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새로 알게 된 여자와 섹스를 했다. 그녀는 하는 동안 듣도 보도 못한 소리를 질러댔고, 거침없는 표현도 내뱉었다. 당연히 나는 있는 그대로 믿었다. 우리가 많은 열정을 공유했고, 적어도 나에게 만족했다고 말이다. 한 남성 잡지에 따르면 ‘남자들은 섹스하며 TV를 곁눈질했어도 정말 근사한 섹스를 즐겼다’고 기억한단다. 하지만 많은 경우의 섹스는 조류관찰자의 심경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안개가 자욱하게 드리운 어느 날, 운명처럼 동이 틀 무렵 오렌지색 어린 앵무새가 야생을 향해 첫 날갯짓을 시작하는 장면을 볼 수 있을 것거란 설렘…. 며칠을 잠복하며 긴 기다림 끝에 쌍안경 속에서 얻게 되는 장면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다. 실망스럽기 그지없지만 그게 현실이다. 환상적이고 모험 가득한 감정적으로 충만한 오르가슴이란 현실에서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새로운 여자 아니면 어린 여자랑 섹스했다고 무조건 좋아해야 할까? 그건 덜 큰 남자들의 판타지에 불과하다. ‘나와 맞는 섹스 타입을 아직 못 찾았기 때문’이란 핑계는 짐이 곧 국가라는 독선적 판단이다. 그러나 수많은 남자들의 어리석은 두뇌는 정교한 감정 교류를 인식하지 못한다. <뉴욕 매거진>의 칼럼니스트 레베카 트라이스터는 미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성 풍속도를 탐구하는 중인데, 그녀에 따르면 “섹스에 있어 남자들은 ‘갖다(Take)’는 표현을 사용하고 여자들은 ‘주다(Give)’라는 표현을 사용하죠”라고 지적했다. 트라이스터는 남자들이 스스로 굉장한 섹스를 했다고 우쭐하는 동안, 여자들은 ‘방어 또는 착취에 가까운’ 일방적 섹스를 견뎌낸 것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의 일부를 ‘나쁜 섹스’라 부르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왜 남자들은 자기가 한 모든 섹스가 최고여야 한다고 생각할까? 남자들의 머릿속에는 ‘적어도 내 섹스는 무조건 항상 격정적이고 굉장한 것이어야 한다’는 강박이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이 모든 섹스에 (혹은 여자들에게) 순위를 매기는 행위로 연결되는 것일 수도. 나쁜 섹스가 있긴 있다. 상대방을 만족시켰는지 아닌지 혹은 인생 섹스였는지 아닌지의 문제는 아니다. 서로 조율의 가능성이 차단된, 커뮤니케이션이 완전히 없는 섹스다. 누구나 나쁜 섹스의 경험은 있다. 소설 <롤리타>의 험버트에게 아나벨이 있었듯이, 나를 포함한 많은 남자들에겐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바스러질 것 같고 그녀를 안을 수 없다면 말라 죽어버릴 것 같았던 여자가 있었다. 가장 사랑했던 여자가 아니라 대부분 순진하고 물정 모르던 시절의 첫 여자라는 게 문제지만. 특별하리라 기대한(작정한) 만큼 첫 섹스는 대부분 엉망이고, 미숙한 남자들은 떠나가는 여자를 제대로 잡을 줄도 모른다. 아마도 그녀들의 기억 속 남자들은 그저 이름과 얼굴이 헛갈리는 흐릿한 누군가로 기억되지 않을까. 사이먼 앤 가펑클의 음악과 함께 영화 <졸업>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문제는 그 창피하고 허탈한 기억을 간직한 남자들은 풍부한 경험만이 첫사랑의 트라우마를 고쳐줄 비법이라고 오인한다. 많은 여자와 색다른 장소, 지속 시간, ‘그’ 횟수…. 게다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걷잡을 수 없이 살이 붙어가는 왜곡된 기억 속의 월드 베스트 섹스는 창피한 기억이 많은 남자일수록 ‘안물안궁’ 상황에서조차 다급하고 섣부르게 거론하는 무용담이다. 그러나 여자들에게 섹스는 남자들의 남성성 확인보다 훨씬 여러 가지 얼굴을 갖고 있다. 삶에서 뭔가를 확인하는 구체적인 행위일 때도 있고, 사랑에 대한 매우 다층적인 표현이기도, 때론 불안하거나 위험할 때도 있다. 의외로 섹스에 있어 ‘대상화’되는 남자들이 여자들의 이기적이거나 공격적인 태도 앞에서 무력감을 느낀다며 한탄하는 건 사실이지만, 여자들이 당해(?)온 역사를 생각하면 그 입은 좀 다물어야 마땅하다. 요즘 세상이 워낙 그렇다. 쾌락만 충족하는 섹스도 많고, 오르가슴만 얻을 수 있다면 책임이나 의무는 지고 싶지 않고, 섹스와 관련된 공허감을 해결하기 위해 ‘쿨’함을 무기로 장착한다. 섹스를 나눈 상대 여자에게 낮에도 데이트해 보자고 말하는 건 남자들 사이에서 거의 멸종한 멘트겠지만, 그 말을 내뱉은 순간 여자가 웃음을 터뜨렸다면 그 남자는 내일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 남자에게 나쁜 섹스 혹은 슬픈 섹스는 마음속에만 묻어둘 일이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최고의 섹스를 즐겼노라 큰소리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기 때문에. 남자들에게 ‘이 모자란 자식아’ 같은 소리를 듣거나, 아니면 배신자 취급받을지도 모르는 이런 비밀스런 고백을 굳이 여자들에게 털어놓는 이유? 남자들의 ‘섹스 부심’은 사실상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하의 유치함으로부터 나오고, 그것을 비난하거나 악용하거나 포기해 버리기 전에 좀 더 포용력 있는 태도로 인간적인 손길을 뻗어준다면 남자들의 그 국보급 멍청한 질문 “어땠어? 나 괜찮았어?” 같은 소리를 언젠가 스스로 멈추리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다. 내가 이 글을 여성 매거진에 쓰고 말았다는 사실을 남자들만 모인 술집에서 나도 모르는 순간 취기에 발설하지 않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