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잠들고 싶어라! 새까만 밤. 익사 직전처럼 숨이 차오르고 심장은 두근두근 방망이질 친다. 진땀이 흘러 피부는 축축해진 상태. 마치 슬픔과 두려움이 손끝, 발끝까지 퍼져나가는 듯하다. 새벽 두세 시쯤 됐을까?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곳에서 빠져 나오려고 한참을 발버둥친다. 눈앞에는 슬프거나 나쁜 것 혹은 화가 나는 장면들이 스친다. 가끔 행복한 장면이 있을 법도 한데, 전부 고통스러운 기억뿐이다. 이렇듯 괴로움이 극에 달할 무렵 잠에서 깨어나기를 수 차례. 어딘가 고장이 나도 단단히 난 게 틀림없다. 답답한 마음에 핏비트로 수면 패턴을 측정해 봤다. 잠든 시간은 고작 4시간. 항상 불면증에 시달리긴 했지만 이건 새로운 차원의 고통이었다. 일에 집중하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고, 소화도 잘되지 않고, 발목이 이상하게 시큰거리기까지. 심지어 사소한 일에도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짜증을 내거나 왈칵 눈물을 쏟기 일쑤였다. 뭘 해도 피곤하고 깨어 있어도 취한 듯 정신이 몽롱한 상태. 잠만 푹 자도 세상이 달라 보일 것 같은데…. 대체 언제쯤 ‘개운한 아침’이라는 걸 맞이할 수 있을까?이 죽일 놈의 불면증, 어떻게 없애나 나름 숙면을 취하기 위한 절박한 시도들을 이어갔다. 일단은 인터넷 검색 창에 뜨는 ‘수면 위생’에 입각, 침대 시트와 베개를 청결하게 유지했다. 침대에서 눈뜨자마자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 멜라토닌 분비를 촉진하기 위해 하루 30분 이상 햇빛을 보고 운동도 열심히 했다. 낮잠은 절대 자지 않고 카페인을 섭취하지 않은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잠들기 전에는 컴퓨터나 TV, 스마트폰의 블루 라이트를 멀리하고 수면 안대와 귀마개도 착용했다. 스트레스를 완화해 주는 명상 세미나에 참석한 것은 물론 좋아하는 술을 끊기까지. 하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야간 보초를 서는 것도 아닌데, 새벽마다 기가 막히게 깨어나니 이건 뭐 졸병이 따로 없었다. 급기야 치아까지 흔들리기 시작, 치과의 마이클 겔브를 찾아갔다. 치아와 잇몸, 목구멍을 주의 깊게 살펴보던 그가 하는 말. “혹시 패닉 상태에서 잠을 깨나요? 누가 문을 힘껏 두드리는 소리라도 들은 것처럼 화들짝 놀라는 식으로요. 식은땀을 흘리거나 손발이 차갑기도 하고요?” 침실에 CCTV라도 몰래 설치해 놨나? 싶은 질문들이 이어졌고 ‘상기도저항증후군’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수면장애의 일종이죠. 주로 젊고, 마르고, 아름다운 여성들에게 나타나는!” 젊고, 마르고, 아름다운 여성이라니, 풉. 웃음이 터져나왔다. “에이, 설마요.”젊고, 마르고, 아름다운 여성일수록 덜 잔다?! 25년 전 스탠퍼드대학 의학 팀의 연구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상기도저항증후군. 수면무호흡증의 일종으로 간주되지만 엄밀히 따지면 둘은 다르다. 수면무호흡증이 기도가 막혀 숨이 멈춰지는 증상이라면, 상기도저항증후군은 기도가 좁아 호흡이 원활하지 않은 상태를 뜻한다. 전자는 주로 체중이 많이 나가는 나이든 남성에게서, 후자는 주로 젊고 마른 여성에게서 나타난다고. 그중에서도 기도가 좁거나 턱이 좁은 신체 구조를 지닌 여성들은 특히 그렇다(이를테면 코와 턱을 좁고 갸름하게 성형한!). 기도가 좁아지면 호흡이 원활하지 않다. 코 대신 입으로 호흡하거나 뇌가 호흡을 위해 과도한 노력을 기울이는 탓에 자꾸 잠에서 깨어나고 각성하게 되는 것. 또 주로 고혈압이 생기는 수면무호흡증과는 반대로 저혈압이 동반되며, 이는 만성적인 오한과 근육통, 피로감, 심하면 현기증과 졸도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다. 결국 충분한 수면만이 신체적, 정신적 기능을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을 터. 내 코에 양압기 치과 의사의 권유에 따라 찾아간 수면 센터. 적정한 압력의 공기를 불어넣어 코와 기도를 열어주는 양압기를 착용해 보기로 했다. 먼저 정확한 정밀검사를 위해 침실을 가장한 입원실에 누워 코에는 튜브를, 머리와 온몸에는 센서를 장착한 채 잠을 청했다. 진짜 몰래 카메라를 통한 밤샘 관찰이 진행된 것. 결과는? 6시간 수면을 취하는 사이 뒤척인 횟수는 70회. 수면 효율은 69%에 불과했다(정상인의 수면 효율은 85%이다). 한마디로 단편적인 쪽잠을 자는, 반쯤 깨어 있는 상태라고나 할까? 이를 방치했다간 저혈압과 우울증, 졸도에 이르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마침내 도착한 양압기. 긴 튜브가 달린 마스크를 보니 되려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마치 실험실의 토끼가 된 기분. 사이즈가 가장 맞게 느껴지는 마스크를 택했고, 비교적 작은 사이즈였음에도 마치 없던 코끼리 코가 생긴 것 같아 급격히 울적해졌다. 아무리 예쁜 잠옷을 입어도 결코 아름답거나 섹시하게 보일 리 없는 모습이었으니! 익숙해지기까지 2주가 걸린다지만, 내 경우 두 달이 걸렸다. 처음에는 오히려 잠이 더 오지 않아 수면제를 처방받아야 했기 때문. 그러던 어느 날, 터닝 포인트가 왔다. 양압기 없이 숙면을 취한 걸 알게 된 것. 자다가 벗겨지기라도 한 걸까? 침대 위를 훑어보았지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고, 결국 여전히 얼굴에 쓰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양압기에 완벽 적응한 셈! 시간이 지날수록 피로와 불안이 사라지고, 선잠 속에서 꾸던 슬픈 꿈도 자취를 감췄다. 굿바이, 불면증 어느덧 치료 넉 달째. 비로소 불면의 악몽에서 해방됐다. 매일 아침 눈뜰 때마다 어두운 독방이 아닌, 초록 가득한 들판에서 깨는 듯한 기분이란! 수면의 질이 좋아지면서 불안과 소화불량, 과민성대장증후군에서도 탈출하게 됐다. 남편의 말 그대로 ‘간혹 여전히 히스테리를 부리긴 하지만 한층 누그러진’ 모습. 이제 양압기에서 시원한 바람이 유입되기 시작하면 이글거리던 머릿속에서 미니 선풍기가 가동되는 느낌마저 든다. 처음엔 보기 싫고 두렵기까지 했던 마스크지만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계로 보일 정도(귀차니스트를 위한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 리모컨이듯 말이다). 물론 완벽한 치료법은 수술이기에, 수술하지 않는 이상 평생 사용해야 한다는 게 좀 아쉽기는 하지만 뭐 어떤가. 이 아름다운 호흡의 오케스트라로 삶의 질이 완전히 달라졌는데! 늦었다고 생각할 땐 진짜로 늦었다. 나이가 들어 습관화될수록 고치기 힘들다니 비슷한 증상으로 고민한다면 주저하지 말고 전문의의 상담을 받아보길. 혹시 아나, 나처럼 쌔근쌔근 ‘굿잠’ 자는 날이 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