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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구', 홍콩이 꾼 아름답고 지독했던 꿈

'연지구'의 주연은 실제로 절친이던 장국영과 매염방이 맡았으며, 두 전설적 배우는 같은 해에 숨을 거뒀다.

프로필 by 라효진 2026.03.23

홍콩은 한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였다. 그 아름다움이 특별했던 건 역설적으로 위태로움 때문이었다. 크고 작은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매번 주인이 바뀐 이곳에는 국경을 인접하지 않은 유럽의 문화까지 섞였다. 무질서와 혼란 속에서 찾은 정체성은 이내 스러진다는 걸 알면서도 화려의 정점으로 온몸을 불태우는 불꽃처럼 보인다.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파멸을 담담히 기다리는 무력한 불안감은 특히 홍콩 영화의 미학에도 스몄다. 그리고 액션과 코미디의 범람 사이 꿋꿋하게도 치명적인 로맨스를 담은 영화 <연지구>는 이 '홍콩다움'의 정수다.


영화 <연지구 디 오리지널 4K>

영화 <연지구 디 오리지널 4K>


작품은 1934년, 홍콩 당대 최고의 기방 의흥루에서 출발한다. 아편전쟁 이후 영국령 자유무역항이 된 지 약 100년, 도시에 넘치던 눈 먼 돈이 낭만을 좇아 환락가로 흐르는 시절이었다. 약재 무역상의 둘째 아들 진방(장국영)도 하루가 머다하고 기방을 들락거리던 한량이다. 그는 우연히 찾은 의흥루에서 남장을 하고 노래를 부르던 기생 여화(매염방)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진방의 열렬한 구애 끝에 여화는 마음을 열고, 두 사람은 계층의 장벽을 넘은 사랑에 취한다.


영화 <연지구 디 오리지널 4K>

영화 <연지구 디 오리지널 4K>


영화의 시점이 갑자기 1987년의 한 신문사로 바뀐다. 늦은 밤까지 당직을 하던 아정(만자량) 앞에 한참 옛날 옷차림을 한 여인이 신문에 사람 찾는 광고를 싣고 싶다며 나타난다. "도련님과 꼭 만나야 한다"며 뜻모를 소리를 하는 이 여인은 여화다. 아정은 가장 큰 광고를 내 달라고 했다가 다시 돈이 없다며 기척도 없이 사라지는 여화가 점점 두려워진다. 급기야는 퇴근 후에도 가는 곳마다 나타나는 여화를 귀신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버스에 올라 1987년의 홍콩 시내를 보며 "너무 변해서 알아볼 수 없다"고 한탄하던 여화는 결국 자신이 저승에서 왔음을 털어 놓는다.


이어 여화는 아정에게 도움을 청하며 사정을 고백한다. 여화는 부모님의 반대로 이루어질 수 없게 된 진방과 '저승에서 만나자'며 동반 자살을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연인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족과 정혼자를 등지고 모든 것을 잃은 진방이 빈 주머니를 털어 사준 연지구 목걸이는 50년 넘게 품어 온 사랑의 정표다. 딱 7일 동안만 이승에 머물 수 있는 여화의 사연에, 아정은 연인 아초(주보의)까지 동원한다. 홍콩의 거의 모든 신문에 광고를 내고, 진방과 여화의 기록을 수소문한다.


영화 <연지구 디 오리지널 4K>

영화 <연지구 디 오리지널 4K>


여화의 너무나도 강렬한 사랑 앞에서, 아정과 아초는 서로를 향한 애정을 초라하게 느낀다. 이 과정에서 아정이 아초와 나누는 대화는 상징적이다. 진방과 여화처럼 나와 같이 죽을 수 있냐고 묻는 아초에게 아정은 "아니, 넌?"이라고 반문한다. 그러자 아초도 "나도"라고 동조한다. 연화는 곧 스러질 걸 알면서도 한계까지 온몸을 부풀리는 불꽃이었다. 그를 바라보는 아정과 아초는 다시 무모한 사랑의 시대가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본능적으로 뜨거움을 동경하고 만다. 하지만 이내 허망한 끝이 결정된 아름다움에 투신할 수 없는 자신들을 직시하고, 또 인정한다. 어쩌면 중국에 반환될 날을 받아 둔 1980년대 말의 홍콩을 바라보는 당시 홍콩인의 심경과도 닮은 모양일 것이다.


약 40년 동안 한국 미개봉작으로 남아 있던 <연지구>에서 탄탄한 각본 만큼 매력적인 건 매염방의 연기다. 1934년과 1987년의 여화를 전혀 다른 인물로 보이게 하는 천연덕스러움은 장국영의 존재감도 능가한다. 또 홍콩 연예계의 거목이자 사적으로도 절친했던 장국영과 매염방이 한날한시에 죽음을 택했다는 설정과 두 배우가 2003년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났다는 서사의 공교로운 맞물림이 영화를 더 애틋하게 만든다. 2026년판 <연지구>는 오역을 바로 잡고 4K 리마스터링으로 복원된 버전이다. 2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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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라효진
  • 사진 와이드릴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