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을 꿈꾸던 부부가 정착한 목포 양옥집 이야기
오래된 주택의 결을 고스란히 살린 목포 양옥집에서 우리만의 속도로 쌓아가는 단단한 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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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을 소개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목포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이것저것 손으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박호수입니다.
아내 마지아, 그리고 세 마리의 반려견과 함께 살고 있어요. 얕지만 넓게, 이것저것 해보는 걸 좋아합니다.
깊게 파고드는 사람은 아닐지 몰라도, 여러 경험 속에서 배우고 느낀 것들을 제 식대로 버무리는 일을 좋아해요.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일들도 어느 순간 이어져 있더라고요.
몇 번의 공간 작업을 통해 경험한 감각이 집을 꾸미는 데 쓰이기도 하고, 음악을 듣던 시간이 어떤 형태의 공간 작업으로 남기도 하고요. 결국 살아가는 동안 만난 모든 장면과 경험들이 조금씩 스며들어 지금의 취향으로 표현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늘 배우려 하고, 또 어떻게든 표현하며 살아가려 합니다.
공간을 소개해 주세요
이곳은 목포 양을산 주변의 오래된 주택단지 안에 자리한 집이에요. 1987년에 지어진 이층 양옥집으로 지금은 저희 부부와 세 마리 반려견이 함께 살아가고 있어요. 가끔은 마당에 놀러 오는 길고양이들까지 자연스럽게 하루의 풍경 안으로 들어오곤 해요.
첫 번째 신혼집은 작은 땅콩주택을 고쳐 살았어요. 1층 9평, 지하 9평의 작은 공간이었지만 옥상도 있었고 둘이 지내기엔 충분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강아지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커졌어요. 그렇게 마당이 있는 주택을 찾기 시작했고, 거의 1년 동안 50곳이 넘는 집을 보러 다녔고 그러다 지금의 집을 만나게 됐네요.
밀림처럼 수풀이 우거진 마당과 큰 통창 너머로 보이던 나무 풍경이 참 좋았어요. 오래된 집이었지만 오히려 시간의 흔적들이 마음에 남았어요. 특히 나무 루바벽처럼 지금은 쉽게 보기 힘든 요소들을 보며, 이 집을 처음 만들었던 사람의 취향과 생활까지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되더라고요. 새것처럼 반듯한 공간보다 시간이 만든 결이 남아 있는 집에서 살아보고 싶었거든요.
목포에 자리잡게된 계기와 배경은?
태어난 곳은 목포보다 더 깊숙한 섬, 나배도예요. 그곳에서 일곱 살까지 살다가 인천에서 초중고, 대학교, 그리고 직장생활까지 이어졌어요. 그래서 어디가 진짜 고향이냐고 물으면 아직도 조금 망설이게 돼요. 몸은 도시에서 자랐지만 마음 한편에는 늘 섬의 풍경이 남아 있었거든요. 방학만 되면 다시 나배도로 들어가 시간을 보냈고, 지금도 언젠가는 다시 섬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언젠가 내 일을 하며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졌어요. 막연했지만 조금 더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장소를 찾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던 어느 날, 목포에 살고 있던 친척 형의 연락으로 잠시 내려오게 됐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산이 있고, 바다가 있고, 강이 가까이 있는 풍경도 좋았고요. 무엇보다 사람들의 속도가 조금 느리게 느껴졌어요.
결국 작은 원룸 하나를 구했고 자연스럽게 목포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어요. 배달일을 하며 천천히 동네를 알아가고, 사람들을 만나고,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만들어가다 보니 어느새 목포에 자리를 잡게 되었네요.
돌이켜보면 목포는 제 삶의 방향을 조금씩 바꿔준 도시였던 것 같아요. 이곳에서 작은 가게도 시작하게 되었고, 지금의 아내를 만나 가족도 이루게 됐으니까요. 무엇보다 남과 비교하기보다 우리 삶의 속도에 집중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이 저는 참 좋습니다.
만약 계속 서울에 살았다면 지금처럼의 삶은 어려웠을 것 같아요. 조금 느려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것들을 오래 지켜가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게 지금 저에게는 가장 큰 만족입니다.
양옥집을 고르게 된 이유는? 그 매력은?
오래된 집들 안에는 요즘 공간에서는 잘 느껴지지 않는 특유의 분위기가 남아 있더라고요. 나무 루바벽이라든지, 커다란 창, 조금은 느슨한 구조 같은 것들이요. 누군가의 생활과 시간이 오래 스며든 흔적들이 오히려 더 따뜻하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새것처럼 새하얗고 완벽한 공간보다, 시간이 만든 결이 남아 있는 집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어요.
특히 집을 볼 때 ‘이 집을 처음 만들었던 사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를 자주 상상하는 편이에요. 벽 하나, 창 하나에도 그 시절의 취향이나 생활 방식이 담겨 있었을 텐데, 그런 흔적들을 전부 지워버리는 건 어쩐지 아쉽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공사를 하면서도 가능하면 오래된 것들을 많이 남기려고 했어요. 지금 저희가 이 집의 시간을 이어 살아가듯, 언젠가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저와 아내는 아파트 생활을 길게 해본 적이 거의 없어요. 사람을 좋아하고 이웃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지만, 집 안에서만큼은 조금 더 자유롭고 싶었던 것 같아요. 주택은 정말 손이 많이 가는 공간이잖아요. 낙엽도 쓸어야 하고, 자란 나무도 정리해야 하고, 비가 새면 직접 손을 봐야 할 때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그런 과정들이 싫지 않더라고요. 관리한다기보다 집과 함께 살아간다는 느낌이 더 커요. 어쩌면 주택 가장 큰 매력은 완벽하지 않다는 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생긴 흔적들과 생활의 결들이 자연스럽게 쌓여 있고, 그 안에서 저희도 조금씩 우리만의 시간을 더해가고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살면서 후회하거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혹은 기억에 남는 순간은?
집을 계약하기 전, 아버지와 함께 이곳에 왔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집을 보여드린다기보다 제 선택이 괜찮은 건지, 조용히 확인받고 싶었던 마음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오래된 집이었고 손봐야 할 곳도 많았지만, 아버지는 집 안을 천천히 둘러보시더니 참 좋다고 하셨어요. 마당으로 들어오는 바람도 좋고, 나무가 많은 풍경도 마음에 든다고요. 무엇보다 “너답다”는 말을 해주셨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짧은 한마디였지만 제 선택을 응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던 것 같거든요.
집들이 선물이라며 직접 나무 두 그루도 심어주셨어요. 지금도 마당에서 가장 크게 자란 블루아이스와 계절이 되면 가장 좋은 향을 내어주는 금목서랍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무는 점점 더 자라고,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이 집의 풍경이 되어주고 있어요. 가끔은 그 나무들이 아버지의 마음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말없이 그 자리를 지키며 저희를 바라봐주는 것 같달까요.
지금은 아버지가 계시지 않지만, 마당을 정리하다 문득 나무 향이 스칠 때면 그날의 기억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곤 해요.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한 가지 마음이 더 선명해져요. 조금 더 표현할 걸, 조금 더 자주 이야기할 걸 하는 마음이요. 살아가는 동안에는 당연하게 느껴졌던 시간들이 지나고 나면 참 따뜻하고 귀한 장면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아내와 제 사람들에게 마음을 아끼지 않고 표현하려고 노력해요.
인스타에서 공사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실제 공사 과정은 어땠는지?
솔직히 말하면 공사는 예산 걱정만 없다면 정말 즐거운 일일 것 같아요. 마음에 드는 걸 고르고, 원하는 장면들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는 분명 설레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현실은 늘 그렇듯 쉽지 않죠. 결국 아끼고 또 아끼면서, 살릴 수 있는 건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공사를 해야 했어요. 덕분에 새것으로 덮어버리는 것보다 이 집이 원래 가지고 있던 시간을 남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요. 처음 이 집을 만들었던 사람도 분명 지금의 저처럼 많은 고민 끝에 하나씩 선택했을 거라고요. 벽 하나, 창 하나에도 그 시절의 취향과 생활이 담겨 있었을 텐데, 단지 나와 결이 안 맞는다는 이유로 전부 없애버리는 건 어쩐지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그래서 가능하면 오래된 것들을 잘 간직하고 싶었어요. 지금 제가 다시 손을 보며 살아가듯, 언젠가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요. 집도 결국 사람처럼 시간을 이어받으며 살아가는 존재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사는 각 파트마다 작업자를 따로 불러 진행할 수도 있었지만, 몇 번의 경험 끝에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미 알고 있었어요. 기술도 중요하지만, 오래된 집의 결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필요했어요. 그렇게 목포에서 잘하는 업체를 수소문하다 151스튜디오 대표님을 만나게 됐고, 정말 많은 시간을 함께 고생하며 집을 만들어갔어요. 이상하게도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두 분 있어요. 아버지와 151스튜디오 대표님이요. 그만큼 이 집 곳곳에 두 분의 손과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는 뜻이겠죠.
공사를 하며 가장 크게 느낀 건, 오래된 집은 결국 뜯어봐야 안다는 사실이었어요. 바닥 마감재를 고르고 신나 있던 순간, 보일러 배관이 오래된 동파이프라는 걸 알게 됐거든요. 결국 누수 걱정 때문에 바닥을 전부 철거하고 배관 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어요. 역시 주택 공사는 예상대로 흘러가는 법이 거의 없더라고요. 특히 오래된 집 대수선은 정말 변수의 연속이었어요.
대신 그 과정 속에서 예상치 못한 재미도 있었어요. 철거하면서 나온 오래된 루바 나무들을 버리지 않고 다시 사용해보기로 했거든요. 목수님께 부탁드려 방문으로 새롭게 만들었는데, 작업은 정말 쉽지 않았어요. 목수님도 고생 많으셨고… 제 지갑은 더 많이 고생했죠. 그래도 그렇게 다시 태어난 나무들을 볼 때마다, 이 집의 시간이 조금은 이어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참 좋습니다.
거실, 침실, 주방, 화장실 등 각 공간적 특징을 간단히 공유해 주세요.
거실은 집 안과 바깥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공간이에요. 처음 이 집에 왔을 때부터 마음에 들었던 큰 통창을 그대로 살려 배치했는데, 창밖으로는 계절마다 다른 모습의 식물들이 펼쳐져요. 안에도 식물, 밖에도 식물이다 보니 가끔은 집 안이 마당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소파는 서로 마주 보고 앉을 수 있게 두었는데, 덕분에 자연스럽게 대화를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책을 읽다가 그대로 잠이 들기도 하고, 강아지들을 끌어안고 낮잠을 자기도 하는, 가장 편안한 공간입니다.
침실은 어쩌다 보니 집에서 가장 넓은 공간이 됐어요. 강아지 셋과 함께 자야 하다 보니 라지킹 침대가 꼭 필요했거든요. 티비와 책, 그리고 저희가 좋아하는 작은 소품들로 둘러싸인 공간이에요. 원래는 멋진 벽선반을 달고 싶었는데 현실과 타협해 ‘코리아 스타일’ 찬넬 선반으로 방향을 바꿨어요. 대신 직접 나무를 자르고 오일칠까지 하며 만들었답니다. 손은 많이 갔지만 그래서인지 더 오래 바라보게 되는 것 같아요. 완벽하진 않아도 제 손길이 남아 있는 물건들은 이상하게 쉽게 질리지 않더라고요.
화장실은 원래 하나뿐이었어요. 손님들을 생각해 2층에 하나를 더 만들까 고민했지만, 설비 공사가 들어가면 예산이 또 크게 늘어나더라고요. 결국 1층 화장실을 나누어 사용하는 방식으로 바꾸게 됐어요. 대신 아내가 좋아하는 욕조만큼은 꼭 넣고 싶었어요. 첫 신혼집에서는 공간이 좁아 포기해야 했던 로망이었거든요. 그래서 인터넷에서 가장 큰 욕조를 주문했어요. 물값은 조금 더 나오겠지만, 하루를 마치고 넓은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는 아내 모습을 보면 그만한 행복이 또 없더라고요.
주방은 오래된 유럽 할머니 집 부엌 같은 분위기를 떠올리며 만들었어요. 너무 새것처럼 반짝이기보다, 오래 사용한 생활감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공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귀여운 색감도 조금 넣고, 손잡이는 예산에 맞춰 이케아 제품을 활용했어요. 대신 그릇을 정말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수납만큼은 넉넉하게 만들었답니다. 위아래 서랍마다 그릇과 컵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데, 그 모습만 봐도 왠지 집다운 기분이 들어요.
다이닝룸은 저희가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입니다. 식사를 하기도 하고, 각자의 작업을 하기도 하고, 하루 있었던 이야기를 가장 많이 나누는 곳이기도 하죠. 서울에서 직접 가져온 혼수 테이블과 당근으로 구입한 의자들로 채워져 있는데, 그 의자들은 80년대 보루네오에서 만들어진 제품이라고 하더라고요. 오래된 물건들이 가진 묵직한 분위기를 좋아해서인지, 새것보다 오히려 이런 물건들에 더 마음이 가요. 서로 다른 시간들을 지나온 물건들이 지금 우리 집 안에서 자연스럽게 함께 어울리고 있다는 게 참 좋습니다.
현재 집을 구성하는 요소는 부부중 누구의 취향이 더 많이 반영된 것인지
다행스럽게도 아내와 저의 취향은 꽤 비슷한 편이에요. 오래된 것들을 좋아하고, 너무 반듯하게 정리된 공간보다는 생활의 온기가 느껴지는 집을 좋아한다는 점도 닮아 있고요. 그래서 큰 방향에서 의견이 부딪히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가 공간을 꾸미는 일을 조금 더 즐기는 것 같긴해요. 가구를 배치해보거나, 빈 공간에 어떤 물건이 어울릴지 상상하는 시간을 꽤 좋아하거든요. 그렇다고 혼자 결정하는 편은 아니에요. 마음에 드는 물건이 생기면 꼭 아내에게 먼저 보여주고, 함께 이야기한 뒤 집으로 들이게 되죠. 그렇게 하나씩 채워진 것들이 지금의 집이 된 것 같아요.
아내는 종종 “오빠가 잘하니까 알아서 해”라고 말하곤 하는데, 사실 그 말 안에는 꽤 큰 신뢰가 담겨 있는 것 같아요. 덕분에 저는 마음껏 상상하고, 아내는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생활의 분위기를 더해줘요. 그래서인지 이 집은 누가 더 많이 만들었다기보다, 서로의 취향이 천천히 섞이며 만들어진 공간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공간을 채운 사물 중 각별한 애정을 지닌 가구나 오브제가 있다면?
집 안 가구들 중 가장 애정을 가지고 있는 건 다이닝룸에 놓인 테이블이에요. 결혼을 준비하던 시절에는 서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필요한 것들을 더 신중하게 골라야 했는데, 그때 둘이 같은 마음으로 이야기했던 게 있어요. 다른 건 조금 부족해도 괜찮으니, 테이블 하나만큼은 오래 함께할 수 있는 좋은 걸 들이자고요.
그렇게 선택한 게 스탠다드에이의 테이블이었어요. 직접 서울까지 올라가 트럭에 싣고 내려왔는데, 아버지께서 무거운 테이블을 옮기시면서 “가구 참 멋지다”라고 하시던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어요. 그래서인지 이 테이블은 단순한 가구라기보다, 저희가 처음 함께 삶을 꾸리기 시작했던 시간의 한 장면처럼 느껴져요. 지금도 이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고, 작업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거든요.
또 하나 오래 마음에 남는 건 루이스폴센의 조명이에요. 제가 처음으로 큰마음 먹고 샀던 브랜드 조명인데, 어느덧 1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네요.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옷을 갈아입다가 조명을 툭 치는 바람에 가장 아래 갓이 깨져버렸어요. 순간 ‘쨍그랑’ 하고 울리던 소리가 아직도 잊혀지질 않아요. 이상하게 화가 나기보다 너무 선명하고 아름답게 들렸거든요. 비싸서 그런가..
지금은 깨진 부분을 제가 잡지를 잘라 모양에 맞게 덧대어 사용하고 있어요. 완벽하게 복원된 건 아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마음이 가요. 조명을 볼 때마다 그날 너무 미안해하면서도 어쩔 줄 몰라 하던 아내의 표정이 함께 떠오르거든요. 물건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흠집도 생기고 모양도 변하지만, 그런 기억들까지 함께 남아 있어서 더 오래 좋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깨진 갓이 비싸서.. 아직 못 바꿨어요..)
최근 구매한 인테리어, 리빙 아이템은? 나아가 구매하고 싶은 아이템이 있다면?
2층에는 손님방으로 사용하는 공간이 하나 있어요. 아직은 비어 있는 부분도 많고, 천천히 채워가고 있는 방이에요. 며칠 전에는 그 방의 커튼을 드디어 바꿔주었어요. 원래는 대나무발이나 린넨처럼 자연스러운 소재로 커튼 역할을 대신하고 싶었는데, 마음에 드는 걸 찾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인터넷으로는 질감이나 분위기를 제대로 알기 어렵고, 리뷰만으로 판단하는 것도 늘 아쉬웠어요.
그럴 때면 가끔 수도권에 사는 분들이 부럽기도 해요. 머릿속에 떠오른 것들을 직접 보러 다닐 수 있다는 게 참 큰 장점처럼 느껴지거든요. 저는 원하는 물건 하나를 찾기 위해 오래 기다리거나, 우연히 만나게 되기를 기대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얼마 전 처가에 갔다가 우연히 들른 구제샵에서 마음에 쏙 드는 커튼을 발견했어요. 단돈 만 원이었는데, 집에 가져와 걸어보니 얼마나 예쁘던지 혼자 감탄하며 한참을 바라봤어요. 신기하게도 길이까지 딱 맞더라고요. 그런 순간이 있잖아요. 오래 찾던 퍼즐 한 조각이 제자리를 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순간이요.
이 방을 조금 더 동양적인 분위기의 오브제를 채워가고 싶어요. 언젠가는 제 얼굴보다 큰 달항아리 하나를 집 안에 들여놓는 게 작은 목표이기도 합니다. 묵직하고 담백한 그 형태를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오래된 집 안에도 참 잘 어울릴 것 같고요.
특히 가장 좋아하거나 애착이 가는 '스팟'이 있는지?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을 꼽으라면 아마 소파가 놓인 거실 한쪽일 것 같아요. 이사 오고 가장 처음 들인 가구가 바로 이 소파였거든요. 서울 쇼룸까지 직접 가서 데려온 위키노 소파인데, 당시 저희에게는 꽤 큰 마음의 결정이 필요한 가격이었어요. 그래도 원하는 색의 천으로 제작할 수 있다는 점이 너무 매력적이었고, 길쭉하면서도 둥근 형태도 참 귀엽더라고요. 오래 봐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예전 신혼집은 지금 거실 크기 정도였어요. 둘이 딱 붙어 지내던 작은 공간에서 살다가, 이렇게 넓은 거실에 앉아 있으니, 처음에는 조금 어색할 정도였죠. 그래서인지 가끔 소파에 나란히 앉아 창밖을 바라보면 농담처럼 “우리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해요. 거창한 성공은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공간 안에서 마음 편히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문득 크게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창밖으로는 계절마다 다른 풍경이 보이고, 강아지들은 소파 주변을 맴돌다 잠이 들어요. 어떤 날은 음악을 틀어두고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어떤 날은 커피를 마시며 한참 이야기를 나누기도 해요.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좋은 공간이라는 게, 아마 이런 모습 아닐까 싶어요.
시간이 지나면 가구도 낡고 생활의 흔적도 더 짙어지겠지만, 저는 오히려 그 변화들이 기대돼요. 언젠가 소파 천이 조금 바래더라도, 그 안에 지금의 웃음과 시간들이 함께 남아 있을 테니까요.
집에서 보내는 평범한 일상은 어떤 모습인지?
집에서의 일상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조용해요.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현관문을 열어주면 강아지들이 마당으로 우르르 뛰어나가요. 나무 사이를 뛰어다니고, 풀냄새를 맡고, 햇빛 아래서 뒹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저도 자연스럽게 하루가 시작돼요. 그 사이 저는 커피를 내리고, 아내는 간단한 음식을 만들거나 음악을 틀어요.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2층 거실로 올라가게 돼요. 저희에게는 작은 취미 공간 같은 곳이랍니다. 저는 요즘 베이스 기타를 배우고 있어서 혼자 앰프를 켜두고 한참 연습을 하기도 하고, 아내는 피아노를 치며 시간을 보내곤 해요. 아주 잘하지는 못해도, 좋아하는 음악을 각자의 방식으로 가까이 두고 살아간다는 게 참 좋더라고요. 어떤 날은 음악 소리가 섞이고, 어떤 날은 서로 말없이 각자의 취미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데, 그런 순간들이 참 편안합니다.
집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대는 언제인지, 그리고 이 집안에서 가장 편안한 순간은?
집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해가 조금씩 기울기 시작하는 늦은 오후인 것 같아요. 거실의 큰 통창으로 들어온 빛이 바닥과 벽을 천천히 지나가는데, 그 시간이 되면 집 안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나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고, 식물들도 빛을 따라 조용히 흔들려요. 오래된 나무 벽과 가구들 위로 주황빛이 얹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집도 하루를 천천히 정리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비 오는 날도 참 좋아해요. 빗물이 지붕과 마당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지거든요. 큰 창 덕분에 바깥 풍경이 더 가까이 느껴져서, 마치 집이 자연 속으로 잠시 들어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가장 편안한 순간은 아마 하루의 일을 모두 끝내고 난 뒤인 것 같아요. 강아지들은 각자 좋아하는 자리에 누워 잠들고, 아내는 욕조에 몸을 담그거나 책을 읽고, 저는 소파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봐요.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같은 공간 안에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순간이 있어요.
예전에는 늘 무언가를 더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은데, 요즘은 그런 평범한 장면들이 오래 기억에 남아요. 따뜻한 조명 아래 좋아하는 사람과 강아지들이 함께 있고, 창밖으로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가 보이는 순간들. 저는 아마 그런 풍경 속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집이 만든 새로운 습관이나 변화된 취향이 있다면?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시간을 바라보는 속도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늘 다음 일을 생각하며 바쁘게 움직였는데, 지금은 집 안에 머무는 시간 자체를 더 소중하게 느끼게 됐거든요. 계절이 바뀌는 걸 창밖 나무로 먼저 알게 되고, 햇빛이 들어오는 방향이나 비 오는 날의 냄새 같은 것들도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낙엽을 쓸고, 풀을 정리하고, 집을 돌보는 일들이 번거롭게 느껴질 줄 알았는데, 막상 이런 시간들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예전보다 작은 변화들을 더 오래 바라보게 됐어요.
취향도 조금씩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새것과 완벽한 상태를 더 좋아했다면, 지금은 오래 사용한 물건의 흔적이나 시간이 만든 분위기에 더 마음이 가더라고요. 흠집이 생긴 가구나 빛이 바랜 나무에서도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게 됐고요. 사람도 집도 결국 완벽해서 아름다운 게 아니라, 시간을 지나며 생긴 결들이 쌓여 더 멋있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많이 변한 건 충분함을 느끼는 마음 같아요. 예전에는 더 넓은 집, 더 좋은 것들을 계속 바라봤다면 지금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공간 안에서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일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게 됐거든요. 이 집은 저에게 무언가를 더 갖게 해준 공간이라기보다, 지금의 삶을 천천히 바라보게 만들어준 공간에 가까운 것 같아요.
공간을 정의(대표) 하는 3가지 키워드는?
생활의 온기
저희 집은 완벽하게 꾸며진 공간이라기보다, 살아가며 생긴 흔적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공간에 가까워요. 강아지들이 뛰어다니고, 아내가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며 하루를 보내죠. 좋아하는 물건들과 오래된 가구들 사이에 사람의 체온 같은 분위기가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해요.
이어지는 시간
오래된 집의 흔적을 지우기보다 이어가고 싶었어요.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시간 위에 저희의 시간이 천천히 겹쳐지고, 또 언젠가는 다음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저희 공간에는 새것의 반듯함보다 시간이 남긴 결들이 더 많이 머물러 있어요.
느린 풍경
큰 통창 밖으로 보이는 나무들, 계절마다 달라지는 빛과 바람, 비 오는 날의 소리까지. 이 집에서는 시간이 조금 천천히 흐르는 기분이 들어요. 덕분에 작은 변화들을 오래 응시하고, 평범한 하루에도 충분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어요.
이 공간에서 가장 '나답다'고 느껴지는 포인트가 있다면?
완벽하게 정리되지 않은 모습들이 가장 저다운 것 같아요. 오래된 가구와 직접 만든 선반, 철거하면서 나온 나무를 다시 사용해 만든 문처럼요. 제 손이 한 번이라도 닿은 장면들이 집 안 곳곳에 남아 있거든요. 비싸고 완성된 것들을 들여놓기보다, 부족하더라도 직접 고민하고 손봐가며 채워가는 방식을 더 좋아해요. 그래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조금 삐뚤고, 덜 완벽한 부분들이 많아요. 저는 그런 모습들이 오히려 편안함을 느껴요.
또 하나는 섞여 있는 분위기 예요. 오래된 양옥집의 느낌 안에 동양적인 오브제도 있고, 유럽 빈티지 가구도 있고, 직접 만든 물건들도 자연스럽게 함께 놓여 있거든요. 누군가는 통일감이 없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저는 살아오며 좋아하게 된 것들이 한 공간 안에 모여 있는 모습이 좋더라고요. 어쩌면 제 취향도 한 가지로 설명되지 않는 사람이라 그런 것 같아요.
결국 이 집은 멋있게 꾸민 공간이라기보다, 제가 좋아하는 것들과 생활 방식이 자연스럽게 남아 있는 공간에 가까워요. 그래서인지 집에 놀러오신 손님분들이 종종 말씀해주시곤 해요. "참 너 답다."
앞으로 공간에 더해보고 싶은 변화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일단은 비가 새는 창고 보수를 조금 해야하고..
가장 하고 싶은 건 마당을 조금 더 풍성하게 만드는 일이에요. 계절마다 다른 꽃과 나무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풍경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하거든요. 아버지가 심어주신 나무들처럼, 시간이 지나며 집의 일부가 되어줄 것들을 더 심어보고 싶어요. 언젠가는 마당 한편에 작은 작업 공간이나 도예를 할 수 있는 물레를 두는 자리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Credit
- 사진&글 @co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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