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안예은의 귀신노래

안예은의 노래에서 힘을 발휘하는 것들. 귀신과 억울한 자, 소외된 자 그리고 그럼에도 나아가는 사람들. 이들의 목소리가 무섭지만 통쾌하게 들리는 이유.

프로필 by 전혜진 2025.07.05

안예은의 계절이 찾아왔습니다. 이번 여름에도 ‘호러 송 프로젝트’는 계속되나요

7월 중순에 발매되는 여섯 번째 ‘귀신 노래’ 막바지 작업 중이에요. 오늘도 인터뷰 끝나고 녹음하러 가요. 겁이 많아 매년 녹음할 때마다 부적처럼 탱화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는데, 오늘은 실수로 안 입고 왔어요! 걱정입니다.


귀로 듣는 납량 특집으로 불리죠. 설화 속 인물이나 귀신을 화자로 내세운 이 음악 프로젝트는 2020년 ‘능소화’부터 2024년 ‘가위’까지 5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작이 궁금하네요

사극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 OST 작업을 통해 인연이 된 김진만 감독님과 우연히 밥 먹다가, 당시 오컬트영화 <사바하>에 꽂혀 있던 감독님이 문득 “너는 공포가 어디서 온다고 생각하니?”라고 묻더라고요. 갑작스러운 질문이라 모르겠다고 했는데 “소리에서 온다”고 하셨죠. 왠지 한 대 맞은 기분이었어요. 겁은 많지만 평소 호러물을 즐기는 데다 음악을 업으로 삼고 있음에도 ‘왜 진작 이런 생각을 못 했지?’ 싶을 정도로 큰 재미를 직감했습니다. 사람이 음악만으로도 공포를 느낄 수 있을지 궁금했어요. 감사하게도 점점 재미있게 들어주는 분들이 늘어나고, 주변 친구나 함께 음악 작업하는 팀도 시리즈로 이어가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여름에 예능 프로그램마다 납량 특집을 꾸리고 공포영화 보는 게 연례행사이던 시절도 있었잖아요. 그걸 음악 시리즈로 풀어본 거죠.


안예은, ‘창귀’ 리릭 비디오 캡처 화면.

안예은, ‘창귀’ 리릭 비디오 캡처 화면.

이번 노래는 유독 무섭다면서요

맞아요. 매번 작업하다 집에 가고 싶었습니다. 노래 느낌도 꽤 변했어요. 그간 귀신들은 ‘내 얘기 좀 들어봐!’ ‘나는 이런 귀신이야!’라고 말해 왔다면, 지난해에 가위눌림을 주제로 만든 ‘가위’ 이후부터는 사운드 디자인에 초점을 두고 가사를 좀 더 단순화했어요. 한국 귀신들의 사연은 거의 다 비슷해요. 그러니 매번 더 무섭고 새로운 노래를 내고 싶은 마음에 변주를 고심합니다. 제가 엄청 좋아하는 작업이라 가능하면 오래하고 싶어서요.


당신 노래 속 귀신들은 모두 다 같은 귀신이 아니죠.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인간의 설화를 바탕으로 한 ‘창귀’나 성은을 입은 여인이 임금을 기다리다 죽어 꽃이 됐다는 설화로 탄생한 ‘능소화’, 영화로도 익숙한 ‘홍련’처럼 대부분 한국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어떻게 채집합니까

‘능소화’와 ‘창귀’ 설화는 트위터로 알게 됐어요. 제 알고리즘에서 불쑥 튀어나온 이야기들에 흥미를 느껴 논문도 찾아보며 깊숙이 파고들다 보니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둔갑쥐 설화로 만든 ‘쥐(RATvolution)’와 장화홍련 설화로 만든 ‘홍련’까지 이어지게 됐죠. 특히 창귀 설화의 매력은 엄청났어요. 창귀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귀신들로 성불하기 위해 호랑이의 수발을 들며 자신을 대신해 잡아먹힐 사람을 대령하는 존재들인데, 정말 한국에만 있는 귀신이거든요. 동아시아 여러 국가 중 우리 귀신들의 종류와 수가 제일 적대요. 그들이 아무리 활개쳐도 호랑이에게 해를 입은 사람이 훨씬 더 많았기 때문이죠. 창귀는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는 산이 많다는 지리적 특성과 문화적 배경에서 탄생한, 아주 한국적인 귀신이에요.


안예은, ‘쥐’ 스틸 이미지.

안예은, ‘쥐’ 스틸 이미지.

‘창귀’의 하이라이트 대목인 ‘눈을 뜨면 사라질 곡두여 이 밤 산군의 길 위에서 너를 데려가겠노라’라는 가사를 들을 때마다 소름이 돋습니다. 대사처럼 들리는 가사를 쓰며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조선시대 말투를 어떻게 표현할지 사전이나 논문을 찾아보며 최대한 고증합니다. 정말 그 귀신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려야 하니까요. 노래에서는 영화처럼 긴 시간 공들여 서사를 설명할 수 없고, 약 3~4분 동안 화자의 모든 사연과 억울함을 전해야 하니 서사와 감정을 잘 압축하는 방법도 고심합니다. 평소 작업에서는 잘 쓰지 않는 강렬한 단어를 써도 된다는 쾌감이 있죠(웃음).


‘가위’ 때부터는 사연이 사라졌습니다. 어떤 변화인가요

한국 귀신의 맥은 당대에 주로 소외당했던 여성과 노인, 아이의 구성으로 이어져왔어요. 캐릭터성만 다를 뿐 대부분 목소리를 내지 못한 계층에서 이야기가 시작돼요. 그러니 ‘가위’부터는 사연 없는 인물을 등장시켜 공포를 극대화하려 했고, 공포물의 주소재인 꿈을 차용했습니다. 사실 사연 있는 ‘귀신 언니’들은 잘 달래서 승천시키면 되는데, 사연 없는 존재는 무한으로 두렵잖아요. 특히 ‘가위’의 화자처럼 맥락 없이 웃으면서 춤추는 귀신 말이에요.


안예은, ‘홍련’ 스틸 이미지.

안예은, ‘홍련’ 스틸 이미지.

맞아요. 사실 한국 귀신들의 정서는 대부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예컨대 <전설의 고향>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공포물 속의 귀신들은 무섭다기보다 어딘가 짠한 면이 있잖아요. ‘창귀’나 ‘홍련’도 애절한 면이 있고요

사실 ‘능소화’와 ‘창귀’를 냈을 때만 해도 그런 자각이 없었는데, 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쥐(RATvolution)’를 냈을 때 청자들이 이건 아주 통쾌한 노래라고, 억압받는 계층의 목소리를 내는 메시지가 좋았다고 하시더군요. 제 음악적 자양분이 됐습니다.


말 그대로 안예은표 호러 송의 본질은 소외된 존재들을 장르적 주체로 끌어왔다는 것에 있다고 봅니다. 사회 소수자 계층이 귀신이 돼 체제를 전복하는 듯한 강렬한 에너지가 담겨 있죠. 공포를 통해 소수자의 목소리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주목하고 의도를 부여했다기보단 그저 현실이 그랬던 거죠. 억울함이 많은 이들이 귀신이 되고 그 대상이 여성과 노인, 아이였기 때문에 제 노래나 또 다른 한국적 콘텐츠에도 그 점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거라고 봅니다. OST로 참여했던 공포 토크쇼 <심야괴담회>의 어느 에피소드에서 패널 허안나 님이 이런 질문을 했어요. 공포의 대상인 귀신은 힘이 세고, 스스로 충분히 복수할 수 있을 텐데 왜 사또가 대신 해주냐고요. 이에 곽재식 박사님은 당시에는 사대부만이 글을 읽고 쓸 수 있었기에 그들의 입맛과 취향에 맞게 설화가 기록되고 구전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정상 귀신이라는 무서운 존재도 직접 ‘민원’을 넣어야 했다고요. 저는 당시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했던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누가 대신하지 말고, 직접 복수하겠다고 얘기하도록 만들고 싶었어요.


드레스는 Kime. 베스트는 Allsaints.

드레스는 Kime. 베스트는 Allsaints.

인간으로 둔갑해 댄스파티를 벌인 쥐나, 억울함이 가득한 장화홍련 자매처럼 이 호러 송의 존재들이 보편적 인간은 아닐 텐데요. 가창할 때 그들의 사연에 어떤 방식으로 몰입하나요

원래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읽거나 보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부를 때 재미있어요. 현실적으로 제가 죽었다 깨어나도 귀신이 될 수는 없잖아요? 노래를 통해 일종의 ‘코스프레’를 하는 거죠. 현실에 없는 존재가 되는 상상을 한 적도 많은데 무대에서 약 3분 동안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쾌감이 일어요. 일상적이거나 보편적인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일이 더 어려운 면도 있고요.


보는 공포와 달리 듣는 공포가 지닌 매력은 뭘까요

개인적으로는 보는 공포, 읽는 공포, 듣는 공포가 있다면 읽는 행위가 가장 무섭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형체를 떠올리게 돼 있으니까. 다만 정보 없이 소리만 들렸을 때 오는 공포도 상당하죠. 보는 공포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호러 송을 정말 극한으로 무섭게 만들고 싶다가도 편곡 팀 친구들이 “누나, 무서워서 못 듣는 노래를 만들면 안 돼요! 그러면 돈은 어떻게 벌어? 아무도 못 들으면 어떡해?” 그래요(웃음). 방향 설정을 거듭해 나가고 있어요.


뮤직비디오나 앨범 재킷 등에서 서사를 시각화하는 데도 공들이고 있는데, 겁 많은 당신이 작업 과정에서 공포감을 어떻게 견디는지 궁금한데요

자료 조사할 때 이미지를 안 봐요(웃음). 무서워서 작업실이 아닌 집에서만 조사하고요. 뮤직비디오나 사진 촬영 때는 소금도 치고 겁이 많은 스태프에게는 “제가 대표로 소금 가져갈게요!”라고 말하며 안심도 시켜요. 의외로 가사 쓸 때는 제가 주인공이 되니까 무섭지 않아요. 예를 들어 ‘가위’ 화자의 입장에서는 몸을 하나 해먹을 생각에 신이 날 뿐이거든요. 어느 정도 완성된 기괴한 소리를 듣는 편곡 때가 무섭습니다. 편곡 팀도 겁쟁이라 낮에 만나 해 지기 전에 무조건 끝내요. 이 모순이 의문이기도 하지만, 겁이 많아 오히려 헤쳐나갈 수 있는 프로젝트가 아닐까 싶어요. 더 다양한 공포에 반응하고 그것을 채집해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가수로서 대중성을 생각지 않을 수 없는데, 이 작업만큼은 그런 부분을 고려하지 않고 재미있게 하고 있어서 매년 여름이 기다려져요.


안예은, ‘창귀’ 리릭 비디오. 문준수 디자이너의 펜화 애니메이션이다.

안예은, ‘창귀’ 리릭 비디오. 문준수 디자이너의 펜화 애니메이션이다.

공포라는 키워드뿐 아니라 ‘상사화’나 ‘홍연’ 같은 히트곡과 특유의 창법 덕분에 ‘사극을 노래하는 사람’이라는 수식어도 늘 따라붙어요. 특정 장르로 한정해 언급되는 걸 고민해 본 적 있을까요

호러 송 아닌 앨범에도 ‘이번엔 누가 죽나요?’ ‘왜 피가 안 나오나요?’ 하는 반응이 많아요. 고민되기보단 재밌습니다. <엘르>에서 공포라는 주제로 인터뷰한 것도, <심야괴담회> 로고 송을 만들게 된 것도, 여름이니 ‘예은 언니가 뭔가 내겠지’라고 기대해 주는 것도, 꾸준히 하니까 ‘뭐’라도 된다는 사실을 증명해낸 것 같아서요. 식당으로 비유하면 우리 집은 된장찌개가 메인이지만 계란말이도 맛있고 백반도 괜찮은데 아무도 안 먹는 것 같아 고민인 때도 있었죠. 하지만 대표 메뉴 하나 있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하지 않나요?


최근 동양풍 배경과 여성향 로맨스가 결합된 웹툰 <붉은 여우>나 드라마화가 확정된 조선시대 배경의 BL 웹툰 <야화첩>의 OST ‘야화’에 참여한 것처럼 웹툰이라는 장르, 그중에서도 비주류로 여겨지는 여성향 장르의 곡을 작업하는 건 어떤 재미가 있나요. 이 분야에서 독보적 음악으로 생긴 마니아도 많아요

답하기 어렵네요. 왜냐하면 이 작품이 제게는 결코 ‘마이너’하지 않거든요! <야화첩>의 OST 작업을 제안받았을 때도 ‘이런 대메이저 웹툰에 내가 곡을 만든다니!’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꼭 말씀드리고 싶은 건 노래방에서 ‘야화’를 부르는 분들이 가끔 이 곡이 아닌 다른 제 노래를 불러도 화면에 <야화첩> 작화가 담긴 뮤직비디오가 나온다고 성토하세요. 자꾸 해결해 달라고 하는데 저는 권한이 없습니다! 당황하거나 곤란했던 분들이 한두 분이 아니더군요(웃음). 아무튼 제 노래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래 당신을 지지해 온 팬들은 어떤 존재인가요

오프라인에서 만나면 저랑 성격이 비슷해요. 굳이 살갑진 않지만 재밌는 분들이랄까요. 저는 그저 그분들을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에요. 저도 ‘구’ 오빠들 때문에 곤란했던 적이 많고, 열렬하게 사랑한 시간이 통째로 공중분해되는 기분을 알거든요. 나를 사랑하는 이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이 우선이에요.


드레스는 allsaints . 부츠는 Zara. 셔츠와 타이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드레스는 allsaints . 부츠는 Zara. 셔츠와 타이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2016년 오디션 프로그램 <K팝스타> 시즌5 준우승을 통해 당신을 알게 된 사람이 많습니다. 대중성이 중요한 잣대였던 그 무대에 섰을 때부터 지금처럼 지극히 안예은다운 음악을 찾아온 약 9년의 여정을 통해 음악의 정답을 찾았나요

정답을 이번 생에 찾을 수 있을까 싶어요(웃음). 그저 순간순간 옳다고 판단한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울증 치료를 받으며 가장 많이 연습했던 건 생각을 짧게 하는 습관이에요. 그저 바로 코앞까지, 눈에 보이는 것만 열심히 헤쳐나가며 살고 있습니다. 일단 나아가면 알게 되는 것이 많아지니까요. 그 증표가 ‘호러 송 프로젝트’죠.


최근 발매한 미니 5집 <나의 봄이지만 너의 봄일 수도 있지>에서는 봄에 대한 관점을 비틀어 희망을 다른 방식으로 얘기했어요. 안예은이 음악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2018년 정규 2집으로 발매했던 ‘홀로봄’이라는 곡을 최근 오랜만에 불렀는데요. 찬찬히 가사를 음미해 보니 ‘그때 안예은 정말 힘든 애였구나. 정말 힘들었구나!’가 비로소 보이더군요. 미니 5집 소재도 ‘봄’이었기에 계절을 보는 시선이 밝아졌다는 걸 자각했어요. 우울증을 치료하기 전에 만든 음악은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신기하게도 저와 비슷한 아픔을 지닌 분들이 많이 들어주셨어요. 누군가를 위로하는 음악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위로에도 다양한 방식이 있다는 걸 느꼈죠. “괜찮아”라고 얘기하기보단 “야, 그냥 울어라!”라고 말하는 위로 말이에요.


안예은이 음악을 통해 해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듣는 분들을 타임머신에 태워 조선시대로 보내거나, 해적으로 만들어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여행을 보내는 일이라고 대답했는데요. 이번 5집을 작업하면서 ‘저 같은 사람도 잘 삽니다’라는 걸 말하고 싶어졌어요. 아토피나 우울증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 제게 이 직업은 참 낯설었고, 머쓱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만 그때보다 훨씬 자연스러워진 것 같아요. 내가 할 수 있는 걸 깨달았으니까요.

Credit

  • 에디터 전혜진
  • 사진가 김수진
  • 스타일리스트 이진혁
  •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 이현정
  • 아트 디자이너 강연수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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