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에서 온 소우주 빈티지 그릇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인간 못지않게 많은 이야기를 지니고 우리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그릇들. 그녀의 그릇은 각자 그 자체로 하나의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 도자기,옛스런,화려한,아름다운,빈티지,엘르,엘라서울,엣진,elle.co.kr :: | :: 도자기,옛스런,화려한,아름다운,빈티지

1 곱게 나이 든 그릇들. 한때 지구 저편 누군가에게서 사랑 듬뿍 받았을 듯.2 스웨덴 출신의 데미타스 한 쌍. 왕실 도예제작소였던 ‘로스트란드’ 제품.3 카이 프랑크가 디자인한 법랑 볼 세트.4 피넬의 법랑 티포트. 카이 프랑크의 디자인.5 노르웨이에서 온 캐서린홀름 법랑 팬.물건 사용법에 따라 인간을 분류한다면 이 두 가지일 것이다. 그 존재 의미에서 하늘을 우러러 한 치의 벗어남 없이 물건을 사용하는 종족, 그리고 다른 이의 정신세계로는 이해 못할 자신만의 특별한 의미를 각각의 물건에 부여하는 종족. 특정 아이템에 ‘버닝’해 한두 개만 있어도 될 법한 물건을 기꺼이 덜 먹고 덜 입으며 모으는 이들은 십중팔구 후자다. 북유럽 빈티지 그릇을 수집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김연화도 마찬가지. “저와 관련 있는 그릇을 많이 사는 편이에요. 제가 태어난 해에 만들어진 것, 연꽃이나 물고기 무늬가 그려진 것. 제 이름이 ‘연꽃’이고 별자리가 물고기자리거든요. 하나하나 애정이 각별할 수밖에 없어요.” 그릇에 대한 관심은 토털 인테리어 회사에서 일하면서 생겼다. 본격적인 시작은 출장길 짐가방에 넣고 다니기 수월한 작은 커피잔 ‘데미타스’. 하지만 10년 전 그 시절부터 북유럽 빈티지 그릇만 수집한 건 아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예쁜 걸 사는 건 ‘초짜’ 때만 누릴 수 있는 특권 아닌가. 북유럽 그릇에 코가 꿴 건 ‘아라비아 핀란드’라는 브랜드의 데미타스를 산 뒤였다. “1960~70년대 북유럽 그릇은 자연에서 얻은 모티브를 간결하게 표현한 게, 최근 제품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모던하고 감각적이죠. 손맛도 있고, 가볍고 튼튼하고. 요즘 꽂혀 있는 건 스웨덴의 ‘구스타프베리’ 제품. ‘로얄 코펜하겐’에서 매년 시즌마다 나오는 크리스마스 플레이트는 천천히 모으는 중이에요.” 6 카페 데미타스에 빼곡하게 자리 잡은 빈티지 그릇.7 구스타프베리의 아담스 시리즈. 스티그 린드버그의 디자인.8 아라비아 핀란드의 연꽃 무늬 데미타스.9 이렇게 선명한 푸른색은 찾기 힘들단다. 아라비아 핀란드.컬렉션이 불어났고, 창고가 좁아졌다. 물음표가 튀어나왔다. 아무리 끼니 때마다 밥을 퍼 담고 뽀득뽀득 광날 때까지 설거지해가며 쓰려던 건 아니라지만 그릇으로 탑을 쌓아 묵은지처럼 묵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부암동의 한 적산가옥 2층, 삐걱대는 계단 위의 다락방 같은 공간을 발견하자 그릇들을 풀어놓고 팔기로 했다. 그녀의 카페 ‘데미타스’에는 30~50년 전 지구 반대편에서 태어난 그릇들이 나름의 질서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 빼곡함과 정연함이라니. 아무도 없는 밤마다 그릇들이 바삭바삭 일어나 말을 하고 춤을 추며 시간의 틈새에 그들만의 세상을 열고 있는지도 몰랐다. 아라비아 핀란드의 푸른 선을 가늘게 두른 도미노 시리즈 포트, 그녀가 좋아하는 디자이너 스티그 린드버그의 프룬 무늬 데미타스. 살아낸 시간만큼 축적된 쓰임의 흔적들이 눈에 띈다. 발품 팔아 만난 소중한 인연들을 떠나보내기가 아쉬울 법도 했다. “ 인연이라는 게 사람이나 그릇이나 비슷해요. 인연이 되면 헬싱키의 세컨드핸드숍에서 샀던 걸 코펜하겐 플리마켓에서 다시 만날 수도 있죠. 북유럽에서 제일 좋았던 건 세컨드핸드숍과 플리마켓 문화예요. 헬싱키 플리마켓에 부모님 손잡고 온 아이들이 아기 때 쓰던 그릇을 판다든가, 손주가 돌아가신 할머니가 쓰시던 그릇들을 갖고 나왔다든가 하는. 내 손을 거친 이 그릇이 이제는 누구에게 가게 될지가 궁금하죠.” 오래된 그릇 각자가 제각기 다른 사연을 담아가는 것, 그렇게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들을 이어주기도 하는 것. 그게 빈티지 그릇이다. 그래서 그녀는 오늘도 북유럽 이야기와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겠다는 듯 입술 달싹이는 그릇들에 귀를 기울이며 먼지를 떨어낸다. 자신과의 추억을 한 겹 덧입은 그릇이 그 가치를 알아보는 이를 만나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가길 기다리면서. * 자세한 내용은 엘라서울 본지 4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