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Y

'리튼온워터'를 아시나요?

고단한 하루는 물 위에 써 떠내려 보내길 바라는 브랜드 '리튼온워터'의 영감과 뉘앙스.

프로필 by 김하늘 2024.09.11
1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모리스 라벨’ 피아노 연주 음반.
2 연희 스토어의 입구에 설치된 비디오 인스톨레이션.
3 무한한 영감을 주는 반려견 바두기.
4 파리의 헌책방에서 구입한 빈티지 <카이에 뒤 시네마> 잡지 1953년호.
5 매거진 페이지의 디자인적 모티프를 반영한 뉴 데이 핸드 워시, 2만9천, Written on Water.
6 카라얀이 지휘한 피아노 협주곡 음반.

7, 9, 11 신스 팝에서 영감받은 인센스 스틱, 워즈, 2만7천원, 모네의 ‘녹색 반사’를 플로럴 그린 향기로 표현한 오 드 퍼퓸 흐플레 베흐, 가격 미정, 연인에게 선물할 꽃을 사는 이의 얼굴과 흥얼거리는 콧노래를 향으로 담은 핸드 크림, 러브송, 2만1천원, 모두 Written on Water.
10 직접 작업한 향수 무드보드.
12 , 13 주정민 작가의 일러스트레이션 파일.
14 졸업 전시를 위해 처음 디자인했던 향수병 디자인.
15 물이 흐르는 모티프를 담은 로고 시안 중 하나.
16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구입한 모네의 ‘수련’ 연작 엽서.
17, 18 브랜드 네이밍에 영향을 준 영화 <패터슨> 포스터와 스틸 컷.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미래,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 깊은 좌절의 순간을 당신은 어떻게 흘려보내는가? 여기 ‘리튼온워터(Written on Water)’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대표 박창용은 큰 위안을 얻었던 영화에서 모티프를 얻어 브랜드를 론칭했다. 그에게 무한한 영감을 준 음악과 영화, 미술 등 다채로운 예술 코드를 담아서. 서정적인 감흥이 곳곳에서 숨 쉬는 리튼온워터의 세계.


브랜드명에 영화 속 대사의 일부가 담겨 있다고 들었다
“괜찮아. 그냥 물 위에 쓴 말일 뿐이야….” 커리어적으로 혼란을 겪었던 시기에 우연히 본 영화 <패터슨>의 대사다. 누군가에겐 ‘슥’ 지나갈 법한 말이지만 나에게는 이 대사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좌절하지 않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달까? 어디선가 고된 하루를 보냈을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영화 속 대사의 일부인 ‘Written on Water’를 브랜드명으로 채택했다. 비록 미완의 문장인 데다 발음도 어렵지만, 이 모든 것을 이겨낼 만큼 시적이고 아름다운 네이밍이라고 생각한다.
아트 디자이너로서 경력이 대단한데 처음 ‘뷰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학부와 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는데, 당시 졸업 전시에서 ‘서울’을 주제로 향기와 향수 이미지를 만들어 공감각적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작품을 준비했다. 향수병을 직접 만들면서 ‘뷰티 제품, 특히 향수라는 오브제야말로 궁극의 디자인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향수’에 담긴 향기는 다른 소비재처럼 눈에 보이는 형태가 아닌데도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고 구매한다는 것이 예술 학도인 나에게는 흥미로웠다. 솔직히 처음부터 ‘뷰티’에 관심이 있어 브랜드를 론칭했다기보다 디자이너로서 ‘직접 브랜드를 만들고 경험해 봐야 디자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더 컸다.
브랜드 곳곳에서 포착할 수 있는 문화적 코드들이 인상적이다. 예술적 영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나
시네 필이라면 느꼈겠지만 테오 앙겔로풀로스(Theo Angelopoulos)나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의 영화에서 얻은 시네마적 영감을 브랜드의 아트 디렉팅에 녹이곤 한다. 미술과 음악적 요소들도 좋아하는데, 특히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인상주의 작품에서 향에 대한 영감을 얻는 편. 올 9월에 조향사 프랭크 볼클(Frank Voelkl)과 협업해 선보이는 향수 중 ‘흐플레 베흐(Reflets Verts)’는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된 모네의 ‘녹색 반사(Reflets Verts)’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짙은 녹색 물 위로 꽃이 떠내려가는 느낌을 갈바늄과 베르가못, 베티버 등의 노트로 완성했다. 또 유독 ‘물’에 관한 묘사가 많은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의 음악, 예를 들어 ‘물의 유희(Jeux d’eau)’를 리튼온워터 주제곡으로 생각하며 중요한 작업을 할 땐 언제나 라벨의 음악을 재생하는 편. 큰 사랑을 받았던 핸드크림 ‘러브송(Lovesong)’과 신스 팝 ‘Words’의 노랫말이 적힌 인센스 스틱 ‘워즈(Words)’ 등에도 음악적 모티프가 가득 담겨 있다.
브랜드 로고나 폰트, 패키지 등 디자인적 모티프는 어디에서 얻나
디자인할 땐 전설적인 아트 디렉터 파비앵 바롱(Fabien Baron)을 떠올린다. 그의 디자인은 여전히 유효한 현대의 고전이자 교과서라고 생각하기 때문. 브랜드 로고 폰트인 이탤릭체와 세리프체는 바롱의 유산을 계승하고 싶은 오마주였다. 로고는 이 서체들이 마치 물에 흘러가는 느낌을 상상하며 제작한 것. 잡지를 좋아하는 ‘매거진 키드’로서 브랜드에서 처음 출시한 제품인 핸드 워시는 잡지 기사의 한 꼭지처럼 보일 수 있도록 연출했다. 브랜드명은 헤드라인처럼, 성분들은 본문처럼 각인한 것. 브랜드명과 성분 사이의 큼직한 여백은 소비자들이 스티커를 부착하는 등 그들만의 이미지로 채울 수 있도록 비워뒀다.
마지막으로 리튼온워터 무드보드의 키워드를 꼽는다면
다정한 위로와 끝없는 영감을 주는 물과 예술.

Credit

  • 에디터 김하늘
  • 사진가 장승원
  • 아트 디자이너 민홍주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정
  • COURTESY OF WRITTEN ON WA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