타이 노블 하우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태국이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던 시기의 건축양식을 반영해, 호텔 곳곳에는 아치 구조와 콜로니얼 스타일의 디테일이 반복된다. 로비 중앙의 ‘릴리 폰드(Lily Pond)’ 설치미술 작품 역시 손님을 연못으로 맞이하던 태국 전통 환대 문화에서 영감을 얻었다. 객실과 레스토랑, 웰니스 시설 역시 과장된 화려함보다 ‘머무는 감각’에 집중한다. 잠시 스쳐 가는 여행자보다, 이곳의 시간을 천천히 누리려는 사람을 위한 공간에 가깝다.


올데이 다이닝 레스토랑 ‘릴리스(Lily’s)’는 태국 음식과 웨스턴 메뉴를 함께 선보이며 방콕 최고의 조식 중 하나로 회자된다. 워크 스테이션 형태의 오픈 키친과 공간마다 달라지는 인테리어 덕분에 하나의 거대한 레스토랑이라기보다 작은 미식 도시를 걷는 느낌이다. 낮 동안 애프터눈 티와 커피를 내던 바 ‘칼레오(Cale)’는 저녁이 되면 시그너처 칵테일 바로 변신한다. 오후 6시, 해 질 녁의 테라스에서 펼쳐지는 짧은 전통 세레모니는 이 호텔이 가진 태국적 리듬을 조용히 드러낸다. 미식 역시 이 호텔의 중요한 축이다.


프랑스 요리를 기반으로 일본식 조리법과 아시아의 재료를 버무려 내는 레스토랑 ‘듀엣’.

프랑스 요리를 기반으로 일본식 조리법과 아시아의 재료를 버무려 내는 레스토랑 ‘듀엣’.

프랑스 레스토랑 ‘듀엣(Duet)’은 이름처럼 두 개의 시선이 만나는 공간이다. 파리 기반의 셰프 ‘데이비드 투탱(David Toutain)’의 비전과 방콕 현지 헤드 셰프 ‘발랑탱 푸아슈(Valentin Fouache)’의 감각이 더해지고, 프랑스 퀴진의 구조 위에 여행의 기억과 아시아 재료가 섬세하게 겹쳐진다.


메뉴는 오픈 이후 좋은 반응을 얻은 시그너처 메뉴 위주로 짜여 있다. 특히 일본식 빈초탄 방식으로 천천히 익힌 노르망디산 스캘럽은 ‘듀엣’을 대표하는 메뉴다. 부드러운 가리비에 콜리플라워 퓌레와 XO 소스를 더해 담백하면서도 깊은 풍미를 끌어낸다. 브리타니 블루 로브스터 역시 인상적이다. 로브스터 비스크를 섞은 사바용 소스와 채소를 곁들여 해산물 특유의 진한 단맛을 섬세하게 살렸다. 프랑스 요리를 기반으로 일본식 조리법과 아시아의 감각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듀엣’의 요리는 방콕의 새로운 우아함을 가장 맛있게 보여준다.


이 호텔이 특별한 건 객실 안의 럭셔리뿐이 아니다. ‘원 방콕’ 전체를 아우르는 아트 작품들은 이곳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호텔과 쇼핑몰, 오피스 빌딩 사이를 걷다 보면 거대한 조각과 설치미술 작품이 도시 풍경처럼 등장한다. 토니 크레그(Tony Cragg)의 대형 조각 작품은 보는 각도에 따라 사람의 실루엣처럼 보이고, 아니시 카푸어(Anish Kapoor)의 반사 조형물은 하늘과 건물, 사람의 움직임까지 작품으로 끌어들인다. 반사되는 표면 위로 하늘과 빌딩, 사람의 움직임이 겹쳐지며 도시 전체가 하나의 설치미술 작품처럼 느껴진다.


‘원 방콕’ 프로젝트의 아트 피스. 토니 크레그의 대형 조각 작품 ‘It Is, It Isn’t’ (2003~2004).

‘원 방콕’ 프로젝트의 아트 피스. 토니 크레그의 대형 조각 작품 ‘It Is, It Isn’t’ (2003~2004).

아트 투어의 대미를 장식한 곳은 ‘와이어리스 하우스(Wireless House)’였다. 호텔 앞 도로명이 왜 ‘와이어리스 로드(Wireless Road)’인지 설명해 주는 작은 박물관이다. 약 100년 전, 태국 최초의 무선 전신국이 있었던 장소를 복원한 공간으로, 당시 방콕에서 남부 지방과 베를린까지 무선 신호를 보내던 기록과 건물의 일부가 보존돼 있다. 초현대적 개발 프로젝트 한가운데서 오래된 통신 기술의 흔적과 마주한 경험은 묘하게 인상적이었다.


돌아오는 날, 룸피니 공원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방콕은 여전히 빠르고 뜨거운 도시지만 그 속에도 천천히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이 존재한다는 걸. 더 리츠-칼튼 방콕은 어쩌면, 그 느린 리듬을 발견하게 만드는 장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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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채은미
  • 아트 디자이너 강연수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 COURTESY OF THE RITZ-CARL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