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2026 봄여름 오트 쿠튀르 최고의 명장면 다시보기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의 쿠튀르 데뷔, 자연에서 출발한 상상력 그리고 극적으로 진화한 무대 연출까지. 2026 봄여름 오트 쿠튀르는 ‘유산’을 미래의 언어로 쓰며 쿠튀르의 다음 챕터를 열었다.

프로필 by 이하얀 2026.02.23

동화 속 이야기

샤넬은 버섯 모양의 펜던트를 인비테이션으로 보냈다. 버섯 뚜껑을 열어보니 작은 새가 앉아 있었다. 버섯과 새. 이 두 가지 힌트는 마티유 블라지의 첫 쿠튀르 쇼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그랑 팔레는 ‘꿈과 희망이 가득한’ 놀이공원 같았다. 모델들은 당장이라도 하늘을 날 것처럼 가볍고 시어한 그리고 더없이 정교한 룩을 입고 이 원더랜드를 거닐었다. 마티유 블라지가 초대하고 싶은 샤넬의 원더랜드는 이런 모습이었나?




꽉 잡아요! (Feat. 런웨이에서 행거 무너진 썰 푼다)

이마네 아이시의 쇼장 한쪽 벽에는 가지런히 걸린 컬렉션 룩 옆으로 테일러와 가운 차림의 모델들이 서 있었다. 모델들은 테일러와 함께 옷을 갈아입고 그대로 런웨이에 올랐다. 묵직한 옷 부피에 짓눌려 위태롭게 버티던 행거는 결국 힘을 잃고 쓰러졌다. 다행히도 쇼는 무사히 끝났다.




나 완전히 새 됐어

스키아파렐리의 모델들은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것도 인간과 새의 경계에 머문, 극도로 사실적인 새의 형상으로 말이다. 촘촘한 깃털이 드레스와 재킷 위를 뒤덮었고, 새의 발톱은 가슴과 등에서 튀어나왔다. 기괴하면서도 아름다운, 초현실적인 새 무리의 향연.




날아올라

예상치 못한 순간이 비일비재한 쿠튀르 패션위크. 이번 시즌에는 하늘을 날아오르는 두 모델을 볼 수 있었다. 서커스장에서 쇼를 선보인 스테판 롤랑. 쇼 말미에 생긴 런웨이 중앙 구멍에서 새와 함께 성스러운 드레스를 입은 모델이 하늘로 승천! 마치 공중곡예를 하듯이 드레스 자락을 나부꼈다. 하나둘 드레스 해체와 조립을 거듭하던 빅터 앤 롤프까지 마지막에 연이 되어 훨훨 날아올랐다.




2026 봄여름 오트 쿠튀르 시즌은 분명 전환의 순간 위에 서 있었다.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의 첫 무대가 잇따르며 쿠튀르는 다시 한 번 장인 정신을 확인할 수 있는 ‘유산’과 ‘미래를 향한 전환’ 사이에서 긴장감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장이 됐다. 꽃과 새의 깃털, 물결과 광물처럼 자연에서 출발한 상상력, 이를 극대화하는 무대 연출 그리고 어느 때보다 정교해진 장인의 손길까지. 이번 시즌은 쿠튀르가 여전히 패션 신에서 가장 느리게 만들어지지만 가장 앞서나가는 영역임을 증명한 셈.


그 중심에는 조나단 앤더슨과 마티유 블라지의 데뷔 무대가 있었다. 디올과 샤넬이라는 상징적 하우스에서 각각 첫 쿠튀르 쇼를 선보인 두 디자이너는 ‘유산’을 반복하는 대신, 이를 미래의 언어로 번역하는 길을 선택했다. 디올의 조나단 앤더슨은 특유의 조형적 실루엣으로 새로운 쿠튀르 어휘를 구축했다. 반면 샤넬의 마티유 블라지는 투명한 소재와 가벼운 구조를 전면에 내세워 보다 유연하고 현대적 우아함을 제안했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풀 장식과 동화 속 풍경을 연상시키는 버섯 오브제가 그랑 팔레를 채운 장면은 쿠튀르가 환상과 기술을 동시에 품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데뷔 무대가 방향을 제시했다면, 그 밀도를 한층 끌어올린 건 기존 하우스들의 압도적인 완성도. 가우라브 굽타는 신체를 따라 흐르는 조각 같은 곡선으로 인체와 조형 예술의 경계를 허물었고, 스키아파렐리는 초현실적 장식과 과감한 볼륨으로 패션과 퍼포먼스 사이를 오갔다. 한 벌 한 벌이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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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이하얀 · 김명민
  • 일러스트레이터 PAUL RHEE
  • 아트 디자이너 김민정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