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책방지기 요조 씨, 오늘도 무사해요?

가수 요조가 북촌에 독립 서점 ‘책방 무사’를 열었다. 그곳에 가려고 그녀에게 물었다. “오늘도 ‘무사’ 하나요?”

프로필 by ELLE 2015.12.15



책방 문을 열고 닫으며 출퇴근 생활을 해보니 이런 생활이 처음이라 낯설어요. ‘안 하던 일 하려니 힘들지?’란 질문도 많이 받았는데 내가 주인이기 때문에 출퇴근이 괴롭거나 힘들진 않아요. 사람들이 오가는 공개적인 공간이지만 내 방이 하나 더 생긴 기분이에요. 마음껏 읽고 싶은 책과 장난감으로 채운 이곳에 매일매일 놀러오고 있어요. 


새로운 공간에 잘 적응했나요 처음에는 손님이 없고 한가할 때면 기타도 치고 곡도 쓰려고 했어요. 그런데 혼자 있어도 바짝 긴장한 채로 있게 되더라고요. 마음이 편안하지 않으니 제대로 뭔가를 할 수 없었어요. 이곳에 익숙해지는 것이 급선무란 생각이 들어 손님이 없어도 밤 10~11시까지 머물렀어요. 덕분에 지금은 많이 편해졌어요. 


책방 무사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는 단어는 신수진. 바로 나예요. 내가 좋아하는 책과 남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들을 모아놓았어요. 입고 기준도 제 취향이에요. 허점이 많은 책이더라도 매력적으로 느껴지면 책방에 들여요. 이곳뿐 아니라 독립출판물을 다루는 대다수 서점들이 그럴 거예요. 주인의 취향이 반영돼 있기 때문에 저마다 다른 개성을 갖추고 있어요. 


만약 일곱 살 아이가 찾아와서 자신이 만든 그림책을 입고해 달라고 하면? 물론 그림도 맞춤법도 엉망일 거예요 제발 그런 일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독립출판물 중 의도가 참신하고 의욕도 넘치지만 완성도가 다소 떨어지는 책들이 있어요. 그런 책을 보면 얼마나 만들고 싶었을까 하는 마음이 느껴져요. 


책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지내보니 어떤가요 마음껏 책만 읽고 싶다는 오랜 꿈을 이뤘어요. 하지만 안타까운 점도 있어요. 전에는 마음 내킬 때마다 책을 읽었지만 지금은 강제성이 약간 있어요. 입고 문의가 들어오면 어떤 책인지, 책방에 어울리는지 알기 위해 읽어야 해요. 그런데 봐야 할 책은 많고 시간은 부족하니 재미가 없거나 취향에 맞지 않으면 금방 덮게 돼요. 


좋다고 느끼는 책은 읽고 난 뒤 두고두고 마음에 걸리는 책이 있어요. 앙금이 남아 다른 일을 하면서도 책 속의 인물은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저자는 무슨 의도로 이 말을 썼을까? 계속 되새김질하게 돼요. 이렇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줘야 좋은 책이라고 생각해요. 








책방 전에는 쿠킹 스튜디오로 쓰인 곳으로 주인 할머니가 30년 전 운영했던 미용실 간판을 그대로 뒀다.








7평 남짓한 책방에는 요조가 자신의 취향으로 고른 다양한 책들이 모여 있다.






‘부디 무사하자’는 의미로 책방 이름을 지었는데 어떤 곳으로 자리 잡길 바라나요 누군가를 위한 ‘책 편집 숍’이 됐으면 해요. 옷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단골 편집 숍에 가서 추천도 받고 쉽고 편하게 옷을 사요. 마찬가지로 책을 읽고 싶으면 고민하는 일 없이 이곳에 와서 원하는 책을 찾으면 좋겠어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겠지만 나와 독서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에게 그런 신뢰를 주고 싶어요. 


읽고 싶은 책은 어떤 식으로 구입하나요 시간이 없으면 인터넷 주문을 하지만 주로 서점에 가요. 특히 헌책방에 가길 좋아해요. 어떤 의지를 갖고 집을 나와 서점에 와서 여러 책들을 펴보며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는 일련의 과정을 포함해 ‘책을 읽는다’라고 할 수 있어요. 이렇게 발품을 팔아 책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면 멋진 하루를 보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책방 주인이 된 지금 책을 고르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재미있게 읽은 책을 집어 들면 두근두근하고 속으로 ‘그거요. 그거!’라고 외치기도 해요. 그러다 책을 내려놓으면 안타까워요. 그렇지만 손님에게 ‘아까 보다가 내려놓은 책 재미있어요’라고 말하는 게 조심스러워요. 이곳에 설레는 마음으로 왔을 텐데 뭔가를 강요하는 것 같아서요. 


서점을 하는 사람들끼리 만나는 모임에 나간다면서요. 그들의 공통점은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내고 남들이 심심하고 지루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즐길 줄 알아요. 누군가는 혼자 영화를 보고 전시를 다녀온 일을 SNS에 올리면서 자신의 외로움을 드러내지만 그들은 그런 것들을 정말 재미있어하며 포스팅해요. 그래서 서점에 온종일 있어도 심심하다는 넋두리를 안 해요. 또 조용한 일상에 만족해하며 살아요. 다 같이 모이면 ‘장사가 안 돼서 어떡하죠? 하하하!’ 하며 서로 팔자 좋게 웃어요. 


이곳에선 혼자 이런저런 공상하기 좋을 것 같아요 음악 들으면서 하는 공상이 많아요. 내가 듣고 있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된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곤 해요. 현실에서는 포크 장르를 하지만 상상 속에서는 일렉트로니카 뮤지션이 될 수 있어요. 여기에 어울리는 의상, 악기도 떠올려보고 어떤 곡을 만들지 몇 시간 동안 상상해요. 


영화 <비포 선셋>의 남녀 주인공은 서점에서 재회하잖아요. 책방 무사에서 펼쳐질 수 있는 로맨스를 상상해 보면 얼마 전 한 출판사에 책 주문을 했는데 이곳에 자주 오는 담당자가 ‘제가 출장을 가게 돼 사무실의 미남 직원이 대신 갈 것 같아요’라고 메시지를 보내왔어요 이런 식으로 로맨스가 시작되지 않을까요.








구석구석 손으로 일일이 일군 듯한 흔적들이 엿보인다.








이곳에선 다양한 독립 잡지와 소규모 출판물을 소개하고 있다.








책방 무사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책으로 가득한 방 같은 분위기다.






북촌에 산 지 2년 정도 됐는데 책방에 머물면서 새로 알게 된 동네 풍경은 책방 앞에서 동네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시간을 보내세요. 해의 방향에 따라 자리를 옮기시는데 그 모습이 굉장히 귀엽고 사랑스러워요. 또 창밖으로 보이는 텃밭에 참새들이 우르르 몰려왔다가 가버리기를 반복하는데 이걸 보고 있어도 시간이 잘 가요. 가끔 텃밭 야채를 따 가는 사람을 발견하면 그러시면 안 된다고 말려요. 


어엿한 동네 주민이 된 것 같아요 사람들이 책방이 생긴 뒤 골목 분위기가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또 저녁 늦게까지 불을 켜놓으니 해가 저문 뒤 골목을 다니기가 무섭지 않다고 하시고요. 그러다 보니 동네에 대한 책임감 같은 게 생겼어요. 


계동 골목을 함께 걷고 싶은 소설 속 캐릭터는 딱 한 번 소설 속 주인공한테 빠진 적 있어요.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의 덴고예요. 일기장에 그에게 보내는 편지를 쓸 정도로 몰입했었어요. 옛정을 생각해서 덴고와 걷고 싶어요. 


책방 무사에 온 김에 북촌에서 또 어딜 가보면 좋을까요 정독도서관 쪽으로 내려가면 갤러리들이 많아요. 종로에서 집으로 걸어오는 날이면 흥미가 당기는 전시들을 보곤 해요. 고궁 산책도 좋아요. 지금은 추워서 못하지만 봄여름에는 아침마다 고궁 주위를 걸어요. 외국인 관광객들을 보는 재미도 있어요. 책방에도 외국인이 많이 와요. 길 물어보려고요. 


허기가 지면 어디로 책방 근처에 목욕탕 간판을 단 ‘파스타’란 곳이 있어요. 가게 이름 그대로 파스타 메뉴를 팔아요. 생긴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유명해졌어요. 계동 골목을 좀 더 내려가면 태국 음식점 ‘화양연화’와 고깃집 ‘중경삼림’이 있고 ‘카페 공드리’ 맞은편에 위치한 ‘북촌식당’의 백반도 맛있어요. 


뜬금없지만, 무사히 산다는 건 ‘무사’란 단어는 침대에서 많이 떠올리는 것 같아요. 자기 전에는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냈구나’, 아침에 일어나서는 ‘밤새 아무 일 없이 무사히 눈을 떴구나’ 하며 안도해요.







Credit

  • PHOTOGRAPHER 맹민화
  • EDITOR 김영재
  • ART DESIGNER 조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