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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20 '강풀'의 순정Ⅱ

웹툰 계의 ‘암모나이트’ 혹은 ‘살아 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강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 작가다. 한결같은 이야기를, 한결같은 믿음으로 쓰고 그린다. 재미있는 작품에 대한 순정으로.

프로필 by ELLE 2015.04.10

 

항상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만 한다. 인간의 선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는 것 같다 근본적으로 사람은 착하다는 믿음이 있다. 악당조차도 길가의 아이가 차도에 뛰어들면 달려가서 잡아줄 거라 생각한다. 사실 나는 적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안 본다. 결국 내가 믿는 사람들과만 교류하다 보니 내 세계에 갇힌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운 좋게도 착한 사람만 만나며 살아온 덕분일지도 모르고.

 

그런 믿음이 휴머니즘의 감동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 한편으론 선으로 표백된 세계관을 보고 있다는 의심이 들 때도 있다 잘 알겠지만 내 작품에서 악당은 둘밖에 없었다. <26년>의 그 인간하고 <이웃사람>의 살인마. 그런데 <26년>이야 살아 있는 나쁜 놈이니까 <이웃사람>의 살인마가 내가 만든 유일한 악당인 셈이다. 사실 <이웃사람>의 시나리오엔 살인마의 외로움에 관한 2화 분량의 서사가 있었다. 그런데 연재 직전까지 고민하다 결국 걷어냈다. 살인마에게 정당성을 쥐어주는 건 아니더라. 그때 알았다. 한 명씩 다 사연을 입혀주는 내 만화의 캐릭터들은 결코 악당이 될 수 없는 거지. 그래서 한때 고민했다. 너무 단편적인 이야기만 하는 걸까. 그런데 세상에 널린 게 만화잖아. 이런 만화가도 하나쯤은 있어야지. 그리고 나는 착한 이야기가 재미있다. 이기적이거나 폭력적인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일단 내가 재미를 느끼기 힘들 거다. 결국 앞으로도 계속 이렇겠지.

 

결국 이야기의 내면은 확실하니 외피에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겠다. 뻥을 치고 싶어지는 것도 그런 말인 거 같고. 같은 이야기를 하되 다른 재미를 줘야 하는 거다 나는 지금 매너리즘과 스타일의 경계에 서 있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도 재미있으면 스타일이다. 재미가 없으면 매너리즘이고. 착한 사람들이 누군가를 돕는 이야기를 열한 편이나 했지만 앞으로도 같은 이야기를 할 거다. 그러니 ‘강풀은 이제 뻔해’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면 결국 재미있는 작품을 해야지. 그러니 매번 긴장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독자들이 무섭다. 독자들이 재미없다는데 이걸 내 스타일이라 우길 수는 없잖아. 우기면 비참해지는 일이고.

 

국문학과 출신인데 글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을까 없다. 소설가가 되기엔 문체가 떨어지고, 화가가 되기엔 그림체가 떨어지니까. 그런데 만화가 나를 구원했다. 두 능력으로부터 조금씩 떨어진 거리에 있었는데 거기에 만화가 있었던 거다. 만화가 나한테 맞는 거 같다. 재미있기도 하고.

 

작품 속 공간의 모티프가 되는 실제 공간을 치열하게 찾고 취재하는 편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야기도 잘 풀리기 때문이다. 천재적인 이야기꾼이라 가만히 앉아서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어렵다. 그래서 실제 공간을 많이 찾는다. 그러면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생긴다. <무빙>의 배경이 되는 선사고등학교에 지금까지 스무 번 이상 갔다. 6화에 등장하는 달리기 장면 때문에 운동장에서 실제로 뛰어보기도 했다. 집착처럼 보일지 몰라도 내 입장에선 가보면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포털 사이트 중심이었던 웹툰의 플랫폼이 다양해지고 있다 웹툰은 지금이 최고 절정기이고 여기서 더 커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웹툰을 보는 독자 수는 한정돼 있는데 시장이 너무 커진 감이 있다. 거품이 많이 꼈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처럼 여겨지지만 언젠가 이 거품이 빠질 거다. 그때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길을 잃을까 걱정된다. 예전에 플래시 애니메이션 시장이 팽창했다가 훅 꺼진 것처럼.

 

강동구청에서 운영하는 길고양이 급식소 사업을 주도했던데, 과정이 궁금하다 강동구청에서 강풀 만화거리를 만들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처음엔 거절했다. 민망하잖아(웃음). 그런데 문득 길고양이 급식소에 대한 아이디어가 생각난 거야. 그래서 강풀 만화거리 만드는 거 수락할 테니 구청장님과 한 시간 독대권을 달라고 했지. 그리고 강동구 길고양이를 돌보는 캣맘들과 아이디어를 논의했고. 구청장님을 만나서 설명했고, 실무자들과 스무 번 정도 회의를 했다. 결국 구청에서 시범사업으로 운영하게 됐는데 고양이를 싫어하는 구민들 입장에선 세금을 왜 이렇게 쓰냐고 항의할 수 있잖아. 그래서 구청에 조건을 걸었지. 급식소 설치물과 1년치 사료를 내가 대겠다고.

 

한두 푼 드는 게 아니었을 텐데 영화 <26년>이 흥행해서 개런티가 들어왔는데 절반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기부하고 절반은 고양이 급식소 사업에 썼다. 급식소 50개를 설치하고 1년치 사료를 샀지. 왠지 <26년>으로 번 돈은 내 개인적인 용도로 쓰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거든. 그리고 구청에서도 민원이 들어오면 기부 형태로 이뤄지는 것이니 당당할 수 있잖아. 사실 구청에선 주민 중 절반만 반대해도 사업을 시행하는 게 힘들거든. 그러니 구청에서도 대단한 용기를 냈다고 생각해. 사료를 아예 구청에 보내주면 동회의가 있을 때 동장님들한테 배급하고, 알아서 배식하게 되는 거야.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큰 지원이지.

 

그 뒤로 1년이 지났다. 지금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 사실 이 아이디어는 캣맘들이 편하게 사료를 살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목적이었는데 사업 반응이 너무 좋았다. 덕분에 사업을 지속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1년마다 홍보 만화를 그려주는 대가로 사료 회사에서 기부받기로 했어. 재작년엔 만화 외에 가장 많이 신경 썼던 일이 그거였는데 정말 다행이지. 요즘은 고양이 잡아가라는 민원도 없대. 애들이 밥을 먹을 수 있으니까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안 찢는 거지. 덕분에 고양이를 싫어하던 사람들도 의식이 바뀐 것 같아. 다행이지.

 

<무빙>은 아직 연재 초기인데 6화 마감 때 29시간 동안 철야를 했다고 들었다. 연재하다가 가끔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 만날, 회당 30번씩(웃음). 너무 힘들 땐 ‘다음’이 폭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웃음). 살짝 사고가 나서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이유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2~3주 안에 회복될 정도로 팔만 살짝(웃음).

 

그런 과정을 생각하면 연재 전부터 무서울 것 같다 내가 어떤 생활을 해야 되는지 안다는 거지. 매일같이 18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서 살아야 된다는 거.

 

그만큼 연재를 완료했을 때의 쾌감도 상당하겠다 <26년> 끝냈을 땐 진짜 울었다. 마지막회 원고 송고를 위해 엔터 키를 누르니까 눈물이 펑펑 나더라. 그땐 너무 힘들었거든.

 

연재가 끝나면 뭘 할 건가 애 낳고 나서 연재하는 게 너무 힘들어졌다. 집에 가고 싶어서. 6화까진 그 일념으로 늦지 않고 제 시간에 업데이트했다. 집에 빨리 가려고(웃음). 가족들과 여행 가고 싶다.

 

'TO BE CONTINUED…'

 

 

 

 

Credit

  • editor 민용준
  • photo 김도원
  • design 하주희