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들과 개구리 조수가 함께 사는 AI 세계는 누가 왜 만들었나?
AI 아티스트 ‘나이스앤티스’가 만든 낯설고도 완벽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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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가득한 바닷가에서 유유히 휴가를 즐기는 할머니들. 어떤 날은 뜨끈한 라멘에 몸을 담그고, 귀여운 젤리로 만든 옷을 입고 길거리를 누빈다. 이 기상천외한 장면은 어디서 온 걸까? AI로 만든 영상 속 주인공은 나이 지긋한 여성들이다. 엄마, 이모, 할머니 또는 아줌마라고 불리는 ‘앤티’들은 ‘앤티버스(Auntieverse)’라는 가상의 평행 우주에서 현실과 다른 일상을 보낸다. 어떤 규칙이나 관습, 심지어 물리의 법칙에도 구애받지 않고 집을 벗어나 삶이라는 바다를 마음껏 유영한다. 이번 커버 스토리의 주인공은 AI를 이용해 어디에도 없는 세계관을 만드는 ‘나이스앤티스(Niceaunties)’다. <엘르 데코>는 이 놀라운 세계를 창조한 아티스트를 만났다.

‘MoMA(Museum of Modern Aunties)’. 이모를 위한, 이모에 의한 미술관.






나이스앤티스와 앤티버스를 설계한 보이지 않는 손, 림 웬후이(Lim Wenhui). 그는 싱가포르의 건축 디자이너이자 AI 아티스트다. 웬후이는 싱가포르 중국계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엄마와 할머니, 이모들을 비롯한 여성과 함께 자랐다. 그들로부터 받은 애정과 음식 그리고 약간의(?) 잔소리가 나이스앤티스 작업의 토대가 됐다. 나이스앤티스 영상 속 다채로운 색감을 품은 웬후이의 아파트에서 그녀와 만나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긴 이야기를 나눴다.

‘나이스앤티스’ 크리에이터이자 건축 디자이너인 림 웬후이.
나이스앤티스는 당신의 아티스트 이름인 동시에 작품 대상을 뜻합니다. 이모 또는 할머니라고 불리는 그들은 익숙하고 정겨운 존재예요. 어쩌다 이들을 작업 주제로 삼았나요
제가 자란 환경에서 ‘이모 문화(Auntie Culture)’는 일상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요. 이모는 가족 내의 어른 여성을 지칭할 뿐 아니라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는데, 종종 부정적 이미지로 소비되기도 합니다. 나이를 먹으면 ‘이모’로 불리고, 잔소리를 하면 ‘이모 같다’고 하고, 촌스러운 취향을 가지면 ‘이모 취향’이라고 하죠. 하지만 이들은 가정을 책임지고, 아이를 돌보며, 공동체를 연결해 왔습니다. 나이스앤티스는 유쾌한 반어법이자 이모라는 단어를 재정의하려는 시도예요. 사람들이 간과하는 이모들의 다양한 면모를 조명하고, 동시에 그들의 유쾌함과 개성, 강인함을 존중하고 싶었습니다. 저 역시 점점 이모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이런 인식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웃음).
본업은 건축 디자이너라는 점이 의외입니다. 어쩌다 AI의 세계에 빠졌나요
건축사무소 ‘스파크(Spark)’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어요. R&D 캠퍼스부터 저소득층 아동을 위한 학교, 개인주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모의 프로젝트를 진행했죠. 매번 다른 과제와 마주하며 디자인이나 문제 해결, 스토리텔링에 대한 시야를 넓힐 수 있었는데, 이 경험은 나이스앤티스 작업에도 큰 영향을 미쳤어요. 2023년 1월, 인스타그램에서 몇 개의 이미지를 보고 나서 AI 프로그램을 써보기 시작했어요. 두 가지 유형의 이미지가 눈에 띄었죠. 하나는 환상적인 건축 렌더링이었고, 다른 하나는 ‘넵투니언 글리터볼(Neptunian Glitterball)’이라는 계정의 SF세계 속 기이한 캐릭터들이었습니다. 여기서 영향을 받아 ‘우주 클럽’이라는 시리즈를 만들었어요. 불멸의 존재인 이모들이 모여 자신들의 모험담을 나누는 컨셉트죠. 그러다 점점 일상적인 주제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모들이 요리하고 빨래하거나, 춤추는 모습 등으로 말이죠. AI는 창작 과정을 무한히 확장합니다. 작업할 때 저는 꿈꾸듯 이미지와 아이디어를 빠르게 구성해 나가요. AI 작업은 틀에 박힌 작업이 아니라 도구와 하나가 되는 경험이죠. 무척 중독적이고, 강력하며, 끝없는 영감을 얻습니다. 이 특유의 반복적이고 만족스러운 과정이 제 창작의 동력이기도 합니다.
당신에게 실제로 열한 명의 이모가 있다고 들었어요. 작업엔 개인적인 이야기도 들어 있겠네요
저는 할머니와 이모, 삼촌들과 살았는데, 그중 세 명의 이모와 가까웠어요. 그들은 제 일상을 돌봐주고 삶의 교훈과 실용적인 기술을 가르쳐줬죠. 한 이모는 나이 들어 보이는 걸 싫어해서 흰머리를 자주 뽑아달라고 했고, 또 다른 이모는 일본학을 공부해 만화와 도라에몽을 소개해 줬죠. 모두 제 상상력이 넓어지는 데 한몫했어요. 공통적으로 이모들은 음식을 정말 사랑해요. 그들은 요리를 통해 애정을 표현하고, 가족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했죠. 우리 가족은 여전히 2주에 한 번씩 모여요. 이런 유대감과 공동체 의식이 제 작업에 깊이 스며 있는 것 같아요.
실제 당신의 가족 또는 비슷한 연령대의 여성을 관찰하는 것이 창작의 일부라고 했어요. 그들에게서 어떤 영감을 얻었나요
작품의 비주얼과 인물의 대사는 제 이모들과의 대화에서 직접적으로 영감받은 경우가 많아요. 이모들은 늘 우리의 연애 상황과 월급을 궁금해하고, 외모에 대해 쉽게 평가하잖아요. 이를테면 “너 살쪘다” 같은 말이요(웃음)! 이를 영상으로 만들어 이모들의 잔소리가 실은 관심과 애정의 표현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앤티버스에서 이모들이 춤추고 노는 모습은 저희 할머니와 어머니에게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할머니는 생애 마지막 20년을 침대에 누워 지내셨는데, 저는 그런 현실과 정반대의 세계를 상상하고 싶었어요. 활기차고 기쁨이 넘치는 대안적 현실을요. 한편 저의 어머니는 그런 할머니를 보고 같은 길을 걷지 않겠다고 하셨죠. 그래서 지금도 매일 공원에서 춤추고 운동해요. 화려한 의상과 깃털 부채, 리본 같은 소품으로 공연도 하고요. 이런 영감의 조각들이 앤티버스에서 조금씩 변형되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만큼은 이모들이 사회적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을 온전히 표현해요. 또한 앤티버스는 현실을 비추는 거울로서 위트 있게 대안을 제안합니다. 따라서 이모들의 일상뿐 아니라 더 큰 사회 이슈도 담아요. 미의 기준과 여성의 몸에 대한 그릇된 인식, 패션과 환경 문제를 극대화한 시리즈도 있죠. 모두 개인적 관심사에서 비롯된 거예요.

젤리 숍.

공장 안 라멘 그릇에서 휴식을 취하는 이모들.

분해성 식용 재료로 만든 자동차를 모는 이모.
앤티버스에는 기발한 장소가 많아요. MoMA(Museum of Modern Aunties), NASA(Nice Aunties Sushi Academy), TESLA(Tofu Engineered Sushi Luxury Autos)와 같은 반가운 이름도 있죠. 물론 우리가 익히 아는 그곳과 다르지만요. 실제로 방문해 보고 싶은 곳이 있나요
너무 많아서 고르기 어렵네요(웃음). 그래도 달에 있는 요리 학교(NASA)와 두부와 초밥 재료, 사람 다리로 운송 수단을 만드는 제조 공장(TESLA)은 꼭 방문해 보고 싶어요. 어릴 때 어머니와 함께 갔던 공장 견학이 떠올라서요. 1980년대는 지금처럼 여가 활동이 다양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장 견학이 일종의 놀이였어요. 저는 공장의 ‘백스테이지’를 구경하는 걸 좋아했고, 특히 간장 공장과 음료 제조 공장이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개구리 고기 가공 공장은 좀 충격적이었지만요(웃음).
영상 속 이모들은 과장되다 못해 기괴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난쟁이처럼 작거나 거인처럼 크고, 주름이나 다리가 지나치게 많거나, 동물 또는 음식과 하나 된 모습으로 표현되죠
저는 항상 ‘정상’의 기준이 무엇인지, 사회가 어떻게 남과 다른 것을 판단하는지 탐구해 왔어요. 다양한 체형과 형태를 실험하고 이를 조명하는 것, 특히 나이 든 여성에게 이런 요소를 적용함으로써 사고의 전환을 유도하고 싶어요. 이상하고 낯설겠지만 왜 그럴까요? 특정한 몸과 행동, 미적 기준을 ‘용납할 수 없다’고 가르쳐왔기 때문은 아닐까요? 이런 사회적 통념을 재치 있게 꼬집어 아름다움이나 노화, 개성에 대한 인식에 변화를 일으키고 싶습니다.
이모 외에 고양이와 개구리, 젤리, 초밥 같은 조연들도 자주 등장하죠
언급한 것처럼 앤티버스에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있습니다. 저를 즐겁게 하는 오브제와 생명체들이죠. 이를 통해 다양한 서브 플롯을 만들 수 있어요. 그중 하나가 개구리 조수입니다. 이 캐릭터는 초반에 이모들의 조용한 동반자로 등장했지만 ‘개구리 식사(Frog Dining)’ 에피소드에서 이모들의 가발을 훔쳐 쓰고 우아한 저녁 식사를 즐깁니다. 다른 요소를 넣는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그저 이야기를 만들고, 기발한 캐릭터들을 발전시키는 게 재미있거든요.
유머러스한 비주얼만으로 나이스앤티스의 작업을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해양 쓰레기와 산림 파괴, 기후 변화, 과소비 등의 환경 이슈도 무수히 다뤄왔어요. 우리가 당신에게 이번 호의 커버 아트를 제안한 이유이기도 했던 ‘앤틀란티스’ 시리즈가 바로 환경을 주제로 한 작업이죠
‘앤틀란티스(Auntlantis)’는 아틀란티스 신화와 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의 이야기를 결합합니다. 과거 해양 플라스틱을 활용한 건축 연구의 일환으로 플라스틱으로 만든 해변 오두막을 디자인한 적 있어요. 이것이 앤틀란티스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이 시리즈에서 이모들은 플라스틱 쓰레기로 뒤덮인 세계의 주인공입니다. 그들은 해변을 청소하고 바닷속 쓰레기를 쓸어 담으며, 이 과정에서 수집한 플라스틱으로 컬러플하고 유쾌한 의상을 만들어 입습니다. 플라스틱과 바다생물이 결합한 생명체도 등장하는데, 이는 오염된 생태계에서 나타나는 기이한 공생관계를 상징합니다. 앤틀란티스를 통해 환경 파괴의 심각성을 알리는 동시에 희망과 공동체적 행동의 힘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초현실적 비주얼에 진지한 성찰을 결합해 자연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말이죠. 경각심을 넘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희망과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다채로운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요
어떤 아이디어는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문제에서 출발하고, 어떤 아이디어는 단순히 좋아하는 주제들을 엮어 새로운 조합을 만들며 나옵니다. 때론 그냥 불현듯 떠올라요. 한밤중이나 샤워할 때, 운전할 때처럼 예상치 못한 순간에요. 결국 중요한 건 평범함 속에서도 특별함을 발견하려는 호기심 아닐까요?

웬후이가 애정하는 소장품들.

림 웬후이의 싱가포르 아파트.

작업하는 웬후이.

이모들의 여행을 주제로 우루과이 아트 레지던시에서 선보일 전시를 위한 작업 스케치.
작업 과정도 궁금합니다. 어떤 프로그램을 사용하나요
처음에는 미드저니(MidJourney)를 사용해 이미지를 생성했지만, 이후에는 달리(DALL·E)와 크레아(Krea) 같은 텍스트-이미지 변환 도구로 옮겨갔어요. 텍스트 프롬프트를 입력해 원하는 비주얼을 만들고, 생성된 이미지를 런웨이(RunwayML), 루마랩스(Lumalabs), 클링에이아이(KlingAI) 같은 이미지-영상 변환 도구를 사용해 애니메이션으로 만듭니다. 이 클립들을 편집해 하나의 완성된 영상으로 만들고, 음악과 사운드도 추가하죠. 또 텍스트-영상 변환 도구인 소라(SORA)로 짧은 영상 클립을 제작하고, 최종 편집 과정에서 이를 결합해 전체적인 스토리를 완성합니다.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 구상하나요? 그때도 AI의 도움을 받는지
아직은 아니에요. 직접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이 너무 즐겁기 때문이죠.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전체적인 스토리를 구상하지만, 자세한 내러티브는 영상 편집 과정에서 잡아가요. 저는 이야기를 중간 지점에서 시작하는 걸 좋아해요. 때아닌 젤리 유행이 불어닥친 에피소드를 다룬 ‘FOMO Jelly’에서는 이모들을 인터뷰하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Auntlantis: Sweeping the Floor’에서는 해변에서 쉬던 이모가 갑자기 플라스틱 내장을 쏟아내는 장면으로 시작하죠. 이런 방식은 즉각적인 흥미를 유발합니다. SNS에 작업을 업로드하다 보니 항상 첫 ‘5초’를 가장 중요하게 고민해요. 관심이야말로 더 많은 사람과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AI 아트의 경우 진정성이나 깊이 등에 대한 회의적 시선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에요
저는 AI가 오히려 작업에 깊이를 더했다고 생각해요. 같은 시간에 여러 번 아이디어를 반복적으로 다듬고 발전시키도록 도와주니까요. 텍스트와 이미지, 영상, 사운드를 넘나들며 더욱 광범위한 표현도 가능하죠. AI 아티스트라는 용어가 오래 지속될 것 같지는 않아요. AI는 붓이나 캔버스처럼 하나의 매체일 뿐이니까요. 누군가를 ‘브러시 아티스트’라고 부르진 않잖아요? 창작의 깊이는 결국 예술가의 의도와 사유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탐구하고 다양한 삶의 경험과 실험을 거듭하며, 호기심과 위트를 유지하는 게 창작의 핵심이라고 봐요.
당신의 가족들도 ‘나이스앤티스’를 보았나요? 어떤 반응이었을지 궁금하네요
하하, 물론이죠! 모두들 제 작업을 계속 지켜봐주고 계세요. 대단한 피드백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러한 조용한 지지가 제겐 힘이 됩니다. 최근엔 ‘Goddess’라는 영상을 보고 고향이 떠올랐다고 하더군요. 할머니가 부엌에서 피시볼을 만드는 장면이 그리운 기억을 불러일으킨 것 같아요.
당신과 또래의 여성, 그보다 어린 여성 모두 언젠가 이모가 될 거예요. 당신은 어떤 이모가 되고 싶나요
이 프로젝트의 목표 중 하나는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제 감정을 탐구하는 거였어요. 작업을 통해 이모라는 존재의 복합적인 면을 깊이 이해하게 됐죠. 제가 경험한 ‘싱가포르 이모’는 50년 후엔 존재하지 않을 거예요. 그들은 1965년 싱가포르 독립 이후 개척기를 살아온 특정 세대의 여성들을 의미하거든요. 이모의 의미는 각자의 희망과 꿈에 따라 계속 변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멋지고 영감을 주는 이모가 되길 바라요. 나이스앤티스처럼요! 저 역시 지금의 호기심과 장난기를 유지하고, 자유롭고 대담하게 살아가는 이모가 되고 싶습니다.

‘A Plastic Vacation’. 해양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오두막을 디자인했던 경험을 떠올려 만든 장면.

‘A Plastic Vacation’.
Credit
- 에디터 윤정훈
- 사진가 REUBEN FOONG
- 아트 디자이너 이유미
- 디지털 디자이너 김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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