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Y

샤넬 향수를 만드는 조향사에게 원료를 캐묻다

샤넬 조향사 올리비에 뽈쥬와의 만남.

프로필 by 김선영 2025.10.30
샤넬 하우스 조향사 올리비에 뽈쥬.

샤넬 하우스 조향사 올리비에 뽈쥬.


샤넬은 오래전부터 그라스에서 향수의 메인 원료를 재배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것은 전통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샤넬 N°5가 탄생했던 당시의 방식을 수호하는 것이죠. 샤넬의 모든 크리에이션을 뒷받침하는 장인 정신은 샤넬 하우스에 몸담은 이들이 더 많은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샤넬 향수 100년 역사 속에서 변하지 않은 것과 진화를 거듭해 온 것을 하나씩 꼽는다면

저는 전통이나 유산이라는 단어보다 ‘스타일’인 것 같습니다. 스타일을 지켜 나간다는 건 살아 숨 쉬는 장인 정신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샤넬 향수 제작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은 본인의 자리에서 변함없는 장인 정신으로 하나의 스타일을 이어 가고 있어요. 변화와 관련해서는 샤넬이 그라스 농장 근처에 공장을 세우고 새로운 추출법을 개선하거나 창조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는 부분을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공정을 개선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라스에서 자라는 원료들의 특별함은 무엇인가요

샤넬의 그라스 농장만큼 규모가 큰 향수 원료 재배지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쟈스민은 굉장히 희귀하고 수확하기 힘든 원료예요. 샤넬 N°5 빠르펭에는 이 귀한 그라스 쟈스민이 집중적으로 들어갑니다. 물론 이집트와 인도의 쟈스민도 훌륭하지만, 그라스에서 자라난 쟈스민 특유의 향이 있어요. 더 좋다기보다 ‘다른 결의 향’을 가지고 있는 거죠.


그라스산 쟈스민을 주원료로 탄생한 샤넬 N°5 빠르펭.

그라스산 쟈스민을 주원료로 탄생한 샤넬 N°5 빠르펭.


최근 기후 위기나 재배 환경의 변화가 그라스에서 생산되는 원료에도 영향을 주지 않나요

다행히도 이곳은 기후가 온난하지요. 문제는 겨울에도 기온이 충분히 내려가지 않는다는 거예요. 장미나무는 기온 차와 같이 명쾌한 ‘시그널’이 필요한데, 충분히 춥지도 덥지도 않아 꽃 수확률이 떨어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전과 동일한 양의 장미를 수확할 수 있도록 재배 영역을 확장하고 다시 심는 과정(Replanting)을 거치는 중이에요. 변화에 직면한 상황이라 직간접적으로 함께 일하는 모든 농장주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기 위한 방식을 제안하고 있어요. 살충제 없이 재배하고, 기계도 덜 사용해 글로벌 온난화의 확장을 예방할 수 있도록 말이죠.


다양한 향수 컬렉션에서 샤넬만이 지닌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노트나 원료가 있다면

샤넬 향수의 아이덴티티는 한 원료와 직결되는 문제는 아닙니다. 그러나 샤넬 향수를 이루는 중요한 원료들이 분명히 있고,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원료는 쟈스민이라고 생각해요.


그라스에서 나는 원료 중 앞으로 샤넬 향수에 접목하고 싶은 원료가 있다면

향수 세계에서 새로운 원료를 발견하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제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부분은 이미 저희에게 알려진 원료를 새로운 방법으로 추출하는 거예요. 그렇게 원료의 새로운 특성을 이용하면 완전히 다른 창작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거든요. 그래서 농장 옆에 공장이 있는 게 중요해요.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원료가 지닌 미지의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샤넬 향수에 들어가는 주요 원료의 향.

샤넬 향수에 들어가는 주요 원료의 향.


원료를 향수로 탄생시킬 때, 조향사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새로운 향수와 기존의 향수가 공명해야 한다는 거예요. 물론 거기엔 창조 정신이 더해져야 하죠. 제가 추구하는 건 원료의 조합, 그 이상의 구성(Composition)을 만드는 겁니다. 원료를 뛰어넘어 스타일과 개성을 표현하는 향수, 그에 상응하는 감정을 표현하는 향수야말로 제가 만드는 샤넬 향수의 본질이죠.


이번 트립에서는 원료가 샤넬 향수로 탄생하는 여정을 함께하는 55인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조향사는 이들을 이끄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은 존재로 보면 될까요

그렇게 불린다면 영광이겠네요(웃음). 한 병의 샤넬 향수를 만들기 위해 상이한 배경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리듬으로 움직여야 해요. 예기치 못했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사슬처럼 향수를 만드는 전 과정에 연결되는 거죠.


샤넬 향수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가 있다면

향수는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에요. 그것은 본능에 가깝고, 당신의 개성과 맞닿아 있죠. 향수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이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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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김선영
  •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
  • 디지털 디자이너 정혜림
  • COURTESY OF CHAN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