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으로 사는 여자, 라미란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배우 라미란은 인생의 10년을 자신이 할 일에 대한 다짐으로 채웠고, 다른 10년을 할 수 있는 일의 가능성으로 채웠다. 불안을 다스리며 의연하게 살아온 그녀는 앞으로의 10년을 매일의 설렘으로 채워나갈 것 같다. ::라미란,라미란 화보,라미란 인터뷰,엘르,elle.co.kr:: | 라미란,라미란 화보,라미란 인터뷰,응팔 라미란,엘르 라미란

‘흥 부자’ 라미란은 첫 곡, 아니 첫 컷 촬영이 시작되자마자 미디엄 템포의 팝송에 슬슬 몸을 맡기기 시작했다. 주문하지 않은 그루브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오늘 ‘쌍문동 치타 여사’의 무대는 <응답하라 1988>에서 간절하게 입 반주를 하며 춤추던 전국노래자랑 예선전과는 달랐다. 그 모습만으로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톱 스타의 단독 콘서트에 가까웠다. “어머, 언니, 어떻게!! 뭐야, 웬일이야, 너무 멋있어!! 어떻게!!” 익숙하게 공기를 누리고 있는 그녀에게 괴성을 겸한 환호를 보낸 건 다름 아닌 ‘선우 엄마’ 김선영이었다. 쌍문동 여사님들은 이미 서로의 촬영장을 응원 차 방문할 정도로 절친이 돼 있었다. 극성 팬을 발견한 오늘의 스타는 카메라를 집어삼킬 듯한 포즈를 취하는 것으로 팬에 대한 예우를 갖췄다. “이런 조합은 물론이고 이렇게 붙어 있으면서 악다구니는 쓰지 않는 관계도 만나기 힘들죠.”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시간 동안 오히려 NG가 많아졌다는 이일화, 라미란, 김선영 세 배우는 좋은 작품을 만난 덕분에 서로의 삶에 크고 작은 버팀목도 찾게 됐다. 같은 시간 라 여사의 큰아들 정봉이(안재홍)는 촬영에, 정팔이(류준열)는 뉴스 매체 인터뷰에 열중이라는 전갈도 왔다. 아들들의 스튜디오 어택은 없었지만 의상에 따라 애티튜드를 달리하는 ‘끼’ 많고 자존감 높은 한 여배우가 지금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목격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팬을 자청하기에 충분했다. “오늘 화보 촬영 재미있었어요. 근데 너무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처럼 안 보였으면 좋겠어요. 보는 사람들이 어, 나도 저 사람만한데 그럴 수 있게, 배도 좀 나오고 있는 그대로 보여지면 좋겠어요. 예쁘다는 기준? 뭐 화보가 꼭 예뻐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녀는 스튜디오를 떠나기 전 이런 말을 남겼다. 난감한 사실은 배우 라미란은 볼륨감 넘치는 몸매의 소유자였고 배에 힘을 준 덕분인지(!) 뱃살이 담긴 컷을 찾을 수 없었으며 다리는 리터칭이 필요 없을 정도로 예뻤다는 거다. 그러니 이를 어쩐담? <응팔>은 최근 들어 가장 많이 운 드라마였어요 전혀 슬픈 드라마가 아닌데 사람들이 많이 울었다는 건 슬픔을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예고 없이 툭 하고 튀어나오는 장면들이 리얼리티가 살아 있어서 <인간극장>을 보는 것 같잖아요. 연기 잘하네, 이런 게 아니라 상황에 몰입하게 만드니까요. 무려 150만 뷰를 넘긴 <엘르> 온라인의 ‘응팔에서 나만의 이상형 찾기’라는 게임형 기사가 있어요. 저는 ‘택이 아빠(최무성)’가 나왔어요 오, 택이 아빠 되게 멋있어요! 여자들이 좋아하는 타입인 데다 딱 ‘츤데레’예요. 무심한 듯 챙겨주는 스타일. 저희 편집장님은 ‘덕선 아빠(성동일)’가 나왔대요 아유, 난 빚 보증 서는 사람이랑은 못 살아! 그간 자신이 끌어온 역할 중 ‘정봉이 엄마’는 정점이라 할 수 있을까요 아뇨, 아직 멀었어요. 하지만 <응팔>은 에피소드 형식의 작품이어서 매회마다 조금씩 다른 면모를 보여줄 수 있었어요. 저를 홀딱 베껴 먹은 작품이기도 하지만 저를 그렇게 써준 작품도 이제껏 없었죠. 근데 다 보여준 건 아니에요. 또 다른 뭔가가 제 안에 있겠죠.2년 전 <엘르>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배우들이 반등의 기회를 기다리며 참고 연기한다. 나는 그 기간을 10년 정도라고 봤다”고 했어요. 1995년 연극 무대를 시작으로 2005년 영화 데뷔작 <친절한 금자씨>에 출연하기까지 10년,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을 만나기까지 다시 10년이 걸렸어요. 스스로 얘기한 10년의 법칙이 통한 건가요 제가 얘기한 10년은 연극하면서 기다린 시간이에요. 영화를 시작한 이후의 10년은 이미 지난 10년을 겪었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었던 거죠. 연극할 땐 더 일이 안 되고 힘든 일들도 많았어요. 그래도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은 안 했거든요. ‘이렇게 노는 것도 자양분이 되겠지’ 그러면서 그 시간은 그 시간대로 즐긴 것 같아요. 누구나 10년을 잘 버틴다고 좋은 기회가 오는 건 아니에요 그래서 제가 운이 좋다는 얘길 많이 하는 거예요. 10년 정도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투자해야 하는 시간의 기준이었어요. 딱 그 타이밍에 <친절한 금자씨> 오디션을 본 수많은 배우 중에서 아무 이력도 없고, 애 낳고 살이 안 빠져서 고민이었던 저 같은 사람이 덜컥 캐스팅됐다는 사실은 대단한 행운이 아니고서야 설명 불가능하지 않겠어요? 그 10년 동안 자신의 어떤 부분을 인정하고 싶나요 내가 좀 자존감이 높은가 봐요. 어딜 나가려 해도 돈도 없고, 다만 얼마만 있으면 생활이 풍족해질 텐데 하는 생각을 했으면서도 우울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대책 없는 긍정 마인드가 작용했다고 볼 수도 있겠죠.to be continued...인터뷰 내용은 '나 라미란이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