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상사'가 단순한 '레트로 갬성' 드라마가 아닌 이유
1997년 청춘이 2025 청춘에게. 그 시절과 지금의 경제 위기를 비교하며 버티고 이겨낼 힘에 대한 힌트를 제시하는 '태풍상사'의 매력 포인트 짚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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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4회까지 방영된 tvN 드라마 <태풍상사>는 1997년, 부도난 회사를 지키려는 청춘들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맞이한 경제 위기는 전 국민이 동시에 체감하던 단어였죠. 그 시절 청춘들이 건네는 눈빛과 대사가 2025년 일터의 청춘에게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뭘까요? 레트로 열풍을 타고 시대물 드라마나 영화가 많이 등장하지만 모두가 성공가도를 달리는 것은 아닌데 말이죠. <태풍상사>가 단순히 레트로 감성 드라마로 그치지 않고 극 초반부터 대세 드라마로 각인될 수 있었던 이유.
부도난 회사? 하지만 우리는 버틴다.
<태풍상사>는 4화 시청률 9.8%(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기록하며 자체 최고를 경신했습니다. IMF 위기라는 절망의 시간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던 이들의 이야기는 불안정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게 다가옵니다. 1997년, ‘경제 위기’는 전 국민이 동시에 체감하던 단어였죠. 하루 11시간 씩 일하면서도 구조조정의 불안에 시달렸고, 누군가는 월급 대신 상품권을 받았습니다. ‘모가지’가 붙어있으면 월급이 좀 밀려도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죠. 숱한 기업이 무너졌습니다. <태풍상사>의 인물들은 그 태풍 가운데서 절망 대신 유머로, 체념 대신 연대로 어려운 시기를 견뎌냅니다.
그 시절은 국가가 무너졌던 시대였다면, 지금은 개인이 버티는 시대. 경제의 위기 양상은 달라졌지만 위기 속에서도 꿋꿋하게 일하는 청춘의 모습은 여전히 현재형입니다. 당시엔 주판을 튕기는 빠른 손놀림과 암산 실력이 경쟁력이었다면 지금은 인공지능과 데이터를 다루는 능력이 그 자리를 대신하죠. 요즘의 강태풍들은 부도난 회사를 구하는 것보다 급변하는 세계 경제 시스템, 변해버린 노동의 가치, 예측 불가한 미래 속에서 자기 자신을 지켜내야 합니다. 평생직장이라 불리던 안정된 직업 개념은 사라져가고 ‘플랫폼 노동’과 ‘1인 비즈니스’가 일상의 풍경이 되었으니까요. 돈을 버는 방식이 빠르게 바뀌고, 자산 격차는 커졌으며, 인플레이션은 모든 계획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이런 현대 청춘에게 계속 펀치를 맞아도 다시 일어서는 잡초 같은 <태풍상사>의 직원들은 열정적으로 보낸 한 주를 마치고 돌아온 주말, 잔잔한 위로와 버틸 힘을 줍니다. “나라경제가 어려울 때가 있고, 힘들 때도 있는 거잖아요?” “중요한 건 흔들리지 않는 마음인 거 같그든요?” 서울 사투리를 능수능란하게 쓰는 오미선(김민하)의 대사처럼 말이죠.
강태풍이라는 이름의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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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매력도도 극의 몰입도를 높입니다. 이준호가 연기한 강태풍은 IMF 시대 청춘의 상징이죠. 압구정 거리를 주름잡던 오렌지족 상위 포식자로 등장해 브릿지 염색에 민소매 상의에 헐렁한 정장, 길게 늘어뜨린 목걸이 등 이른바 ‘솔리드 패션’을 선보였는데요. 묘하게 예스러우면서도 세련된 스타일링으로 지금 다시 따라해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킵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아버지 몰래 대형 온실을 가꾸며 왕자님 포스를 자랑하기도 했는데요. 내적 힘듦이 있을 때는 온실에서 꽃을 보며 자신의 미래를 꿈꾸고, 클론의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추며 꽃에 물을 주는 장면은 코믹하면서도 어려움 속에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 강인한 캐릭터로 웃음을 줬습니다. 이후 아버지의 죽음과 회사 부도를 동시에 맞이하며 한순간에 어른이 되지만 말이죠. 부모 세대의 실패를 떠안고 하루아침에 아들에서 가장의 책임을 짊어진 인물로, 패션 또한 그의 내적 심리 변화와 함께 룩도 완벽한 회사원, 상견례 프리패스 룩으로 전환됩니다. 하지만 캐릭터는 침잠하지 않아요. 진중하게 회사를 살릴 방도를 찾다가도 감성적이면서도 단단한 내면과 툭툭 튀어나오는 유머와 애교까지 장착한 ‘강아지 상’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냅니다. 팬들 사이에선 ‘본체가 강태풍’이라고 할 정도로 배우와도 잘 맞아떨어지죠.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디테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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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향수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미친 디테일도 관전포인트. 서울식 사투리를 쓰며 도심을 누비던 젊은이들, 커피-설탕-프림 순으로 둘- 하나-둘 혹은 둘-둘-셋. 손수 타서 나누던 믹스커피, 사무실 복사기 돌아가는 소리와 타자 소리, 그 시절 유행했던 글자 폰트까지.
당시 유행하던 짝짓기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들은 더 블루 ‘그대와 함께’ 김현정의 ‘그녀와의 이별’ 등의 히트곡을 부르고, 황규영 ‘나는 문제없어’를 시작으로 클론 ‘난’ 같은 노래가 고된 삶을 응원하는 응원가가 되어줍니다.
‘상사맨’이라는 상징적 직업을 다뤘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그 시절 상사맨은 우리나라 무역과 수출 산업의 최전선에서 일하던 인재들이었습니다. 국내 기업의 외화를 벌어들이고, 해외 시장을 개척하며, 능력 있는 청년의 대표격으로 여겨지던 직군. 지금으로 치면 글로벌 테크기업의 기획자나 스타트업 CEO처럼 시대를 움직이는 핵심 인재의 이미지였습니다. 그만큼 IMF 시대 상사맨의 몰락은 단순한 회사의 부도 이야기가 아니라, 한 세대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또 그 와중에 살아남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밟고, 속이며 법의 눈을 피해 저지르는 사기 행각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기도 했던 부분도 적나라하게 등장하죠.
지금 우리는 빠르고 효율적인 시스템 속에 살지만 이상하게도 더 불안하고 고립된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태풍상사> 속 사무실의 웃음소리와 사람 간의 관계성은 오히려 더 따뜻하게 들립니다.
<태풍상사>가 우리를 위로하는 방식은 단순합니다. 위기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이들이 있었고, 그 마음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 강태풍이 그랬듯, 오늘의 우리도 여전히 버티고 있습니다. 세상이 변했지만, 끝내 흔들리지 않는 마음 하나는 여전하다는 것. “나는 문제없어.” 오늘도 출근길에 이렇게 대뇌이며 <태풍상사>의 다음화를 기다리는 이유입니다.
Credit
- 글 이다영
- 사진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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