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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라미란이야!

배우 라미란은 인생의 10년을 자신이 할 일에 대한 다짐으로 채웠고, 다른 10년을 할 수 있는 일의 가능성으로 채웠다. 불안을 다스리며 의연하게 살아온 그녀는 앞으로의 10년을 매일의 설렘으로 채워나갈 것 같다.

프로필 by ELLE 2016.03.16

('설렘으로 사는 여자, 라미란' 인터뷰에 이어서)



긍정적인 성격 때문인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남에게 스스로를 내려놓는 사람인가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저를 드러내는 걸 어려워하는 편이고 절친에게도 깊숙한 얘긴 잘 꺼내놓지 못해요. 그렇다고 혼자 끙끙대지도 않아요. 스트레스 자체를 안 만드니까. 


그게 가능한가요 인생에 희로애락이 있는 건데 ‘지금은 힘든 때라고 생각하자, 배우니까 나중에 이걸 써먹을 날이 올 거야’ 그러면서 쿨하게 넘겨왔을 수도 있고, 어쩌면 스스로를 세뇌시키면서 혼자 파이팅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응팔> 이후 대세라고들 불러주시는데 이 거품이 언제 빠질지 모르니 일희일비하지 말자 그래요. 욕하면 하는 대로, 칭찬하면 하는 대로 넘기는 거죠. 안 그러면 너무 민감해져서 힘들 것 같아요. 


좀 누리고 신경 써도 좋지 않을까요 그냥 댓글만 봐요. 뭔 욕이 달렸나 하고(웃음). 


거절은 잘 하세요? 잘 하진 못하는데 나름의 고집이 있어서 할 때는 해요. 그럴 땐 거절당하는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 그런 생각은 안 해요. 


가끔 대충대충 하기도 하나요 어우, 그럼요! 다 대충해요. 


우연히 V앱 류준열 씨 편을 보다가 라 여사님의 연기 저력에 대해 듣게 됐어요. 여권 신을 예로 들면서 슛 들어가기 전과 후가 완전히 다르다고. 그로부터 몇 가지 가정을 해볼 수 있었는데요. 먼저 배우 라미란은 감정에 ‘도란스(변압기)’를 달았다? 안 그래요! 기계도 아닌데 어떻게 그래요. 그냥 대본만 외워가요. 석 줄만 넘어가면 그것도 힘들어서 대본을 꼭 옆에 두고 있어요. 현장 분위기는 그때마다 다르잖아요. 다른 배우의 연기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계획보다 ‘준비 태세’를 하고 있어요. 연기란 어쨌든 상대와 주고받아야 하는 작업이니까요. 


그러니까 도란스는 안 달았다? 에이, 도란스가 어디 있어. 있으면 좀 줘봐요. 


어남류 vs. 어남택? 어…. 어남김! 어짜피 내 남편은 김성균(웃음). 


정봉이 vs. 정팔이? 내 자식들인데 어떻게 한 명만 골라요. 


배우 라미란은 진지해 보이는 걸 원치 않는다! 이건요? 저 되게 진지하게 하는 거예요. 사람들은 그걸 재미있게 보더라고요. 내가 이상한 타이밍에 진지한가? 아님 진지할 때가 아닌가 봐요. 난 항상 진지한데…. 


수더분하거나, 괴팍하거나 의뭉스럽거나 혹은 코믹한 아줌마들. 하지만 배우 라미란이 연기하면 이 아줌마들이 ‘정이 있는 사람’으로 귀결되잖아요. 그 한 끗 차이가 뭘까요 살아 남으려고, 미움받지 않으려고 발버둥친 결과죠. 제가 알고 있는 배우들은 악역을 맡아도 그 역할에 항상 연민을 가져요. 말도 안 되는 합리화를 하든 아니든 자신만의 동기를 만들고 그 배역을 사랑하는 거죠. 수많은 아줌마 중에 얌체 같은 아줌마가 있어요. 그 사람에게도 역사가 있을 것이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겠죠. 사람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저를 좋아한다지만 제가 누군가에는 ‘짜증 유발자’일 수도 있는 것처럼 아주 못된 사람으로 낙인 찍혔어도 누군가에게는 아주 소중한 사람도 있잖아요. 연민을 가질 수밖에 없죠. 


맡은 배역에 이야기를 만드시는군요 평소에 주위를 잘 관찰하는 편이에요. 병원에 가면 거기 있는 환자 보호자들이 다 울고 있진 않잖아요. 아들이 심장병에 걸렸다 해도 사람들에겐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있으니까요. 가끔 어떤 풍경을 스쳐 지나면서 보이는 장면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연기할 때 자주 써먹어요. “아들 미안” 했던 그 여권 신도 (김)선영이 따라 한 거였잖아요. 


‘생활 연기의 달인’이라는 수식어는 어때요 그건 딱 하나, 아무것도 안 해서 생긴 수식어인 것 같아요. 보통 배우들이 슛 들어갈 때 상승되는 호흡이라는 게 있잖아요. 전 그 호흡을 자꾸 버려요. 일상에서 필요 없으니까 최대한 힘을 빼는 거죠. 그리고 <막돼먹은 영애씨>처럼 메소드 연기도 필요하니까 작품 색깔에 톤을 맞춰야죠. 영화 <돌아와요 아저씨> 같은 경우에는 만들어진 연기(?)를 하는데 아마 되게 이상할 거예요(웃음). 


배우 커리어에 전환점이 된 작품들을 손꼽아 본다면요 일단 첫 작품 <친절한 금자씨>, 시작이 너무 좋았고 쉽게 할 수 없는 역할이었어요. 그러다 다시 행운처럼 만난 <댄싱퀸>, 그리고 <소원>은 제게 상을 안겨주며 한 단계 도약할 수 있게 해 준 영화예요. TV로 넘어오면 역시 <막돼먹은 영애씨>와 <응팔>이 있겠죠. 같이 웃고 울었던 게 오래 기억에 남는 작품일 것 같아요. 


최근작 중엔 <히말라야>를 재미있게 봤어요. 극중에 방송 기자가 “산에 왜 오르세요?”하는 질문에 “밥이 맛있어서요” 하는 대사가 있잖아요. “연기는 왜 하세요?”라고 묻는다면요 밥차 밥이 맛있긴 한데…. 일이니까 하는 거죠. 제 일이니까요! 재미있잖아요. 


아마 배우 라미란이 재미있는 또 다른 이유는 다른 일을 찾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봐요 일이라는 게 뭔가 잘 안 되고, 안 풀리면 괴로움 덩어리가 되겠죠. 그래도 계속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거예요. 다작을 하는 이유도 1년 내내 작품을 하게 되면 1년 내내 재미있는 일을 하는 거니까 그래요. 


재미있게 일하는 40대로 사는 건 어때요 전 서른다섯 이후로 나이를 잊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세어 보니 마흔하고도 2년 차를 맞이했더라고요. 하지만 나이가 들었구나, 라기보다는 아직 철없는 애 같은 느낌이에요. 불안한 것도 마찬가지고요. 글쎄요, 저는 또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면서 살까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어떤 입장에서도 내가 최우선인 건 변함없어요. 나에게 씌워진 감투들은 사실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인간 라미란이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가 제일 중요하죠. 그 다음에 엄마도, 아내도, 딸도, 친구와 동료도 되는 것 같아요. 


요즘엔 ‘노력하지 말라’ ‘애쓰지 말라’는 책이 많이 출간돼요. 자존감이 낮아서 기를 쓰고, 애를 쓰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에요 너무 애쓰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제 또래 엄마들을 보면 최선을 다하면서도 자기가 부족하다며 아이들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살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절대 미안해하지 마. 그건 걔 인생이야. 자기는 자기 삶을 열심히 살아. 아이가 그걸 보고 배울 거야.” 그래요. 저는 좋은 엄마예요. 책임져야 한다는 걸 알려주고 하고 싶은 걸 하게 내버려둬요.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일하는 엄마라 케어를 못해서 미안하다? 아뇨, 죄책감은 없어요. 


여자로 살아가는 건 즐거운가요 다름 생엔 남자로 태어나야지, 하는 생각이 안 들 만큼 여자의 삶이 훨씬 재미있는 것 같아요. 


<응팔> 이후 달라진 게 있다면요 아무래도 졸부 역할을 했어서인지 이전에 못사는 집, 힘든 집 캐릭터였다면 어느 정도 신분 상승을 한 것 같아요. 그레이드가 올라갔어요(웃음). 


역할은 골라가며 하실 거죠? 그럼요! 안 맞는 건 잘 안 해요. 뭐, 예뻐야 된다거나 그런 거요(웃음).


Credit

  • photographer 신선혜
  • stylist 오주연
  • EDITOR 채은미
  • Hair & Makeup Artist 임혜경
  • Assistant 허현수
  • DIGITAL DESIGNER 전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