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고쳤다 Ⅱ

셀프 인테리어의 고수들이 전하는 내 손으로 꾸민 우리집 이야기 2탄.

프로필 by ELLE 2016.05.11

 

양보람
프리랜스 뷰티 에디터

나와 남편이 고른 집은 지은 지 오래됐지만 한강이 바로 보이고 햇빛이 가득 들어오는 작은 빌라다(그놈의 햇빛 타령이라고 할지 모르나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가장 손대기 어려운 화장실과 싱크대, 바닥은 이전에 한 번 수리해서 나쁘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긴 복도엔 창이 나 있고 뒤로 돌아가면 작은 부엌이 나오는, 일련의 아파트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였다. 그것이 나를 미치게 했다. 흔치 않은 구조에 눈이 멀어 계약했지만 이삿짐이 나가고 난 후의 빈집은 처음 봤던 것보다 훨씬 처참했다. 이 집을 거쳐간 사람들만큼이나 제각각인 방문 손잡이, 손 닿는 곳만 페인트가 칠해진 부엌의 타일들… 마치 치과에 간 기분이 들었다. 내 발로 가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그런 느낌 말이다. 결국 벽과 체리색 몰딩은 흰색 페인트로 칠해 베이스를 만들고, 문 색깔은 두 달쯤 고민하다 회색이 감도는 짙은 네이비 색으로 칠했다. 셀프 인테리어에 한 가지 팁이 있다면 남들 다 하는 것에서 조금 비껴 가라는 것. ‘국민 손잡이’로 등극한 레버 손잡이 대신 심플한 손잡이를 달고, 이케아에서 가구를 고를 때도 ‘국민 서랍장’ 대신 좀 더 담백한 디자인의 가구를 골랐더니 다들 어디서 샀냐고 묻는다. 별거 아닌데. 덧붙이면 소파나 침대, 그릇장처럼 부피가 큰 가구와 조명은 집의 전체적인 인상을 좌우하기에 소재에 신경 썼고 나머지는 예산에 맞춰 적당히 매치했다. ‘아까워서 어떻게 이사 가냐?’고 묻는 사람들도 많지만 전혀 아깝지 않다. 남편과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꾸민 거실의 하이라이트 ‘월 데코’를 비롯해 조명 등 웬만한 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떼어갈 수 있으니까. 내가 아까운 건 나와 남편의 수고로움 정도다. 하지만 약간의 시간과 노동을 투자해 우리는 언제든 돌아오고 싶은 사랑스러운 집을 얻었으니 괜찮다. @yangbomama

 

 

서정경
인테리어 데커레이터 & <언더야드> 오너

5년 전 결혼과 동시에 산꼭대기 집에 둥지를 튼 우리. 눈이 오면 고립될 만큼 드나들기 불편한 곳에 자리한 집이지만 그만큼 맑은 공기를 만끽하며 지낼 수 있다. 복잡한 시내의 편리함보다 산꼭대기 집의 불편한 고요함을 택한 우리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집을 구할 수 있었기에 남은 예산으로 인테리어에 손댈 수 있었다. 처음부터 이 집이 사랑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오래된 주택의 세월을 가늠하듯 갖가지 벽지를 한참이나 벗겨내야 했던 콘크리트 벽과 천장. 바닥도 별다를 바 없었다. 먼저 우리는 벽에 따뜻한 빛을 품은 화이트 톤의 페인트칠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놓치는 것은 ‘화이트’, 흰색이 품고 있는 온도다. 흰색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일반 가정집일 경우에는 기본적인 백색보다 연하게 회색을 띠는 흰색인 ‘오프 화이트’나 아주 엷은 황색을 띠는 ‘오트밀’계에 가까운 흰색을 골라야 한다. 그래야 조명 빛이 흰색과 부딪혀 푸르스름하게 겉돌지 않는다. 바닥은,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합리적인 가격대의 원목마루를 찾기 힘들었기 때문에 무늬만 마루인 데코 타일을 시공하느니 내가 일하는 현장에서 가장 좋아하고 즐겨 쓰던 타일을 선정해 시공하는 걸로 했다. 그리하여 벽은 ‘오프 화이트’ 색으로, 바닥은 ‘오트밀’ 색의 타일로, 적은 비용으로 확실하게 효과적인 방법으로 마무리된 집은 전체적으로 따뜻한 온기를 품게 됐다. 여전히 우리는 같은 집에서 살고 있지만 5년 사이에 바뀐 상황만큼이나 집 안의 표정과 역할도 많이 바뀌었다. ‘쉼표’와 ‘충전’의 의미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사랑스러운 집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깊어지고 있고. @golden_saturday

Credit

  • editor 김은희
  • digital designer 오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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